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62화 (62/442)

62화 기선 제압

* * *

이튿날 아침, 목운운와 소청은 준비를 마치고 아래층에서 대기했다. 반 시진 뒤, 금란이 얼굴 가득 웃음을 달고 달려왔다.

“소저, 성상께서 보내신 상이 도착했답니다!”

소청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목운요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요아야…….”

목운요는 안심하라는 듯, 어머니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저 상은 저희 거니까요.”

한데 하운방 앞에서 소청오가 편액을 보고 있었다.

“……소 대인을 뵙습니다.”

그가 직접 상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목운요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소청오는 자신을 떠보려는 게 분명하다. 이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편액을 살펴보던 소청오는 목운요를 흘깃 쳐다봤다. 역시 제게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게 확실했다.

목운요와 소청은 하운방 사람들과 함께 절을 올리고 난 뒤, 미리 준비한 방으로 상을 옮겼다.

소청오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운방 곳곳을 살펴봤다. 푸르른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연분홍 수련,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비단잉어를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소청오와 승부를 걸어 보기로 마음을 굳힌 목운요는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다.

“수련이 마음에 드신다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리 정성스럽게 돌본 걸 보니 소저께서 무척 아끼는 것인가 본데, 내 어찌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수련을 좋아하시는 부인들을 위해 둔 것뿐이랍니다.”

목운요의 대답에 소청오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연꽃. 그중에서도 수련은 빼어난 자태로 인해 싫어하는 여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설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놓고 이리 말하는 경우는 더더욱 보기 드물었다.

“그렇다면 소저는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당연히 은자가 제일 좋습니다.”

눈앞의 사내가 고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목운요는 잘 알고 있었다. 대놓고 돈이 좋다고 하면 분명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예상대로 소청오의 눈빛에 불쾌함이 스쳤다.

“꽤나 직설적인 성격이시군요.”

흰 눈처럼 뽀얀 피부, 앵두빛 입술, 촉촉이 젖은 눈동자와 환한 미소.

그의 등장에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목운요가 진심으로 자신을 반긴다고 여겼을 것이다.

“좋아한다고 말도 하지 못한 채 벙어리 신세가 되어야 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요. 게다가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순진무구한 웃음과 달리 그녀의 말에선 뼈가 느껴졌다.

“소 대인은 아니 그렇습니까?”

그 모습에 소청오는 그녀의 적개심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호기심이 들었다.

“그보다 경릉성은 초행인데 좀처럼 둘러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혹시 목 소저께서 제게 경릉성을 소개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곤란합니다, 소 대인. 비록 평민이기는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슬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제가 소 대인을 모시고 나갔다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그러자 소청오가 재미있다는 눈빛을 띠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소저는 아직 성년식을 치르지 않았고, 시종들이 함께 동행할 것이니 소저께서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보네요. 그리 말씀해 주셨으니 어머니한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목운요를 쳐다보는 소청오의 눈에 싸늘한 냉기가 차올랐다.

* * *

목운요는 소청에게 이야기한 뒤 꾸물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금란, 금교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탁자에 앉아 있는 소청오가 보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내걸렸다.

“소 대인,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차를 내 드리라는 걸 깜빡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 말과 달리 소청오는 기분이 꽤 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목운요를 보자 불쾌했던 기분도 눈 녹듯 사라졌다.

구름무늬가 들어간 푸른 비단 상의에 새하얀 주름치마를 입은 목운요가 배시시 웃자, 그 주변으로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어린 나이에도 저리 고우니, 더 크면 경국지색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소 대인. 경릉성을 둘러보실 생각이라면 이쪽으로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소청오는 이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목운요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길에 나서자 많은 여인들이 목운요에게 친근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목운요한테서 자수법을 배우고 있으니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감사함과 존경심이 저절로 전해져 왔다.

목운요는 그들에게 일일이 화답해 주었다. 퍽이나 자연스러운, 그리고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소청오는 그런 그녀의 뒤를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뒤따랐다. 그러고 있자니 자신이 목운요를 보필한다는 기분도 들었다.

한참 돌아다니던 목운요는 소청오에게 갑자기 천 조각을 불쑥 내밀며 물었다.

“소 대인, 이건 어떠신가요?”

목운요가 내민 것은 남성용 손수건이었다. 손수건 가장자리에는 난초가 섬세하게 감싸고 있었다.

“목 소저의 솜씨를 본 터라 그저 평범한 것 같습니다만.”

목운요는 놀란 척하며 소청오를 쳐다봤다.

“어디서 제 수예품을 보신 건가요?”

경릉성에 자리 잡은 후 귀부인만을 위해 옷을 지었다. 순무 부인과 금 부인도 어제는 그녀가 지은 옷을 입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청오가 어디서 자신의 수예품을 본 것일까?

소청오는 멈칫하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제 어디가 목 소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기에 저를 이리 경계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목운요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어디 한두 개여야지!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목운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 대인,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저 궁금해서 여쭌 것인데, 제가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은 건가요?”

“내게 편견을 갖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럴 리가요! 소 대인 같은 분에게 편견이라뇨? 어제 경릉성에 오셨을 때, 소 대인의 늠름한 풍채를 보러 경릉성 사람들이 죄다 몰려왔답니다. 지금도 그런 걸요. 여기까지 오는데 소 대인을 보고 얼굴을 붉힌 여인들을 설마 눈치채지 못하셨다는 건 아니겠죠?”

“그럼 목 소저는 어떻습니까?”

소청오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자신의 말이 결례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수습하기엔 이미 늦었다.

“저도 당연히 같은 생각이지요. 젊은 나이에 혁혁한 공을 세우셨으니. 여인의 몸이라 벼슬길에 나갈 수 없는 게 원통할 뿐입니다. 안 그랬다면 소 대인에게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렸을 텐데…….”

“자수법을 전수하는 목 소저야말로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열 명의 관리보다도 큰 공을 세운걸요.”

다행히 어린 소저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의 찜찜한 기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소 대인께서 절 과대평가하셨네요. 사실 자수법을 전수하는 데는 나름의 계산도 있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목운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돈을 벌려고 침방을 열었는데, 쓸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자수법을 모두에게 전수한 뒤, 재능 있는 사람들을 추려서 쓸 생각이에요. 그리하면 옷을 여러 벌 지을 수 있을 테고, 돈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후후, 재미있군요. 목 소저는.”

“정말이에요. 대부분의 관리들도 그러잖아요. 백성을 위한다고 입으로만 떠들어 대지, 대부분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더 많은 권력을 쥐고, 더 오랫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려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해요. 명예와 돈을 쥐어야 원하는 것을 모두 쥘 수 있답니다!”

소청오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미소가 옅어졌다.

아무래도 기분이 꽤나 상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유쾌한 기분이 드는 목운요였다.

“소저가 일부만 보고 그리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성상께서는 영민하시니 두루 인재를 등용하여 조정에…….”

자신의 말이 과하다는 걸 목운요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소청오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 일부러 대꾸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한참 걸었더니 배가 고프네요. 소 대인, 저기 있는 주루에서 쉬어도 될까요? 경릉의 음식을 맛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목운요가 자신의 말을 끊자, 수려한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생글거리는 목운요의 얼굴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좋겠습니다.”

목운요는 소청오를 데리고 주루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고 근처의 경릉 강가를 보던 목운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인이 일부만 본다는 소 대인의 말씀은 재물도, 권세도 없는 사람의 고충을 모르시기 때문이에요. 자수법을 전수해서 성상의 상을 받은 저도 여전히 괄시를 받는데, 다른 일반 백성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겠죠.”

방금 전의 이야기를 목운요가 다시 꺼내 줄은 몰랐다. 찻잔을 든 소청오의 눈매가 그윽한 빛을 띠었다.

“목 소저께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후후, 소 대인께 어찌 감히 신세를 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 소 대인을 모시고 경릉성의 경치와 인심을 둘러보자고 해 놓고 그런 골치 아픈 일은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