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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31화 (131/442)

131화 묻거라, 운요

* * *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입수한 월왕이 진 총관에게 목운요를 불러오라고 일렀다.

목운요는 이야기를 전해 듣곤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 대인께서 이렇게 과감한 분인 줄은 몰랐네요. 소금 운송을 담당하던 관리들이 전부 죄를 실토하다니……. 염운사만 죽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하던데,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죽어도 싼 놈들이다.”

월왕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수많은 사람이 연루된 일로 목운요가 괴로워할까 봐 그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줬다.

“그들은 새하얀 소금을 운송해 피 묻은 은자를 손에 넣지. 그들 손에 묻은 누군가의 피와 눈물만 따지면 몇 번이나 목을 베도 부족할 거다.”

사실 목운요는 그들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월왕의 태도를 보아하니 자신을 오해한 것 같은데,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왕야, 이원일의 계획대로 술술 진행되면 얼마 뒤에 소금을 다시 북방으로 실어 갈 것 같은데, 그때는 어쩔 생각이세요?”

그 말에 월왕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아직도 소금으로 장난을 칠 생각이냐?”

“흐응,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보아하니 더 할 말씀이 없으신가 보네요.”

옆에 있던 진 총관은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목 소저가 소금 상인들로부터 뜯어낸 돈만 무려 천만 냥이었다. 왕야께서도 소금을 팔아 천오백만 냥을 손에 쥐었다. 평생 써도 남을 거액인데, 목 소저는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월왕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고 있는 목운요에게 시선을 돌렸다.

“달리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건가?”

그에 목운요의 눈빛이 짓궂게 변했다.

“그렇다면 물어보고 싶었던 걸 다 물어봐도 되나요?”

반쯤 던진 농담에 월왕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진 총관을 돌아봤다.

“잠시 자리를 비켜 주게.”

월왕의 명에 진 총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나서며 우항과 우의에게 서재 주변에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고 일렀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진 것을 확인한 월왕이 목운요를 바라봤다.

“궁금한 게 있거든 마음껏 물어도 좋다.”

“왕야, 이렇게 작정하고 말씀하시니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목운요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돈을 더 벌고 싶은 건지 떠보려던 거였는데 갑자기 진지하게 나오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심각해 보이는 월왕의 표정에 목운요는 왠지 숨이 막히는 듯했다.

“물으면 제게 사실만을 말씀해 주실 건가요?”

미소를 띤 목운요가 티 없이 맑은 눈으로 월왕을 응시했다.

월왕이 미간을 구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의 입가가 차갑게 굳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조롱의 말이 가슴 한가득이었다.

“왕야,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면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날이 어두워진 터라 어머니가 걱정하실 거예요.”

자신의 속내를 떠보려 하는 주제에 정작 본인은 입을 다물다니, 괜스레 기분이 나빴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난 월왕이 목운요 곁으로 다가오더니 눈을 내리깐 채로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는 게 그대로 보였다.

“물어도 좋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뭘 묻더라도 다 대답해 주실 건가요?”

“그래.”

“사실만 들려주실 건가요?”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사실만을 말하겠다.”

월왕의 눈빛이 어두운 밤의 횃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그동안 그는 매 순간 인내하며 자신을 죽인 채 지내야만 했다. 누군가가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할라치면 그 자리에서 숨통을 끊어 버렸다.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목운요라면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왔던 비밀을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기를, 숨겨 둔 뜨거운 열정과 거친 상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그는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정을 좀처럼 내리누를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한 가지 생각만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한번 해 보는 거다, 자신의 마음에서 가장 여린 것을 목운요에게 보여 주자!

그 수가 먹힌다면 목운요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텅 비어 있던 마음을 목운요로 채워 갈 생각이었다.

그 수가 먹히지 않는다면…… 심장에 비수가 꽂히게 되겠지. 하지만 어차피 제 심장은 이미 상처 입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 않던가? 상처 한두 개쯤 더 입는 게 뭐가 두렵겠는가?

“내게 묻거라, 운요.”

목운요는 고개를 들어 월왕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그를 자세히 살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언촌 뒷산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달리, 지금의 월왕은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선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준수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선을 가진 얼굴은 냉혹함을 풍겼다.

얼마나 많은 여인이 저 얼굴에 매료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문득 소매 속에서 꽉 쥐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아직도 회귀 전의 그림자가 그녀에게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월왕은 목운요의 안색을 살피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걸 보고는 황급히 말했다.

“왜 그러느냐.”

그에 목운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월왕의 미간이 점점 찡그려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목운요가 공포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왕야께선 그 위엄이 혁혁하고 신분 또한 존귀하신데, 저 같은 소인은 마땅히 두려워해야지요.”

목운요는 입꼬리를 올리며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글쎄. 네가 정말 날 두려워했다면 나와 일하기를 택하지 않았겠지. 게다가 그 과정에서 흥정까지 했을 리가 없다.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목운요와의 첫 만남은 가히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경릉성에서 다시 만났을 땐 검을 들어 그녀를 겁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점차 그녀를 알아 가면서 월왕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목운요에게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목운요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이 아니면 목운요의 진심을 알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왕야, 중요한 건 소금에 관련된 일입니다.”

목운요는 속을 털어놓기보다는 지금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쉽게 놓아줄 그가 아니었다.

“대체 나의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들어야겠다.”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는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 냉소를 지은 그녀가 입을 뗐다.

“정말 알고 싶으십니까?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래, 알고 싶다.”

“좋습니다. 그럼 알려 드리죠.”

목운요는 월왕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는 왕야만을 무서워하는 게 아닙니다. 왕야 외에도 진 총관, 조운년, 금 부인, 장 순무…… 심지어 우항과 우의도 두렵습니다. 이유야 분명하지 않습니까? 저와 어머니의 목숨을 쥐락펴락할 수 있으니까요. 당신들은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왕야께선 황자님이 아니십니까.”

“난 한 번도 내 신분으로 널 옥죈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 신분이 없어진답니까? 만약 왕야께서 일개 보통 사람이셨다면 제가 왜 하운방 수익의 삼 할을 내 드렸겠습니까? 왜 제가 왕야 앞에서 말조심을 하겠습니까? 전 그저 평민인지라 비빌 언덕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왕야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죽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대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어찌 무섭지 않겠습니까?”

월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가늠하기 어려운 복잡한 눈빛이었다.

목운요는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의 신분은 이미 하늘이 정했고, 그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제가 왕야가 전혀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기만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왕야께선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월왕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왜 그런 핑계로 날 속이려 들지? 내 신분이 황자라지만, 솔직히 말해 서릉에서의 내 신분은 소씨 가문보다 못하다. 소씨 가문에게 한 것처럼 넌 손을 쓰는 데 일말의 두려움도 없겠지.”

목운요는 혀를 질끈 깨물며 안색이 변하지 않도록 힘을 썼다.

‘서릉에도 심복이 있었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낸 것이 놀랍지도 않았다.

“왕야-”

하지만 월왕은 목운요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계속 이야기했다.

“널 조사해 보았다. 예전에 넌 겁이 많은 아이였지. 하지만 어느 순간 할머니 이 씨와 장 씨를 처리하고 자수, 다도, 의술을 섭렵했지. 심지어 요즘엔 화초를 키우고 명음에게 매혹술까지 가르쳤어. 이 모든 게 어찌 평범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소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온통 의심스러울 수밖에!”

목운요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 피가 날 정도였다.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월왕에게 미소를 보였다.

“그래서요? 그런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으니 절 처리하실 건가요? 절 요괴로 여기고 감옥에 가두어 천천히 고문하실 건가요? 어떤 더 큰 비밀이 있나 보려고요? 아니면 지금 그 검을 뽑아서 제 목을 베어 일말에 끝내 버리실 건가요?”

방어적인 태도로 무장한 목운요를 보며 월왕은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네 마음을 해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네가 가진 부담을 덜어 주고 싶다고 말하려던 거야. 나는 너와 네 어머니를 보호해 줄 수-”

“왕야.”

목운요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절 죽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내가 어찌 널 죽인단 말이냐.”

“절 죽이지 않기로 판단하셨다니,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이내 몸을 돌려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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