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90화 (90/442)

90화 돈을 벌어 준 인재

“목 소저, 지난번에 보내 주신 생강차가 왕야께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강차를 보내 드리고 싶군요.”

“아, 죄송합니다. 총관님도 보시다시피 요새 세의를 준비하느라 바빠서 그 일까지는 동시에 진행하지 못할 것 같네요. 생강차를 만드는 일은 총관님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강차를 또다시 보내려면 피 같은 돈을 들여야 한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은 훗날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힘겹게 마련한 것. 월왕에게 쓸 돈은 더 이상 없었다.

진 총관이 그런 목운요의 속셈을 알 리 만무했다. 단박에 거절당하자, 그는 곧바로 알겠다며 수긍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소저에게 빌리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라면…… 혹시 지난번 양식 사는 일을 도와준 제명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더 많은 생강차를 보낼 생각이라 구입할 것들도 많아졌답니다. 그자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네, 제명을 진 총관님에게 보내라고 육냥에게 말해 둘게요.”

“감사합니다, 목 소저. 그리고 한 가지 더 의논할 문제가 있습니다. 요새 날이 점점 추워져서 불선루를 찾는 손님들이 줄고 있답니다. 그래서 말인데, 금수원의 문을 잠시 닫고 휘장 같은 걸 설치하면 어떨까 합니다.”

“요새 세의를 준비하느라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내일부터 사흘 동안 금수원 문을 닫고 정원을 재단장해야겠어요.”

“사흘이면 정원을 손보는 데 너무 짧지 않겠습니까?”

“괜찮아요. 사실 금수원의 정원을 손보면서 추운 겨울을 대비할 방도를 미리 생각해 놨거든요. 휘장은 이미 준비해 놨으니 사람을 시켜 걸기만 하면 될 거예요.”

“허허허, 참으로 주도면밀하십니다.”

목운요에게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을 진 총관 역시 잘 알고 있던 터라 그는 몸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건넨 뒤 바로 자리를 떠났다.

* * *

십여 일이 지난 후, 진 총관이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제명의 꼼꼼한 일 처리 덕분에 품질 좋은 양식을 일 할이나 저렴하게 산 것이었다.

한참 동안 제명에 관한 칭찬을 놓던 진 총관은 나가기 전에 돈 봉투를 건네며, 제명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진 총관이 떠난 후, 목운요는 금란에게 육냥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한데 때마침 상자를 든 육냥이 방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육냥, 마침 잘 왔어. 진 총관이 제명에게 감사의 뜻으로 돈을 주셨거든. 이걸 제명한테 전해 줘.”

육냥은 인사를 올리더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목운요 앞에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상자를 여는 순간, 목운요의 미소가 사라졌다.

상자 안에는 은표 꾸러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충 세어 봐도 이만 냥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렇게 큰돈이 난 거야?”

“제명이 번 돈입니다.”

“돈을 벌었다고?”

제명이 양식을 구하면서 돈을 몰래 빼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방금 진 총관이 한바탕 칭찬을 늘어놓은 걸 보면 그럴 것 같진 않다.

진 총관이 어디 보통내기던가? 품질이나 가격, 어디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을 것이다.

육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초 주인님의 지시대로 제명에게 양식을 구입하라 일렀습니다. 양식의 용도를 듣고 나선 예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양식을 구입했더군요. 쓰고 남은 양식을 잘 보관했다가 진 총관님에게 판 겁니다.”

처음 제명에게 양식을 구입하라고 했을 때는 이제 막 가을 추수가 끝나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다. 한편 곧 있으면 겨울이 될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값이 많이 올랐을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목운요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곧장 파악했다.

“후후후! 그 제명이라는 자, 꽤 쓸 만한 것 같은데. 육냥, 내일 그자를 데리고 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걸.”

목운요가 방실방실 웃어 보이자, 육냥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명에게는 벌을 내리지 않으시는 겁니까?”

“벌을 왜 내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게 원통했는데.”

잘못한 게 있으면 벌을 받고, 잘한 게 있으면 상을 내리는 것은 사람을 다루는 기본 원칙이었다.

“예, 소저.”

육냥이 돈 봉투를 들고 나가자, 목운요는 다시 실과 바늘을 쥐고선 금란에게 은표를 세도록 했다.

“소저, 모두 이만이천 냥입니다.”

“이걸 어머니한테 가져다드리세요. 어디서 난 돈이냐고 묻거든 진 총관님이 불선루의 수익을 보내셨다고 하면 돼요.”

“예, 소저.”

금란이 나간 뒤에 방 안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만 냥이나 되는 차액을 남기다니, 이번에 진 총관이 준비하려는 생강차가 무척 많은가 보다.

* * *

자리에서 일어나니 으스스한 게, 겨울이 머지않았음이 느껴졌다. 기척을 듣고 방 안으로 들어온 금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올라가 있었다.

“소저, 눈이 내려요! 조금 쌓인 것뿐이지만 그래도 아름답네요.”

“그러고 보니 이맘때면 눈이 내릴 만하죠.”

“네. 방금 사금을 만났는데 부인께서 쌀가루로 만두를 빚으실 거래요. 그걸 먹어야 감기 걸리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하셨대요. 후후, 오늘 먹을 복이 터졌네요.”

소청 부인은 모두를 한 가족처럼 여겼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언제나 챙겨 주는 모습에 금란 등은 감동을 받곤 했다.

“와, 진짜요? 어머니가 빚은 만두 먹은 지 오래됐는데, 생각만 해도 벌써 군침이 도네요. 어머니한테 저는 연근이 들어간 고기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 주세요.”

“예, 소저!”

* * *

그 시각, 금수원에서는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의 연이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본디 금수원의 경치는 그 자체로도 훌륭했는데, 곳곳에 휘장과 병풍이 세워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 것이다.

여기에 눈까지 내리자, 손님들은 수려한 절경에 마음을 빼앗긴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정취를 만끽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금수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 총관은 손에 쥔 은자를 세며 목운요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 겨울이 되면 불선루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까 걱정했었지만 지금은 외려 한여름보다 매출이 오른 상태였다.

게다가 지난번 양식 구하는 일을 도와줬던 제명 덕에 큰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새해가 되면 목 소저에게 두둑한 세뱃돈을 건네야겠다고 결심하는 진 총관이었다.

* * *

목운요는 바쁜 와중에도 제명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쪼갰다.

곧 건장한 체구에 우직한 미소를 띤 상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올린 그의 얼굴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드리워졌다.

“인사는 됐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목운요는 제명이라는 자를 차분히 살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물론, 눈가에서도 우직한 기색이 담긴 걸 보니 억지로 꾸민 건 아닌 듯했다. 뼛속까지 철저히 위장했거나, 뼛속부터 저리 태어난 것 둘 중 하나일 테다.

“감사합니다, 소저.”

제명은 쭈뼛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좁은 의자에 낑낑대며 앉는 게 꽤나 우스워 보였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양식을 넉넉히 사서 보관할 생각은 어찌한 건가요?”

목운요의 질문에 제명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저께서 양식을 사서 월서로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후에 또 보내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가격이 올랐을 때 사게 되면 돈을 더 내야 하니, 차라리 지금 사서 보관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여겼습니다. 돈은 물론,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말이죠. 혹여 추가로 사들인 양식을 쓰지 않는다면 곳간에 넣어 놨다가 가격이 오를 때 다시 팔려고 했습니다.”

“무척 주도면밀한 계획이네요.”

어쩐지……. 그동안 육냥이 은자를 더 달라고 한 게 모두 그 때문이었나 보다.

목운요는 상대를 좀 더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한 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계획이고, 완벽한 계산이었다.

“앞으로 제명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소인은 소저를 따르고 싶습니다. 소저의 뜻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목운요는 미소를 지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장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줄곧 뜻을 펼치지 못했답니다. 저는 머리 장식, 연지, 향분(香粉)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습보헌(熠宝轩)를 열고 싶어요. 총관 자리를 맡아 주겠어요?”

“소저의 뜻이 그렇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이 빨라서 좋네요. 하지만 하운방처럼 명성을 널리 알릴 방도를 생각해 둬야 할 거예요.”

그에 제명은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머리를 가볍게 긁적거렸다.

“소인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지…….”

“괜찮아요. 이야기해 보세요.”

목운요의 입가가 드리워진 미소가 더욱 휘어졌다.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대책을 생각해 내다니.

“소저가 세우신 하운방은 이미 널리 명성이 알려져 있죠. 하운방처럼 명성이 자자한 가게를 손에 넣으시려면 하운방을 밟고 일어서는 수밖에요.”

자신의 말에 목운요가 화를 내지 않자 제명은 무겁게 한숨을 돌렸다. 이에 반해 목운요의 미소는 한껏 휘어져 있었다.

“자세히 말해 봐요. 하운방을 어떻게 밟고 일어서겠다는 거죠?”

“하운방을 시샘하는 자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황상의 편액을 내건 터라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와중에 습보헌에서 노골적으로 하운방에 맞선다면 많은 이들이 뒤에서 응원하며 힘을 보탤 겁니다.”

웃음을 터뜨린 목운요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좋네요. 대책을 이미 세운 것 같으니 직접 해 보세요. 필요한 자금은 육냥에게 보고하면 내어 드리죠.”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덕분에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제명이라고 했던가? 때를 잘 맞춰 찾아와 줬다.

“예,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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