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59화 (59/442)

59화 뜻밖의 사고

“이리된 것이군요. 어디로 보내실 생각입니까?”

“진회(秦淮)는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던데, 그곳에 당분간 머물며 일을 배우게 할 생각이에요.”

“목 소저, 진회가 절경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곳은…….”

진회는 ‘풍경’이 빼어나기로 유명한데, 여기서 말하는 ‘풍경’이란 경치가 아닌 ‘사람’을 뜻했다. 즉, ‘기루’가 다름 아닌 진회의 절경이었던 것이다.

“그곳에 가서 사람 상대하는 걸 배우도록 할 생각이에요.”

“소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총관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관에서 일할 성품을 기르도록 할 뿐이지, 이름에 먹칠을 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예, 분명 그래 주시리라 믿습니다.”

결정 난 이상 꾸물거릴 이유가 없었다. 목운요는 위일과 운춘을 비롯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오늘 여러분은 진회로 갔다가 보름 뒤에 금수원으로 돌아오게 될 거예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모두 우왕좌왕하자, 위일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소저, 어찌 진회로 가라고 하시는 건가요?”

“여러분이 금수원에 돌아올 때면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육냥! 이자들을 진회의 기루에 팔도록 해. 한 사람당 은자 열 냥씩! 보름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로 무공을 써선 안 돼요. 할 수 있겠죠?”

“소저, 이해가 안 됩니다!”

목운요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기루에 가라니, 자신들을 욕보이려는 심산 아닌가?

운춘도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가 처음 소저를 뵀을 때 결례를 범했다고 해서 저희를 욕보이려는 건가요?!”

그 말에도 목운요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쓰윽 훑어봤다.

“기루에 가라고 한 게 여러분을 모욕하는 건가요?”

“하지만 그곳은…….”

“기루와 다관 모두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처럼 말 그대로 접대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왜 낯 뜨거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기 싫다면 안 가도 좋아요. 사야에게 말씀드려서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은 사야라는 말 한마디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불만 가득한 그들의 눈빛을 보며 목운요는 이들이 겉으로만 자신에게 공손할 뿐, 마음으로는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 총관이나 월왕이 이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면 반발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지 않겠다는 사람은 누구죠?”

새벽 달빛처럼 담담하면서도 서늘한 눈빛이 이들을 하나하나 훑어 내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편에 서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진 총관을 바라봤지만, 진 총관은 눈을 내리깐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것 같네요. 육냥, 이자들을 당장 데리고 가!”

장검을 찬 육냥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들 앞에 섰다. 혈혈단신이었지만 육냥은 오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위압감을 드러냈다.

진 총관은 그런 육냥을 처음으로 자세히 살폈다. 평소 묵묵히 목운요의 뒤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그저 평범한 호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자신의 눈이 삐었나 보다.

오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존재 자체만으로 제압하는 사내라니…….

누군가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반항하려 하는데, 위일이 재빨리 제압했다.

그에 위일을 향한 목운요의 눈길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진회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고, 그곳에서 손님을 어떻게 접대하는지 살펴보세요. 돌아오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

위일과 운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람들과 함께 육냥을 따라 금수원 밖으로 나갔다.

“진 총관님, 저 사람들에게 다구나 찻잎을 계속 보낼 테니 총관님께서 알아서 나눠 주세요. 그럼 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목 소저.”

목운요가 떠난 뒤, 진 총관은 서둘러 서재로 달려가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 * *

하운방에 돌아오자, 소청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와 있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요아야, 이제 돌아온 거니? 너와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위층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자꾸나.”

목운요는 곧장 소청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 시녀들은 어때요?”

“사실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단다. 네 명이나 되는 사람이 내 시중을 들다니, 게다가 보통 시녀 같지는 않던데……. 육냥이 엉뚱한 사람들을 데려온 건 아니니?”

“네 사람 모두 제가 데려온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뭐가 중요해요? 목숨을 걸고 어머니를 제대로 보필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평범한 소녀들 같지가 않아. 뭐랄까, 무척 부담스러워서…….”

어떤 기분인지 소청도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소녀들 앞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목운요는 소청을 의자에 끌어 앉힌 뒤, 기운 내라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어머니, 저한테는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릴 사람을 부릴 힘이 생겼어요. 그러니 어머니는 아무런 걱정 말고 편안하게 누리시면 돼요. 제 효심을 거절하지 않으실 거죠?”

“요아야…….”

“짐작하셨듯이 네 사람 모두 평범한 시녀가 아니에요. 저희한테 해코지하려는 이들이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앞으로 저 사람들이 어머니를 깍듯이 보필할 거예요.”

“네 뜻이 그렇다면, 알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청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목운요는 앞으로 어머니가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안 그랬다간 소씨 가문한테 밀리는 건 물론, 날마다 눈물 바람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 * *

한편 최근 경릉성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경릉성에서 만든 수예품이 슬슬 알려지면서 돈 냄새에 민감한 장사꾼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물건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작은 손수건부터 장신구, 옷에 이르기까지 자수가 들어간 것이라면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했다.

덕분에 경릉성 백성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떠날 줄 몰랐고, 사람들은 침이 마르게 하운방을 칭찬했다.

목운요는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하운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서 조용히 지냈다. 그렇게 십여 일 가까이 지내자, 금 부인이 조부에 와 달라는 청을 보냈다.

“오늘 이리 널 부른 건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서란다. 네가 들으면 분명 기뻐할 거야.”

“무슨 일인가요?”

“네가 한번 맞혀 보렴. 맞히면 이번에 새로 만든 간식을 두 접시 내주마.”

“저한테 점점 야박해지시는 거 아니에요? 겨우 두 접시라뇨!”

장난스레 투덜거리면서도 목운요는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설마 하늘에서 복덩이라도 떨어진 건가요?”

“후후, 그러고 보니 ‘하늘(天)’에서 복덩이가 떨어진 것과 같구나!”

금 부인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일부러 ‘하늘’이라는 단어에 힘줘서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목운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성상께서 상을 내리신 건가요?”

“줄곧 네가 차분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너도 이럴 때가 다 있구나.”

아무리 그래도 애는 애인가 보다. 성상께서 상을 내리셨다는 말에 저리 기뻐하는 걸 보면.

“며칠 뒤에 상이 도착할 거다.”

그 말에 목운요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 그럼 제가 뭘 준비해야 하나요? 어, 그런데 성상께서 내려 주신 상은 사당(祠堂)에 바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은자도 바쳐야 하나요?”

돈을 바쳐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에 잠긴 ‘구두쇠’를 보며 금 부인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후, 똑똑한 아이가 왜 이리 바보처럼 굴어? 성상께서 상을 내리셨다고 해도 성의 표시로 한두 개만 골라서 내놓으면 된단다.”

금 부인의 설명에 목운요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이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씨 가문에서는 황상한테 하사받은 선물을 매번 요란스레 사당에 바치곤 했다.

그에 즐거워진 금 부인은 식사까지 같이 들고 나서야 목운요를 놓아주었다.

* * *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새로 온 시녀, 사금이 재빨리 달려왔다.

“소저, 부인께서 몸이 편치 않으신데…….”

놀란 목운요는 사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치맛자락을 쥔 채 뛰어 올라갔다.

그 모습을 멍하기 지켜보던 사금도 정신을 차리곤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단숨에 삼 층까지 오른 목운요가 입술을 깨문 채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어머니……!”

소청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뛰어든 그녀의 모습에 꽤나 놀란 것 같았다.

“무슨 일이니? 어디가 아픈 거야?”

소청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옆에 있던 사기가 재빨리 소청을 부축했다.

“부인, 발목을 삐셨으니 조심하세요.”

안색이 다소 창백하긴 하지만 무사한 어머니의 모습에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콱 하고 막혔던 숨통이 그제야 트인 것 같았다.

목운요는 방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침상에 앉혔다.

“어머니께서 몸이 편치 않으시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어요.”

그러자 소청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을 꺼내 목운요의 땀을 닦아 줬다.

“말이 놀라서 마차에 부딪혔단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으니 걱정할 것 없다. 그나저나 네 얼굴이 더 안됐구나. 급하게 뛰어 올라오는 바람에…….”

사금이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을 제대로 드리지 못해서……. 소저를 걱정시킨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이 일은 사금의 잘못이 아니다. 어머니 일이라면 과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제대로 묻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 그런데 왜 갑자기 말이 놀란 거죠?”

“부인께서 자수 실을 사고 돌아오시는 길에, 아이가 마차 앞에 달려들더니 말에게 폭죽을 던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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