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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84화 (84/442)

84화 위험한 거래?

담림이 나가자, 진 총관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소저, 저자가 헛소리를 늘어놓던가요?”

목운요는 살포시 미소를 지은 채 탁자 위에 펼쳐진 은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담 씨 어르신이 아무래도 넝쿨째 굴러온 호박인가 보네요. 덕분에 왕야에게 군량을 사 드릴 돈이 생길 것 같거든요.”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진 총관은 은표를 보더니 크게 기뻐했다.

“이, 이건……. 이만 냥을 담림이 준 겁니까?”

“예. 담팔왕 때문에 절 찾아왔다가 거절당하자 선물이라며 은표를 놓고 가시네요.”

“거절당했는데 화를 내기는커녕 은표를 놓고 갔단 말입니까?”

“후후, 하운방이 경릉성에서 자리를 잡긴 했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야 없죠. 다른 곳에서 세력을 펼칠 발판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담 씨 어르신 덕분에 큰 짐을 덜었네요.”

“저도 같이 기뻐할 수 있게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소저.”

목운요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진 총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저, 자수법을 전수하는 일은 큰 공로가 따르는 일인데 어찌 담림에게 넘긴단 말입니까?”

힘겹게 세운 공로와 명성 모두 채월각에 넘겨주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됐다.

“하운방이든 불선루든 상관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명성이 아니니까요.”

자수법을 전수해 명성을 얻으려던 건 애당초 돈 때문이었다. 하루빨리 돈을 만지려면 명성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한 것뿐이다. 돈이 아닌 명성만 좇는 건 목운요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채월각과 손을 잡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군요.”

“네, 채월각을 통해서 자수법을 더 많은 곳에 전수하면 저흰 개중에서 솜씨 좋은 이를 골라 하운방을 다시 세우면 되니까요.”

“하나 그리되면 채월각의 솜씨가 나날이 늘어서 하운방의 장사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마세요, 총관님. 사람들이 하운방의 옷을 사려고 하는 건 단순히 자수 솜씨 때문이 아니니까요. 채월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성상의 편액을 내건 하운방과는 비교가 안 되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런 계산도 없이 무턱대고 담림을 상대한 건 아니니까요.”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저가 있어서 안심이 됩니다.”

* * *

금수원에서 돌아온 목운요에게 육냥은 제명이 작성한 장부를 내밀었다. 대충 훑어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 육냥에게 은표를 건넸다.

“제명에게 최대한 빨리 구입하라고 해. 가능하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 선에서. 식량을 대량으로 사들인다는 소문이 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아.”

목운요는 육냥에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았다. 육냥이 자신에게 악의를 품지 않는 한, 그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방문을 나선 육냥은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목운요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그녀의 태도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괴감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 * *

이튿날 아침, 목운요는 진 총관을 만나러 금수원으로 찾아갔다.

“사람을 시켜 생강차의 재료를 사들이기 시작했어요. 며칠 뒤에 주문한 것들이 올 텐데, 재료를 손질할 마땅한 곳이 있을까요?”

장소는 물론 조리할 일손도 필요했다.

“그 일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왕야께서 당초 별장을 사 두셨는데,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평소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답니다. 게다가 일꾼들도 많아 그들을 쓰면 될 겁니다.”

정성껏 만든 생강차를 월서에 보내면 왕야와 병사들 모두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거다.

그 생각에 기뻐하는 진 총관을 보며 목운요의 입꼬리가 스윽 하고 올라갔다.

“한데 왕야께서 그동안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금수원과 별장을 산 돈은 어디서 난 건가요?”

“크흠……. 그, 그건 왕야께서 오랫동안 자금을 모으신 덕분이랍니다. 금수원과 별장을 사느라 오랫동안 허리띠를 조이며 사셔야 했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처한 듯 깊게 한숨을 내쉬는 진 총관의 모습에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네요.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현명한 사람은 멈춰야 하는 때를 아는 법이다. 자신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맞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목 소저께서 잘 돌봐 주십시오.”

으응? 돌봐 준다니. 월왕이 아무리 황상의 눈 밖에 났다고 해도 황자의 신분인데, 누가 누구를 돌봐 준단 말인가.

목운요가 입을 열려던 순간, 문을 열고 금란이 나타났다.

“소저, 담 씨 어르신이 오셨습니다.”

그러자 진 총관이 황급히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사람을 시켜 말씀해 주십시오.”

어쩔 수 없이 목운요는 알았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 * *

잠시 후, 금란의 안내를 받고 담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십여 개의 상자를 든 하인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담림은 목운요를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올렸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목운요와 얼굴 붉혔던 사이였을 거라고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목운요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인내심만 보더라도 담림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한데 이것은…….”

목운요의 시선이 뒤에 있는 상자로 향하자, 담림이 하인들에게 상자를 내려놓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간소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기쁘게 받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담림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를 금란이 목운요 앞에 가져와 펼쳐 보였다.

상자 안에 든 것을 살핀 목운요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크지 않은 상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은표였다! 팔만 냥은 족히 되고도 남는 듯했다.

목운요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담림 역시 재촉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미소로 대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목운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불선루에 새로운 찻잎을 들여왔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대접하고 싶습니다.”

“저야 영광이지요!”

목운요의 제의에 담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구나!

목운요가 직접 차를 우리는 모습을 보며 담림은 감탄을 터뜨렸다.

“불선루의 다도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감상하게 되니 눈과 마음이 그야말로 호강하는 듯합니다.”

“그리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도보다는 자수에 좀 더 자신이 있습니다만, 일개 여인의 몸으로는 경릉성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힘드네요. 해서, 어르신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채월각은 각지에 분점을 거느리고 있으니 소저의 자수법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후후, 그리해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소저께서 채월각과 손을 잡기로 결정하셨으니 계약서를 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하면 저도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을 듯한데…….”

“네, 계약서는 당연히 써야겠죠. 어르신께서 열린 분인 것 같아 이야기가 금방 끝날 듯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 * *

“자수법을 널리 전수하려는 건, 하운방이라는 이름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함이랍니다. 자수법을 사람들한테 전수할 때 그 내력을 반드시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 기술은 어떻게 전수받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자수에 관한 일은 언제든지 하운방에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아,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 같군요. 소저께서는 채월각 외에 다른 곳과 손을 잡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채월각처럼 실력 있는 침방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목운요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담림의 광대가 끝도 없이 올라갔다. 그에 목운요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채청과 그 동생들은 이미 저와 매매 계약서를 썼으니 저희 하운방의 사람입니다. 앞으로 담 공자께서 이들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조사를 통해 담팔왕은 두 달 정도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날 것이 뻔하다. 설사 중죄를 지었다고 해도 담림이 돈을 써서 형량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담림은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돈 앞에서는 귀한 외아들도 대수롭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것 같으니 어르신께서 계약서의 초안을 작성해 주세요. 그래야 어르신도 마음을 놓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담림은 곧장 수긍했다.

목운요가 계약서를 썼다간, 그에게 불리한 내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앞의 계집은 어리지만 보통 영악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달 만에 경릉성에서 지금과 같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일을 길게 끌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 담림은 곧장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목운요는 차분히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담림이 채월각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한발 빠른 계산과 뛰어난 수완 덕분이었다. 안 그랬다면 채월각은 일찌감치 간판을 내렸을 것이다.

담림은 한 시진 가까이 계약서를 작성한 뒤 목운요에게 건넸다. 내용을 살펴본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꼼꼼히 적으신 것 같네요. 이대로 서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조만간 경릉성으로 사람들을 보내 주세요.”

“그런데 대놓고 사람을 보냈다가 다른 침방에서 이를 눈치채고 방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계약서까지 썼지만 다른 사람이 끼어들진 않을까 노파심이 들었다.

은표를 건넨 것도 모자라, 외아들마저 팽개쳤다. 하운방이라는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이를 차지하는 데 한 치의 실수도, 방해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죠. 현재 자수법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외지인들을 추리고 있는데, 채월각에서 사람을 보내 주시면 그들 사이에 넣겠습니다. 그리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수밖에 없겠군요. 자수법을 전수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어르신께서 보내 주신 이들의 실력에 달렸지요. 자질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보름이면 충분할 겁니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서 일을 시작해야겠군요. 목 소저,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어르신.”

“그럼 이만.”

담림을 문밖까지 배웅한 목운요가 돌아오자, 금란이 힐긋대며 그녀를 살폈다. 할 말이 있지만 애써 참는 듯한 모습에 목운요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 좋은 사업을 담림에게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목 소저를 모시는 동안 은원이 확실한 분이라고 알고 있어요. 채월각의 실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담팔왕이 일부러 소저를 모함했는데 왜 은혜를 베푸셔야 하는 거죠?”

“후후후, 끝을 보기 전까진 결과는 알 수 없답니다. 천천히 두고 보는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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