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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10화 (110/442)

110화 이름 짓기

목운요는 아이를 단단히 싸맨 뒤 금 부인 곁에 눕혀 주었다. 아이를 보며 금 부인은 기쁨의 눈물을 연신 쏟아 냈다. 지치긴 했지만 정신은 평소보다 또렷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네가 와 주지 않았다면 나와 아이는…….”

“두 분 모두 건강하니 다행이에요. 이제부터는 산후조리에 힘쓰셔야 해요. 그리고 절대로 울어서도 안 돼요. 안 그러면 나중에 눈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그래그래. 알았다.”

“잠시 눈 좀 붙이고 계세요. 제가 가서 의부님께 소식을 전하고 올게요.”

“그래, 부탁하마.”

* * *

밖에서 줄곧 서성거리던 조운년은 목운요가 나오자 후다닥 달려갔다.

“요아야, 부인께선 괜찮으신 거냐?”

“후후,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모자가 모두 건강하시답니다.”

“정말 다행이구나!”

조운년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산실로 향하려 했다.

“내 당장 부인을 뵈어야겠다!”

“의모님께서 지금 막 몸을 푸신 터라 들어가시면 안 돼요. 방 안도 미처 정리하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의부님의 한기가 동생에게 전해질 수도 있으니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그동안 제가 방을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목운요의 지적에 조운년은 자신이 관복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봐. 환복도 못 하고 달려왔구나. 이 상태로 부인을 만나면 안 되겠지. 옷부터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으마!”

“예, 알겠습니다.”

* * *

방으로 다시 돌아오자, 피곤에 지쳐 잠이 든 금 부인과 그 옆에서 단잠에 빠진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불그레하고 쪼글쪼글한 게, 못생긴 것 같으면서도 꽤나 귀여워 보였다.

목운요는 금 부인의 맥을 짚었다. 오랫동안 산고에 시달린 탓인지 그녀는 좀처럼 잠에서 깨지 못했다.

그때, 은홍이 산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올렸다.

목운요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 뒤 밖으로 은홍을 데리고 나갔다.

“은홍 언니, 갑자기 왜 그래요?”

“소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저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부인과 도련님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주 이낭과 산파의 불손한 의도를 은홍 역시 눈치챘다. 목운요가 없었다면 부인과 도련님을 지키지 못했을 거다.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고맙다고 하니 괜히 부끄럽네요.”

“감격한 나머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의모님을 정성껏 모시는 은홍 언니 덕분에 의모님도 건강하실 수 있었어요. 나중에 상금을 받으면 차 한잔 사 주세요.”

그 말에 은홍은 뛸 듯이 기뻐했다.

“물론이죠! 나중에 불선루에 가서 소저에게 가장 비싼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후후, 불선루에서 가장 비싼 차는 제가 직접 끓이는 건데요? 그래도 찻값은 언니가 내야 해요.”

“예, 그리하죠. 몇 잔을 드시든 제가 다 계산할게요!”

“그 약속 잊으면 안 돼요.”

* * *

한 시진 넘게 잠이 들었던 금 부인이 눈을 떴다. 근처 의자에 앉아 있던 목운요는 곧장 다가갔다.

“의모님, 정신이 드세요? 은홍 언니, 빨리 가서 푹 곤 탕을 가져오세요. 의부님께도 의모님이 깨셨다고 말씀드리세요.”

“예, 소저.”

“요아야, 너도 고생이 많았을 텐데 왜 아직 여기 있는 거니?”

“의모님이 깨어나신 걸 봐야 저도 안심하고 돌아가죠.”

목운요가 아이를 금 부인의 품에 누여 줬다.

금 부인은 긴장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우리가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것도 몰라주고 잠만 잘 자네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의 미간이 구겨지더니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놀란 목운요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얼어붙었다.

금 부인은 그런 목운요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자연스럽게 행동하기에 전혀 긴장하지 않은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티 내지 않으려 억지로 참고 있었던 듯했다.

“후후. 춘홍, 가서 유모를 불러오렴.”

목운요는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유모는 믿을 만한가요?”

회임을 하고 출산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날 정성껏 보필해 준 이란다. 믿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다행이네요.”

이내 금 부인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유모를 목운요는 조심스레 살펴봤다. 맑은 눈빛의 그녀가 능숙하게 아이를 받아 들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때마침 조운년도 허겁지겁 달려왔다.

목운요는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고했다.

“의부님, 의모님. 날이 어두워졌으니 저는 먼저 돌아가 볼게요. 다른 일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러자꾸나.”

* * *

삼 일 뒤, 소청은 목운요를 따라 조부를 찾았다.

금 부인은 한결 편안해 보이는 안색으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침상에 기대어 있었다. 두 사람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은홍에게 차를 내오라고 지시했다.

“동생, 얼른 와서 나 좀 도와줘. 아이가 잠만 자고 도무지 깨지를 않네.”

“후후, 아이들이야 많이 먹고 많이 자야 쑥쑥 크는 걸요.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이니 다행이에요.”

첫 아이다 보니 매사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밤에 잘 자다가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가 제대로 숨을 쉬는지 살펴보곤 했다.

소청이 금 부인과 함께 아이 키우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목운요는 그 옆에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금 부인은 소청이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할 때까지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온종일 이야기하고도 부족했는지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동생, 당분간 자주 와 줘.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자세한 이야기도 좀 들려주고.”

“아이도 중요하지만 부인께서도 몸조리를 잘하셔야 해요. 몸을 풀고 한 달 동안 푹 쉬어야 평생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답니다.”

“그래, 동생 하라는 대로 하겠네!”

* * *

목운요는 소청과 함께 마차에 오른 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어머니, 그땐 저도 저렇게 작았나요?”

“네가 막 태어났을 때는 손바닥으로 받쳐 들 수 있을 만큼 작았단다. 꼭 새끼 고양이 같았지. 사람들은 네가 얼마 못 살 거라고 했지만, 난 네가 살아날 거라고 믿었단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든 열심히 널 보살폈지. 그런 네가 이제는 어엿한 아가씨로 아름답게 자라다니…….”

목운요는 소청의 어깨에 기댔다. 눈에 어린 웃음기가 점점 진해졌다.

하언촌에선 살 가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는 밖에 내다 버리곤 했다. 집 안에서 아이가 죽으면 재수가 없는 것은 물론, 이후에 태어날 아이에게도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변의 손가락질에도 어머니는 그런 자신을 묵묵히 지켜 온 것이다.

“어머니가 정말 좋아요.”

“다 지나간 일이니 마음에 둘 것 없어. 네가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하단다.”

* * *

그로부터 며칠 동안 소청은 부지런히 조부를 찾았다. 못생겼던 아이는 서서히 살이 붙으면서 통통하고 하얀 얼굴을 지닌 채 재롱을 부리곤 했다.

한편 조운년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느라 서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몇 개 골랐지만 금 부인이 퇴짜를 놓더니 목운요에게 도움을 청했다.

“요아야, 네가 동생 이름 좀 지어 주렴.”

“제가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것도 없지.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지 못했을 테니 너만 한 적임자도 없단다.”

주 이낭과 산파들을 떠올리는 금 부인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자신을 해치려 했던 사람을 용서해 줄 만큼 그녀는 자비롭지 않았다.

“하지만…… 의부님께서 저리 서책을 열심히 보시는데. 역시 이름은 의부님이 지어 주시는 게 좋겠어요.”

“허허, 내가 지은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며 퇴짜를 놓지 뭐냐? 아무리 궁리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구나. 그리고 네 의모 말이 맞다. 너만 한 적임자가 또 어디 있겠느냐?”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목운요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분의 뜻이 그러하다면 더는 거절하지 않을게요. 어떤 이름이 좋으려나……. 질(본바탕)이 문(아름다운 외관)을 이기면 촌스럽고, 문이 질을 이기면 겉치레만 잘하니, 문과 질이 적당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이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질문(質文), 조질문이 어떻겠습니까?”

“문과 질이 적당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다……. 공자의 말씀이로구나. 아이가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는 경세(經世)의 도를 깨우쳐 군자로 자라길 바라는 것 또한 나의 바람과도 일치해. 그런 아이를 하늘도 기꺼워해 주시겠지. 그래, 질문이 좋겠구나!”

옆에 있던 조운년도 좋은 이름이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이름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두 사람의 모습에 목운요는 인사를 올린 뒤 자리를 떠났다.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운년이 금 부인을 돌아봤다.

“외모나 품행, 심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게 없는 아이요. 특히 영특함이나 고고한 자태는 도무지 평민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구려.”

“저 아이의 미래가 어떨 것 같습니까?”

“흐음……. 황상으로부터 두 번이나 상을 받았다고 하지만, 자고로 이 땅에서 장사꾼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도 가장 무시당하는 계급이지. 평생 풍족하게 살 순 있겠지만, 저 아이에게 과연 미래라는 것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구려.”

“후후, 저와는 정반대로 생각하시네요. 저는 운요 저 아이가 언젠가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오를 거라고 믿습니다.”

“어찌 그렇단 말이오?”

“제 말이 듣기 거슬리시겠지만, 끝까지 들어 보세요. 지난 반년 동안 나리께서 승진하시고 황상의 치하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백성을 위하는 나리의 진심이 통한 것도 있지만, 운요의 덕을 본 게 더 크지요. 게다가 황상의 뇌리에 경릉성이라는 세 글자를 단단히 박아 둔 인물이라면 어찌 평범한 삶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날 때부터 남다른 재주를 지닌 사람은 제아무리 미천한 출신이라 하더라도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니, 저는 운요가 바로 그런 재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운요가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 받은 게 이미 너무 많아 항상 아껴 주고 지켜 줄 생각이랍니다.”

금 부인의 말에 조운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부인의 말이 옳소. 앞으로 운요를 친딸처럼 대합시다.”

조운년이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속 좁은 상대였다면 목운요에게 고맙다고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눈엣가시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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