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진실
“양 대인, 소인 담팔왕 맹세코 진실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매매 계약서는 채청이 직접-”
“흐흑, 양 대인……. 그날 제 동생 아모가 담팔왕의 하인들한테 죽도록 매질을 당했답니다. 그것만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모 때문에 옷을 더럽혔다며 백 냥을 배상하라고 협박했지요. 제가 따지러 가자,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심한 농지거리를 한 것도 모자라 중매쟁이인 유 씨를 데려와 절 협박하려 들었습니다. 제가 죽어도 싫다고 하자, 그의 하인들한테 저와 동생들은 죽기 전까지 맞았답니다. 남아와 아모는 지금 정신을 잃은 채 목 소저의 저택에 머물고 있어요. 상처 자국을 확인해 보시면 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아실 거예요. 게다가 담팔왕이 하인들을 데리고 자유국에 온 걸 본 사람들이 여럿이에요. 그분들이 증인이 되어 주실 거예요!”
“맞습니다, 양 대인. 담팔왕이 아모를 매질하고 있을 때 마침 저도 그곳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라고 했더니, 죽고 싶어 환장했냐며 저를 위협했습니다.”
“채청 소저의 말이 맞아요. 그날 아침에 담팔왕이 하인들을 데리고 자유국으로 가는 걸 저도 똑똑히 봤어요.”
“증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 대인, 담팔왕은 제 여동생인 려아까지 인질로 끌고 갔어요. 지금 어디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어서……. 양 대인,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줄곧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목운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양 대인, 대인께서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지라 더 이상 지체했다간…….”
양 현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팔왕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담팔왕, 어서 사실대로 고하지 못하겠느냐! 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어서 고하라!”
“그, 그것이…… 소인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려아라는 아이가 어디 있는지 소인은 알지 못하나이다.”
담팔왕은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이 마당에 양 대인이 려아를 찾아낸다면 채청의 말이 모두 참으로 입증될 터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인파 속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담팔왕의 하인이 커다란 자루를 짊어지고 객잔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여봐라, 담팔왕이 머물고 있는 객잔으로 즉시 사람을 보내 알아보도록 해라!”
주변을 에워싼 구경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험하기 그지없었다.
이전에 채월각의 총관이 고리대를 쓴 일로 채월각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채월각의 소가주가 죄 없는 평민, 그것도 고아 소녀를 괴롭히자 사람들의 눈빛은 분노로 물들기 시작했다.
채월각이 지금 문을 닫았기에 망정이지, 여차하면 모두들 채월각으로 달려가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잠시 뒤, 객잔에서 돌아온 역졸들 뒤로 어린 소녀를 안은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소녀는 새하얗게 질린 낯빛을 한 채 밭은 숨을 힘겹게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의 눈빛이 분노로 타올랐다. 어린 소녀를 저렇게까지 다치게 하다니, 대체 언제까지 자신들이 괄시당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양 대인, 금수만도 못한 놈들을 꼭 벌해 주십시오!”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정의를 보여 주십시오, 양 대인!”
그 와중에 채청은 려아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목 소저, 제 동생을 살려 주세요. 려, 려아가…… 흐흑!”
그때 인파 사이로 한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인선당(仁善堂)의 장(張) 의원이라 합니다. 제가 아이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자, 채청이 의원에게 려아를 넘겨줬다.
맥을 짚던 의원이 담팔왕을 향해 사나운 눈초리를 보였다.
“크흠,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이 아이는 살지 못했을 겁니다.”
양 현령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더니, 역졸들에게 담팔왕과 그의 하인들을 잡아넣으라고 손짓했다.
“무고한 백성을 매질한 죄. 그 죄를 본관이 직접 물을 것이다!”
화를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담팔왕과 그의 하인들을 향해 돌멩이를 집어 던지자, 이것이 신호라도 된 듯 물건을 집어 던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급기야 누군가는 얼굴이 피범벅이 된 담팔왕의 하인들에게 뜨거운 차까지 끼얹었다.
다행히 얼굴을 델 정도는 아니었지만, 뜨거운 물벼락을 맞은 하인들이 깜짝 놀라 옷소매로 얼굴을 힘껏 문질렀다. 그 순간, 얼굴을 뒤덮었던 혈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상처 하나 없는 피부가 드러났다.
“뭐야, 멀쩡하잖아? 목 소저가 보낸 사람한테 맞았다고 그러더니, 이제 보니 우릴 완전히 가지고 논 거잖아?!”
“맞아!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
“담팔왕이 채월각의 소가주잖아. 하운방을 질투해서 목 소저를 모함하려던 게 분명해!”
“맞아, 맞아!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난리를 칠 이유가 없잖아.”
“목 소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증인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담팔왕이 목 소저를 모함하려 했으니 소저도 마음 독하게 먹고 엄벌을 처해 달라고 양 대인께 청하십시오.”
“격려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목운요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양 현령에게 절을 올리며 공정한 판결을 내려 달라는 청을 올렸다.
그러자 양 현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운요의 태도가 꽤나 만족스러웠던 탓이다.
사실 목운요가 순무 대인과 조 대인과의 관계를 이용해 자신에게 은근슬쩍 압박을 가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무래도 쓸데없는 생각인 듯했다.
“본관이 담팔왕을 관아로 데려가서 밤새 심문할 것이다. 그런 뒤에 목 소저와 채청 소저에게 사실을 알려 주겠다.”
“감사합니다, 양 대인.”
양 현령이 사람을 시켜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하자, 담팔왕이 다급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바로 채월각의 소가주다!”
“흥, 지엄한 천자라 하더라도 국법 앞에서는 평민과 똑같은 법이다. 하물며 일개 침방의 철부지 어린애 따위야! 여봐라, 당장 저자를 데리고 가거라. 자꾸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입을 틀어막아라!”
“예.”
양 현령은 목운요를 향해 가볍게 인사한 뒤 담팔왕 등을 데리고 나갔다.
목운요는 금란과 금교에게 눈짓을 보내 채청과 려아를 부축하도록 했다. 그러곤 인선당의 장 의원을 향해 공손히 입을 열었다.
“의원님, 려아의 상태가 위중합니다. 채청 소저와 아모, 남아 역시 온몸이 상처투성이랍니다. 인선당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는데 의원님께서 치료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 소저는 부상이 원체 심한 터라 치료하는 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며칠 전에 우연히 남아를 알게 되었지요. 순수하고 착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다관에서 잡일을 시키고 품삯을 내주었습니다. 앞으로는 동냥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튿날 이런 변고가 생겼지 뭡니까. 모두 불쌍한 아이들이에요. 태어나서 행복했던 시간보다 불행했던 시간이 더 많았던 아이들이죠. 그런 아이들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담팔왕이라는 자가 저를 모함하고 있는 걸 봐선 제게 원한을 가진 게 분명합니다. 그 일로 인해 아이들이 무고한 피해를 입었으니 돈이 얼마나 들든지 도와줄 생각입니다.”
려아의 상태를 직접 봤던 터라, 목운요의 이야기에 모두들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목 소저, 자책하실 것 없어요. 이번 일로 누가 소저를 탓하겠습니까?”
“저 아이는 저도 압니다. 며칠 전부터 금수원 입구에서 서성이던 고아 소년이었죠. 금수원에서 차를 마시다가, 목 소저가 아이에게 먹을 것을 내준 걸 봤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그런 선행을 베푼답니까?”
“맞아요, 맞아. 게다가 아이들을 치료해 주겠다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과찬이세요. 여러분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하운방과 불선루가 이렇게 잘되진 않았을 거예요. 그에 반해 제가 경릉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부끄러울 따름이랍니다. 자유국의 아이들 역시 경릉성의 백성인데 어찌 모른 척 지나칠 수 있겠어요? 아이들이 건강해지면 불선루에서 잡일을 시킬 생각이에요. 그리하면 당당하게 제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목운요의 말에 한바탕 칭찬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 있었던 일은 경릉성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 덕분에 목운요의 명성은 또 한 번 빛날 수 있었다.
* * *
인선당의 의원이 치료를 마치자 목운요가 감사 인사를 올렸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당치 않습니다, 소저. 오히려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민망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소저의 의술이 소인보다 높지 않습니까? 기회가 된다면 소저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만.”
“예, 알겠습니다.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다 보면 더 뛰어난 의술을 익힐 수 있을 겁니다. 나중에 불선루에서 차 한잔하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목 소저.”
장 의원이 떠나고 잠시 뒤, 려아가 콜록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에 놀란 아이가 채청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 언니…….”
“려아야, 괜찮아. 목 소저한테 인사드리렴. 우리를 구해 주신 분이야.”
려아는 어리지만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채청의 말에 아이는 목운요를 향해 무릎을 꿇은 채 절을 올렸다.
“목 소저,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채청마저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올렸다.
“소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몸도 성치 않은데 그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 아까도 말했지만, 담팔왕은 내게 복수하려고 죄 없는 너희들을 이용한 거야.”
“아뇨. 담팔왕은 저를 보고 음심(淫心)이 동한 것이지, 소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소저가 아니었다면 전 비참한 처지를 면치 못했을 거예요. 절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저.”
금란이 가져다준 찻잔을 든 목운요는 아무 말 없이 차만 홀짝였다.
“목 소저, 염치없지만 소저께 한 가지 청을 드리고 싶어요. 부디 려아도 받아 주세요. 자유국으로 돌아가면 분명…….”
채청의 말에 어린 소녀는 겁에 질린 커다란 눈동자로 목운요를 바라봤다.
“소저, 저도 잡일을 할 수 있어요. 빨래도 할 수 있고, 마당을 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부디 저를 받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