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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42화 (42/442)

42화 배신자의 말로

혹 자신에게 손을 빌려 달라는 것일까? 경릉성의 채월각 정도야, 손가락만 까딱해도 문 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가 삼 층짜리 하운방 하나라면 이쪽한테는 밑지는 장사가 아닌가?

“비슷해요.”

목운요는 자신의 계획을 월왕에게 전부 들려줄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은 서로를 탐색하는 단계니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은가?

“사야, 일단 제가 사람들을 데려온 뒤에 찬찬히 이야기하시죠. 집을 나온 지 한참 된 터라 이젠 돌아가야 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목운요가 도와 달라고 할 줄 알았던 월왕은 또 다른 계획이 있다는 듯한 말에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래.”

이윽고 그녀가 방문을 나서자, 육냥은 우항의 곁을 벗어나 재빨리 그 곁에 섰다.

진 총관도 허겁지겁 달려왔다.

“목 소저, 담장에 사다리를 설치해 뒀으니 그걸 타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육냥한테 다시 안겨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사다리를 준비했다는 진 총관의 말에 월왕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보다 유능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진 총관님.”

“별거 아닙니다, 허허.”

진 총관은 목운요의 옆에 선 육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뒤에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월왕을 쓰윽 쳐다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이튿날, 한잠 푹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뿐한 기분이었다. 소청과 함께 식사를 한 목운요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홍을 발견했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은홍 언니, 말 편하게 하세요. 그나저나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에요? 얼른 들어오셔서 목 좀 축이세요.”

은홍이 이 시간에 찾아온 걸 보니 금국과 금추의 일 때문인 듯했다.

“감사합니다, 소저. 부인께서 얼른 와 보시라 말씀 전하셨습니다.”

잠시 하운방을 닫겠다고 어제 이야기해 둔 터라 오늘은 가게에 늦게 나가도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네, 얼른 가요. 부인께서 급하신 듯하니.”

정원에서 꽃을 구경하던 금 부인은 목운요가 오는 것을 보곤 환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많이 말랐구나. 한창 자랄 나이인데 몸 상하지 않게 잘 먹어야지.”

“부인을 뵙습니다. 요 며칠 하운방에 일이 많아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바빴거든요. 하지만 이제 괜찮을 거예요, 하운방을 잠시 닫기로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 주문을 끝내고 조금 쉬려고 했답니다.”

“어린 나이에도 딱 부러지는 걸 보니 보기만 해도 대견하구나.”

금 부인은 목운요에게 앉으라고 권한 뒤 주변의 시종을 멀찍이 물렸다.

“운요아, 우리 둘 다 말을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솔직히 말하마. 이미 눈치챘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난번 네가 돌려보낸 아이들 일로 널 불렀다.”

그 말에 목운요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부인, 이번 일은 제가 모두 부족한 탓에 일어난 일이에요. 두 사람이 제가 전수해 준 자수법을 채월각에 팔아넘겼다는 이야기에 그만 화가 나서……. 감정에 휩쓸려 금추를 다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애당초 사람을 잘못 보낸 내 탓이지. 그 일로 날 원망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부인. 아무것도 없는 제가 경릉성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부인 덕분인걸요. 그 후에도 언제나 절 진심으로 위해 주셨는데, 그깟 일로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리겠습니까?”

“그럼 됐다. 아이들의 매매 계약서는 이미 넘겼으니 네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해.”

“부인께서 보내 주신 사람인데 제 마음대로 다뤘다가 해괴한 말이라도 돌까 봐 겁이 납니다. 금추를 다치게 한 일에 대해서는 크게 후회하고 있어요.”

“안다. 금추가 네 심기를 건들지 않았다면 네가 그렇게 하진 않았겠지. 원래 어제 널 부르려다가, 가게도 바쁘고 네 안색도 좋지 않다는 은홍의 말에 오늘에서야 널 불렀단다. 두 사람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무조건 부인의 뜻에 따를 생각이에요. 금란을 시켜 금추의 뺨을 때려 줬고, 금국도 잘못을 시인했고요. 그것만으로도 화가 많이 풀렸어요.”

애초에 더 큰 계획을 세운 터라 그 정도 일에 더 이상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목운요의 대답을 들은 금 부인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도 어리구나. 은홍, 금추와 금국을 데리고 오너라.”

잠시 뒤, 금추와 금국이 사람들의 손에 끌려 나왔다. 두 사람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힘없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애원했다.

“부인, 부디 살려 주세요…….”

“목 소저에게 자수법을 배울 기회를 줬건만, 그 기술을 돈을 받고 넘기다니! 아무리 사람을 모시는 노비라 하지만 배은망덕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것이냐? 주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주인을 궁지에 빠뜨리려 했다. 너희처럼 은혜도 모르는 것들은 어디에서도 발붙이고 살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에 금국과 금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거의 기다시피 엎드려 애걸복걸했다.

“부인,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고 성심성의껏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

바닥에 꿇어앉은 금국이 연신 이마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얼마 못 가 이마에 퍼런 멍이 들었지만 금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희를 내 손으로 뽑았다는 걸 생각해서 운요는 너희에게 별다른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나 역시 너희가 조부에서 머물렀던 그간의 정을 생각해 목숨만은 살려 주마.”

“가, 감사합니다. 부인!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기뻐할 새도 없이 싸늘한 금 부인의 목소리가 조부에 울려 퍼졌다.

“너희가 운요에게 배운 기술은 돌려줘야 할 것 같구나. 어멈,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손을 봐준 뒤 조부에서 쫓아 버리게.”

“예, 부인.”

얼떨떨한 표정의 금추와 금국이 다시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왕 씨(王氏)가 안으로 들어와 상황을 보고했다. 손을 소매 안으로 넣어 두긴 했지만 그녀의 소맷자락엔 혈흔이 짙게 남아 있었다.

“보고드립니다, 부인. 금추와 금국은 다신 바늘과 실을 쥐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수고했네.”

금 부인은 왕 씨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한 뒤 목운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운요야, 내가 심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니?”

“그럴 리가요! 부인께서 제 대신 두 사람을 혼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인걸요.”

“후우, 솔직히 말해서 내 사심도 들어간 결정이었다. 금국과 금추 모두 내가 친정에서 데려온 아이들이야. 그동안 회임하지 못한 이유를 알지 못했을 때는 두 사람 모두 나를 위하는 줄 알았는데, 이젠……. 아랫것들을 처분할 좋은 핑계인 셈이었단다, 내게는…….”

금 부인이 자신에게 이렇게 스스럼없이 말할 줄은 몰랐던 목운요는 놀란 속내를 감추곤 고개를 숙였다.

“엉뚱한 마음을 품은 사람을 곁에 둬 봤자 마음이 편할 리 없죠. 그럴 바에야 일찌감치 치워 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그래.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리 와서 이것 좀 마셔 보렴. 새로 들어온 노군미(老君眉)라는 차란다.”

“은은한 옥빛을 띠는 데다 향이 순하고 부드럽네요. 최고급 차가 분명해요. 부인만 따라다니면 먹을 복이 터질 것 같아요.”

눈이 가느다랗게 휘어질 정도로 웃으니 아이는 한층 귀여워 보였다. 금 부인 역시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은홍을 통해 조금 보내 주마.”

금 부인이 은홍에게 찻잎을 챙기라고 눈짓을 보냈다.

“부인, 전 괜찮-”

“사양할 것 없어. 어차피 난 지금 차를 마실 수 없으니, 가게를 찾은 부인들을 대접할 때 쓰는 편이 더 나을 거야.”

“그리 말씀하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리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빌 언덕이 클수록 좋다고 하더니, 과연 열심히 비비니 귀한 차도 얻어 가네요.”

“요 녀석!”

목운요의 우스갯소리에 불편했던 기분이 눈 녹듯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목운요는 차를 마시며 금 부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진맥을 짚어 부인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하운방으로 향했다.

은홍이 목운요를 문까지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오자, 금 부인이 목운요가 마시던 찻잔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게 보였다.

“부인,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하아, 아니다. 그저 아이가 날 너무 따르는 것 같아서 말이야.”

“제가 어리석어 부인의 말씀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따르는 편이 좋은 것이 아닌지요?”

“그야 그렇지. 그냥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구나. 대체 어떤 대단한 가문에서 저렇게 어여쁘고 영특한 아이를 길러 낸 것인지 말이야.”

금추와 금국 두 사람의 매매 계약서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목운요다. 두 사람이 배신했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자신에겐 사건의 경위만 알려 주면 될 텐데, 굳이 두 사람을 조부에 돌려보냈다.

혹시 집안 단속을 위해 아랫것들을 솎아 내려는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 것일까? 그래서 자신에게 은밀히 그 빌미를 준 것일까?

그리고 그 추측은 이번 만남을 통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침묵을 지키는 금 부인에, 은홍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사람을 시켜 목 소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버지를 어릴 때 여읜 뒤로, 어머니와 서로 의지해 살아왔다고 합니다. 대단한 가문 출신 같지는 않던데…….”

“네가 알아낸 건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일 뿐이란다. 물론 운요와 좋은 인연을 맺은 덕분에 우리한테는 해로울 것이 없다. 지금처럼만 자라 준다면 이 귀한 인연을 계속 이어 갈 셈이야. 그러니 넌 하운방을 지켜보다가 곤란한 일이 생긴 것 같거든 내게 알려다오.”

“예,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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