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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27화 (127/442)

127화 소금 상인들과의 만남

“오 수령, 이제는 제가 드린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 겁니까?”

오민지는 제명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결국 이를 악물었다.

“제 선생의 말씀은 우리가 뒤에서 소금값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소금 가격이 올랐다는 뜻입니까?”

“아직도 모른 척하시는 겁니까! 소금값을 올린 게 아니라, 관아와 결탁해 소금 대신 모래를 채워 누락된 세금을 메우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선생,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건 멸족이 될 만큼 중죄이오!”

“아직도 발뺌하실 생각이라면 더 이상 시간 낭비할 필요 없겠군요. 다른 분들도 오 수령과 같이 무덤에 들어갈 생각이신가 봅니다!”

“제 선생, 진정하시구려.”

몇몇 소금 상인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오민지를 설득했다.

“오 수령, 제 선생은 우리를 돕고 싶은 마음에 미리 경고해 준 것인데 괜한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봐란듯이 고개를 돌린 제명은 비웃음 가득한 눈빛을 한 채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민지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제명에서 절을 올렸다.

“제 선생, 원체 중대한 사안이라 내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소이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시구려. 그런데 어디서 그 소식을 들었는지 알려 줄 수 있겠소이까?”

“여러분들이 소금과 모래를 바꿔치기한 일을 익명의 누군가가 이 대인께 알려 왔습니다. 확실한 증거도 있다고 하더군요. 쯧, 이 대인께서는 적당히 넘어가시려 했는데, 어쩌자고 이런 큰일을 벌이셨단 말입니까?”

“제 선생, 솔직히 말해서 다른 방도가 있었다면 이런 일까진 벌이지 않았을 겁니다. 한데 누락된 세금이 원체 커서 어쩔 수 없이……. 소금을 구매한다는 명분으로 세금을 메우려 했던 것뿐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희가 어찌해야 할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하아……. 누군가가 뒤에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익명으로 밀서를 보낸 자에 대한 단서도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빠져나갈 방법은 최대한 빨리 부족한 소금세를 은자로 메우는 일이죠. 방법을 알려 드렸으니 어찌할지는 여러분의 몫이겠지요. 이야기를 끝내신 뒤에 다시 절 찾아오십시오.”

몇몇 사람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려고 했다가, 오민지의 눈짓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결국 소금 상인들은 다시 오부로 돌아갔다.

* * *

무거운 분위기가 한참 흐른 뒤에야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 수령, 이제 우린 어쩌면 좋단 말이오?”

“제명의 신분은 확실한 거요?”

“옳은 질문이오. 그자가 나중에 뒤통수라도 치면…….”

오민지가 모두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였다.

“첩자에 날인된 인감을 확인해 보니 양강총독의 것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제명의 신분 역시 은밀히 알아봤는데 대황자와 관련 있다는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인이 그자를 먼저 양주성에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제명의 말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겠소? 이번에 소금세를 검사하는 일은 양강총독 이 대인의 일이니…….”

“맞는 말이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내 돈으로 부족한 세금을 메우는 건데…….”

이들 소금 상인에게 수천만 냥을 모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동안 엄청난 부를 쌓아 놨기 때문이다.

다만 생돈이 나가는 것 같아 아깝기도 한 데다, 최근 몇 년 동안 별 탈 없이 세금 문제를 처리해 왔던 터라 소홀히 했더니 이런 사달이 날 줄이야…….

“그런데 염운선이 침몰한 사건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돈을 내놓는다면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일 텐데…….”

“오 수령,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제명의 말을 곰곰이 따져 보면 아실 겁니다.”

“제명의 말이라니?”

사람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그저 멍하기 바라만 봤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제명의 말을 떠올리며 입 밖으로 뱉어 냈다.

“……방법은 하나. 최대한 빨리 은자로 부족한 세금을 메우면…… 그게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상황에서 부족한 세금을 우리가 대놓고 메울 순 없으니 그 방법은 틀린 셈이죠.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은밀한 방법을 알아보는 것뿐인데……. 오 수령, 제 짐작이 맞습니까?”

“예, 제명의 신분은 진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대인이 저희를 돕도록 끌어내는 수밖에요.”

사실 소금세를 검사하는 임무를 지닌 흠차대신에게 은자를 은밀히 건네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만 그 액수가 문제였다.

“오 수령,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그대는 우리 소금 상인의 우두머리이니 그 뜻에 따르겠소이다.”

“속히 말씀해 보시오.”

모두의 재촉에 오민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 대인이 대황자 쪽 사람이라는 걸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황자 쪽에서 저희를 포섭하려고 사람을 여럿 보냈었지요. 서릉의 상황이 불안정해 관망하는 자세를 취해 왔지만요.”

“자세히 말씀해 보시구려.”

“지금 저희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세금을 메우는 데 쓸 은자를 이 대인에게 건네, 소금을 바꿔치기하려던 일을 눈감아 달라 하는 겁니다. 나머지 하나는 이 대인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대황자의 편에 서게 되는 것으로, 지금 당장 돈이 깨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앞으로는 그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자, 모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 수령의 말처럼 상황이 아직 불안하니…….”

“맞는 말이오. 상황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몸을 의탁했다가는 나중에 곤란한 처지가 될 수 있을 거요. 아무래도 첫 번째 방법이 확실한 것 같구려. 당장 돈이 깨지는 게 아깝기는 하지만, 그거야 앞으로 그만큼 벌면 그뿐. 그것 때문에 손발이 묶여서야 쓰겠소이까?”

“알았습니다. 그럼 첫 번째 방법을 쓰기로 하죠.”

모두의 의견을 듣고 난 뒤 오민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제명에게 함부로 은자를 건넬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상대가 돈을 받고 나서 발뺌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역시 오 수령이 꼼꼼하구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사흘 동안 지켜본 뒤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 * *

하지만 이튿날, 서강에서 침몰된 배를 인양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미리 심어 둔 사람이 이 소식을 은밀히 전해 준 덕분에 사건이 외부로 퍼져 나가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소식을 접한 후 오민지는 황급히 춘풍원을 찾았다.

어쩐 일인지 꾀죄죄한 몰골의 제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 선생, 어디에 갔다 왔길래 이리 피곤해 보이는 것이오?”

“처리할 일이 있어서 직접 가서 확인하느라…….”

제명의 말에 오민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강에서 염운선을 인양했다는 소식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그들이 제명과도 친분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원래 이원일이 심어 둔 자였던 건가?

“제 선생,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옷을 갈아입은 뒤에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오민지는 지난번에 찾았던 방으로 안내받았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옷을 갈아입은 제명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은자를 채울 대책을 의논하러 오신 겁니까?”

제명의 직설적인 질문에 오민지는 점점 수세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서강에서 상선(商船)을 인양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무정한 강물이 모든 것을 쓸어 가니, 상류의 것이 아래로 흘러 내려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오래전에 물에 빠진 걸 인양한 것인지도 모르고요.”

제명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이야기하자, 오민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 선생, 지난번 춘풍원에서 나온 뒤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놓고 세금을 메우는 방법이 여의치 않을 듯해서, 제 선생에게 다른 방법이 있는지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으음…… 수령께서 저를 곤란하게 하시는군요.”

오민지가 미간을 찌푸린 제명을 향해 불룩하게 채워진 주머니를 하나 건넸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얼마 안 되지만 어려운 일 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일만 잘 무마해 주시면 훗날 더 크게 보상하겠습니다.”

“제 주인님께선 수령의 인품을 높이 사고 계신답니다. 수령님의 머리라면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명의 입에서 ‘주인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민지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생각에 더욱 몸을 낮췄다.

“저 혼자라면 선생의 주인님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바쳤을 테지만, 함께하는 소금 상인이 여럿인지라…… 부디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수령의 입장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앞으로 같이 가야 할 길이 길고 험하니 천천히 알아가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말을 마친 제명이 탁자 위에 올려 둔 돈주머니를 거둬 갔다.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수령께서는 세금을 메우는 데 쓸 은자를 속히 마련해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제명이 쉬고 싶다는 듯 찻잔을 들고 한 모금 축이자, 오민지는 그 뜻을 알아차리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이 많으셨을 테니 그만 쉬십시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예, 조심히 가십시오.”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민지가 방문을 나선 뒤, 제명은 돈주머니를 들고 습보헌으로 향했다.

* * *

습보헌 외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냥은 후련한 표정의 제명을 발견했다.

“일은 잘 해결되었느냐?”

“예,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제명으로부터 건네받은 돈주머니를 펼치자, 은표 뭉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십만 냥이나 되는 돈을 수고비라고 주더군요. 소금 상인들한테는 돈이 썩어 나나 봅니다.”

“경거망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지 않게 소저의 정체를 철저히 감춘 채 매사 조심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오민지가 제명을 다시금 찾아왔다.

“제 선생, 말씀하셨던 돈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이 대인께서 확실히 말씀해 주신 거겠지요?”

“여기 대인의 친필 서한을 가져왔으니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이걸 영수증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제명의 말에 오민지는 두 눈을 부릅떴다. 서신에 날인된 인감이며 필체를 보니 안심이 됐다. 이것만 있으면 이원일한테 뒤통수를 맞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희색이 만연한 오민지를 돌려보내며 제명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난 뒤에도 지금처럼 웃으며 나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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