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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71화 (71/442)

71화 진실한 마음

“몸이 좋지 않으시다면 저한테 빨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너야 불선루 일로 요새 정신없이 바쁘지 않니. 그리고 단순한 입덧이라고 그러더구나. 원래 이러는 게 정상이라면서 말이야. 산파 할멈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더구나.”

금 부인의 말에 목운요의 미간이 힘껏 구겨졌다.

“산파도 벌써 부르신 거예요?”

“그래. 조 대인께서 어찌나 걱정이신지, 산파를 미리 부르셨단다. 평소에도 날 돕도록 조부에 기거하라며 방까지 마련해 주셨더구나.”

“부인, 그 산파를 내보내세요!”

목운요가 맥을 짚던 손을 거두며 부인의 옷가지를 단정히 만져 줬다.

그 말에 금 부인이 눈을 크게 뜨더니 불안한 듯 목운요를 바라봤다.

“운요, 그 말은 설마…….”

친정 일로 민감했던 금 부인은 목운요의 말을 듣자마자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아이를 가지면 입덧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부인께서 이리 심하게 수척해지신 걸 보고도 무조건 참으라고 하는 게 어디 있답니까!”

목운요는 회귀 전에 아이를 잃은 뒤 크게 상심한 나머지 의술을 배우는 데 매달렸다. 그 덕분에 임신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금 부인의 상태를 보니 수상한 냄새가 났다.

놀란 금 부인이 목운요의 손이 빨갛게 되도록 힘껏 잡았다.

“운요야, 날 도와다오. 배 속의 아이를 반드시 지켜야 해!”

핏기가 사라진 금 부인의 모습에 목운요가 차분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 늦지 않게 발견했으니 이제부터 몸조리에 신경 쓰시면 될 거예요. 배 속의 아이는 어머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해요. 부인께서 걱정하면 아이도 불안해할 테니 마음 차분히 가라앉히도록 하세요. 지금 당장 큰 문제는 없으니까요.”

“그래그래. 네 말대로 하마.”

허겁지겁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금 부인을 보며, 목운요는 방 안 곳곳을 살폈다. 지난번 금 부인의 방에 들렀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춘 목운요가 금 부인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도록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부인, 성성목(猩猩木)이 활짝 펴서 예쁘네요! 너무 마음에 드는데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목 소저, 그건 나리께서 부인에게 주신 선물인데…….”

“됐다. 밖에 화분을 옮겨다 놓을 테니 집에 갈 때 마차에 실어 보내마.”

은홍은 목운요를 위하는 마음에 입을 연 것이었다. 그런데 금 부인마저 성성목을 멀리하려는 것을 보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확신했다.

은홍이 재빨리 화분을 안아 들고 문밖을 나서자, 목운요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들쩍지근했던 방 안의 향기가 사라지니, 숨 쉬는 게 한결 수월했다.

금 부인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꽉 막혀 있었던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아이는 날 때부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를 알아본다고 그랬어요. 아직 태어나진 않았어도 효도해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아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를 걱정해서 한기를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은 아니에요. 어머니가 편해야 아이도 편하니까요. 겨울에도 틈틈이 창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게 좋답니다.”

금 부인은 목운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봉긋하게 솟은 배를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그걸 안단 말이니?”

“그럼요! 그러니 마음 편히 지내세요. 그게 부인과 아기씨를 위한 일이랍니다.”

수척할 정도로 입덧이 심한 건 아마도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 금 부인이었다. 그런 그녀는 아이를 갖자 기쁨도 잠시 불안과 걱정에 온종일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그러니 몸이 상해도 크게 상할 만했다.

“배 속의 아이는 어머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답니다. 날마다 즐겁게 지내셔야 아이도 배 속에서 방긋방긋 웃는대요!”

목운요의 이야기에 금 부인은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자신을 보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상상됐다. 그러자 입가가 자신도 모르게 부드럽게 휘어졌다.

“알겠다. 앞으로 꼭 그리하마.”

“그래도 입덧이 견디기 힘드실 때는 생강으로 혀를 가볍게 문질러 보세요. 생강에는 구토를 멈추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답니다. 물론 쓰긴 하겠지만.”

“쓴 게 대수겠니? 아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더 큰 고통도 참을 수 있단다.”

금 부인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보며 목운요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씨에게 맞섰다.

“부인, 조부에서 만든 음식만 드셔서 질리셨다면 시간 있을 때 금수원에 들러 주세요.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무척 좋으신데, 입맛을 바꿔 보는 것도 좋답니다.”

금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운요를 향해 이리 와 보라며 가볍게 손짓했다.

“운요야,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은혜라뇨? 부인과 저 사이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답니까? 나중에 아기씨가 태어나거든 용돈이나 두둑하게 챙겨 주세요.”

“그래그래. 그렇게만 되면 아예 곳간 문을 열어 주마!”

금 부인은 사람의 진심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보았는데, 어찌 그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부인, 나중에 금수원에 오시게 되거든 각별히 조심하세요. 마차에 폭신한 방석을 잔뜩 깔고, 뜨거운 물도 자리에 두세요. 혹시 향 피우는 걸 좋아하시면 옅은 향을 써 보세요. 심신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답니다.”

“오냐. 내 반드시 주의하마.”

목운요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보다 운요야. 사실 서릉에 내가 사람을 하나 심어 놨단다. 조금 더 있으면 좋은 소식이 전해질 테니 그때를 대비해 차분히 준비하도록 하려무나.”

“예, 알겠습니다!”

* * *

조부에서 돌아온 뒤 목운요는 소청에게 금 부인의 상태를 들려줬다. 이야기를 들은 소청은 잘했다며 아이를 크게 칭찬했다.

“금 부인의 보살핌 덕분에 우리 모녀한테 오늘과 같은 날이 있는 거 아니겠니?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그동안 금 부인과 알고 지내면서 그분의 됨됨이를 알고 믿음 또한 얻었으니, 눈앞의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성심껏 돕도록 하렴.”

그 말에 목운요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다시 살 기회를 얻은 후, 자신의 마음은 어느새 차갑게 변해 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과감하게 행동했지만, 그렇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저주하는 소씨 가문이나 진왕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목운요는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제 마음을 재차 다독였다.

* * *

지난번 목운요가 다녀간 이래, 금 부인은 거의 매일 금수원을 찾았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진 덕분인지 소청이 만든 음식도 거부감 없이 먹곤 했다. 급기야 이전보다 더 잘 먹을 정도였다.

게다가 자주 만나다 보니 소청과 금 부인도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며 목운요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목운요가 서재에서 옷의 도안을 고민하는데, 육냥이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주인님, 정 부인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그 말에 목운요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경릉 동지와 선무사가 동시에 서릉으로 압송된 뒤, 정씨 가문 역시 몰락했다. 그 이후로 정열람에 관한 소식을 도통 듣지 못했던 터라, 그녀가 제 부모님을 모시고 경릉성을 떠났다고 생각했었다.

“어디 있지?”

“여의각(如意閣)입니다.”

“여의각?”

아무리 기억을 짜내 봐도 그런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자 육냥이 어울리지 않게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사거리에 있는…….”

목운요의 미간이 크게 구겨졌다. 경릉성에서 사거리라고 하면 기루와 술집이 몰려 있는 지역이었다.

“돈을 가지고 가서 지금 당장 빼 와!”

“미리 알아보았는데 여의각의 주인이 만 냥을 불렀습니다.”

“나와 정 부인의 사이를 알면서도 돈을 불렀다는 거야? 만 냥이라고? 줘 버려!”

“예.”

육냥은 은표를 들고 나간 지 반 시진도 안 돼서 혼자 돌아왔다.

“만 냥은 어제 가격이고, 오늘은 몸값이 이만 냥이라고 합니다.”

“하! 지금 나랑 흥정하겠다는 건가? 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더니만, 여의각에서 이리 나온다면 이쪽도 좋게 대할 이유가 없지. 돈을 냈는데도 사람을 내주지 않겠다니, 진 총관에게 도와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해.”

“예.”

그리고 잠시 후, 금란과 금교가 정열람을 부축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고마워요, 목 소저.”

모습을 드러낸 정열람은 몸을 꼿꼿이 세우려고 했지만, 온몸에 난 상처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목운요가 그런 그녀에게 허겁지겁 달려가 부축했다.

“정 부인, 어떻게 이리되신 거예요?”

예전의 미모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바짝 마른 몸뚱이에 채찍 자국이 가득했다. 산발이 된 머리 아래로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누가 과연 하운 미인책에 올랐던 인물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정열람이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낳은 정은 없지만 기른 정 또한 정이라는 생각에 차마 부모님을 버릴 수는 없더군요. 후후,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지 뭐예요…….”

눈가에서 또르륵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혈흔으로 더럽혀진 옷 위에 떨어졌다.

“금란, 간단히 요기할 것을 가져다주세요. 금교는 뜨거운 물과 깨끗한 옷을 준비해 주고요. 일단 뭐 좀 먹고 씻은 뒤에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요.”

그동안 정열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대략 짐작이 갔다. 자신을 길러 준 은혜를 잊지 못한 정열람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제 잇속을 채우는 도구로 여기다니……. 정 대인과 노부인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끝끝내 저버리고 말았다.

정열람은 마치 영혼 없는 꼭두각시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금교의 도움으로 깨끗하게 씻고 나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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