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29화 (129/442)

129화 내게 소금이 있습니다

“오 수령, 사건을 잘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왜 이런 소문이 또 돌기 시작한 겁니까?”

“맞소이다! 양강총독이 양주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런 소문이 나면 저희 목숨이 남아나겠습니까?”

“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안 그랬다가는 사람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오민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모두를 안심시켰다.

“그저 소문일 뿐, 우리에게 이목이 쏠린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난리 법석을 떤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일 당장이라도 비밀을 폭로할지도 모르는걸요!”

“제명이라는 자가 돈을 받아 가지 않았습니까? 설마 돈만 받고 우리 부탁을 안 들어준 겁니까?”

“그래, 제명이 우리한테 돈을 받아 갔지. 당장 그자를 찾아가서…….”

“모두 조용히 하시오!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그와 척을 질 수는 없소이다. 이원일의 필체가 담긴 서신만 있으면 그자도 우리에게 함부로 굴지 못할 테니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자세히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오 수령의 말이 옳소. 큰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모두 진정들 하시구려.”

* * *

오민지는 사람들과 함께 춘풍원으로 달려가 제명을 찾았다.

“제 선생,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그렇다고 솔직히 고백하시구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제명이 차분한 손길로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왜 그 일을 외부에 퍼뜨린 겁니까?”

“뭐라? 우리가 왜 소문을 퍼뜨린단 말이냐? 그렇게 되면 목이 달아날 쪽은 이쪽인데,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왜 소문을 퍼뜨린다는 거지?”

제명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웃었다.

“이번 소문은 소금 상인들이 먼저 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룻밤만 지나면 양주성 전체가 그 소문을 알게 되겠죠!”

제명의 말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제명의 죄를 따지러 왔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마, 말도 안 돼.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리…….”

제명이 가볍게 손을 치자, 누군가가 한 사내를 끌고 나타났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입니까?”

“그, 그는…… 주록(周祿) 아닌가?!”

모두의 시선이 소금 상인 위기(魏琪)에게 쏠렸다.

주록은 위기의 처남으로, 평소 술과 여자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설마 그가 소문을 퍼뜨렸다는 건가?!

“제 선생,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요?”

“기루에서 술에 잔뜩 취해선 기녀들 앞에서 허풍을 떨었다더군요. 그곳은 온갖 소문이 떠도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떠들어 댔으니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수밖에요! 문제를 해결하려 윗선에 다리를 놓고 있었는데 이렇게 초를 치다뇨! 설마하니 이 대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시려는 겁니까?”

위기가 주록에게 달려들어 그를 냅다 걷어찼다.

“솔직히 말해라! 네가 소문을 낸 거냐?”

여전히 술에 절어 있던 주록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매형이 죽기 살기로 제게 달려드는 걸 보곤 겁에 질려 질질 짜기 시작했다.

“매형, 제가 잘못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마구잡이로 떠들다가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만…….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입에 술을 대지 않겠…….”

“이놈! 네놈 때문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악에 받친 위기가 제 처남의 숨통을 끊어 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며 오민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 선생,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지금이라도 만회할 방법을…….”

“수령께선 말 한번 쉽게 하십니다. 제가 전달해 드린 은자를 받고 이 대인께서도 움직이기 시작하셨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터졌으니 윗선에서 추궁이라도 받으면 이 대인께서도 계속 피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여러분을 도울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 선생, 화를 푸십시오. 선생의 뒤를 봐주시는 분이라면 못 하실 게 없지 않습니까? 은자가 더 필요하면 말씀만 하십시오. 재산을 털어서라도 이번 일은 반드시 무마해야 합니다.”

오민지의 이야기에 다른 소금 상인들도 거들고 나섰다.

“그렇소이다, 제 선생, 다시 한번 도와주시구려. 반드시 이번 일을 막아야 하오.”

“부탁하오, 제 선생…….”

제명이 손을 휘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사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 대인이 이번 일에 관여한 이상 여러분과 한배를 탄 셈이니까요. 배가 뒤집히면 다 같이 죽은 목숨이니 반드시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예, 제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편을 드는 것을 확인한 제명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관염을 구매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부족한 세금을 메우려고 할 수 있었던 건, 관아의 누군가가 도와줬기 때문이겠죠.”

“그, 그게…… 그저 몇 마디 거든 정도로 우리 사람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제명은 여전히 본론은 꺼내지 않은 채 빙글거렸다.

“일이 터졌으니 누군가가 나서서 그 책임을 져야겠지요.”

언제나 빙글 웃는 제명을 볼 때면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는 지금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사람을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 선생의 뜻은, 죄를 뒤집어쓸 사람을 내세우자는 겁니까?”

“예, 게다가 죄를 뒤집어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잃어버린 소금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가 크니 황상께서 알게 되시면 진노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철저히 조사하라는 황명에 따라 무슨 단서라도 찾아낸다면 저희 모두 몸 성히 빠져나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 어찌해야 좋단 말입니까?”

“일단 죄를 뒤집어쓸 사람부터 내세워야 합니다. 관아 쪽 사람이 돈에 눈이 멀어 소금을 모래로 바꿔치기한 뒤 배를 침몰시키고 진짜 염운선을 숨겼다고 말이죠. 그러곤 외부에 염운선이 침몰했다는 소문을 냈는데, 현명하신 이 대인께서 그자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관아로 압송해 소금을 되찾았다고 둘러대는 겁니다.”

제명의 설명을 들은 소금 상인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난처한 기색을 띠었다.

“제 선생께서 말한 방법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어디서 그 많은 소금을 구한단 말입니까?”

그 말에 제명의 미간이 좁아졌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마당에 사리사욕을 챙기시려는 겁니까? 강남의 유명한 소금 상인들께서 설마하니 따로 챙겨 두신 게 없겠습니까?”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오, 제 선생. 지금 우리에겐 소금 한 포대도 없소이다.”

“오 수령, 다른 방도가 없소이까?”

“제게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오민지의 말에 소금 상인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거운 한숨을 토해 냈다. 이젠 정말 끝장인 건가?

제명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모두에게 위로를 건넸다.

“여러분, 모두 진정하시고 냉정하게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십시다. 강남에는 소금 상인이 많지 않습니까? 마침 소금세를 조사 중인지라 소규모 소금 상인들에게 분명 소금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걸 사들이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일단 계속 사들이는 수밖에요.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다 보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제 선생의 말이 옳소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뿐이니 그렇게라도 하는 수밖에요.”

“후우, 주인님께 여러분을 도울 방법이 있는지 여쭙겠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입단속에 주의해 주십시오. 이 일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어찌 될지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알겠소이다…….”

“걱정하지 마시오, 제 선생.”

* * *

다들 뿔뿔이 흩어진 뒤에 소금을 비축해 둔 다른 소금 상인들이 있는지 알아봤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비축분도 얼마 안 되는 데다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쉬운 판국이었기에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돈을 내고 소금을 사야 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소금 상인들은 다시 오부에 모여들었다.

“오 수령, 아무래도 이번에는 빠져나가기 틀린 것 같소이다.”

“이틀 동안 사들인 걸로는 어림도 없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모두의 한숨이 깊어지는 가운데 하인이 달려와 오민지를 찾았다.

“나리, 누군가가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이걸 꼭 나리에게 보여 드리라면서요.”

서신을 받아 든 오민지는 그 내용을 살피다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에 모두들 식은땀이 흘렀다.

“오 수령, 설마하니 또 안 좋은 소식인 거요?”

관아에서 자신들을 잡아들이겠다는 소식은 아닌지 모두들 전전긍긍했다.

“여러분, 이걸 보십시오.”

오민지가 건네준 서신에는 단 한 줄만이 적혀 있었다.

[내게 소금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자 소금 상인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가지고 놀려는 건 아닌지…….”

“그래도 이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구려.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돈이야 얼마든지 내겠소!”

오민지가 모두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요. 상대가 서신을 보내왔다는 건 우리와 거래를 하고 싶다는 뜻일 테니, 다시 서신을 보내올 겁니다.”

“수령의 말이 옳소이다.”

* * *

하루가 지나자, 모래와 소금을 바꿔치기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심지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소금 상인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오민지는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인맥을 총동원해 소금을 사들이는 일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평소 오민지를 위시한 그의 세력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이들은 도와 달라는 부탁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간혹 소금을 팔고 싶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기 일쑤였다.

분노한 오민지는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집어 던졌다.

“이놈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이 빚은 톡톡히 갚아 주마!”

자리에 앉은 소금 상인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모두가 절망하던 순간, 지난번 소금을 가지고 있다던 자로부터 다시 서신이 도착했다. 하인이 가져온 서신을 보며 모두들 크게 흥분했다.

“오 수령, 어서 읽어 보시오! 상대가 우리에게 소금을 팔려는 것 같소이까?”

건네받은 서신에는 지난번처럼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천오백만 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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