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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09화 (109/442)

109화 위험천만

“나리,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아이가 어찌 출산에 대해 알겠습니까? 경험이 없는 목 소저가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산파들을 방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 그게…….”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나는 주 이낭이라고 하-”

“스스로 이낭이라고 하셨으니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안주인이 아이를 낳는데 무사히 출산해 달라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진 않고, 오히려 본처의 후원에서 소란을 피운단 말입니까?”

그 말에 주 이낭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조운년을 바라봤다.

“나리, 부인의 시녀들이 똑바로 처신하지 않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런 것이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조운년 역시 목운요의 말이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평소 목운요와 금 부인의 사이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운요야…….”

하나 목운요는 주 이낭을 무시한 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하인들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모두 조용히 하세요!”

냉기가 뚝뚝 흐르는 말투에 모두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순간 조용해진 뒷마당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주 이낭이 입을 삐죽거렸다.

“목 소저, 조부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그 말에 목운요가 홱 하고 고개를 돌리며 매섭게 주 이낭을 째려봤다.

“닥쳐! 일개 첩년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야, 큰 소리는! 은홍, 춘홍! 두 사람은 당장 방에 들어가서 의모님 곁을 지켜 드려요. 하청과 죽청(竹靑)은 뜨거운 물을 준비하세요. 금란과 금교는 부엌에 가서 먹을 것을 준비하고. 의모님 입에 들어가는 건 모두 내게 허락을 받도록 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하던 일 모두 멈추고 각자 방에 들어가 기다리세요. 함부로 돌아다니는 자는 내 손으로 쳐 낼 테니!”

주 이낭은 다급한 표정으로 조운년을 바라보았다.

“나리, 저년이 지금 절-”

짜악!

뺨을 얻어맞은 주 이낭이 옆으로 휙 떠밀려 나갔다.

조운년은 바보가 아니다. 목운요의 지시를 듣자, 지난번 왕 이낭이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던 일이 떠올랐다.

한결 차분해진 머리로 상황을 판단해 보니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이 나갔다.

“목 소저의 이야기를 못 들었느냐? 첩이면 안주인이 무사히 아이를 낳게 기도를 올리진 못할망정 소란이나 피우다니! 불당에 가서 부인이 무사히 아이를 낳을 때까지 열심히 불공을 올려야 할 것이다!”

주 이낭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러났다.

조운년은 조급한 마음에 입이 바짝 말라 왔다.

“운요야, 부인을 보살펴다오. 혹시, 혹시라도…….”

미처 내뱉지 못한 뒷말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목운요가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조운년을 위로했다.

“의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의모님과 동생 모두 무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 * *

산실(産室)에 있던 금 부인은 초조하다 못해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특히 주 이낭이 자신이 부리던 시녀들을 모두 물리자 그 불안함은 극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산통이 점점 심해지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산파들의 부축을 받아 방 안을 걸어 다니며 어떻게든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초조함이 극에 달한 순간, 목운요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머지않아 방문을 박차듯 들어온 목운요를 보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아야…….”

금 부인의 상태를 확인한 목운요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의모님, 양수가 터졌는데 왜 아직도 서 계시는 거예요? 두 사람은 왜 아이를 받을 채비를 하지 않는 거죠?”

“우리가 받아 낸 아이가 몇 명인지 알아? 출산하기 전엔 이렇게 몸을 움직여야 아이를 빨리 낳을 수 있다고.”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소저가 애 낳는 걸 어찌 알겠어? 부인, 저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려우니 당장 내보내십시오. 저희를 방해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

잠자코 이야기를 들던 목운요가 두 번째 산파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뺨을 힘껏 후려쳤다.

짝-!

“은홍, 춘홍! 의모님을 당장 침상에 눕혀 드려요.”

가만히 있으라는 목운요의 으름장에 산파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어린 계집애가 이렇게 세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목운요한테 뺨을 맞은 두 번째 산파의 눈에는 독기가 어렸다.

“목 소저, 너무한 거 아냐?! 우리가 대체 뭘 잘못…….”

“의모님한테 문제라도 생기면 두 사람 모두 목숨을 내놔야 할 거야! 오늘의 일을 내가 반드시 후회하게 해 줄 테니까!”

자신과 아이를 지키려는 목운요의 모습에 금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처음 목운요를 만나 수양딸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니 그야말로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운요의 기세에 눌린 산파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저희들도 부인께서 무사히 출산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요.”

“당연히 그래야지!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두 사람 목숨은 물론, 나머지 식구들도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

목운요는 말을 마치자마자 금 부인의 맥을 짚었다.

“의모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선 잠시 눈 좀 붙이세요. 제가 의모님과 동생을 지켜 드릴게요.”

“그래, 너만 믿으마.”

금 부인은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며 목운요를 평생 지켜 주겠노라 다짐했다.

금 부인이 안정을 취하자, 일렁거리던 목운요의 마음도 한결 가라앉는 것 같았다.

* * *

잠시 뒤, 금란과 금교가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소저, 음식을 확인해 주세요.”

쟁반을 받아 든 목운요는 두 사람이 정성껏 만든 음식을 살펴본 뒤 금 부인에게 먹을 것을 권했다.

“의모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안 그러면 나중에 힘을 쓰지 못하실 거예요.”

그 말에 금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운요가 건네는 음식과 따뜻한 물을 마셨다. 이것만으로도 한결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배 속의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지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목운요는 금 부인의 배를 쓰다듬으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금 부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한테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동생이 꽤나 개구쟁이라서 배 속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네요. 배 속에서 위치가 틀어져 제가 몇 번 밀어 볼 거예요. 아이 스스로 위치를 바꾸면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실 것 없어요.”

“그래, 알았다.”

목운요가 산파들을 돌아봤다.

“제가 태아의 위치를 바로잡을 테니까 두 사람은 아이를 받으세요.”

회귀 전, 목운요는 독 낭자 곁에서 사람을 해코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배웠다.

특히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땐 슬쩍 손만 써도 흔적도 없이 상대를 해치울 수 있었다.

태아의 위치를 바로잡을 때 세게 힘을 주면 평생의 장애를 가질 수도 있었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는 편이 안심이 됐다.

목운요에게 욕을 잔뜩 얻어먹은 산파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목운요가 지시를 내리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혼례도 안 올린 어린 계집이 자신들보다 솜씨가 좋아 봤자 얼마나 좋겠어? 아이를 낳다가 사고가 생기면 자신들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일 터였다.

두 사람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금 부인 곁에 다가갔다.

두 사람의 미소를 본 은홍은 이를 악물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부인께서 무사히 출산하시면 확실히 그 빚을 갚아 줄 생각이었다.

산파들의 예상과 달리, 목운요는 능숙하게 출산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머리가 조금씩 드러나자, 산파 중 한 명이 이를 악물더니 아이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막 태어난 아이는 머리 쪽의 골격이 온전하지 않아, 손가락으로 살짝만 눌러도 오래 살지 못했다. 설사 살아남는다고 해도 사람 구실 하기가 어려웠다.

손에 아이의 머리가 닿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녀의 팔뚝을 우악스럽게 낚아챘다. 목운요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한기가 뚝뚝 떨어졌다.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저, 저는 그저…… 아이를 받으려던 것뿐인데요? 소저가 분부하셨잖아요? 아직도 저흴 못 믿겠다면 저흰 옆에서 구경이나 할게요!”

“은홍, 춘홍! 밧줄을 가져다 저것들을 묶어 두세요. 엉뚱한 짓 못 하게 잘 지켜봐요. 이번 일만 끝나면 이 빚을 톡톡히 받아 낼 테니!”

“예, 소저!”

금 부인은 끔찍한 고통에 이가 덜덜 떨렸다.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던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모님, 동생이 태어나면 저한테 봉투 두둑하게 챙겨 주시겠다고 약조하셨죠?”

“그, 그래…… 꼭, 꼭 그리하마…….”

평온한 말과 달리 목운요는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독 낭자한테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 아이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가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감쌌다. 머리가 쑤욱 하고 나오자, 금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힘을 쏟아 냈다.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껴진 순간, 아이를 감싸 안은 목운요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 있던 금란과 금교가 재빨리 이불을 가져왔다. 목운요는 아이의 탯줄을 자른 뒤 아이의 몸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아 냈다. 입과 코에 든 양수를 빼내고 발을 톡톡 치자, 와앙 하는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금 부인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 내며 연신 몸을 떨었다. 목운요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한없이 여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을 때도 온 힘을 쏟느라 기진맥진하셨을 거다. 설사 자신은 어떻게 되더라도 아이만 무사하면 된다는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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