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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05화 (105/442)

105화 위험한 투자

목운요의 의도를 알아차린 월왕이 가늘게 눈을 떴다.

“소금으로 장난을 치는 건 구족(九族)을 멸하는 대죄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후후, 제겐 왕야가 있지 않습니까? 왕야가 계시니 제 목이 달아날 것 같진 않은데요.”

목운요가 봄 햇살에 피어난 꽃보다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 말 없는 월왕을 보며 목운요는 그가 고민 중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왕야, 자금이 필요하신 게 아니었나요? 나라에서 관리하는 관염(官鹽)은 내버려 두고, 은밀히 취급하는 사염(私鹽)만 다루면 월서의 세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운이 좋으면 앞으로 날마다 돈방석 위에서 돈 세다가 날 새는 줄도 모르고 살 수 있을 거예요.”

“내게 필요한 돈이 적지 않을 텐데?”

“얼마가 되는지 말씀만 하시면 제가 벌어 드리겠습니다.”

목운요는 강렬한 바람을 담아 월왕을 바라봤다.

소금을 다루는 사업에 끼어들 수만 있다면 막대한 부를 쥘 수 있을 것이다. 월왕이 나서서 도와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절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목운요에 월왕은 점점 흐뭇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왕야,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삼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몇 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실 건가요?”

목운요의 눈빛을 충분히 ‘독점’했다는 생각에 월왕이 고개를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눈동자에서 강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좋다, 그리하마.”

목운요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겁쟁이로 보일 것이다. 게다가 월왕으로서는 돈이 누구보다도 절실히 필요했다.

목운요가 기쁜 듯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그럼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네요. 소금 사업에 관한 소식은 왕야께서 알아봐 주세요.”

“좋다.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 주마. 하지만 한동안 월서의 일을 관리해야 하니 넌 경릉성에서 하운방을 키우도록 해라. 앞으로 하운방과 불선루가 네가 강남에서 자리를 잡는 기반이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 * *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목운요는 육냥을 불렀다.

“육냥, 네 수하 중에 쓸 만한 자들이 얼마나 되지?”

“믿을 만한 자는 칠십여 명, 쓸 만한 자는 사백여 명입니다.”

“흐응, 네가 그런 쪽으로 타고난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는걸. 어쩌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네.”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육냥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올해 조정에서 소금세를 조사하는 일로 강남이 큰 혼란에 빠질 거야. 특히 소금을 취급하는 소금 상인들이. 영향력이 큰 소금 상인들을 뽑아서 단단히 지켜봐. 수상한 동태가 파악되거든 내게 즉시 알려 주고.”

그녀의 지시에 육냥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주인님, 소금을 다루는 일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 바닥에 발을 디뎠다가는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쯤은 나도 알아. 하지만 그 바닥이 아무리 깊어도 바닥은 있는 거잖아. 그 바닥에서 견딜 만한 맷집을 키우는 수밖에. 그래야 바닥으로 떨어져도 다시 기어오를 수 있을 테니까.”

손에 쥐고 있는 자금은 넉넉한 편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일 년만 열심히 벌면 수십만 냥 정도는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발판 삼아 소금이라는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앞으로는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돈이 권력만 못하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까지 재물을 쌓으면 권력을 부릴 수도 있는 법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육냥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목숨 바쳐 해내겠습니다.”

그 말에 목운요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육냥. 이번 일에 욕심은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위험한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아.”

“평생 주인님을 따르겠다는 계약서를 쓴 이상, 이 목숨은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써 주십시오.”

자신의 목숨을 한낱 물건처럼 말하는 육냥의 얼굴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지한 육냥의 모습에 목운요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넌 언제나 최선을 다해 날 도와줬어. 그 충심만으로 충분해. 더 이상은 필요 없어.”

그에 육냥은 안심하기는커녕 오히려 초조한 반응을 보였다.

“제 이름은 육냥. 주인님을 보필하는 호위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인님 곁에 머물며 주인님과 함께 나아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목숨을 바쳐 보답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그 절박한 모습에 목운요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나도 내 목숨은 소중한 데다, 어머니를 모셔야 하니 괜한 화를 자초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금수원 사야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거지, 육냥?”

“월서에 생강차를 보냈다는 걸 듣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영사야는 사황자인 월왕이실 테지요.”

“맞아. 이번 일을 함께해 주실 거야. 그러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은 없을 거야. 걱정 붙들어 매.”

회귀 전 월왕은 단번에 서릉을 장악해 나갔다. 소금 사업으로 자금을 안정적으로 대준다면 월왕이 훨훨 날아오를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예.”

입으로는 그리 대답했지만, 육냥은 사건이 터지면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주인님을 지키겠노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 * *

월왕이 월서로 떠난 뒤, 목운요는 진 총관과 함께 불선루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 소저, 지난 반년 동안 불선루는 천천히 기반을 넓혀 왔습니다만,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선루 문을 연 뒤로 강남의 각 지역에서 쓸 만한 자리를 찾아봤어요. 하지만 갑자기 가게를 키우면 불선루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있으니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수밖에요.”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우선 경릉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주성과 회안성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나가면 좋겠네요. 중간에 강이 있으니 왕래하기도 편할 거예요. 여기에 불선루의 분점을 세우도록 하죠.”

“겨우 두 곳만 말입니까?”

“그래도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일단 금수원과 비슷한 크기의 장소를 물색해 수리한 뒤 각종 차를 구비해야 해요. 게다가 인맥을 쌓고 차를 대접할 전문가를 키우는 데, 한 곳만 해도 십만 냥이 든답니다. 하나씩 시작해 나가는 게 좋아요.”

한 곳을 짓는 데 십만 냥이라면, 두 곳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은 이십만 냥이다. 그 돈을 마련하기도 버거운 마당에 하물며 규모를 더욱 키운다면야…….

재빨리 주판알을 튕긴 진 총관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사야께서 금수원을 제공해 주신 덕분에 불선루를 세우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았죠. 하지만 또 다른 지점을 세우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각 지역마다 풍경이나 풍습이 다른 데다, 일손을 뽑을 때도 주의해야 해요. 그러니 두 곳을 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일이죠.”

“허허, 과연 주도면밀하시네요.”

“참, 한 가지 주의하실 일이 있어요.”

“말씀만 하십시오.”

“불선루가 황상으로부터 편액을 받은 일로 웬만해선 시비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몸집을 키우면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누군가가 분명 생기겠죠. 그러니 가능하다면 현지 사람을 많이 고용하는 편이 좋아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몸을 낮춰야 할 거예요.”

“그렇군요. 반드시 명심하고 있겠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제게 기별을 주세요.”

“예, 목 소저 덕분에 골치 아픈 문제를 잔뜩 해결했네요. 목 소저야말로 불선루의 ‘귀인’입니다.”

마음 같아선 ‘귀인’이 아니라 ‘구세주’라고 부르고 싶은 심정의 진 총관이었다.

그에 목운요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전 그저 돈 벌 궁리만 할 뿐인걸요. 총관님께서 칭찬할 만한 그런 주제가 아니에요.”

“허허, 너무 겸손한 것도 좋지 못합니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보내 드린 패물을 하고 다니시는 걸 도통 보지 못했네요. 혹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마음에 안 들 리가요. 다만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는 중이라서 주의하는 것뿐이니 오해하지 마세요.”

“어쩐지, 목 소저가 소박한 옷만 입고 다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 실언을 용서해 주십시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 지금쯤이면 사야께선 월서에 도착하셨겠네요?”

“예, 월서의 상황을 정리하신 후에 돌아오실 겁니다.”

“전…….”

그때, 갑자기 등장한 우의의 모습에 목운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목 소저, 진 총관님을 뵙습니다. 현재 채월각의 담팔왕이 금수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차에 독을 타 죽이려 했답니다.”

그 말에 목운요가 벌떡 일어났다.

“거기가 어디죠? 길을 안내해 주세요.”

* * *

안으로 들어서자 담팔왕의 하인이 하얗게 질려 쓰러진 채 연신 거품을 토해 내고 있었다. 상이 뒤집히면서 찻물은 바닥으로 한가득 쏟아진 채였다.

차를 대접하던 소녀 또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부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있던 담팔왕은 목운요를 보자마자 악에 받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목운요, 일전에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목운요는 그런 담팔왕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우의, 가서 관아에 신고하세요. 담팔왕이 고의로 불선루 사람을 다치게 하고 차에 독을 탔다는 누명을 씌웠으니,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요.”

자신보다 더 세게 나오는 목운요의 모습에 담팔왕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제 하인이 죽어 가는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목운요, 괜한 허세 부리지 마라. 관아에 신고하겠다고? 오냐, 나도 이참에 경릉성 사람들에게 네년의 속이 얼마나 시커먼지 밝히고 말겠다!”

목운요의 명을 받은 우의가 곧장 관아에 신고하러 문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소동에 불선루의 손님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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