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새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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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목운요는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지만 금 부인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데 그 순간, 소청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곤 다시 누웠다.
소청은 가볍게 문을 두드린 후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침상 한가운데 봉긋하게 솟은 이불을 보며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으며 설핏 미소를 지었다.
침상에 앉은 소 부인은 이불을 젖히곤 목운요의 입 안에 귤을 쏘옥 넣어 줬다.
“올해 달콤한 일만 가득하렴!”
그에 목운요는 소청의 품 안에 덥석 안겼다.
“어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셔야 해요.”
소청은 품 안에서 꺼낸 세뱃돈 봉투를 아이의 손에 쥐여 줬다.
“그래. 우리 요아도 항상 좋은 일, 달콤한 일만 생길 거다. 그러니 이 돈으로 사탕 사 먹으렴.”
“감사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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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금수원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난 월왕이 옷을 갖춰 입은 뒤 진 총관과 함께 소택으로 향했다.
소청은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월왕이 포권을 취하며 절을 올렸다.
“소 부인,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영 공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녀는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한 뒤 금란 등에게 차를 내오도록 했다.
그 시각, 목운요는 조부에 인사드리러 가기 위해 연분홍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새해 분위기에 적당히 어울리는 의상이었다.
준비를 마친 목운요가 밖으로 나오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월왕의 모습이 보였다.
목운요는 가벼운 미소를 띤 채 월왕에게 무릎을 굽혀 절을 올렸다.
“영사야를 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녀린 몸매에 연분홍빛 치마를 두른 그녀는 평소보다도 생기가 넘쳐 보였다. 백옥처럼 하얀 얼굴에 삼단 같은 머리채, 반짝이는 눈동자와 붉은 입술은 활짝 핀 봄꽃보다도 아름답고 찬란했다.
“목 소저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인사를 건넨 월왕이 소매 안쪽에서 세뱃돈 봉투를 꺼내더니 목운요에게 건넸다.
그 돈을 목운요는 냉큼 받아 들었다.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위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될 것이다. 게다가 공돈을 사양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감사합니다, 사야.”
그에 월왕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가, 다시 평소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목운요는 월왕과 진 총관에게 사정을 말한 뒤 조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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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오는 목운요를 발견한 금 부인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폈다.
“의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서 일어나렴.”
금 부인은 시녀를 부르더니 준비해 놓은 세뱃돈을 건넸다.
“우리 요아는 점점 예뻐지는구나. 커서 절세미인이 되거라!”
목운요가 세뱃돈을 잽싸게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의모님 말씀처럼 되려면 저도 앞으로 관리 좀 해야겠네요.”
“후후, 그래야지! 참, 네 의부님께서는 잠시 다른 볼일이 있으시니 나중에 인사 올리렴. 지금은 나와 같이 순무 부인을 뵈러 가자꾸나.”
“잠시만요, 먼저 의모님 진맥부터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가장 중요한 일을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구나.”
배는 나날이 불러왔지만 몸이 불편한 곳은 딱히 없었다. 이게 다 목운요가 정성껏 돌봐 준 덕분이었다.
목운요는 맥을 짚고 난 뒤 금 부인의 배를 향해 조그맣게 속닥거렸다.
“동생아, 오늘도 착하게 말 잘 들어. 그러면 누나가 나중에 세뱃돈을 잔뜩 줄게.”
그 말에 금 부인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걸 깨닫곤, 목운요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 * *
목운요는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웃고 있었는지 나중에는 얼굴에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금 부인의 지체 높은 신분 덕분에 다행히 목운요 역시 어딜 가득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아이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소청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니?”
“순무 부인께서 자꾸 이야기를 꺼내 놓으시는 바람에……. 게다가 찾아가야 할 사람도 무척 많았어요. 그나마 지금 돌아온 것도 의모님 덕분이에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지체 높은 분들한테 새해 인사를 올리려고 밤늦도록 서 있는다고 하더라고요.”
“새해 인사란 것도 쉽진 않구나.”
“그러니까요……. 어머니, 저 배고파 죽을 것 같아요. 뭣 좀 먹게 해 주세요.”
소청이 아이의 손을 매섭게 두들겼다.
“천지신명님, 바람이 세게 불면서 난 소리랍니다. 요아야, 새해 첫날부터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헤헤헤, 알겠어요. 근데 저 정말 배가 고파서 꼼짝도 못 하겠어요.”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렴. 얼른 먹을 걸 가져다주마.”
* * *
새해 특유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다만 월왕과 진 총관은 계속해서 소택에 머물 수 없던 탓에 금수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고요한 금수원에 있다 보니 소택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중에서 터지는 불꽃을 보니 까닭 없이 적적한 기분이 들었다.
때마침 진 총관이 피풍의를 가지고 나왔다.
“왕야, 날이 추운데 든든히 입고 다니셔야죠.”
“월서에 비하면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 총관이 걱정하지 않도록 월왕은 건네받은 피풍의를 걸쳤다.
“어제 소택에서 무척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네요. 그렇게 마음 편히 새해를 보낸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월왕의 눈빛이 순간 부드럽게 변했다.
소택과 멀지 않았기에 간간이 말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빙등(氷燈, 얼음으로 만든 등)을 만들고 있는 듯했다.
진 총관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월서에 있을 때 우항과 우의가 빙등을 깎던 걸 본 적 있습니다. 목 소저한테 줄 빙등을 두 사람한테 만들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월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빙등이 뭐 볼 게 있다고…….”
“여자아이들은 영롱하고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까. 목 소저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지난 반년 동안 목 소저한테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 정도야 충분히 해 줄 수…….”
“필요 없다.”
진 총관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왕야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목 소저 쪽에 빙등을 깎을 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 쉬게.”
“예. 날이 추우니 왕야께서도 얼른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월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 총관이 안으로 사라졌다.
소택에서 연신 쏘아 올린 폭죽에 월왕의 시선이 저절로 소택 쪽으로 향했다. 빙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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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전, 빙등을 본 적 있었다. 솜씨 좋은 장인들이 깎아 놓은 빙등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목운요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커다란 연꽃 모양의 빙등이었다.
빙등이라는 건 그저 얼음을 깎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드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얼음 자체가 워낙 잘 깨지는 탓에 조금만 힘을 줘도 산산조각 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릇 모양의 빙등이 가장 널리 쓰였다. 조금 투박해도 촛불을 붙이면 제법 그럴듯해 보였던 것이다.
금란과 금교 등이 빙등 만드는 것을 구경하던 것도 잠시, 목운요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반나절 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새해 인사를 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목운요에게 사람들은 방으로 돌아가 쉴 것을 권했다.
결국 목운요는 홀로 방에 가서 침상 위에 몸을 누였다. 이따금 들려오는 폭죽 소리에 잠을 설치다가 간신히 잠이 든 순간, 창밖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빠르게 눈을 떠 시선을 돌리니, 창문에 검은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목운요는 베개 밑에서 월왕이 준 비수를 꺼내 손에 쥐곤 조심스레 침상에서 내려왔다. 순식간에 창문을 열어젖힌 그녀가 창밖의 그림자를 향해 비수를 휘둘렀다.
휘익-!
하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차가우면서도 묵직한 촉감에 목운요는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요란스러운 심장 박동 소리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죽이려는 거냐?”
월왕?
상대를 자세히 살피자 은백색 피풍의를 걸친 월왕이었다.
목운요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회귀 전 소씨 가문에서 자신을 해치려고 보냈던 자객들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늦은 밤에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신 건 괜찮고요?”
그에 월왕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를 풀어헤친 목운요는 맨얼굴에 새하얀 중의(中衣)를 걸치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입술도 파리해져 무척 연약해 보였다.
“먼저 옷 좀 입고 올게요.”
숨통을 조여 오던 긴장감이 사라지자,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재빨리 창문을 닫은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사야, 하실 말씀이 있으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지만 월왕은 여전히 창밖에 선 채 방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뒤 그가 정교하게 깎은 빙등을 하나 들어 올렸다.
작은 크기의 빙등은 귀여운 고양이였다. 살짝 눈을 감은 고양이는 꼬리를 만 채 조금은 교활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귀여운 모습을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던 목운요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척 섬세하게 조각된 빙등이네요. 이렇게 늦게까지 빙등을 팔던가요?”
순간 월왕의 미간이 꿈틀했다.
“내가 만든 거다.”
“이걸 만드셨다고요?”
놀란 목운요가 자세히 살펴보니 고양이는 어제 월왕이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고양이와 무척 닮아 있었다. 척 봐도 한 사람이 만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