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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07화 (107/442)

107화 열 잔의 찻잔

그 말에 양 현령의 미간이 구겨졌다.

“안 될 말이다. 어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친단 말이냐?”

“설마 양 대인께서도 장 의원이 목운요를 돕고 있다고 여기시는 겁니까?”

“내 그리 말한 적 없다!”

“그렇다면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장 의원이 공정하게 검사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사건이 해결되면 제가 장 의원에게 수고비로 은자 만 냥을 드리겠습니다!”

차에 독이 있다는 것만 증명한다면 목운요가 명음에게 악독한 짓을 시켰다고 지목할 수 있을 터였다!

양 현령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장춘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소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제 말이 사실인지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담 공자께서 제의하신 방법이 두렵지 않으니 그대로 준비해 주십시오, 양 대인.”

“알았소. 수고해 주시오, 장 의원.”

이내 열 잔의 찻잔이 금세 탁자 위에 올려졌다. 흰 도자기 잔에 담긴 차는 색상은 물론 온도마저 완전히 똑같았다.

담팔왕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장춘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신이 당한 고초를 이제 곧 목운요가 맛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벌렁거렸다.

장춘이 첫 번째 잔에 은침(銀鍼)을 넣었다가 꺼낸 뒤 그 향을 맡았다.

“이 잔에는 독이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어서 두 번째 잔에 대한 검사가 시작됐다.

“이 잔에도 독이 없습니다.”

역시나 단숨에 잔을 들이키는 장 의원을 보며 담팔왕은 목운요를 곁눈질했다.

‘흥,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속은 아니겠지? 크흐흐…….’

이번 일로 목운요를 사지에 몰아넣진 못하더라도 그 명성에 흠집을 낸다면 훗날 뒤에서 몰래 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목운요를 제 처소에 끌어다 놓고,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하다고 여길 만큼 평생 괴롭혀 줄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편 채 히죽거리던 담팔왕이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장 의원이 여섯 번째 잔을 검사하고 있었다.

“이 잔에도 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장 의원은 일곱 번째 잔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은침으로 두 번 찔러 본 뒤에 그 향을 맡았다.

점점 무거워지는 그의 표정에 담팔왕의 입가가 스르륵 올라갔다. 저 잔에 독이 든 것이 틀림없구나!

“이 잔에도 독이 없습니다.”

“뭐라고?! 장 의원, 잘 생각해 보시오. 독이 없다고 했으니 이제 그 잔을 비워야 할 텐데, 작은 말실수로 멀쩡한 목숨을 내놓을 생각이오?”

그 말에 장 의원은 담팔왕을 향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의원이오. 내 어찌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좋소! 그렇다면 그 잔을 당장 비우시오!”

방금 표정을 보니 저 잔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독이 없다고 빡빡 우긴다면야 그 잔을 깨끗이 비워야 할 테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장 의원이 일곱 번째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심장이 튀어나올 듯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장 의원의 얼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탁자 위에 남은 찻잔은 셋. 이 중에서 담팔왕의 하인이 마신 잔이 있는진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남은 잔을 쳐다보던 장 의원이 갑자기 양 현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양 대인, 남은 석 잔 모두 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는 남은 석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텅 빈 열 잔의 차를 보는 담팔왕의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독이 안 들어 있다니? 이건 절대로 말도 안 된다. 누군가가 몰래 수작을 부렸다는 생각에 담팔왕의 시선이 절로 양 현령을 향했다.

그 모습에 양 현령이 싸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담팔왕, 너의 시종이 마신 잔을 내가 바꿔치기한 건 아닌지 의심이라도 하는 건가?”

“열 잔의 찻잔에 독이 안 들어 있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미리 개에게 먹여 개가 거품 물고 죽어 가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런데 왜 장 의원은 멀쩡한 거지?

그때, 목운요가 태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도 이상하네요. 차에 독이 있는지 어찌 그리 확신한답니까? 이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걸 보니 설마 담 공자가 스스로 독을 타기라도 한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내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엉뚱한 사람 잡지 마라!”

“그저 추측을 말한 것뿐인데 어찌 그리 긴장한답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면 저승사자가 온들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한 번 더 시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장 의원님이 마신 찻물이 아직 남았으니, 이번에는 딱 여섯 잔만 준비해서 저희 둘이서 석 잔씩 직접 마셔 보는 것으로요.”

“내, 내가 왜 마셔야 한단 말이지?”

“담 공자도, 저도 차에 독을 타지 않았다면 차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겠죠. 한데 왜 그리 겁을 낸답니까?”

“내, 내가 언제 겁을 냈다는 거냐?”

“그렇다면 제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시죠?”

목운요는 뒤돌아서서 양 현령에게 절을 올렸다.

“양 대인,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그에 담팔왕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급기야 안색이 허옇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슬며시 바라보던 양 현령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눈치챘다.

“두 사람이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기로 동의한다면 나도 더 이상 말리지 않겠네. 여봐라, 찻잔을 다시 대령하라!”

담팔왕은 눈을 빠르게 굴렸다.

자신이 찻잔에 독을 탄 것은 분명하다. 장 의원이 멀쩡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 또한 무사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어찌 제 목숨을 가지고 위험천만한 도박을 한단 말인가?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여섯 개의 찻잔이 올려졌다. 겉으로 봐선 전혀 차이가 없어 보였다.

목운요는 여유롭게 담팔왕을 쳐다봤다.

“담 공자, 먼저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먼저 마실까요?”

그 말에 담팔왕이 고개를 홱 돌리며 장 의원을 바라봤다.

“잠깐! 검사하기 전에 장 의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아까 일곱 번째 잔을 들 때 왜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거요?”

장 의원은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것이니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장 의원, 그러니 솔직히 말해 보시오. 말을 안 한다는 건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뜻이니.”

주변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장 의원을 바라봤다.

그러자 장 의원의 표정이 점점 난처해지더니 결국 마지못해 그가 답을 했다.

“그, 그게…… 차를 너무 많이 마신 터라 소변이 급해서…….”

그의 대답에 쥐 죽은 듯 고요하던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게 겨우 오줌을 참으려고 그런 거라니!

장 의원은 벌겋게 익은 얼굴로 양 현령에게 급히 절을 올렸다.

“소인, 이만 가 봐도 될는지요.”

양 현령 역시 뜻밖의 대답에 꽤 당황한 눈치였다. 난처한 표정의 장 의원을 보며 양 현령은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돌아가 봐도 좋소.”

장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부리나케 자리를 비웠다.

당황하기는 담팔왕 역시 매한가지였다. 겨우 오줌을 참느라고 그런 표정을 지었다니……. 장 의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차에 독이 없다는 건데…….

‘아냐! 목운요가 수작을 부린 걸지도 몰라. 이를 어쩐담? 차에 독이 든 거야, 만 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 터질 것 같았다.

이를 짐작이라도 하듯 목운요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담 공자, 어찌할까요? 먼저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먼저 마실까요?”

“그, 그게…… 네가 먼저 골라라!”

“알겠습니다.”

목운요가 첫 번째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 담팔왕이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먼저 고르겠다. 그래, 네가 고른 그 잔을 내놓거라!”

목운요의 입가가 스르륵 올라가더니 그녀가 자신이 든 찻잔을 건넸다.

“예, 이 잔을 드리죠.”

어쩐지 아까보다 더 환해진 미소를 보자 담팔왕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목운요가 자신의 속내를 읽고 일부러 독이 든 잔을 맨 처음 고른 게 아니었을까? 방금 환하게 웃던데, 설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뒤엉켰다.

담팔왕이 자신의 찻잔을 건네받지 않자 목운요가 미소를 거뒀다.

“담 공자, 날이 이리 추운데 왜 그리 땀을 흘리십니까? 마침 차가 차가우니 쭉 들이켜면 속 안의 열이 식을 겁니다.”

“이년…… 무슨 수작인 거냐?”

“수작이라뇨? 차를 권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드시지 않는 겁니까? 혹 차에 독을 탄 거라 차마 마실 엄두가 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내, 내가 언제!”

“아니라면 얼른 드십시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담팔왕이 차에 수작을 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겁에 질려 찻잔도 차마 손대지 못하는 게 아니겠는가!

“담팔왕! 목 소저는 차를 마시겠다고 하는데, 네놈은 차에 독을 타지 않았다고 하면서 왜 마시지 못하는 거냐?”

“흥,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겠지. 양 대인께서도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담팔왕이 사람을 모함하려 했으니 꼭 엄벌에 처해 주십시오!”

“맞습니다! 지난번에도 목 소저를 모욕하더니,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또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엄히 다스려야 마땅합니다.”

양 현령이 담팔왕 앞으로 걸어가더니 두 역졸에게 손짓을 했다.

“여봐라, 담팔왕을 잡아 가두거라!”

“놔라, 이놈들! 무슨 증거로 내가 죄를 지었다는 거냐!”

“담팔왕, 네 죄를 정녕 모르겠느냐? 아직도 시치미를 떼다니, 내 기필코 이번 사건을 끝까지 밝혀낼 것이다!”

양 현령이 좌우에 서 있던 역졸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자의 입을 벌려서 차를 모두 쏟아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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