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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18화 (118/442)

118화 문을 연 습보헌

* * *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뒤, 채청이 목운요의 방문을 두드렸다.

“소저를 뵙습니다.”

“지켜보라던 자들에게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나요?”

“산파 중 한 명은 어젯밤에 난 큰불로 무너진 집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가족들 모두 불에 타 죽었다고 합니다. 다른 산파는 술을 잔뜩 마시곤 미끄러져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금란에게 돈을 건네라고 눈짓했다.

“소저, 이러실 필요 없어요.”

“가져가세요. 소식을 캐내느라 자유국의 아이들까지 동원했잖아요. 그곳의 아이들 전부를 여기서 살도록 할 순 없지만, 힘써 준 만큼 수고비는 챙겨 줘야죠. 이 돈으로 옷가지나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도록 해요.”

“소저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가져다주면 그만큼 사례를 해 줄게요.”

“예, 알겠습니다.”

저녁이 되자, 육냥이 제명의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

“오민지는 원체 신중한 자라 쓸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합니다. 대신 다른 이를 통해 들었는데, 얼마 뒤에 대량의 관염이 경릉성을 거쳐 간다 합니다.”

“황상께서 이제 곧 소금세를 심사할 사람을 보낼 거야. 이럴 때 관염을 대대적으로 파는 일은 없겠지.”

소금세를 심사할 때가 되면 소금 상인들은 소금의 판매량을 줄이곤 했다. 감히 소금세를 가지고 장난칠 순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이야기가 나올 리 없으니까 제명한테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고 해.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상대를 속일 수 있으니까. 참, 제명이 습보헌을 준비한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상황은 어떻지?”

“참신한 장신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다른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하더군요.”

목운요는 눈을 내리깐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경릉성과 양주성에 가게를 열라고 해. 일을 도와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진 총관님한테 이야기해 둘게. 돈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어. 일단 이름부터 널리 알려야 해.”

“예, 사람을 시켜 제명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응.”

육냥이 나간 뒤, 목운요는 이내 몸을 일으켜 금수원으로 향했다.

서재에 들어가자 월왕의 모습이 보였다.

방금 목욕을 한 것인지 하늘색 장삼(長衫)을 걸친 그는 평소의 서늘한 기운이 크게 누그러져 있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의 출중한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늦은 밤에 무슨 일이냐?”

목운요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급하게 오느라 시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죄송합니다, 사야. 급한 일은 아니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시죠.”

머리를 숙인 채 나가려는 목운요를 월왕이 불러 세웠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말해 보거라. 그냥 이대로 보내는 것도 마음에 걸리니.”

월왕은 자리에 앉아 목운요를 담담히 바라봤다.

이대로 가 버린다면 자신이 크게 동요했다는 걸 월왕이 눈치챌 거다. 고민 끝에 목운요는 발걸음을 멈춘 채 입을 열었다.

“제명이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관염이 경릉성을 거쳐 북방으로 수송된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시기에 관염을 움직인다?”

척 봐도 뭔가 수상한 낌새가 역력했다. 월왕은 생각에 잠긴 채 탁자 위에 올려둔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그 앞에 서 있던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로 시선을 던졌다. 머리를 채 말리지 않아 어깨 부근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입춘이 지나긴 했지만 밤에는 아직 추운 터라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런 목운요의 시선을 월왕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사람을 시켜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지금 같은 시기에는 대량의 관염을 절대 운송하지 않는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제명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해서든 자리를 잡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기밀을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열심히 알아보고 다닐 순 있을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지난번에 진 총관님과 불선루를 양주성과 회안성에 열기로 상의한 적 있어요. 양주성 쪽의 준비가 끝났다고 하니, 제명이 습보헌을 열도록 일손을 보내 주셨으면 해요.”

“습보헌?”

“예, 하운방에서 옷을 팔고 습보헌에서 장신구나 연지, 향분을 팔 생각이에요. 이윤이 꽤 쏠쏠할 거예요.”

목운요로부터 습보헌에 관한 계획을 들은 월왕의 얼굴에 이채가 돌았다.

“하운방을 발판 삼아 습보헌의 명성을 알린다니, 기가 막힌 생각이로구나. 그리하면 주변의 의심을 피할 수도 있을 테지. 그리하도록 해라. 진 총관에게 일손을 보내 주라 일러두지.”

목운요는 가볍게 한숨을 돌리더니 소매 안에서 계약서를 하나 꺼냈다.

“사야께 또다시 신세를 질 순 없죠. 그래서 하운방처럼 이윤의 삼 할을 드리려 하는데, 어떠세요?”

계약서를 받아 든 월왕이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뒤 고개를 저었다.

“난 그저 옆에서 거드는 것뿐이니 돈을 나눠 줄 필욘 없다. 지난번의 생강차나 불선루 모두 내가 네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니…….”

그녀가 정성껏 만들어 준 생강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불선루를 통해 꾸준히 은자가 수중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도움받은 걸 생각하면 오히려 자신이 목운요에게 큰 신세를 진 셈이었다.

“후후, 그럼 염치 불고하고 그리하겠습니다.”

돈보다 귀한 게 없다고 여기는 목운요로서는 월왕의 호의를 거절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제명의 문제를 상의하고 돈까지 굳은 터라 기분이 몹시도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목운요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으며 월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밤에는 아직 추우니 머리 꼭 말리고 주무세요. 안 그러면 감기에 걸린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내가 데려다주마.”

“괜찮아요. 바로 옆인데요.”

목운요의 거절에도 자리에서 일어난 월왕은 등불을 손에 쥐었다.

“가자. 날도 어두운데 혼자 보내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등불 아래로 월왕의 얼굴이 어슴푸레 비쳤다. 밤하늘처럼 새까맣던 눈동자가 등불처럼 따뜻하게 빛났다. 그 아래로 마치 붓으로 섬세하게 그려 낸 듯한 이목구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목운요는 혀끝을 살짝 깨물고는, 월왕의 손에서 등불을 받아 들었다.

“아무래도 머리부터 말리시는 게 좋겠어요. 이 정도 거리는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그러곤 월왕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치맛자락을 말아 쥐곤 성큼성큼 서재를 나갔다.

후다닥 자리를 떠나는 그 모습에 월왕은 손끝을 살짝 비볐다. 자신에 대한 목운요의 경계심이 전보다는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대로인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 손에 수건을 든 진 총관이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으응? 목 소저는 간 건가요?”

“음.”

진 총관이 웃음 띤 얼굴로 월왕에게 수건을 건넸다.

“눈여우를 길들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길들이기 전의 눈여우는 경계심이 심하다던데…….”

“밤이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 쉬도록 해.”

“예예, 왕야께서도 일찍 쉬십시오. 낙숫물이 댓돌을 뚫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니, 불철주야 열심히 노력하면 결실을 맺…….”

“어디서 그런 어설픈 소리를 주워들은 거지? 어쨌든 그 속에 담긴 뜻은 알고 있으니 적당히 하게.”

“후후, 돌아가서 열심히 책 좀 읽어야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들려 드리죠.”

월왕은 머리를 말린 후 소매 안에서 붉은 끈을 꺼냈다. 알록달록한 실로 엮어진 초승달 모양, 그리고 그 아래 앙증맞은 은방울이 두 개 달려 있었다. 살짝 흔들자 영롱한 소리가 났다.

* * *

양주성.

한 달여 동안 정성스레 수리한 정원에 불선루의 편액이 올라가자, 폭죽이 요란스레 터지기 시작했다.

오십 명의 차 전문가는 정원 양측에 나란히 서서, 공손한 자세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대로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나와 있었다. 경릉성의 불선루에 관한 명성을 익히 들은 터라 모두 기대감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활기가 넘치는 가운데, 불선루 맞은편에서도 폭죽이 터지더니 경쾌한 연주에 맞춰 사자탈을 뒤집어쓴 곡예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규모가 어찌나 크고 화려한지 불선루는 상대도 안 될 정도였다.

그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은 비단 천을 걷어 내자, ‘습보헌’이라는 커다란 편액이 모습을 드러냈다.

“습보헌? 이름만 보면 장신구를 파는 곳인가?”

“쯧, 하필이면 불선루 맞은편에, 그것도 같은 날에 문을 열면 어떻게 해?”

“누가 아니래? 어쨌든 오늘 문을 연 것 같던데 가서 구경이나 해 볼까?”

불선루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오민지도 초대장을 들고 갔다가, 습보헌 대문에 서 있는 제명을 발견했다. 오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제 선생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불선루의 초대장을 받고 오신 건가요? 그렇다면 저랑 같이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명은 오민지를 발견하고는 공수를 취했다.

“오 수령을 뵙습니다. 오늘 제 가게도 문을 연 터라 아무래도 차 마실 시간이 없을 듯합니다. 지금 습보헌에서 장신구를 사시면 고급 용정차(龍井茶)를 드립니다. 괜찮으시다면 부인께 선물할 만한 장신구를 구경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습보헌에서 파는 옷도 하운방 못지않답니다.”

그 말에 오민지는 자신의 초대장을 다른 사람에게 건넨 뒤 습보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파는 옷이며 장신구 모두 귀하고 아름답군요. 그런데 하운방 주인의 자수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하던데…….”

“예, 자수 실력이 뛰어나긴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술을 모두 전수해 준 터라 명성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손해가 적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모은 이들의 실력도 하운방 주인 못지않답니다. 그건 제가 확실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제 선생께선 소금 장사에 관심이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어째서 습보헌을 여신 겁니까?”

“하하, 그저 재미 삼아……. 부끄럽게도 대놓고 꺼낼 만한 이야기가 아닌지라, 하하…….”

이에 오민지는 더 캐묻지 않고 옷과 장신구를 골라 오부로 돌아갔다.

* * *

습보헌이 돈을 아끼지 않고 홍보를 공격적으로 해 나가자, 불선루의 영업에도 적지 않은 지장을 주었다.

그에 따라 하운방과 불선루를 무너뜨리기 위해 대황자가 습보헌을 세웠다는 소문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하운방 때문에 채월각이 문을 닫게 되어 대황자가 몹시 불쾌히 여겼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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