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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67화 (67/442)

67화 불선루

“내일은 몇몇 대인들과 부인들만 대접할 생각이에요. 일반 손님은 그다음에 받기로 하죠. 위일과 운춘 등도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니 갑자기 많은 손님을 대접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천천히 뽑아 손님들을 대접해도 될 거예요.”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저도 마지막 확인 겸 정원을 좀 둘러봐야겠어요.”

“참, 다관의 이름이 정해졌는데 밤을 새워서라도 편액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후, 아뇨. 제가 만드는 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누가 선물해 주지 않으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알쏭달쏭한 목운요의 말에 진 총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금수원을 돌아본 목운요가 돌아간 후에야, 진 총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편액을 왕야께서 보내 주신다면 멋진 그림이 되지 않겠는가!

진 총관은 재빨리 왕야에게 서신을 써서 보냈다. 누군가가 보물단지를 채 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왕야의 손에 쥐여 드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이다.

* * *

목운요는 내일 있을 일을 떠올리며 자정을 넘기고서야 간신히 잠이 들어다. 그로부터 두 시진이 지난 후, 번쩍 눈이 떠졌다. 피곤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때마침 소청이 간단한 반찬과 제비집 죽을 가지고 들어왔다.

“요아야, 이제부터 많이 바쁠 테니 지금이라도 뭐 좀 먹어 두렴.”

“네!”

목운요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숟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자,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는 듯한 표정의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그게 말이다……. 요아야, 평소에도 넌 강인한 아이니까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오히려 긴장했다가는 실수를 저지르기 쉬우니까.”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자신보다는 어머니가 더 긴장한 모습이었다.

“후후, 어머니가 옆에 있어 주시니까 정말 든든해요. 희소식 가져다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래.”

대견한 아이의 모습에 어느새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소청은 아이의 옷을 갈아입혀 주고 머리도 곱게 빗겨 주었다. 구리거울로 여기저기 비춰 주자, 아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요아는 점점 예뻐지는구나.”

“그거야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거죠. 어머니 딸이니 당연히 예쁠 수밖에요.”

“네 두꺼운 얼굴은 날 닮은 것 같지 않은데.”

그렇게 두 사람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게 문을 열기 반 시진 전, 목운요가 금란과 금교를 데리고 금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진 총관은 아까부터 앞뜰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러다가 목운요가 오는 것을 보곤 재빨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목 소저,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소저를 뵙습니다.”

온통 흰 옷으로 갈아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분하게 절을 올리는 모습에, 목운요는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겉모습만 봐도 예전보다 몇 배는 나아진 듯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자신도, 저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좋네요. 자, 모두 절 따라오세요. 손님들을 모실 시간이랍니다.”

* * *

소청오는 서립과 같은 마차에 몸을 실었다.

조정에서의 지위나 성상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탓에 두 사람 모두 친분이 돈독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 공공, 목 소저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후후, 그 말은 제가 아니라 소 대인에게 들려 드려야 할 말 같군요. 어제 불선루에 대해 먼저 묻지 않으셨다면 직접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두를 위해 진귀한 자수법을 전수하고 싶다는 목 소저의 마음씨가 참으로 곱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했던 것뿐입니다.”

“저도 그리 생각했답니다. 후후, 소 대인과 생각이 일치했나 보군요.”

두 사람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는 각자만 알 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금수원에 도착했다. 마차가 멈춰 서자 마부가 잽싸게 발판을 가져다 놨다.

차례로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몸을 돌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목운요를 위시한 오십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두 줄로 나란히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 하얀 옷자락들이 정갈하게 흩날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사드리옵니다.”

소청오의 시선이 재빨리 목운요를 향했다.

흰색 상의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유백색을 띠는 치마를 걸친 모습이 꽤나 소박하면서도 우아해 보였다.

특히 까만 머리에 꽂은 옥비녀가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섬세한 솜씨로 조각된 새하얀 꽃잎은 흰 눈보다도 희고 영롱해 그녀의 미모를 더욱 빛내고 있었다.

“목 소저, 초대해 줘서 고맙습니다.”

장 순무와 조운년도 불선루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오늘은 소청오와 서립을 위한 자리인 탓에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그 옆을 지킬 뿐이었다.

목운요는 절을 올린 뒤 이들을 금수원으로 안내했다. 위일과 운춘 등은 여전히 몸을 굽힌 채였다. 손님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 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금수원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녹음이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았다. 하늘 높이 뻗은 대나무 가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솨아아- 소리를 내며 운치를 돋우고 있었다.

대나무 가지에는 특이하게도 눈물 자국 같은 반점이 점점이 찍혀 있었는데, 이를 유심히 보던 장 순무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상비죽(湘妃竹)? 경릉성에서는 보기 드문 것인데…….”

“서리가 내리면 절기를 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종일토록 마음 비우고 봉황 오기만 기다리네.(凌霜盡節無人見, 終日虛心待鳳來.) 오늘 이렇게 대인들을 모시게 되어 상비죽 역시 안목을 높일 수 있었으니, 시구의 뜻과도 일치하지 않겠습니까?”

웃음기가 가득한 목운요의 모습에 장 순무가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가당치도 않소, 목 소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우리 같은 속인이 볼 수 있다는 게 도리어 영광이구려.”

“그럼 저희 다관은 얼마 못 가서 문을 닫아야 하겠네요.”

“으응? 그게 무슨 뜻이오?”

“장 대인께서 속인이시라면 경릉성에서 차를 마실 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문을 닫을 수밖에요.”

웃음기가 묻어나는 대답이었지만 목운요의 진심이 담뿍 묻어났다.

“장 대인께서 경릉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지 세 살배기 어린애도 다 아는걸요. 경릉성은 물결도 높고 거친데, 순무와 지주의 노고로 거센 물결을 잠재우지 않았습니까?”

그에 서 공공은 호기심을 띤 얼굴을 했다.

“순무와 지주의 노고로 거센 물결을 잠재웠다? 경릉성의 제방이 몇 번이고 터질 뻔했으나 무사히 해결됐다는 보고에 성상께서 크게 칭찬하신 적이 있었지요. 그때 장 순무께서 큰 공을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 소저가 말한 지주라면 조 대인을 가리키는 건가요? 조 대인께서 염운사로 승진하기 전에 경릉성의 지주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예, 공공께서는 기억력도 좋으십니다.”

“두 대인께서 백성을 진심으로 아끼니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두 분의 공로를 다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립의 연이은 칭찬에 장 순무와 조운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서 공공이 누구던가? 현재 성상이 가장 총애하는 자로, 그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걸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성상 앞에서 자신들을 칭찬하는 말을 한다면 벼슬길에서 승승장구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두 사람은 목운요에게 통 크게 개업 선물이라도 보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목운요는 과유불급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공로를 추켜올린 그녀가 대나무 숲을 지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면 볼수록 금수원의 풍광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구곡교(九曲橋)에 서 있노라면, 멋들어진 풍경화 한가운데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리 난간에 기대 묵묵히 경치를 감상하던 소청오가 제 옆에 서 있는 목운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난간 위에 손을 올린 채 호수 가득히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입매는 부드러운 호를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여인을 보아 왔다. 지체 높은 황실의 공주부터 권문세가의 영애까지. 모두 자신에게 흠모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된 눈길을 줘 본 적 없었다. 목운요처럼 자신에게 복잡한 기분을 들게 하는 사람은 여태껏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소청오의 모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목운요는 사람들이 경치를 어느 정도 구경하자 다른 장소로 안내했다.

“저 앞에 대인들에게 차를 대접할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멋진 풍경에 향긋한 차를 곁들이면 그 맛이 더욱 좋을 듯합니다.”

“차는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다관의 경관에 벌써부터 취기가 도는 것 같구려.”

“칭찬 감사합니다, 서 공공.”

모든 준비가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진 총관이 다가오더니 목운요에게 살짝 귓속말을 건넸다.

“소저, 금 부인께서 대인들을 성심껏 대접하라는 뜻을 전해 왔습니다. 금 부인께선 다른 부인들과 나중에 오시겠다고 합니다.”

금 부인의 남다른 배려에 목운요는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모실 분들이 많지 않으니 오늘은 제가 직접 차 시중을 들면 되겠네요.”

“예, 그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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