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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58화 (58/442)

58화 만반의 대비

최근 하운방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진 총관은 목운요의 말뜻을 곧장 알아차렸다.

“내일 당장 시녀 네 명을 보내 드릴 테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매번 이리 부탁만 드려 염치가 없네요. 진 총관님께서 차를 좋아하시는 듯해서 다호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감사의 뜻으로 꼭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라뇨?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눈빛에, 목운요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상자에서 다호를 꺼내 들었다.

다호를 확인한 진 총관은 진심으로 기뻤다.

손바닥 크기의 다호는 옥처럼 매끄러운 광택을 띠고 있었다. 거기에 대나무 무늬가 멋스러움을 더했다.

“소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쏙 듭니다!”

“후후, 진 총관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총관님이 제게 써 주시는 마음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어떻게 해서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별 도움도 되지 못했는데…….”

그 순간에도 진 총관은 다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후후,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암요, 암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소저. ……크흠, 도저히 손이 근질거려서 안 되겠습니다. 얼른 가서 차를 마셔 보고 싶네요.”

목운요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

“그럼 전 위일과 운춘을 보러 갈게요, 총관님.”

“예, 그럼.”

목운요가 자리를 뜨자, 진 총관은 즉시 사람을 시켜 뜨거운 물과 찻잎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다호를 열자 어디선가 향긋한 차향이 훅 하고 밀려들었다. 차를 끓이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차향이 나는 거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 총관은 목운요한테서 받은 다호에서 향기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목운요가 선물하기 전에 찻잎으로 다호를 길들인 게 분명했다. 차향이 다호 속까지 깊게 배어들도록 길들여 두면 차를 끓일 때 더욱 진한 향이 배어나기 때문이다.

진한 향을 보건대 최소 두 달은 다호를 길들였을 것이다. 오랜 시간 선물을 준비했다는 그 마음만으로도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왕야처럼 성정이 서늘한 사람 곁에 목 소저가 있어 준다면 자신이나 성가 놈도 마음을 놓을 수 있으리라.

“아무래도 성가 놈에게 서신을 써야겠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보고를 올렸다.

“총관님, 주인님 쪽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진 총관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 * *

목운요의 지시에 따라 위일와 운춘을 비롯한 오십 명의 사람들이 모두 흰 옷으로 갈아입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우아해 보여 한층 멋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이 차를 끓여 내는 모습에,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돌아섰다. 자신의 지시를 따른 것은 분명하지만, 다도에 필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아무리 엄격하게 가르친다고 해도 영혼이 담기지 않은 동작이나 뻣뻣한 태도는 쉽게 고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민에 잠긴 목운요의 눈에 서신을 쥐고 달려오는 진 총관의 모습이 보였다.

“목 소저, 사야께서 답장을 보내셨습니다!”

월왕이 답장을?!

놀란 것은 비단 목운요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위일과 운춘을 비롯한 오십 명의 귀가 쫑긋거렸다. 성정이 ‘그런’ 월왕이 목운요에게 답장을 보냈다는 건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은 아니라는 뜻인데…….

서신을 펼친 목운요는 눈을 깜박거렸다. 서신 한가운데 적힌 한마디 말은 지극히 간단명료했다.

[자.세.히.]

목운요의 표정에 진 총관은 호기심을 금할 수 없었다.

‘대체 왕야께서 뭐라고 쓰셨길래 목 소저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냉정한 왕야는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게 익숙하다. 설마 목 소저한테도 그런 말투로 답장을 쓴 걸까? 혹시 엉뚱한 말이라도?

“목 소저. 며칠 뒤에 사야께 보고를 올리려 하는데, 혹시 서신을 보내실 거라면 같이 보내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럼 하던 일 계속하시지요. 전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목운요의 눈치를 살피던 진 총관은 거절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듯 잽싸게 자리를 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목운요는 손에 든 서신을 접으며 그 내용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자세히라…….

설마 지난번 자신이 쓴 서신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걸까? 그래서 그동안 경릉성에서 있었던 일을 모조리 써서 보내라는 것일까?

하운방에 돌아오고 난 뒤에도 좀처럼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월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니, 원하는 대로 자세히 써 줄 생각이었다.

소청과 함께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말 그대로 자세히 쓰기 시작했다. 한 시진 가깝게 쓰고 나니 이건 서신이 아니라 책자 같았다.

매번 이런 서신을 써야 한다면, 나중에 이걸 정리해서 경릉성 서사로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문뜩 들었다. 어쨌든 월왕의 요구대로 자세히 적은 서신을 보면서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이튿날 아침, 금란이 처음 보는 네 명의 소녀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금수원에서 보내온 시녀들이었다.

소녀들이 목운요를 향해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소저를 뵙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 고운 얼굴, 또래 소녀와 다르지 않은 앳된 분위기. 얼핏 보면 평범한 십 대 소녀들 같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선 숨길 수 없는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절 따라오세요.”

위층으로 올라간 목운요가 네 명의 소녀를 돌아봤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육냥의 휘하에서 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될 거예요. 왼쪽부터 사금(司琴), 사기(司棋), 사서(司書), 사화(司畵)라고 부를게요. 예전에 무슨 일을 했든 상관하지 않겠어요. 이제부터 제 어머니를 보필하는 게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걸 명심하세요.”

“예, 소저.”

담담한 표정의 소녀들을 보며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 총관의 안목을 믿어도 좋을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어머니를 뵙게 될 거예요. 항상 곁에 붙어서 잘 보살펴 주세요. 어머니는 겁이 많으신 분이니 놀라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어머니가 무사하시면 여러분에게 큰 상을 내리겠지만, 털끝 하나라도 다치시는 날에는 그 백배의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담담한 말투에서 무심코 배어 나오는 차디찬 한기에 소녀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예, 소저. 목숨을 다해 부인을 지키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목운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란, 어머니한테 데려가서 인사시키세요.”

“예, 소저. 달리 분부하실 일은 없으신가요?”

불안한 금란의 표정을 눈치챈 목운요가 금란과 금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가장 먼저 제 곁에 두겠다고 뽑은 사람들이에요. 그동안 두 사람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한 건 그냥 한 일이 아니에요.”

목운요의 말에 금란과 금교가 허겁지겁 무릎을 꿇었다.

“저희 자매를 각별히 아껴 주신 은혜는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일어나세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두 사람한테 불만이 있다는 게 아니에요. 저 소녀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은 것뿐이었어요. 두 사람은 앞으로 제 오른팔과 왼팔이 될 테니, 아무런 걱정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셨으면 해요.”

그에 금란과 금란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목운요가 자신들을 대신할 소녀들을 데려온 줄 알고 잔뜩 경계한 것이었다.

하운방에 들어온 이후로 두 사람은 난생처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자신들을 존중해 주고 격려해 주는 목운요가 참으로 고마웠고, 그런 그녀를 따라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게 즐거웠다.

“소저, 저희가 잠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목운요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며칠 뒤에 다관이 문을 열면 하운방은 어머니께서 관리해 주실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를 안전하게 지켜 줄 사람들이 필요한 거고요. 저 소녀들은 어머니를 위해 제가 구한 사람들일 뿐이니, 두 사람은 저와 함께 다관 일에 매달려야 할 거예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말이죠. 할 수 있겠어요?”

“예, 소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목운요가 자신들을 믿을 뿐만 아니라 더 크게 키울 생각이라는 말에, 두 자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좋아요. 이제 가서 저 아이들한테 방을 지정해 주세요. 그리고 옷이랑 이번 달 품삯도 내주고요. 반 시진 뒤에 금수원에 갈 테니 준비하세요.”

“예, 소저.”

두 사람이 나간 뒤, 목운요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금란과 금교는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하니 두 사람을 멀리할 생각은 없다.

다만 두 사람에게는 타고난 당당함이나 의연함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들여 서서히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랬다간 소씨 가문 같은 곳에 가서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 * *

금수원으로 향한 목운요는 진 총관에게 두꺼운 서신을 건넸다.

서신을 확인한 진 총관은 소리 없이 히죽거렸다. 목 소저가 사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이리 많았다니.

이 정도 두께라면 서신이 아니라 책자라고 해도 되겠는걸! 당장 성가 놈에게 서신을 보내, 왕야께서도 목 소저처럼 서신을 길게 쓰시라고 잔소리하라 해야겠군.

서신을 건네고 잠시 침묵에 잠겼던 목운요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총관님, 다관에서 일하라고 뽑아 주신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이에요.”

“으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당황한 표정의 진 총관을 보며 목운요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위일과 운춘을 불러 차를 내오도록 했다.

“총관님께서도 보시면 아실 거예요.”

목운요의 말에 두 사람을 자세히 살피던 진 총관의 눈썹이 점점 구겨졌다. 위일과 운춘의 동작은 목운요와 다를 바 없었지만, 아무리 봐도 대접을 받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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