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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08화 (108/442)

108화 담팔왕의 말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역졸들의 모습에 담팔왕이 겁을 집어먹곤 주춤거렸다.

“이,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난 채월각의 차기 주인이다! 황상께서 머지않아 채월각에 편액을 내리실 텐데, 내게 이리 함부로 굴면 네놈들의 목숨이 멀쩡할 듯싶으냐! 죽고 싶지 않거든 당장 이 손 떼거라!”

담팔왕의 위협에도 양 현령은 찻물을 먹이라고 호통쳤다.

찻잔을 쥔 역졸들이 그의 입을 벌리는 순간, 담팔왕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돼! 차에 독이 있다! 그걸 마시면 죽는단 말이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목운요가 날카롭게 물었다.

“담팔왕, 차에 무슨 독을 탄 거지?”

“학정홍(鶴頂紅)! 학정홍을 탔다!”

“어디서 구한 거냐?”

“회, 회안성 자녕당(慈寧堂)에서 샀다……!”

놀란 나머지 바지에 오줌을 지린 담팔왕이 역졸들의 손에 이끌려 땅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담팔왕의 얼굴에서 핏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목운요…… 네, 네년이 또…… 말도 안 된다. 내가 차에 학정홍을 넣었는데 그걸 마신 하인과 장 의원은 왜 멀쩡한 거지? 말도 안 돼. 이건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된다고!”

그 말에 역졸이 하인을 끌고 나왔다. 하인은 양 대인에게 고개를 조아린 채로 절을 올렸다.

“대인, 모두 담팔왕 저자가 시킨 짓입니다. 학정홍을 제게 마시라고 협박한 것도 모자라, 목 소저를 모함하려 했습니다.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아서 몰래 독이 든 잔을 바꿔치기했습니다. 담팔왕이 가져온 학정홍은 정원 옆에 있는 화단에 던져 두었습니다. 이 차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저 또한 독이 든 걸 마신 척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담팔왕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하인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이, 이놈! 내가 네놈을 살려 둘 성싶으냐? 감히 날 속여? 당장 그 숨통을 끊어 버릴 테다!”

목운요는 미친 듯이 날뛰는 담팔왕을 무시한 채 양 현령에게 가볍게 절을 올렸다.

“양 대인, 시시비비는 분명히 가려진 듯합니다. 담팔왕은 절 모함하려 한 것도 모자라,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부디 공정한 심판을 내려 주시옵소서!”

명음 역시 바닥에 꿇어앉은 채로 머리를 조아린 채 사정했다.

“양 대인, 부디 백성을 위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이는 구경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양 현령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담팔왕을 벌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양 현령이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모두들 걱정하지 마시오. 내 명예를 걸고 이번 사건을 공정히, 그리고 철저히 밝혀낼 것이오!”

증거는 물론, 모두가 담팔왕의 증언을 똑똑히 들은 터라 담림이 아무리 뒤에서 압박을 가한다고 해도 이번엔 결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목운요가 앞으로 나아가서 절을 올렸다.

“소녀, 양 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목 소저, 내 마땅히 할 일일 뿐이니 좋은 소식을 기다려 주시오.”

양 현령은 휘하의 아역에게 담팔왕과 그의 하인을 관아로 압송하고 증거인 찻잔을 챙기라고 명했다.

“살펴 가십시오, 양 대인.”

양 현령을 배웅한 목운요가 증인이 되어 준 손님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모두 한마음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찻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목 소저, 그럴 필요 없소이다. 목 소저와 명음 소저가 험한 꼴을 당하는 걸 어찌 구경만 하고 있겠소이까?”

“그렇다마다요! 찻값은 평소처럼 받으시구려.”

“아뇨. 그리 큰 신세를 졌는데 마땅히 보답해야죠. 용감히 증언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겨우 하루 치 찻값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는 여러분의 은혜에 미치지도 못합니다.”

진심 어린 그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좋소! 고맙구려, 목 소저.”

상황을 마무리한 목운요는 명음과 함께 내원으로 돌아왔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명음이 무릎을 굽힌 채 절을 올렸다.

“목 소저와 진 총관님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그에 진 총관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네가 괜한 고생을 했구나. 두 달 치 품삯을 줄 테니 한동안 푹 쉬도록 해라.”

감사 인사를 올리는 명음을 뒤로하고 목운요는 진 총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총관님, 오늘 증인이 되어 준 손님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찻잎을 선물로 드릴까 하는데 어떨까요?”

“예, 소저의 뜻대로 하십시오.”

* * *

집으로 돌아오자, 소청이 다급하게 달려 나오더니 목운요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괜찮은 거니? 사금이 말리지 않았다면 나도 금수원으로 달려갔을 게다.”

“전 괜찮아요. 명음이 조금 다치긴 했지만 잠시 쉬고 나면 괜찮을 거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하더니……. 음흉한 담팔왕이나, 배은망덕한 담림이나 다 똑같은 족속들이구나! 우리한테 자수법을 배워 가선 제 잇속만 채우고 이런 뻔뻔한 짓거리를…….”

“어머니, 그 일에 대해선 이미 이야기가 끝났잖아요.”

담림이 자수법만 빼 가고 자신들을 모른 척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오히려 의리를 지키는 게 이상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한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구나.”

“그 일이라면 생각하지 마세요. 며칠만 지나면 잠잠해질 테니까요.”

채월각의 명성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럼 얼마 못 가서 채월각도 춘수방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 분명했다.

* * *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양 현령은 담팔왕의 판결을 집행했다.

차에 독을 타서 불선루의 명성에 먹칠을 한 죄, 부녀자를 희롱한 죄 등을 들어 담팔왕은 곤장 오십 대를 맞은 뒤 유배형에 처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담림이 달려와 사정했지만 이미 내려진 판결을 뒤엎지는 못했다.

성 밖으로 실려 나가는 담팔왕을 구경하러 경릉성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사방에서 날아온 돌에 맞은 담팔왕은 피를 줄줄 흘리며 쫓겨났다.

“어휴, 담팔왕이 성 밖으로 기어 나가는 걸 보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소저께서도 그걸 보셨어야 하는데!”

금교의 말에 목운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채월각의 영향력이 큰 회안성에서 담팔왕은 여러 여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해요. 열 번 죽여도 그 죄를 다 갚지 못할 텐데, 살려 준 것만 해도 큰 인정을 베푼 셈이죠.”

“그렇네요!”

그때, 육냥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강남땅에 소금 상인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가문으로는 오씨(吳氏), 조씨(曺氏), 위씨(魏氏)가 있었습니다. 오씨 가문의 오민지(吳敏之)는 소금 장수들을 이끄는 자로,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소금 사업에 뛰어들 거라면 그들을 이끄는 인물과 미리 친분을 다져 놓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목운요의 머리가 재빨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오민지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볼 방법이 있을까?”

“도자기와 차를 좋아하긴 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건 화초인 듯합니다. 꽃의 왕이라 불리는 모란 화분 두 개를 거금을 주고 샀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집 곳곳에 진귀한 난을 여러 개 소장하고 있다 합니다.”

“그가 정말 화초를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아봐. 그리고 소금 상인들의 동향을 잘 감시하도록 해. 이제 곧 소금세를 심사하라는 조정의 명이 내려올 거야.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움직여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육냥이 물러가자 목운요의 입가가 살짝 휘어졌다.

“정말 화초를 좋아하는 거라면 잘됐는걸.”

금수원의 뒷마당에는 온실이 하나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서 줄곧 내버려 뒀지만 그곳을 빌려 쓰면 될 것이다.

곧장 금수원의 온실을 살펴본 목운요가 사람을 시켜 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버려 둔 땅치고는 관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치의 틈도 용납할 수 없었다.

* * *

정신없이 바쁜 오후를 보낸 뒤, 목운요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달게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요란스레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놀란 목운요가 들어오라고 하자 금란이 허겁지겁 문을 열었다.

“소저, 금 부인께서 곧 출산하실 것 같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이미 진통 중이시라니 속히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목운요는 재빨리 옷을 걸쳤다.

“출산일까지는 아직 보름이나 남은 거 아니었나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은홍 소저의 안색이 무척 안 좋아 보이던데…….”

시간이 없는 터라 목운요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나 급했는지 머리도 채 빗지 못했다.

목운요를 발견한 은홍은 마치 구세주를 발견한 듯 울먹거리며 달려왔다.

“소저, 서둘러 주세요! 부인께서 넘어지시면서 하혈을 하셨습니다. 산파 말로는 태아의 위치가 틀어져 위험하다고 합니다.”

“육냥, 당장 말을 준비해!”

* * *

빠르게 조부로 달려가자, 뒷마당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마당에선 주 이낭이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춘홍(春紅), 바빠 죽겠는데 멍하니 뭘 하고 있는 거야? 부인께서 평소 너희에게 얼마나 잘 대해 주셨는데 이런 때에 하등 도움도 안 되고!

하청(夏靑), 넌 당장 부엌에 가서 삼계탕을 끓이도록 해. 든든하게 드셔야 부인께서 힘이 나지.

너희 둘! 멍하니 뭐 하고 서 있는 거야? 빨리 가서 아궁이를 살피지 않고! 부인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 네년들 탓인 줄 알아!

부인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죄는 내 반드시 짚고 넘어갈 거다! 부인께서 무사히 출산하고 난 뒤에 네년들의 죄를 엄히 물을 테다!”

금 부인이 조산하게 됐다는 소식에 가뜩이나 몸을 사리고 있던 시녀들은 주 이낭의 호통까지 들리자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조운년 역시 긴장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쩔 줄 몰라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성이던 그는 목운요를 발견한 순간 눈을 빛냈다.

“운요야, 마침 잘 왔구나! 네 의모가 널 불러 달라고 했으니 어서 들어가 보거라.”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주 이낭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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