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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79화 (79/442)

79화 다시 만난 담팔왕

“내가 왜 거짓말쟁이를 살려 줘야 하지?”

회귀 전에 위선으로 똘똘 뭉친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를 상대한 자신이다. 하물며 채청처럼 어린 것쯤이야.

“아니에요, 소저. 한 번도 소저를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협박을 당한 게 아니라면 제가 어찌 소저를 위험에 빠뜨리려 했겠어요? 흐흑, 담팔왕은 아모가 자신의 옷을 더럽혔다며 백 냥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그 돈을 갚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라면서요. 그래서 아모를 구하려고 그의 지시대로 소저에게 접근하라고 남아를 꼬드겼어요.”

“훗, 남아는 널 누나로 생각해서 자긴 굶어도 된다며 제 먹을 것을 너희들에게 가져다주겠다고 했지. 그렇게 널 따르던 아이를 어떻게 이용할 수가 있지?”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안 그랬다면 저흰 이미 죽었을 거예요…….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자유국에서 제가 아이들을 돌봤어요. 흐흑, 그 아이들을 지키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요.”

목운요가 미간을 구긴 채 입을 굳게 다물자, 채청이 목운요 앞으로 무릎걸음으로 가더니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했다.

“오늘 아침에 담팔왕이 중매쟁이 유 씨(劉氏)를 데리고 와선 제가 첩살이하기로 했다며 억지로 지장을 찍어 버렸어요. 흐흑, 그러곤 제게 독약이 든 봉투를 건넸어요. 소저 앞에서 저더러 이걸 먹고 죽으라고, 그래야 소저의 명성에 먹칠을 할 수 있다면서요…….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려아를 풀어 주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소저, 절 불쌍히 여기신다면 제발…….”

채청은 눈물을 쏟아 내며 품속에서 꺼낸 가루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목운요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맴돌았다.

“네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나야 모르지. 네가 담팔왕과 몰래 연통해서 날 해코지하려는 게 아니라는 증거도 없잖아.”

“남아랑 다른 아이들의 목숨을 걸고 맹세할게요! 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요!”

“내가 묻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지?”

그 말에 채청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목운요의 서늘한 눈빛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

“거짓말.”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청의 얼굴에 순식간에 드리워졌다가 사라진 희색(喜色)을 보지 못했다면 속아 넘어갈 뻔했다.

“담팔왕이 려아로 협박한 것 말고도 네게 많은 걸 약속했겠지?”

“아니에요. 저더러 자결하라고 독약까지 건넸다고요!”

목운요는 가루약이 든 봉투를 집어 들었다.

“이게 진짜 독약이라면 네 말을 믿어 줬을 거야. 하지만 연기가 너무 어설픈걸. 이건 독약이 아니야. 먹고 나면 쉴 새 없이 피를 토하긴 하겠지만. 한마디로 겉으로만 위험해 보이지, 목숨에는 지장 없다는 거지. 적당한 때 치료하면 몇 달 안에 멀쩡해질 거야.”

그 말에 채청이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소저…… 의술을 아시는 건가요?”

“세상에 못된 사람이 너무 많으니 내 몸은 지킬 줄 알아야지. 내가 의술을 몰랐다면 오늘 너한테 속아 넘어갔을 거야.”

잠시 입을 다물던 채청이 갑자기 큰 소리로 울음을 토해 냈다.

“목 소저, 죽여 주세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말았어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다친 아모를 치료하는 데 돈도 필요하고, 남아는 올해 열한 살이 됐지만 예닐곱 살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제대로 먹지 못했답니다…….”

눈물 어린 하소연에도 목운요의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아직도 핑계를 대는 걸 보니 내가 널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보구나. 그렇다면 오산이야. 이 세상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죽이는 방법이 널렸거든. 게다가 네 말처럼 너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관아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지.”

목운요는 채청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남아와 아모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면서 어찌 그들을 이용하려 든단 말인가!

그때, 채청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제 뺨을 힘껏 갈겼다. 그 힘이 어찌나 센지 입술이 터져 피가 배어났다.

“목 소저,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소저를 속이려 했던 건 남아랑 아모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에요! 자유국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랬어요!”

점점 싸늘하게 변하는 목운요의 눈빛에 채청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좋은 집에서 고운 옷을 입고 맛난 것을 드시는 소저는 모르실 거예요. 저희 같은 고아가 어떻게 사는지를요. 자유국은 겉으로는 고아를 돌보고 있다곤 하지만, 안팎으로 다 썩어서 저 같은 여자아이는 크면 몰래 내다 팔아 버려요. 운 좋게 첩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몸을 파는 창기로 팔려 나가요. 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담팔왕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자유국에서 아이를 판다고? 창기로?

목운요는 자유국에서 그런 일을 벌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널 구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한 거지? 내가 남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려고?”

“소저도 남아가 마음에 드시죠? 남아는 갓난아이일 때 자유국 앞에 버려졌는데,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어요. 남아는 티 하나 없이 맑은 눈동자를 지닌 아이예요. 누군가의 무심한 호의에도 남아는 평생을 기쁘게 견딜 수 있을 만큼 순진하고 착해요. 그런 아이를 소저가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안 되면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고 소저한테 접근하게 할 생각이었어요…….”

“사람을 철저하게 이용한 것도 모자라, 그런 너를 내가 구해 줄 거라고 생각했나 보구나.”

채청은 이미 금수원에 들어와 있다. 지금 아이를 밖으로 끌어낸다고 해도 담팔왕은 자신이 제 첩실을 빼돌렸다며 물고 늘어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사람을 보내 채청을 독살할 수도 있었다.

이리저리해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릴 테니 참으로 골치 아프게 됐다.

“흐흑, 정말 잘못했습니다. 남아를 이용해서도, 려아를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됐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서……. 소저, 제발 남아와 려아를 구해 주세요!”

미간을 구긴 목운요가 입을 열려던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저, 제발 채청 누나를 살려 주세요…….”

남아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굴러떨어질 뻔한 걸, 채청이 잽싸게 뛰어가 잡아챘다.

“남아야, 움직이면 안 돼! 늑골이 두 개나 부러졌대.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병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몰라.”

채청의 만류에도 남아는 고집스럽게 목운요를 쳐다보았다.

“소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는 걸 알지만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힘 있는 사람은 소저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채청 누나를 구해 주세요. 흐흑, 저한테 남은 것이라고는 이 목숨밖에 없어요. 누나만 구해 주신다면 소저에게 기꺼이 바칠게요!”

그 말에 채청은 얼굴을 감싼 채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문가에 서 있던 소청이 눈가를 붉힌 채로 목운요를 조심스레 쳐다봤다.

“요아야…….”

목운요는 소청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남아와 채청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를 구해 줄 수도, 그리고 자유국에서 빼내 줄 수도 있어. 그러려면 나한테 평생을 맡기겠다는 매매 계약서를 써야 할 텐데, 어때?”

“좋아요. 감사합니다, 소저!”

남아를 따라 채청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채청은 진심으로 후회했다. 설사 목운요가 자신을 다른 곳에 판다고 해도 그 뜻을 순순히 따를 생각이었다.

오랜 세월 같이 살면서도 남아와 아모를 친동생처럼 여기지 못한 채청이었다. 그런 자신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하고도 저를 위해 도움을 청하는 남아의 모습에 회한이 밀려왔다.

두 사람의 진실 된 모습에 목운요의 사나운 눈빛이 조금씩 부드럽게 변했다.

“채청, 날 따라와. 금란, 다친 두 사람을 부탁해요.”

“예, 소저.”

* * *

금수원 입구에서 들리는 소란에 구경꾼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문 앞에는 손가락이 하나 없는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목운요! 공자님의 첩실을 당장 내놓거라! 다른 사람의 첩실을 빼돌리는 건 큰 죄에 속하니, 지금 당장 돌려주지 않으면 공자님께서 현령 어른께 널 고발하실 거다!”

소란은 금세 목운요에게 보고되었다. 옆에 있던 소청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요아야…….”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 나갔다가 금방 돌아올게요.”

“제발 조심하려무나. 괜히 혼자 상대하지 말고 사금 등을 데려가도록 해!”

기어코 사금 등을 불러내는 소청의 모습에 목운요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한테 함부로 손대지 못할 테니 진짜 괜찮아요.”

“그래도 데려가! 남아의 늑골을 부러뜨린 걸 보니 보통내기가 아닌 듯해. 반드시 조심해야 해!”

“네, 어머니 말씀대로 할게요.”

이내 문을 나선 순간, 목운요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 * *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 총관은 목운요를 발견하고 재빨리 달려와 인사를 올린 뒤 그 옆에 섰다. 그러곤 담팔왕과 그의 무리를 험한 눈으로 쳐다봤다.

목운요의 등장에 담팔왕은 으득 하는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저년한테 매운맛을 보여 줄 때가 왔구나!

“담 공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경릉성에는 어인 일로 오셨나요?”

“호오, 여기서 목 소저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나저나 저번에 한씨라고 해서 소저를 찾는 데 진땀 꽤나 흘렸지!”

담팔왕의 눈빛이 점점 뿌옇게 변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저년의 숨통을 단칼에 끊어 버리고 싶었다.

회안성 길거리에서 목운요가 휘두른 우산에 얻어맞은 그는 한 달 내내 침상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이보다 더 속 터지는 건, 그때 목운요한테 고간을 걷어차인 탓에 사내구실을 할 수 없게 된 거였다.

솜씨 좋다는 의원들을 죄다 불러 치료했지만 호전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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