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34화 (134/442)

134화 부상이 병이 되다

황상의 분노에 대신들은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내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황상의 명이 떨어진 가운데,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사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금 상인들과 관리들이 결탁한 일이었다. 소금 상인들은 소금세로 인한 손실을 메꾸기 위해 암암리에 관염을 샀다. 그 후 흙모래를 실은 배와 소금을 실은 배를 바꿔치기하고는 소금이 서강에 빠졌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이 들통날 뻔하자 소금 상인들은 소금세 조사를 맡은 양강총독 이원일에게 뇌물을 바치고, 양주성의 염운사 등을 모함해 체포하도록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원일이 어떻게 양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소금을 찾아낼 수 있었겠는가?

이후 이원일은 공로를 치하받기 위해 황상을 기만하고 거짓을 고했다. 엉뚱한 이에게 죄목을 뒤집어씌우고 소금 상인들을 보호하려 한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승상 이경주는 서둘러 황상을 알현하러 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각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황상은 끝내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목이 뻣뻣하던 소금 상인들도 이번만큼은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낱낱이 파헤쳐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부에 소금 상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오 수령, 방도를 생각해 주십시오. 이대로 가다간 저희가 살길이 없습니다!”

오민지는 이에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한가롭고 여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여러분, 여기서 시끄럽게 떠들 시간에 후사를 도모하는 게 낫겠소이다.”

소금 상인들은 모두 황당해 마지않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후사를 도모하라니요?”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증거가 저희 손에 있습니다! 증거를 제출한다면 저희를 그나마 관대하게 봐주실 겁니다!”

“맞습니다! 지금 머뭇거리실 때가 아닙니다. 누구든 우릴 없애려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순 없어요. 반드시 살길을 찾아야지요!”

오민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좋소. 지금 이 일을 누가 저질렀는지 그 배후를 알 수 없으니 방법은 하나요. 대황자님이 그 속에 휘말려 들게 하는 것이지. 그분이 위에 버티고 있어야 우리가 그나마 벌을 가볍게 받을 거요.”

* * *

금수원 서재.

목운요는 미간을 찌푸린 채 빠르게 손을 놀렸다. 옷소매와 손가락엔 피가 묻은 채였다.

“조금만 참으세요. 혈맥을 은침으로 봉하긴 했지만, 화살촉이 깊이 박혀 뽑을 때 많이 아플 겁니다.”

월왕은 옷을 반쯤 벗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등 뒤엔 화살이 깊이 박혀 있었다. 그곳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괜찮다. 빼라.”

월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마엔 구슬 같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목운요는 독주로 비수를 소독한 뒤, 불 위에 칼날을 올려 구웠다.

그리고 화살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등의 상처를 칼로 그은 후, 과감히 화살을 뽑아냈다.

월왕은 윽, 하는 소리를 내었으나 몸은 미동 하나 없었다.

상처를 따라 검은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목운요는 상처 주변을 계속 눌러 검은 피가 더 흐르게 두었다. 핏빛이 선홍색으로 변하고 나서야 지혈을 위해 붕대를 감았다.

옆에서 진 총관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목 소저, 왕야의 상처가 어떻습니까?”

목운요는 상처를 다 싸매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살에 독이 묻었습니다. 다행히 맹독은 아니라 며칠 탕약을 드시면 독성은 다 사라질 거예요. 다만 상처가 깊어 성심껏 몸조리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남을 겁니다. 그러니 당분간 충분히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최대한 움직이지 마셔야 하고요.”

월왕은 목운요를 보며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일이면 월서로 가야 한다.”

그에 목운요는 미간을 찌푸렸다.

“왕야, 경릉성과 월서의 거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상처가 매우 심합니다. 목숨을 잃고 싶으신 겁니까?”

“월서를 비운 지 너무 오래되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안 됩니다!”

목운요가 즉시 반대했다.

“그 상태로 월서에 가셔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하들 걱정만 시키실 겁니다. 조금 더 회복되면 그때 가십시오.”

월왕은 목운요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보다 더한 부상을 당한 때도 있었다. 결국엔 아무 탈 없이…….”

“오늘 상처를 치료해 준 건 접니다. 그러니 떠날 수 있을진 제가 결정할 문제예요.”

“하나 월서의 상황이 긴박해서…….”

“월서에선 평소 싸움들이 빈번히 일어났어요. 왕야께서 부재하시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월왕은 고개를 살며시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목운요의 결정을 묵인한 셈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진 총관은 소리 없이 물러났다. 서재의 문을 닫으며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야께선 고집이 세서 평소 결단을 내리시면 그걸 꺾을 수 있는 자가 없었지.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왕야를 말리지는 못했어. 한데 마침내 왕야를 다룰 분을 찾았구나.’

목운요는 손에 묻은 핏자국을 씻어 냈다.

“일단 쉬고 계십시오. 전 옷을 갈아입고 탕약을 지어 오겠습니다.”

한데 발걸음을 옮기기 무섭게 월왕이 그녀를 붙잡았다.

“빼앗은 소금은 믿을 만한 이에게 맡겨 두었다. 어떻게 각지에 내다 팔지는 소란이 가라앉고 나서 생각해 보자꾸나.”

그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채긴 힘들지만, 조심스러움이 엿보여 왠지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서둘러 시선을 거두었다.

“네. 지금 사태가 한창이니, 그 일은 나중에 천천히 도모하기로 하지요. 그럼 쉬십시오.”

* * *

집으로 돌아오니 금란과 금교가 바삐 나와 맞이했다. 그들은 목운요의 소매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소저, 다치셨습니까?”

“아뇨, 다른 사람이 다친 걸 치료해 주다가 묻은 거예요.”

그녀들을 안심시키고 방으로 향한 목운요는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눈여우가 부드러운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올라와 그녀에게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눈여우의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지니 심사가 저절로 풀리는 듯했다. 목운요는 한참 뒤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였다면 월왕이 다친 채로 월서로 가려 했다 해도 붙잡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내 반응은……’

무의식적인 반응은 사람을 속일 수 없다. 월왕에 대한 제 마음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때, 금란이 탕약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소저, 약을 다 달였습니다.”

목운요는 꿈틀대던 눈여우를 어루만지다 일어났다. 그러고는 탕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 총관께 전해 주세요.”

“네, 소저.”

저녁이 되자 어머니가 하운방에서 돌아왔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중에 자연스레 요즘 떠들썩한 소금 사건에 대한 말이 나왔다.

“염운선을 훔쳐 달아나다니, 그런 대단한 용기를 가진 자가 누군지 참 궁금하구나. 오늘 하운방에서 옷을 사던 부인 말로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하더라. 큰 소동이 난 모양이야.”

이에 목운요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하긴, 월왕도 화살에 맞았지. 생각해 보면 염운선을 빼앗는 게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 거야.’

“요아야, 왜 그러니?”

개탄해 마지않는 도중, 딸아이가 얼이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내 얘기에 놀랐나 보구나. 요 며칠 정신없어 보이던데, 저녁 다 먹었으면 일찍 돌아가 쉬려무나.”

“아니에요, 어머니. 그저 그런 큰일을 일으킨 게 과연 누굴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조정에서 어련히 조사하겠지. 우리 같은 일개 평민이 어찌 참견하겠어? 되었다. 헛된 생각은 그만하고 밥이나 얼른 먹자. 일찍 쉬어야지.”

* * *

목운요는 소청과 식사를 마치고 일찍 방으로 돌아갔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그러던 중, 돌연 창가에서 소리가 들렸다.

“목 소저.”

목운요는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손으로는 베개 밑의 비수를 더듬었다.

“누구죠?”

“우항입니다. 왕야께서 고열이 나서 열이 떨어질 줄 모릅니다. 진 총관께서 소저의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목운요는 재빨리 옷을 갖춰 입고 우항과 함께 급히 금수원으로 향했다.

진 총관이 목운요를 보고는 서둘러 맞이했다.

“이렇게 늦은 밤 무례를 범하여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왕야께선 어떠세요?”

“한 시진이 넘도록 열이 펄펄 끓으십니다. 정신을 잃으셔서 깨어나지 못하고 계세요.”

목운요는 곧장 월왕의 맥을 짚고, 상처를 덮은 붕대를 들춰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몸속에 있던 독은 대부분 빠졌고, 상처도 괜찮아요. 지금 열이 나는 건 정상입니다. 하지만 깨어나지 못할 리는 없는데…….”

“그런…….”

“일단 열을 내릴 방법을 생각하고 나서 깨울 방도를 찾죠.”

목운요가 일어나려는 찰나, 누군가가 손목을 세차게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월왕의 손이 보였다.

“왕야, 깨셨어요?”

월왕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지만, 손의 힘은 몹시 세었다. 목운요는 눈을 찡그렸다.

진 총관이 급히 다가와 월왕의 손을 떼어 주려 했지만 붙잡는 힘만 더욱 세질 뿐이었다.

“목 소저…….”

“전 괜찮으니, 약을 달여 주세요.”

진 총관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물러났다.

방에는 월왕과 목운요, 두 사람만이 남았다. 탁상 위의 촛불이 이따금 흔들리며 연기를 냈다.

목운요는 월왕에게 손목이 잡힌 채 앉아 있었다. 뼈마디가 아플 정도였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월왕은 더욱 세게 잡았다. 그러니 그저 내버려 둘 수밖에.

* * *

월왕의 수려한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사방에 냉랭하게 풍기던 기운도 사라졌다. 늘 강하게만 보이던 그가 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칼처럼 매섭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신답니까?”

월왕은 아직 꿈속에 빠져 있는 듯 인상을 찡그린 채였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극히 불안정해 보였다.

그때, 월왕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목운요의 목을 졸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일말의 감정도 없는 오싹한 눈으로 그녀를 차갑게 주시했다.

무한한 살기가 솟구쳤다. 손안의 사람을 찰나에 사지로 보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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