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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33화 (133/442)

133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 * *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그간 일부러 습보헌에 방문도 하지 않았더랬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장신구들과 함께 시녀가 맞이했다.

“소 부인과 목 소저를 뵙습니다.”

“그리 예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 저흰 그냥 둘러보러 왔어요. 추천해 줄 만한 장신구가 있나요?”

소청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

“부인께서 오셨으니 오늘 새로 들어온 장신구를 소개해 드리지요. 모양이 참신하고 예쁘답니다. 청아하고 진귀한 것이 부인과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시녀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청은 칭찬에 부끄러워하며 머리 장식이 놓인 장으로 눈을 향했다.

“이 머리 장식이 참으로 곱구나.”

꽃이 조각된 수정 비녀였다. 소청은 비녀를 들어서 목운요의 머리에 대 보았다.

목운요가 비녀를 머리에 꽂아 본 뒤 한 바퀴 가볍게 돌아보았다.

“어머니, 어때요?”

“예쁘다. 우리 딸이 꽂으니 더 곱구나.”

“그럼 이거 사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습보헌의 가게 주인이 나왔다.

“소 부인과 목 소저를 뵙습니다. 저는 습보헌의 주인, 위균이라 합니다. 서로 이웃 간이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위균이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세심한 사람이 봤다면 그가 인사하는 모양새가 유독 공손한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목운요는 위균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어머니와 머리 장식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계산할 때가 되어서야 소청은 자신이 너무 많이 골랐다는 걸 깨달았다.

“요아야, 내가 너무 많이 산 것 같구나.”

“어머니 것은 비녀 두 개뿐인걸요. 나머진 다 절 위해 고르신 거잖아요. 전혀 많지 않아요.”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그러했다. 소청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나같이 너와 너무 잘 어울려 나도 모르게 많이 골라 버렸구나. 그래, 가서 천천히 다 해 보자.”

장신구를 이리 많이 샀으니 값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계산을 해 주는 주인은 겨우 이백 냥만 받을 뿐이었다. 곧이어 주인이 공손히 두 사람을 가게 밖으로 배웅했다.

소청은 뭔가 찜찜했다.

“요아야, 이 장신구에 달린 보석들, 다 가짜는 아니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이렇게나 많이 샀는데 이백 냥밖에 나오지 않았잖니. 분명 뭔가 이상해.”

하운방의 옷들은 툭하면 천 냥을 넘기기 때문에 소청은 그렇게 생각했다.

목운요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제가 보기에 저 장신구들은 하나같이 다 귀한 물품이에요. 제 생각엔 아직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값을 깎아 주는 것 같네요. 나중엔 값이 저리 싸지 않을 거예요.”

“그럼 됐다.”

목운요의 말을 들으니 소청은 마음이 놓였다.

* * *

목운요가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란이 찾아왔다.

“소저, 진 총관께서 금수원으로 와 달라 하십니다.”

그때, 눈여우가 목운요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 머리를 그녀의 손에 살살 문질렀다.

목운요는 고개를 숙여 눈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알겠어요.”

보유한 자금이 충분하니 월왕과 갈라서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하운방과 불선루가 그와 한데 얽혀 있었다. 쉽게 끊어 버리면 골치 아파질 테니 좀 더 생각해 봐야 했다. 월왕이 계속 깊이 파고든다면야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하겠지만.

* * *

한편, 월왕은 긴장한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목운요와 서먹하게 헤어진 후로 나흘이 지났다. 그땐 확실히 충동적이었다. 계속 추궁하자 목운요는 더 멀어져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총관이 서재로 들어왔다.

“왕야, 목 소저께서 오셨습니다.”

월왕은 정신을 번뜩 차리고는 서둘러 자세를 바로잡았다.

“들라 하게.”

목운요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들어왔다. 솔직히 저번 일로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특별히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왕야를 뵙습니다.”

월왕의 마음이 점차 가라앉았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걱정했는데, 이 아인 조금도 이전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단 말인가?’

“인사는 그만하면 되었다. 오늘 오라고 한 것은 의논할 게 있어서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들어 월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속으로 되뇌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월왕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은 점차 사라지고, 마침내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월왕은 목운요에게서 뭔가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눈에 띄는 차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저번에 북방으로 운송되는 소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게 물은 적이 있었지. 일단 네 계획을 듣고 싶군.”

“마침 저도 그 일로 왕야를 뵈려던 참이었습니다.”

월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해 보아라.”

“왕야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재 소금값이 치솟아서 내릴 줄을 모릅니다. 관아의 소금이 서강(西江)에 침몰했다는 소문이 돌아 소금값은 이전보다 올랐지요. 원래도 살기 힘든 백성들이 더욱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군.”

“왕야께서는 어떤 복지책을 열 계획이십니까?”

월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사람을 시켜 불법 유통의 싹을 자르길 바라는 것이냐?”

목운요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소금 상인들에게서 돈을 두둑이 벌었지요. 그러니 그들이 분명 앙심을 품고 있을 겁니다. 일단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보랬다고, 후환을 제거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원일과 소금 상인들을 모두 뿌리 뽑으라는 말이냐?”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왕야께서는 개입하기 싫으신 겁니까? 그들이 쓰러지지 않으면 신진 상인이 들어설 수 없습니다. 특히 오씨, 위씨, 조씨 집안은 강남을 평정한 지 오래입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갈아치워야 소금 대란이 안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월왕의 눈빛이 차츰 깊어졌다.

“좋다.”

일이 위험하긴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었다.

월왕의 대답에 목운요는 미소 지었다.

“그럼 서둘러 준비하시지요. 조금 있으면 소금을 운송하는 배가 서강을 건너고 경릉성과 임강성을 지나 북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 세 곳을 지날 때가 저희가 움직이기 좋은 시점입니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월왕은 자연스레 목운요의 의견을 구했다.

“저도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나, 처음 경릉성에 왔을 때 뱃사공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었죠. 여름이면 임강성에 안개가 잘 껴서 이곳 사람들도 기이하게 여긴다고요. 늙은 뱃사공들을 찾아가서 소상히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오랜 세월 배를 몰면 날씨에 대해 예지력이 생긴다고 하지요. 만약 왕야께서 안개가 잔뜩 낀 날을 잡을 수만 있다면 하늘이 돕는 셈입니다.”

월왕은 목운요를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마.”

의논이 끝나니 서재에 정적이 찾아왔다.

월왕에게서 더 이상 말이 없자 목운요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

“잠깐.”

월왕이 정교해 보이는 나무 상자를 꺼냈다. 겉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몹시 값진 것이었다.

“네가 세운 계책 덕분에 순탄하게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사례를 준비하였으니 받아 주면 좋겠구나.”

상자를 연 목운요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상자 안에는 머리 장식들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진귀하고 화려한 것들이었다. 습보헌에서 산 장신구들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왕야, 이 장신구들은 극히 진귀한 것인데…….”

“사실 내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것들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먼지만 쌓이는 것 같아서…….”

이 머리 장식들은 모두 황후에게 물려받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내 주고 싶은 사람을 찾았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목운요는 거듭 생각하다 월왕에게 예를 올렸다.

“선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목운요가 나간 뒤, 진 총관이 서둘러 서재로 들어왔다.

“왕야, 목 소저께서 장신구를 받으셨습니까?”

월왕이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별것 아니다.”

아까 목운요를 봤을 때 이상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촉은 무언가가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모르니 그저 걱정될 뿐이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갈 길은 아득히 멀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법이지.”

* * *

집에 돌아온 목운요는 월왕에게 받은 선물을 금란에게 시켜 창고에 넣어 두게 했다. 그것을 착용하는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수시로 금수원에 가서 소금 상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월왕과 의논했다.

두 사람의 기색은 평소와 다름없어 이전의 관계를 회복한 듯 보였다. 서로 말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예전 일은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일어난 일은 마치 땅을 흘러간 물처럼 결국엔 흔적을 남기게 되는 법이었다.

* * *

양주성.

염운선을 지켜보는 이원일의 눈에 웃음기가 어렸다.

본래 소금세 감찰을 하며 뇌물이나 받으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기서 공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그 시각 소금 상인들도 한시름 놓았다. 우여곡절이야 많았지만 결국엔 일을 무사히 넘겼다. 몇 년만 노력하면 이번에 닥친 손실도 메꿀 수 있을 것이다.

한데 며칠 지나지 않아,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소식이 떨어졌다.

북방으로 운송하려던 염운선이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이원일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혼비백산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특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했거늘!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소식을 전하러 온 관리는 무릎을 꿇고 전전긍긍했다.

“그날 경릉성에 짙은 안개가 껴서 앞이 제대로 안 보였는데, 그 틈을 타 누군가가 습격해 왔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원일은 끊임없이 제자리를 서성였다.

“어서 이목년에게 이 소식을 전해라. 아니, 이 승상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그의 결정이 필요하다!”

이원일은 일단 소문을 가라앉히고 이경주에게서 회신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가문에서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지라, 이원일이 보낸 서신이 서릉에 당도하기도 전에 황상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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