135화 절 죽이시려거든
목운요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월왕의 손을 떼어 내려 했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왕야…… 쿨럭…… 영군월……!”
별안간 월왕의 정신이 돌아오고, 뿜어내던 살기가 홍수처럼 물러갔다. 그는 놀란 눈을 한 채 목운요를 놓아주었다.
“쿨럭쿨럭…….”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목이 졸린 그녀는 계속 기침을 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월왕이 황급히 손을 뻗어서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느냐?”
잠시 숨을 돌리니 점점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절 죽이고자 하신다면 말 한마디로 족한데, 친히 손대실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어찌 널 죽이려 한단 말이냐? 조금 전엔…… 나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월왕은 쩔쩔매면서 목운요의 상태를 살폈다. 목덜미에 시퍼런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백옥처럼 희고 깨끗한 피부 때문에 손자국이 유독 눈에 띄었다.
목운요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느냐?”
월왕이 그녀의 팔을 잡고 부축했다. 무심코 그녀의 손목을 본 월왕은 별안간 미간을 찡그렸다.
“네 손목은 왜 또 시퍼런 멍이 든 것이냐?”
목운요는 마음속이 복잡했다. 방금 전 월왕의 서늘한 살기가 불현듯 회귀 전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에 저도 모르게 말투가 표독스러워졌다.
“이 시퍼런 자국이 생소하십니까?”
“혹, 내가 낸 상흔이냐?”
그녀가 고개를 들어 월왕을 쳐다보았다. 짙은 원망의 눈빛이 스쳤다.
“운요야…….”
월왕은 목운요의 원망을 날카롭게 알아차렸다. 마음이 몹시 아팠다.
목운요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일어나서 소매와 치맛자락을 정돈했다.
“아까는 왕야께서 잠꼬대를 하신 듯합니다. 이제 깨어나셨으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 진 총관께서 약을 달이러 가셨으니 그걸 드시고 좀 쉬십시오.”
“미안하구나. 아깐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알고 있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이제 깨어나셨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잠깐.”
월왕이 일어나 목운요의 앞에 섰다. 그녀의 손목과 목덜미에 난 상처를 보니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난…….”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입가에 맴도는 말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깐 놀라서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목운요는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그러다 바닥에 핏자국이 점점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왕야의 상처입니까?”
월왕은 그제야 등 뒤가 쿡쿡 쑤시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상처가 벌어졌나 보다…….”
월왕의 상태를 보자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앉으십시오.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월왕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등에 싸맨 붕대를 풀며 목운요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과연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그녀는 신속히 상처를 깨끗이 닦은 뒤 새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상처가 덧나면 안 되니 크게 움직이지 마세요.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월왕은 상처에 대한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깐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전혀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니 왕야께서도 개의치 마십시오.”
차가운 대답에 월왕은 낙담했으나, 그녀에게 이 이상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까 날 영군월이라고 부르지 않았느냐?”
순간 목운요의 손이 살짝 떨렸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왕야의 존함을 부르겠습니까. 정신이 혼미하여 잘못 들으신 겁니다.”
월왕의 눈에 웃음기가 반짝하고 스쳤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럼 편히 쉬십시오.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목운요가 돌아가고 난 뒤, 진 총관이 탕약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월왕이 깨어난 것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
“왕야,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아까는 한참을 불러도 일어나지 않으시기에 어찌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걱정을 시켰군.”
월왕은 목운요의 눈에 비친 원망의 빛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다.
“일전에 운요의 신분을 재차 조사하라 한 건 어찌 되었나? 의심스러운 점은 없었어?”
진 총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 소저의 출신에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단지 부친이 돌아가신 후 성격이 많이 변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해가 됩니다. 가족이 죽으면 충격이 매우 커서 보통 사람들도 성격이 조금씩 변한다지 않습니까? 다만, 목 소저의 부친께서 돌아가신 연고가 좀 이상한데…….”
“술에 취해 발을 헛디뎌서 강물에 빠져 익사한 것 아닌가?”
“관아에서 공식적으로 검시한 결과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목 소저의 부친께선 생전에 술을 드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물에 익숙해서 여름이면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살림에 보태기도 했답니다.”
월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단 말인가?”
“확실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목 소저의 모친께선 양녀이십니다. 길러 주신 양부모는 평범한 농민인데, 소씨 가문의 하인과 친척이랍니다. 아무래도 소씨 가문이 여러 일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합니다.”
“소씨 가문이라…….”
그는 문득 목운요가 만든 병풍이 소씨 가문을 곤경에 빠뜨렸던 일이 생각났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조사한 내용을 되짚다 보니 진 총관도 의문이 들었다.
“왕야, 계속 더 조사할까요?”
돌연 월왕의 눈빛이 떨렸다.
“기억난다. 오래전 소씨 가문에서 아이 하나를 잃어버렸다지.”
“아, 맞습니다! 분명 그랬습니다. 당시 소씨 가문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많은 재산을 쏟아부었지요. 이에 덕 있는 장공주께서 감동하셔서, 황상께서도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재물을 하사하셨고요.”
“혹시 소청 부인이 소씨 가문의 잃어버린 아이일 수도 있지 않겠나?”
“왕야 말씀대로라면 소청 부인이 소씨 가문 가주인 소문원의 여동생이라는 건가요?”
진 총관이 깜짝 놀라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됩니다. 소청 부인을 입양한 부부는 분명 소씨 가문과 인연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못 찾았을까요?”
“그래, 그 점이 이상하군…….”
월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네 생각엔 소청 부인이 자신의 출생을 알고 있는 듯한가?”
“소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아이는 갓난아기였습니다. 아마 출생에 대해선 모를 겁니다.”
월왕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그런데 난 운요가 소씨 가문과 제 어머니의 관계를 아는 것 같단 말이지…….”
진 총관은 여전히 반신반의한 눈치였다.
“하긴, 예사롭지 않은 점이 있긴 합니다. 특히 그 병풍 말입니다. 소씨 가문이 그걸로 황상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춘수방도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춘수방이 소씨 가문과 결탁한 거야 암암리에 다들 알던 사실이지요.”
진 총관은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걱정이 되었다.
“왕야, 만약 소청 부인이 그 잃어버린 딸이라면 목 소저는 소씨 가문과 사촌지간이 됩니다. 목 소저의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소씨 가문에서 그들을 데리고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 소저의 신분이 복잡해진다. 왕야께서 아내로 맞이하고 싶으신 분인데, 소씨 가문이라니…….’
“진 총관, 운요의 부친이 사망한 원인을 다시 자세히 조사해 주게. 앞으로 소씨 가문의 움직임도 더욱 주시하고. 소청 부인의 양부모가 정말 소씨 가문과 연관돼 있다면, 소씨 가문에서 필시 소청 부인과 운요의 행적을 쫓고 있을 거야.”
“예. 왕야께선 우선 쉬십시오. 지금은 일보다 안정이 우선입니다.”
“그래.”
* * *
그 후 며칠 동안 목운요는 매일같이 금수원에 가서 월왕의 상처를 살폈다.
월왕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그녀의 손목과 목덜미로 눈이 갔다. 검푸른 멍은 많이 사라졌지만, 자국이 아직 남아 있어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집요한 시선이 계속되자, 목운요의 목덜미와 귀가 붉어졌다.
그녀는 붕대를 다 감고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자 서둘러 일어났다.
“왕야, 새로 약을 발라 뒀습니다. 상처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움직임에 유의하십시오.”
“알겠다.”
월왕의 눈빛이 유달리 깊어졌다.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가 빨개진 걸 본 것이다.
백옥색 피부에 분홍빛이 물들자 손을 뻗어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심장은 어지럽게 뛰었다.
월왕은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 식은 차를 마시니 한결 나아졌다.
“방금 전달받은 소식인데, 양주성 소금 사건에 관한 증거가 나왔다는구나. 황상께선 이를 듣고 진노하셔서 즉각 이원일을 파면하고 서릉으로 압송하시려는 모양이야.”
“일이 그리 빨리 진행되었습니까?”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였다.
“주도면밀한 네 계획 덕이다. 소금 상인들이 이원일을 직접 고발할 줄은 어떻게 안 것이냐?”
목운요가 옅은 웃음을 띠었다.
“그냥 모두 운이었고, 소금 상인들이 이원일을 고발할 증거를 남겨 두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면 믿으실 겁니까?”
“당연히 믿지 않지.”
그가 고개를 젓자, 그녀가 작게 탄식했다.
“그렇다면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그 증거들은 제가 일부러 소금 상인들의 수중에 들어가도록 한 겁니다. 이원일의 인감이 찍힌 글도, 이원일의 필적이 담긴 서신도요. 스스로 지키기 힘들어진 소금 상인들은 당연히 대황자와 이씨 가문을 공범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면 황상께서 벌을 경감하실 테니까요.”
월왕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 시선에 목운요는 어색한 듯 물었다.
“어찌 그리 보십니까?”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설 하나가 생각나는구나.”
“전설요?”
“월서에 한 눈여우가 있었는데, 해와 달의 정기를 흡수하고 천지의 영기를 빼앗아서 사람이 되었다지.”
목운요는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왕야께선 제가 그 눈여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맞느냐?”
“듣기론 구미호가 사람을 홀려서 심장을 파먹는다고 하던데, 왕야께선 심장이 파먹힐까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목운요는 말하는 중간에 일부러 월왕의 가슴팍을 힐끗 바라보았다. 혀끝을 내밀고 부드러운 입술을 핥는 모습이 마치 군침을 다시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않는다.”
목운요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전 여우 요괴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가 요괴라고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농담도 잘하십니다.”
이내 그녀가 일어나서 탁상 위의 약상자를 정리했다. 그러다 옆에 놓인 책 한 권을 건드려 떨어뜨렸다. 책이 떨어지며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종이가 흘러나왔다.
허리를 굽히고 책을 주우려던 그녀는 종이에 자신과 소씨 가문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월왕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