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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28화 (128/442)

128화 넝쿨째 굴러온 호박

은자를 챙긴 제명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육냥을 찾아가 건넸다.

“은표를 모두 챙겼습니다. 앞으로 어찌하면 될까요?”

나중에 소금 상인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찢어 죽이려 할 거다.

“소저께서 계획을 세워 두셨으니 소금 상인들 일은 걱정할 필요 없다.”

“무슨 방도가 있는 겁니까?”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제명을 향해 육냥이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소저의 일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으니 맡은 바 일만 잘하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 * *

양주성에서 돌아온 육냥이 목운요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힌 채로 절을 올렸다.

“소저, 일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물건 가지고 왔어?”

“예.”

육냥이 메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자, 그 안에서 정교한 나무함이 나왔다. 상자는 그 크기만큼이나 묵직해 보였다.

목운요는 곧장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가득 채운 은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후후, 수고했어, 육냥!”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했다. 거액의 자금을 확보했으니 이제 두려울 것이 무엇이랴!

크게 기뻐하는 목운요를 보는 육냥의 눈빛도 평소와 달리 부드러워 보였다.

“주인님은 돈이 좋으신 겁니까?”

목운요는 은표 더미를 쥐곤 요리조리 살펴봤다.

“돈이 좋은 게 아니라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좋은 거야. 이 세상에서는 권력이 없으면 돈이라도 있어야 해. 돈도 권력도 없으면 마음 편히 살기 어렵거든.”

그녀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육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명은 지금 양주성 습보헌에 머물고 있습니다. 제명이 이원일에게 이번 일을 폭로한다면 주인님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입을 막을까요?”

그에 목운요는 놀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는 육냥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명은 믿을 만하다고 하지 않았어? 게다가 그동안 일을 완벽하게 해내 줬지. 덕분에 큰돈을 쥐기도 했고. 그런 사람을 쉽게 내치면 내가 너무 못돼 보이지 않겠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니 주인님과는 무관합니다.”

그는 제 주인을 위해서라면 모든 위험 요소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제거할 생각이었다.

“됐어. 제명은 계속 쓸 생각이야. 그리고 이원일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양주성에 가면 제 코가 석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거든.”

목운요는 코웃음을 날리더니 은표가 담긴 상자를 옆으로 밀어 두었다.

“육냥, 밤새 오느라 고생했어. 내려가서 쉬도록 해.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를 테니까.”

“예.”

육냥이 자리를 뜨자,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월왕을 찾아갔다.

* * *

서재 안, 생글거리는 목운요의 모습에 월왕의 눈빛이 부드럽게 빛났다.

“육냥이 돌아왔다지?”

“역시 소식통이시네요. 양주성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신가요?”

강남에서의 제 영향력을 떠보려는 목운요의 의도를 월왕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숨기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 들려줬다.

“그래, 소금 상인들이 고비를 넘겼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더군. 이원일이 그곳에 가고도 과연 지금처럼 웃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제명이 아직 양주성에 남아 있는데 왕야께서 그를 지켜 줄 사람을 보내 주셨으면 해요.”

“왜 그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키지 않은 거지?”

“이제 겨우 천만 냥 벌었을 뿐인걸요. 계속 조여 봐야죠.”

“천만 냥?”

목운요는 눈을 깜빡이며 배시시 웃었다.

“왕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래, 나라에서 한 해 동안 거두는 세수가 오천만 냥인데 소금 상인들을 쥐어짜서 단번에 천만 냥을 벌어들이다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지.”

월왕은 지금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당초 그 계약서를 쓰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도 밀려 들어왔다.

한편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진 총관은 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어찌나 이를 꽉 물었는지 나중에는 얼얼할 지경이었다.

역시 자신의 안목은 틀림없었다. 목 소저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 분명했다.

보기 드문 월왕의 표정에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강남의 소금 상인들을 휘어잡을 수만 있다면 더욱 커다란 부를 쥐게 될 거예요.”

가늘게 뜬 월왕의 눈빛이 점점 짙어졌다.

“그들을 계속 조인다고 했는데, 내가 도와줄 일이 있겠느냐?”

목운요은 월왕을 슬쩍 째려봤다.

“왕야, 훔친 소금만 챙겨 가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제 와서 숟가락 얹으시려고요?”

“네가 힘들까 봐 도와주려는 것뿐인데 뭘 그리 경계하는 거지?”

“왕야께서 도와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계속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까요. 차라리 제가 은자를 드릴 테니 소금을 제게 파는 게 어떠세요?”

“내가 훔친 소금을 사겠다고?”

“예, 소금 상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 소금을 다른 곳에 파는 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시가로 소금을 사 드릴게요. 그러면 왕야께서도 한시름 더실 수 있을 거예요.”

시가로 계산해 준다면 이쪽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뭔가 마뜩잖은 기분이 들었다.

“소금은 네가 가지고 있어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을 터인데, 어렵사리 번 돈을 왜 손해를 보면서까지 쓰려는 거지?”

“방금 왕야께서 절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그 소금을 돈으로 바꿔 드리면 서로 돕는 셈이니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죠. 어쨌든 소금을 쥐고 있으면 언젠가는 팔 수 있을 테니까요.”

“됐다. 네가 이렇게 내 생각을 해 주는데, 네게 피해 주는 일은 나도 하고 싶지 않다. 소금 팔 방법은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겠지.”

그에 목운요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왕야를 통해서 돈을 좀 더 벌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네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소금 상인들이 소금을 바꿔치기했다는 소식을 퍼뜨릴 생각이에요.”

“그렇게 되면 강남 전체가 혼란에 빠질 거다. 조정에서도 조사에 나서게 되겠지. 어쩌면 우리 둘 다 연루될지도 몰라.”

“원래는 그렇게 되겠지만, 그 전에 소금을 돌려준다면요?”

“설마 나더러 소금을 소금 상인들에게 돌려주라는 건가?”

목운요는 눈을 깜빡이며 순진하게 웃어 보였다.

“힘들게 훔쳐낸 건데 쉽게 돌려주면 쓰나요? 수고비를 톡톡히 받아야죠.”

“네가 퍼뜨린 소식에 소금 상인들이 궁지에 빠지면, 제명을 내보내 상황을 무마시키자며 소금을 사도록 꾀어낼 생각인가 보군. 그렇게 하면 강남이 시끄러워지긴 하겠지만 결과는 그리 심각하진 않을 거야.”

“맞아요.”

월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소금 상인들이 제명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들이 제명의 충고를 받아들이면 은자를 좀 더 쓰는 대신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겠죠. 반대로 제명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목숨을 건지지 못하겠죠. 그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뭘 선택해야 할지 잘 알 거예요.”

“그리되면 소금 상인들이 제명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제명은 장기 말에 불과하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어요. 미워하려면 뒤에서 그를 조종하는 배후를 미워해야죠. 왕야께서 이미 길을 잘 닦아 두신 거 아니었나요?”

월왕은 제명이 대황자와 관련 있다는 이야기까지 퍼뜨리며 그의 신분을 위장해 줬다. 그렇다면 소금 상인들은 배후인 대황자에게 원한을 품게 될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시가대로 소금을 사 주겠다고 큰소리친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

월왕은 웃는 것도, 그렇다고 웃지 않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으로 목운요를 바라봤다. 그녀의 제의를 덥석 수락했다면 큰 손해를 입었을 거다.

“아아, 아까워라! 조금만 하면 속아 넘어올 뻔했는데…….”

“즉시 사람을 시켜 소문을 내라고 하마. 그동안 제명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일러둬라.”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제명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였다. 앞으로 잘 부리기만 한다면 대업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될지 몰랐다. 그런 소중한 인재를 함부로 굴릴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감사합니다, 왕야.”

귀찮은 일을 덜게 되자, 목운요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월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금수원을 나섰다.

목운요가 나간 뒤, 진 총관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목 소저의 안목이 어찌 저리 뛰어난지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에 월왕은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총명했지. 내게서 비수도 훔칠 만큼.”

그의 말에 진 총관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는 온종일 돈 버는 일만 생각했는데도 돈이 항상 부족했었죠. 하지만 목 소저와 함께하니 널린 게 돈이고, 그저 줍기만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월왕의 입가가 휘어졌다.

“운요가 말한 대로 일을 진행해 주게. 최대한 빨리 소식을 퍼트려야 해. 손쓸 수 없을 정도까진 말고, 우리 선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적당하게.”

“예, 알겠습니다. 참, 창고에 머리 장식이 잔뜩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관(官)에서 만든 건 쓸 수 없겠지만 나머지는 괜찮을 겁니다. 필요하시면 제가 꺼내 놓겠습니다.”

“고생했으니 선물로 줘도 좋겠지.”

진 총관은 잔뜩 신이 나선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을 시켜 소금 상인들이 소금을 바꿔치기한 일을 퍼뜨리라고 지시하는 한편, 직접 창고로 달려가 물건을 챙겼다.

그러곤 운춘 등 젊은 처자들에게 가서 어떤 장신구가 나을지 물어보았다. 왕야께서 목 소저에게 줄 선물이라고 했으니 괜찮은 걸 골라 주리라.

* * *

양주성 안, 아무 걱정 없이 지내던 소금 상인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뒷골을 부여잡았다.

서강의 염운선에 실린 게 소금이 아니라 모래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이 퍼지자마자 사방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소금값이 올라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백성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한숨을 돌렸던 소금 상인들은 다시 모여 도떼기시장의 장사꾼처럼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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