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85화 (85/442)

85화 금 부인의 충고

* * *

사흘 후, 금교가 급하게 방으로 들어오며 방금 입수한 정보를 소청과 목운요에게 들려줬다.

“부인, 소저! 양 현령께서 담팔왕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담팔왕의 하인들이 이 모든 게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시인했답니다. 자신들이 아모와 남아를 때리고 려아를 납치한 거라고. 소저를 모함한 것 역시 자신들이 담팔왕을 부추긴 것으로, 담팔왕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합니다. 결국 담팔왕을 석 달 동안 투옥한다는 판결이 나왔답니다!”

그 이야기에 소청의 미간이 심하게 구겨졌다.

“담팔왕이라는 자 때문에 남아와 아모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고작 석 달이라고?!”

“아마 담림이 중간에서 손을 썼을 거예요.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그 값을 치르는 것이 인지상정이니, 언젠가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거예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채청 등에게 담팔왕과 부딪히는 일 없이 조심히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쉴 무렵, 금란이 금 부인이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매무새를 다듬었다.

“어서 부인을 안으로 모시세요.”

연보랏빛 치마를 걸친 금 부인은 붉은 비취로 만든 비녀로 머리를 틀어 올려 한결 수려해 보였다.

“부인을 뵙습니다.”

“일어나렴. 근래 바쁜 것 같아 일부러 오지 않았더니 그새 사건, 사고가 많았더구나. 그런데도 왜 찾아오지 않은 게야?”

나무라는 듯한 말투에 목운요가 부인을 부축해 의자에 앉힌 뒤 금란에게 과실 차를 내오도록 했다.

“별일도 아닌데 부인을 귀찮게 할 순 없죠. 게다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신걸요. 부인의 건강이 제겐 더 중요하답니다.”

“후후, 그래그래. 그보다 어제 양 현령의 부인이 찾아와 담팔왕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놓더구나. 혹시 이번 일을 네가 마음에 두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눈치였어.”

“진 부인께서 괜한 걱정을 하셨네요. 양 현령께서 국법대로 처리하신 일을 제가 어찌 마음에 두겠습니까?”

“나도 그리 말하긴 했다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의미심장한 금 부인의 말에 목운요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맞네요.”

목운요가 자신의 뜻을 눈치채자, 금 부인은 말을 아낀 채 맥을 짚어 달라며 손목을 내밀었다.

“요 며칠 상태가 무척 좋았단다. 네 어머니께서 지어 주신 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군침이 돌아.”

때마침 소청이 안으로 걸어 들어와 절을 올렸다.

“금 부인을 뵙습니다.”

금 부인은 소청을 보곤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게 다 뭐랍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부인께서 만들어 주신 음식이 먹고 싶어 군침이 돈다고 이야기하던 참이랍니다.”

소청은 금 부인의 아랫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부인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간단히 요기하실 것을 준비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후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오늘 먹을 복이 터졌나 봅니다.”

“저는 음식 준비가 잘되고 있는지 살피고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 부인.”

“별말씀을요.”

소청이 나가자, 목운요가 손을 거두며 금 부인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부인, 그동안 몸조리에 신경 많이 쓰셨나 보네요. 맥이 안정적으로 뛰는 게 아기씨가 무척 건강하신 듯합니다.”

“정말 다행이구나! 참, 네가 자유국에서 채청이라는 소녀와 다른 아이들을 거뒀다고 하던데.”

“예,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마침 저희 쪽 일손이 부족했던 터라 여기 일을 돕도록 했습니다.”

“쯧, 착한 일이긴 하다만…….”

하운방이나 불선루에서 일할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한데 굳이 자유국 아이들을 거둘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에 목운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슬며시 미소만 지었다.

금 부인이 그런 목운요의 속내를 모를 리 없었다.

“채월각의 주인인 담림이 널 두 번이나 찾아왔다던데, 혹 귀찮게 하더냐?”

“처음에는 담팔왕한테 유리한 말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도움을 드릴 수 없다고 거절했죠. 그러다가 제가 자수법을 전수할 생각이 있다고 하자, 자신이 돕겠다고 나서더군요. 도와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네 말은…… 설마 네 자수법을 다른 곳에도 전수하겠다는 거니?”

“네. 언젠가는 각지에 전수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경릉성에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테니…….”

“네 말이 맞다. 다만 그 일이 옳은지는 모르겠구나.”

경릉성에서 자수법을 전수하는 것이야 공덕이 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이익이 한데 묶여 있으면 민심을 모으는 것으로 간주되어, 불손한 의도를 지닌 자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었다.

목운요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경릉성 여인들에게 자수법을 이미 전수해 줬는걸요? 다른 곳에도 전수하면 더 많은 여인들이 혜택을 볼 텐데 옳고 그름을 따질 이유가 있는 건가요?”

“경릉성에서는 네 행동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 전수되면 여기에 연관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게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민심을 모으는 선행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은 수두룩하지.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할 방법은 아무래도 하나뿐인 것 같구나. 자수법을 책으로 엮어 황상에 바치거라.”

순간 목운요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금 부인의 충고에는 목운요가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소청의 가르침을 떠올린 목운요는 의심을 내려놓은 채 금 부인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채월각과 이미 약조했는데, 이리되면…….”

“채월각이라……. 혹시 계약서를 썼느냐?”

“예. 채월각 주인께서 계약서를 쓰셨어요. 담팔왕 일로 훗날 복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의 여지는 남겨 뒀죠. 다른 이의 필적으로 서명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특수 처리된 도장으로 지장을 찍었어요. 아, 그리고 다른 침방의 이목을 끌 수 있다며 당분간 비밀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어요…….”

금 부인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목운요의 손을 톡톡 두들겼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더니, 그동안 네가 베푼 선행을 보고 천지신명께서 널 도우시나 보구나. 네가 신중하게 생각한 덕분에 걱정할 게 없겠어. 채월각에서 사람을 언제 보낸다고 했지?”

“몸이 잔뜩 닳은 걸 보니 며칠 내에 사람을 보낼 기세였어요.”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자수법을 전수하는 일에만 신경 쓰도록 해. 다른 건 전혀 모른다는 듯 말이야. 계약서에 네가 남긴 흔적이 몽땅 사라지면 그들도 뾰족한 수가 없을 거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목운요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인 말씀대로 할게요. 다만 이렇게 하면 부인과 조 대인께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말거라. 설사 그렇다고 해도 별 탈 없이 해결될 테니. 자수법을 엮은 책이나 틈틈이 준비하렴. 적당한 때에 황상께 보낼 테니.”

“예, 오늘부터 당장 시작할게요. 최대한 빨리 끝낼게요!”

“그리 서두를 것 없어. 한두 달 안에만 끝내면 되니까.”

“네! 참, 지난번에 부인께서 성상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신다고 했는데 그 일은 어찌 되었나요?”

“한동안 고민해 봤는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구나. 그냥 평소 관례대로 할 생각이란다.”

그에 목운요가 잠시 고민을 이어 갔다.

올해 경릉성이 성상으로부터 상을 받은지라, 눈에 띄는 선물을 올린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조 대인은 물론 경릉성 전체에도 큰 복이 내려질 테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방금 자수법을 책으로 엮으라는 부인의 말씀을 듣고 좋은 생각이 났어요.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괜찮으니 말해 보렴.”

언제나 남들과 다른 생각과 안목을 보여 주던 아이니 분명 이번에도 기발한 묘안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금 부인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자수 때문에 성상으로부터 상을 받았으니 성상께 멋진 자수 작품을 올리는 게 어떨까요?”

“자수 작품? 성상께 올리는 것인데 너무 초라한 게 아닐까?”

“겉으로만 보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관건이랍니다! 경릉성의 여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수를 놓은 작품이라면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요?”

“황상을 향한 경릉성 여인들의 축복과 기도를 자수 실에 담은 작품이라……. 그렇다면 그저 그런 작품이 아니지!”

“네, 예전에 전 양주 지부께서 전임하시게 되자, 그분의 청렴결백함에 감동한 백성들이 만민산(萬民傘, 비단에 백성들의 이름을 수놓아 만든 우산)을 서릉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성상께서 크게 감복하셔서 전 양주 지부를 파격 승진하셨다고 하던데……. 만민산을 올리는 건 아니지만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자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여인들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남자들한테 ‘만수무강’이라는 네 글자를 쓰라고 한 뒤, 그걸 모아다가 여인들이 수를 놓는 거예요.”

“후후, 정말 좋은 생각이구나!”

그동안 고민해 왔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다니! 금 부인이 활짝 웃었다.

“일단 모두와 함께 의논해 보는 게 좋겠구나. 열에 아홉은 동참할 것 같지만 말이야. 그리고 너도 단단히 각오하렴. 이번 일을 네가 이끌어야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경릉성의 명예가 걸린 일인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그래, 네가 있으니 든든하구나.”

골치 아픈 숙제를 해결한 금 부인의 미소가 유난히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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