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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06화 (106/442)

106화 진실을 밝히는 발길질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가 담팔왕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혀를 찼다.

“저자는 지난번 목 소저를 괴롭혔던 자 아닌가?”

“몇 달간 잠잠하나 싶더니 또다시 찾아와 시비를 걸다니!”

주변이 소란스러운 와중, 목운요는 바닥에 있던 소녀, 명음(銘音)을 부축했다.

“명음,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소저. 손을 다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명음의 옷소매를 걷어 올리자, 새하얀 피부 위에 한 뼘 크기의 상처가 길게 난 게 보였다. 가녀린 팔에서 흘러내리는 핏자국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담팔왕을 향해 험한 말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왜 멀쩡한 사람한테 화풀이냐!”

“어이쿠, 저 상처 어째? 담팔왕, 이 천하에 못된 놈! 어린 소저한테 상처를 입히다니!”

명음의 상처를 확인한 담팔왕의 눈이 등잔불만 하게 커졌다. 그녀를 민 것은 사실이지만 혹시라도 누명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상처를 입히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이 당할 줄이야…….

“영악한 것, 내가 언제 네년한테 해코지를 했단 말이냐?”

담팔왕의 호통에 명음은 크게 놀란 듯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목운요 뒤에 숨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담팔왕, 명음 소저를 증인 삼아 양 대인에게 엄벌을 내려 달라고 할 거다!”

“모두 눈이 멀기라도 한 건가? 저년이 끓인 차를 마시고 내 하인이 죽어 가는데, 그게 왜 내 탓이라는 거지? 이러다가 내 하인이 죽으면 네놈들도 전부 공범으로 처넣겠다!”

“불선루가 문을 연 이래 한 번도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명음 소저가 왜 네 차에 독을 탔다는 거지?”

“그거야 지난번 일에 대한 앙갚음이겠지! 그동안 내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내게 마수를 뻗은 걸 거다. 하지만 내가 차를 하인에게 건네는 바람에 운 좋게 화를 면할 수 있었으니, 하늘이 정녕 날 도우시는구나.”

목운요를 곁눈질하던 담팔왕은 평온한 그녀의 모습에 분통이 터졌다. 목운요한테 걷어차여 사내구실 못 하게 된 것도 모자라 석 달 동안 옥살이를 했으니, 이 원한을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게다가 채월각의 명성이 하운방보다 높으니 몸 사릴 이유가 없었다.

지난번의 빚을 한 번에 갚아 주마!

목운요는 금란한테서 받은 흰 천으로 명음의 팔을 지혈해 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명음 소저, 담팔왕의 말이 사실인가요?”

명음은 입술을 깨문 채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말이에요! 차를 마시러 왔다는 이야기에 불선루에 해가 될까 싶어 평소보다 더 조심히 행동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부하를 시켜 절 희롱하려 하지 뭡니까? 도와 달라고 소리 지르려는데, 갑자기 그자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거품을 물었습니다.”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명음의 말은 어느새 울먹임으로 변해 있었다.

“소저, 억울합니다. 부디 제 결백을 밝혀 주세요…….”

그 말대로 명음의 옷차림이며 머리가 평소보다 흐트러져 있었고, 특히 옷소매와 옷고름은 누군가가 잡아당긴 것처럼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담팔왕!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다시 거짓 수작을 부린 게냐? 양 대인께서 네놈의 죄를 샅샅이 밝혀내실 거다!”

“다시금 목 소저를 위협하다니! 목 소저가 옛 원한 따위 잊고 채월각에 자수법을 전수하라는 호의를 베풀었는데, 이제 와서 명성 좀 쌓았다고 무고한 사람을 겁박하는 것이냐?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역시 채월각은 글러 먹었다니까!”

“맞아, 맞아!”

담팔왕은 경릉성에서 채월각의 명성이 이리 나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면 목운요는 사람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녀를 두둔했다.

담팔왕은 흉흉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째려보더니 콰드득 이를 갈았다.

“네놈들이 헛소리를 떠들어 대는 동안 내 하인은 죽어 가고 있단 말이다! 양 대인이 오시면 네놈들을 전부 잡아넣어 그 죄를 물을 거다!”

그의 거듭되는 협박에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의 말대로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 하인의 목숨이 소중하면 빨리 의원을 부르지 않고 뭐 하는 거냐?”

“흥, 너무 놀라서 깜빡한 것뿐이다. 목운요, 너도 구경만 하지 말고 의원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 흥, 그럼 그렇지. 네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내 이미 눈치챘다!”

그 말에 목운요가 냉소를 날렸다.

“담팔왕, 언제부터 배우로 전향했는지 궁금하네요.”

“닥쳐라, 내가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아느냐?”

“다른 사람 따위는 어떻게 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는 거냐? 양 대인에게 그 죄를 모두 물어 달라 할 것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 대인의 행차를 알리는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양 현령은 담팔왕을 발견하곤 눈썹을 크게 찌푸렸다.

그동안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대의를 실천해 왔다고 자부하는 양 현령에게 담팔왕은 눈엣가시였다. 담림의 영향력에 밀려 죄를 저지른 담팔왕을 풀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일 이후 담팔왕을 생각할 때마다 가시가 목구멍에 걸린 듯했는데, 그자가 제 발로 경릉성에 찾아올 줄이야!

“양 대인을 뵙습니다.”

담팔왕은 양 현령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양 대인, 이것 좀 보십시오. 목운요가 사람을 시켜 절 죽이려 했습니다.”

양 현령은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보곤 오작에게 자세히 살피라고 명했다.

“대인, 의술을 알지 못해 이자가 이렇게 된 연유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의원을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흥! 양 대인, 조사할 게 뭐 있습니까? 제 하인이 불선루의 차를 마시고 이렇게 됐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사람이 당장 숨이 넘어가게 생겼으니, 이게 모두 다 불선루의 짓이 틀림없습니다!”

“조용하시오! 가서 의원을 데려오라.”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양 대인. 저자는 불선루를 모함하기 위해 연기하는 것뿐이니까요.”

“헛소리 마라, 목운요! 이렇게까지 악독할 줄이야. 당장 죽게 생긴 사람한테 연기하는 척이라니, 대체 그 증거가 뭐란 말이냐!”

담팔왕의 하인을 자세히 살펴본 양 현령의 미간이 전보다 더 심하게 구겨졌다. 아무리 봐도 거짓으로 죽어 가는 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지금 당장 가서 의원을 불러오너라.”

그 말에 목운요가 옆에 있던 오작에게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오작 어르신, 저자의 가슴을 걷어차면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현령님, 저년이 하는 말을 들으셨지요? 어서 감옥에 처넣지 않고 뭐 하시는 겁니까?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저년을 비호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양 현령은 담팔왕을 홱 하고 째려본 뒤 목운요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 소저, 이번 사건은 내가 끝까지 파헤칠 것이니 소저는 잠시 기다려 주시오.”

꼼짝도 하지 않는 오작의 모습에 목운요는 육냥을 불렀다.

“육냥, 저자의 단중혈(檀中穴)을 힘껏 걷어차.”

그 말에 놀란 오작이 안 된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육냥이 지체 없이 사내의 가슴을 걷어찼다.

“크헉!”

다 죽어 가던 사내는 육냥한테 발길질을 당하자,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웩웩거리며 토하기 시작했다.

양 현령은 자신의 명령을 무시한 목운요를 책망할 생각이었으나,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담팔왕! 네 하인이 불선루의 차를 마시고 중독됐다고 하지 않았느냐. 중독된 사람이 저리 멀쩡하단 이야기는 내 여태껏 들어 본 적이 없다만?”

그때, 목운요가 명음을 부축한 채 양 현령 앞으로 걸어갔다.

명음은 절을 올리더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양 대인,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어찌 된 일인지 말해 보거라.”

“제 버릇 못 고친다더니, 담팔왕은 절 희롱한 것도 모자라 차에 독을 넣었다고 절 모함했습니다. 의술을 아는 목 소저가 저들의 눈속임을 알아내지 못했다면 이 한 몸 바쳐 제 결백을 입증하려 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입을 다물고 있던 손님들도 앞다투어 양 현령에게 담팔왕의 죄를 고발했다.

“양 대인,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담팔왕은 명음 소저가 차에 독을 타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하지만 온통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지난번 일로 앙심을 품어 목 소저를 모함하려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저리 뻔뻔한 인간은 처음 봅니다. 지난번에는 거짓말을 일삼더니, 이번에는 사람들을 모아 여론을 호도하려 했습니다. 경릉성에서 너 같은 놈을 순순히 놔줄 것 같으냐?!”

“모두 닥쳐! 네놈들이 뭘 알아? 저년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누가 아느냐고?! 내 하인을 중독시킨 차가 탁자 위에 있으니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조사해 보면 될 것 아냐!”

자신을 슬쩍 쳐다보는 양 현령을 향해 목운요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의원을 불러와서 확인하죠.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의원한테 확인을 받는 편이 더 확실할 테니까요. 누가 더러운 거짓말을 쏟아 내는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편이 좋겠네요.”

그 말에 양 현령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좋소. 지금 당장 의원을 불러오시오!”

잠시 뒤, 인선당의 장 의원이 약상자를 짊어지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인선당의 의원 장춘, 양 대인을 뵙습니다.”

“오느라 수고했소. 장 의원, 우선 탁자 위에 올려진 차를 검사해 주시오.”

그러자 담팔왕이 버럭 하고 소리쳤다.

“기다려 주십시오, 양 대인! 저 장 의원이라는 자는 경릉성 사람이 아닙니까? 목운요에게 매수당해 뒤에서 돕고 있을지 누가 안단 말입니까?”

“그럼 어찌하잔 말인가?”

“으음……. 공정한 검사를 위해 탁자에 차 열 잔을 가져다 놓아 주십시오. 제 하인이 마신 잔도 거기에 함께 놓아둔 뒤, 장 의원에게 차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십시오. 독이 없다고 하면 그 잔을 마시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하면 아무런 사심 없이 한 말이라는 것이 저절로 입증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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