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83화 (83/442)

83화 채월각 주인의 등장

* * *

한편, 진 총관은 손에 생강차를 쥔 채 금수원으로 돌아왔다. 눈가를 잔뜩 휘게 만든 미소에 우의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였다.

“총관님, 손에 들고 계신 게 뭡니까? 냄새가 좋네요.”

그 말에 진 총관은 생강차를 잽싸게 뒤로 숨겼다.

“아아, 이건 보물이라고, 보물! 자넨 신경 쓰지 말게. 잠깐, 보석이 박힌 머리 장식이 꽤 여러 개 있지, 아마?”

“예, 꽤 많은 편이죠. 하지만 그건 ‘그분’이 남기신 것 아닙니까. 주인님께서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그래도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습니다만…….”

“신분이 드러나지 않을 만한 걸로 하나 골라 봐. 그리고 목 소저에게 보내도록 해.”

“주인님과 먼저 상의하셔야…….”

“보내라면 보내지, 뭔 말이 그리 많아? 주인님께서 어찌 된 일인지 물으시거든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하게. 괜한 불똥 튀지 않게 말이야. 흥!”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 총관은 찻잔을 쥐고 서재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향긋한 차를 한 모금씩 아껴 마셨다.

금방 배 속이 든든해지자 진 총관은 흐뭇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탄식을 뱉어 냈다. 목 소저를 일찍 만났다면 주인님께서도 그리 고생하실 필요 없었을 텐데…….

어렵사리 맺은 인연이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주인님의 시대가 드디어 시작될 것이다!

진 총관은 서신 두 통을 쓴 뒤에 우의에게 건넸다.

“매우 중요한 것이니 반드시 주인님께 직접 전하거라.”

평소와 다른 진 총관의 모습에 우의는 움찔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 * *

경릉성에 채월각의 가주 담림(譚林)이 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양 현령을 알현하고 싶다며 몇 번이나 찾아간 그가 번번이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러 관아 주변으로 구경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목운요가 하운방 작업을 살펴보고 있는데, 금란이 잽싸게 걸어 들어왔다.

“소저, 채월각의 담 씨 어르신께서 소저를 뵙고 싶다며 첩자를 보냈습니다.”

목운요는 첩자를 받아 들더니 쓱 훑고선 대충 던져 뒀다.

“집에 나와 어머니뿐이라 외출하기가 불편하니 뵙기 어렵다고 전해 주세요.”

“예, 소저.”

금란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첩자를 들고 나타났다.

“소저, 이번에는 불선루에서 소저와 차를 마시고 싶다는 내용을 보내셨습니다…….”

첩자를 펼치자 안에 끼워 둔 은표가 보였다. 얼핏 보니 그 액수가 이만 냥은 되어 보였다.

“손도 크시지. 은자를 보내 주셨는데 못할 게 어디 있겠어요? 가서 전하세요. 멀리서 온 손님이니 내일 불선루에서 뵙겠다고요.”

“소저, 담팔왕을 풀어 주실 생각인가요?”

금란의 물음에 목운요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관리가 아니라 장사꾼이에요. 어떤 판결을 내리실지는 양 현령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장사 말고 담 대인을 뵐 일이 있을까요?”

* * *

이튿날, 목운요가 담림을 만난다는 소식에 진 총관은 위일에게 차를 내오도록 미리 일러뒀다.

위일의 다도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는 무예가 가장 뛰어난 편이었다. 혹여 담림이라는 자가 불손하게 군다면 그 자리에서 쫓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목운요는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총관님.”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여긴 회안성이 아니니 그 담림이라는 자도 함부로 굴지는 못할 겁니다.”

“네, 알아요.”

담림은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났다. 사십 대로 보이는 사내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 모습에 목운요의 눈빛이 슬쩍 흔들렸다. 담팔왕이 저런 자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소녀 목운요, 어르신을 뵙습니다.”

“금수원은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라고 하더니, 실제로 보니 소문대로군요. 이곳의 경치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목 소저의 영민함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 영민함이 없었다면 내 아들놈이 험한 꼴을 당하진 않았을 거다!

그의 말속에 들어 있는 뼈를 목운요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저 슬며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금수원은 원래 경치가 뛰어난 곳이랍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만 몇 개 가져다 놓은 게 다죠. 본바탕이 좋으니 자연스레 그 풍경도 좋아 보이나 봅니다.”

담팔왕처럼 본바탕이 글러 먹은 놈은 결국 죗값을 치르는 법이지.

목운요의 답변에 담림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경릉성에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소저에 대한 칭찬이 주위에 자자하더군요. 소저처럼 착한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걸 자주 들었답니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전 그저 채청과 그 동생들이 가여워 도와준 것뿐인걸요. 그리고 정씨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어르신께서도 들으셨을 겁니다. 당초 정씨 가문에서 저희 하운방의 명성에 먹칠을 하려 했기에 고스란히 그 빚을 갚아 줬답니다.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게 제 소신이랍니다.”

담림은 속에서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아들이라고는 담팔왕이 유일한지라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키웠더니 어느새 천둥벌거숭이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에는 아무리 사고를 쳐도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경릉성으로 건너와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양 현령의 손에 끌려 옥사에 갇힐 줄이야!

가문의 유일한 후손만 아니었다면 목운요라는 새파랗게 어린 계집을 상대할 일도 애당초 없었을 것이다.

“목 소저, 솔직히 말씀드리죠. 사실 경릉성에 온 건 못난 자식 놈 때문이랍니다. 평소 순진한 아이인데 경릉성에서 채청이라는 천한 것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답니다. 부디 소저께서 우리 아이에게 아량을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담림이 허리 굽혀 절을 하자, 목운요가 허겁지겁 맞절을 올렸다.

“어르신, 이 일에 제가 관련된 것은 맞지만 중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양 대인의 조사가 끝난 후에 밝혀질 것입니다.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셨지만 제가 도울 일은 없을 듯합니다.”

“소저가 순무 부인, 금 부인과 남다른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두 부인께 제 자식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게 해결될 듯한데……. 소저께서 그리해 주신다면 저와 채월각은 그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부인들에게 옷을 지어 드린 것이 전부인데 어찌 감히 친분을 운운하겠습니까? 게다가 두 분 모두 부녀자의 몸으로 어찌 양 현령의 일에 함부로 나설 수 있겠습니까. 아드님의 일은 양 대인께서 시시비비를 가려 주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을 듯합니다.”

순간 담림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더니 눈동자가 분노로 뒤덮였다.

“이리 보니 목 소저께서는 이유 고하를 막론하고 제 자식을 풀어 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그에 목운요의 눈빛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시시비비는 양 대인께서 알아서 가려 주실 겁니다. 자제분께 잘못이 없다면 누가 감히 잘못을 뒤집어씌우겠습니까?”

“제가 보낸 은자를 받고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아아! 은자를 보내 주신 게 그런 뜻이었던 건가요? 전 사업 이야기를 하자는 뜻에서 보내 주신 거라고 알았네요.”

“흥, 어림없는 소리! 천하의 채월각을 상대로 사업을 운운하다니.”

“제가 잘못 이해했나 봅니다. 금란, 어르신께서 보내 주셨던 은자를 내오세요.”

목운요는 담림 앞에 은자를 건네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제가 사업을 함께할 침방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신 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제 오해였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자제분의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을 듯합니다. 금란, 손님을 배웅해 드리세요.”

“잠깐! 사업을 함께할 침방을 찾고 있다뇨?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담림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좀처럼 주체하기 힘들었다. 황실로부터 상을 받은 하운방의 명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운방의 이윤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침방 또한 수두룩했다.

사업을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 찾아오는 장사꾼들의 발길에 문턱이 닳고도 남을 것이다.

“최근 외지에서 자수법을 배우고 싶다며 경릉성을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걸 보고, 자수법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운방은 그럴 여력이 없는지라 함께 사업을 펼칠 대상을 물색 중이었는데, 그 일순위가 바로 채월각이었답니다.”

그 이야기에 담림은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운요의 안색을 살피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시름이 드리워졌다.

“목 소저, 방금 제가 너무 성급하게 굴었던 것 같군요. 아들 녀석이 하나뿐이라, 아이에게 일이 생기면 대가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소저의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목운요는 여전히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담림에게 은표를 내밀었다.

“어르신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저 때문에 귀한 시간 버리지 마시고 어서 가서 아드님을 구하세요.”

담림이 허겁지겁 은표를 돌려주었다.

“서둘러 오느라 경황이 없어 목 소저께 드릴 마땅한 선물도 미처 챙기지 못했군요. 괜찮으시다면 내일 제대로 인사를 드리러 오겠습니다.”

목운요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일 보자고 대답했다. 그에 담림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목 소저.”

“금란, 손님을 배웅해 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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