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탐색전
목운요는 금 부인 옆에 서서 살포시 눈을 내리깔았다.
지극히 공손한 그녀의 모습을 이목년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채 재빨리 훑었다.
어린 나이에 황상으로부터 상을 두 번이나 받은 데다, 평민 출신으로 조운년과 금 부인의 수양딸이 된 소녀라고 했다.
아무리 담담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득의양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소녀는 연신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쪽이 목 소저인가 보군요. 목 소저가 베푼 선행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답니다.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으면 좀처럼 숨길 수 없는 법이니, 실로 존경스럽습니다.”
이목년이 처음부터 목운요의 이름을 입에 담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금 부인은 무의식적으로 반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목운요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운요가 아직 어려 예법을 다 익히지 못해 이 대인을 뵙기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운요야, 어서 절을 올리렴.”
목운요는 절을 올린 뒤 금 부인의 뒤로 숨듯이 물러섰다.
그 모습에 이목년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한 채 조운년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 *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이를 안고 나와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가 이어졌다.
곧 있으면 서릉으로 입성하게 될 조운년은 승승가도를 달리게 될 터였다. 그런 그를 위해 손님들은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 왔다.
꼬까옷을 입은 조운년 내외의 아이를 향해 손님들이 칭찬과 덕담을 늘어놓자, 금 부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이목년이 옥패를 하나 꺼내 놓았다.
“이건 제가 약관(弱冠) 때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니, 조 대인과 금 부인께서 기쁘게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 승상께서 주신 거라면 이 대인에게는 무척 귀한 것일 텐데, 제가 어찌 받을 수 있겠습니까?”
“태어난 지 한 달 된 귀여운 아이를 보니 기쁘기도 하고, 집으로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부러움도 듭니다. 이 또한 저와 아이의 인연이니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길 진심으로 빌어 주고 싶습니다. 혹시 아이의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예, 질문이라 합니다.”
“좋은 이름이네요. 군자에게는 옥이 잘 어울리니 준비한 선물이 그 이름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손님들의 선물로 분위기가 무르익자, 목운요도 자신의 선물을 꺼냈다.
아이를 위해 손수 지은 옷으로, 값비싼 다른 선물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안에 입는 내의, 겉옷, 신발과 모자는 물론, 허리띠, 앙증맞은 복주머니에는 귀여운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걸 본 부인들은 앞다투어 목운요의 실력을 칭찬했다. 그에 목운요는 가벼운 미소로 응대했다.
* * *
시끌벅적했던 만월연이 끝나고, 자리를 뜨려는 목운요를 한 시녀가 불러 세웠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런데 누구…….”
눈앞의 시녀에게선 예의 바른 모습과 달리, 교묘하게 숨겨진 오만함이 느껴졌다.
“소인은 염운사 부인을 모시는 시녀, 만미(挽眉)라고 합니다. 부인께서 소저의 자수 솜씨가 마음에 든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십니다.”
말을 마친 만미가 옆에 있는 마차를 가리켰다. 목운요는 소청을 돌아보며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소청은 불안한 표정을 보였지만 지금은 여러 말 할 처지가 아닌 듯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채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그래, 알았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미를 따라 마차로 향했다.
“목운요, 부인을 뵙습니다.”
인사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차에 쳐 둔 발이 걷히면서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목 소저, 반가워요. 갑자기 불러내어 쉬는 걸 방해한 건 아닌지…….”
“말씀 놓으세요, 부인. 집이 이 근처라서 천천히 가도 상관없습니다.”
목운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이목년의 부인 주예화(周蕊華)는 병부상서(兵部尙書) 주씨 가문 출신으로, 지체 높은 가문의 처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목년에게 한눈에 반해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두 가문을 곤란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결국 황제까지 나서서 그녀를 이목년에게 시집보냈지만, 틀어진 두 가문은 좀처럼 화해하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두 가문은 여전히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불선루에 가고 싶었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고 해서, 무모할 줄 알면서도 목 소저를 이리 모시라 했네요.”
“불선루에서 예약제를 실시하는 건 귀빈을 대접하기 위함이랍니다. 부인께서는 귀빈 중에서도 귀빈이신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손수 차를 끓여 드리고 싶습니다.”
“저야 당연히 좋죠. 소저의 차 끓이는 실력이 일품이라 들었답니다. 황궁의 서 공공께서 어찌 칭찬하시던지, 그 이야기를 들은 황상께서 소저의 다도 솜씨를 구경해 보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황상께서 정말 그리 말씀하셨나요? 더 열심히 다도를 닦아야겠네요. 운 좋게 황상을 뵙게 되면 최선을 다해 모실 수 있도록요.”
마차에 오른 목운요는 주 부인을 따라 금수원으로 향했다.
모란꽃 향기 가득한 곳에 자리를 잡자, 진 총관이 달려와 다구를 정갈하게 배치하기 시작했다.
목운요가 손수 끓여 준 차에서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모습이 떠오르자, 주 부인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작은 찻잔에서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 피어난다는 말이 허세인 줄 알았는데, 오늘 목 소저의 솜씨를 보니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네요!”
“과찬이세요, 부인.”
붉어진 얼굴과 달리 눈빛에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주 부인은 그 모습을 눈 속에 담아 두며 더욱 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차를 마신 뒤 금수원을 둘러본 그녀는 잘 쉬다 간다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주 부인이 마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무거운 표정의 진 총관이 입을 열었다.
“소저, 저분은 이번에 새로 오신 염운사 이목년의 부인이 아니십니까?”
“예, 불선루의 차를 마셔 보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답니다.”
“허허, 어떤 분 같던가요?”
“잠깐 뵈었지만 유독 다정한 분 같았어요.”
“후후, 소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소 부인께서 애를 태우고 계실 테니 얼른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우의는 목운요가 자리를 떠나자 진 총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방금 목 소저와 나눈 이야기가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그 주 부인이라는 분은 대체 어떻다는 겁니까?”
진 총관은 어지간히 둔한 녀석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주 부인과 목 소저의 신분이 어떻더냐?”
“주 부인께서야 이목년의 본처이지 않습니까? 주씨 가문 출신으로, 현임 병부상서의 친딸이자 황상께서 손수 혼례를 치러 주실 만큼 대단한 분이시죠. 목 소저는 조 대인의 수양딸이긴 하지만 평민 출신이니 주 부인의 눈에 찰 리 만무할 텐데요.”
“중요한 걸 다 짚어 냈구나.”
“중요한 거요? ……앗, 그러고 보니 주 부인이 워낙 다정한 분이라고 해도 목 소저한테 굳이 잘 보일 필요는 없을 텐데. 게다가 소문에는 자존심이 무척 세다고 들었습니다. 당초 황실의 여인들에게도 막말을 했다고…….”
“경릉성에 또다시 바람이 불겠구나. 사람을 시켜 이씨 가문을 잘 살펴보도록 해라. 자리를 잡기도 전에 대황자에게 들킨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경주의 큰딸은 오래전에 입궁해 귀비의 자리에 오른 데다, 황상의 장자인 대황자를 낳아 총애를 받고 있었다.
대황자 역시 이씨 가문의 방계 출신인 여식과 혼례를 올린 것은 물론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황자를 지지하며 크게 성장한 그들은, 황제가 이경주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오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예.”
* * *
집으로 돌아가자 소청이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요아야, 주 부인께서 왜 널 찾으신 거니?”
“불선루를 둘러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괜찮은 걸까?”
“걱정하지 마세요. 주 부인처럼 대단한 분께서 저 같은 평민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요?”
“하아, 조 대인과 금 부인께서 서릉으로 가신다니 걱정이 드는구나.”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소청은 이제 겨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갑작스러운 변화에 막막한 기분마저 들었다.
목운요는 소청의 손목을 잡고 침대 위에 앉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의부님과 의모님이 서릉에 가시는 것도 괜찮아요. 나중에 저희가 소씨 가문에 돌아가게 되면 서릉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요아야, 진 총관님께 듣기론 이씨 가문이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엄청난 가문이라고 하던데, 앞으로는 가능한 멀리하는 게 좋겠구나.”
그에 목운요는 고민 끝에 소청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미리 터뜨려 놓는 편이 하루빨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저도 그들과 엮이긴 싫은데, 지금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아요. 주 부인이 절 보자고 한 건, 제 됨됨이나 심성을 떠보려고 한 걸 거예요.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럼 위험한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황상께 눈도장을 받은 터라 함부로 굴진 못할 거예요. 저희는 그저 보고도 모른 척하면 돼요.”
월왕이 없다면 두 사람은 난처한 처지에 몰렸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계획에 따라 소금 사업에 발을 디딜 수 있다면 월왕의 세력은 빠르게 커질 것이다. 그리 든든한 뒷배가 있어 준다면 대황자가 몇이나 되어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