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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78화 (78/442)

78화 교묘한 함정

* * *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남아를 안으로 데리고 와서 눈물을 닦아 주고 있는 소청의 모습이 보였다.

“요아야, 왔구나! 이 아이가 문 앞에 꿇어앉아 울고 있지 뭐니. 가여워서 안으로 데려왔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네 이름만 부르는구나.”

목운요를 발견한 남아가 그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소저, 제발…… 제발 아모랑 누나를 살려 주세요!”

“무슨 일이야?”

남아의 뺨에 선명하게 남은 손자국에 목운요의 미간이 슬며시 구겨졌다.

“며칠 전에 아모가 지체 높으신 분의 길을 막았다가 구타를 당했어요. 누나가 이 일을 따지러 갔다가 희롱당한 것도 모자라 첩으로 들어오라고 협박까지 받았대요. 흐윽…… 누나가 싫다고 하니까 날마다 자유국에 사람을 보내 괴롭히고 있어요. 오늘은 그 지체 높으신 분이 와서 누나가 돈을 훔쳤다면서 관아로 가자고……. 누나를 첩으로 삼으려고 거짓말한 게 분명해요!”

남아의 이야기에 금란과 금교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소청 역시 어두운 안색으로 목운요의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로 행패를 부리는 자라면 분명 힘깨나 있는 인물일 것이다. 하운방과 불선루가 자리를 잡긴 했지만 한번 만난 소녀 때문에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따져 봐야 했다.

목운요가 침묵을 이어 가자, 남아는 더욱 구슬픈 목소리로 애걸했다.

“흐윽…… 제발, 제발 두 사람을 구해 주세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소저에게 평생을 바칠게요! 소저, 제발 도와주세요. 흐으윽…….”

남아는 목운요를 향해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올렸다. 어찌나 힘껏 숙였는지 이마에 푸르스름한 멍이 다 들었다.

소청은 안쓰러운 마음에 남아를 일으켜 세웠다.

“얘야, 진정하거라. 어찌할지 우리도 생각을…….”

“하지만 이러다간 누나, 누나가 끌려가기라도 하면 저는…….”

숨을 헐떡거리던 남아의 낯빛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급기야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목운요가 달려가 남아의 상태를 살폈다. 맥을 짚던 그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곤 남아의 상의를 걷어 올리자, 온몸이 시커멓게 멍들어 있었다. 늑골도 기이한 모양으로 뒤틀려 있었다.

“육냥, 그 아이를 금수원으로 데리고 와!”

육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사라지자, 소청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아야, 이리해도 괜찮을까?”

목운요가 금교에게 처방전을 건네더니, 소청의 손을 꼬옥 쥐며 다독였다.

“그럼요. 괜찮을 거예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말처럼 목운요는 그동안 신중하게 행동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겁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게다가 경릉성 백성들에게 인정받는 자신을 이젠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 못할 것이다.

“지체 높으신 분이라고 하던데, 괜히 우리한테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걱정이구나. 아이가 불쌍하기는 한데 우리 처지도 생각해야지.”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 ‘정의’의 길을 따르는 한 무서울 것도, 우리를 해칠 만한 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 외에 소청에게 더 이상 들려줄 말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나, 이건 어머니 본인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교가 약을 달여서 내오는 사이, 육냥이 누군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채청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면서도 남아보다 작은 아이를 품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아이의 가슴에서 미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목운요를 알아본 채청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흑. 아모, 아모를 살려 주세요!”

목운요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이의 맥을 짚었다. 그녀의 미간이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구겨졌다.

“금란, 방에 가서 침상 아래에 둔 약상자를 가져와요. 금교는 인삼을 잘게 썰어 아이에게 먹일 수 있도록 끓여 와요!”

채청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러곤 목운요를 향해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더니 그 옆에 쥐 죽은 듯 꿇어앉았다.

그 모습에 소청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소저, 일어나요. 요아가 동생을 꼭 살려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부인.”

금란이 들고 온 약상자에서 은침을 꺼낸 목운요가 아이의 옷을 벗겨 낸 뒤 가슴 쪽에 조심스레 찔러 넣었다.

총 열여섯 개의 침이 들어가고 난 뒤 금교가 끓여 온 인삼 탕약을 먹이자, 푸르죽죽했던 낯빛이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침을 모두 빼서 맥을 짚고는 채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동안 옆에서 잘 돌봐 줘야 할 거야. 탕약을 끓여 줄 테니까 두 시진마다 먹이도록 해. 열이 나거든 땀을 닦아 주고.”

“감사합니다, 소저!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사람 목숨이 먼저니까. 남아는 가슴 쪽을 채여서 늑골이 두 개나 부러졌어. 그 아이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면 나도 돕지 않았을 거야.”

목운요는 남아에게서 회귀 전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다. 게다가 채청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을 받은 터라 두 사람을 돕는 데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목운요는 손에 묻은 핏자국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들자, 금란에게 채청을 부탁한 뒤 방으로 가 손을 깨끗이 닦았다.

그때 육냥이 방문 앞에 서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 회안성에서 주인님한테 우산으로 얻어맞았던 자였습니다.”

“회안성에서 나한테 두들겨 맞던 자라면, 채월각의 담팔왕을 말하는 거야?”

“예.”

목운요는 눈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겼다.

이 모든 게 그저 우연일까? 자신이 구한 이들이 담팔왕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라…….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교묘한 함정일까?

“담팔왕의 하인 중에 네 칼에 손가락을 잘린 자가 있었지. 그자는 널 알아봤을 거야.”

“죄송합니다.”

육냥의 이러한 변화는 꽤나 당혹스러웠다. 육냥의 정체를 물은 이후,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아니야. 그보다 놈이 경릉성에 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아봐 줘.”

“예.”

육냥이 물러간 뒤 목운요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옆방으로 향했다.

그동안 정성껏 몸조리한 덕분에 몸에 난 상처는 거의 다 나았지만, 불꽃 같던 과거의 정열람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소청이 몇 번이고 그녀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대신 방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자수 실력은 목운요 못지않은 수준으로 일취월장했다.

“목 소저, 어쩐 일이에요?”

정열람은 그윽한 향기가 저절로 풍길 것 같은 모란꽃을 한창 수놓고 있었다.

“부인, 느긋하게 하셔도 돼요. 계속 일만 하시면 눈이 상하신다고요.”

“후후, 이런 거라도 해야 마음이 차분해지는걸요. 그런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죠?”

“부인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런데…….”

정열람의 상처를 후벼 파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목운요의 모습에 정열람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편하게 물어보세요.”

정씨 가문에 대한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면 여전히 괴로웠다. 그래도 그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무너졌던 마음을 많이 추스른 상태였다.

“부인, 정씨 가문이 몰락한 후에 누군가가 연락을 취해 온 적 있나요?”

“옛말에 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도 흩어진다고, 정씨 가문이 몰락하고 나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특히 아버…… 정 대인이 중풍으로 몸져눕자 친척들도 발길을 끊었죠…….”

잠시 기억을 더듬던 정열람이 뭔가 떠오른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노부인이 날 여의각에 팔아넘기기 며칠 전에 평소와 달리 잔뜩 흥분해서 그러더군요. 천지신명의 보살핌으로 귀인을 만났다고. 회안성으로 가서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보다, 하운방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부인께 총관의 자리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정열람이 고개를 가로젓자, 목운요가 진심을 담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부인, 사람은 뒤가 아니라 앞을 보고 살아야 해요. 가치 없는 자들 때문에 남은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에요. 부인께서도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고마워요. 좀 더 생각해 볼게요.”

“네, 꼭이요. 전 그럼 가 볼게요!”

정열람의 방을 나선 순간, 목운요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회안성에서 온 귀인이라면 담팔왕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의각이 소란을 피운 일 역시 그자가 뒤에서 손을 썼을 터. 지금 금수원에 있는 채청은 담팔왕과 무슨 관계인 거지?

* * *

남아와 아모를 보살피던 채청은 목운요가 방으로 들어오자 황급히 일어나 절을 올렸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목운요는 의자에 앉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담팔왕이라는 자가 널 마음에 들어 해서 첩으로 두려고 했다던데.”

그 말에 채청이 고개를 번짝 쳐들었다가 목운요와 시선이 마주치자, 겁먹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두려움에 찬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담팔왕이 아모를 죽도록 때렸어요. 그래서 제가 따지러 갔더니 갑자기 절…….”

“남아한테서 이야기 들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게 있더라고. 그게 뭘까?”

채청은 손이 새하얗게 되도록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남아한테 듣자 하니 네가 려아라는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던데,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소저, 제발 살려 주세요!”

목운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처음 남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랬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숨겨진 의도가 뻔히 보이기 시작했다.

남아는 심성이 고운 아이지만 겁도 많았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하나.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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