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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9화 (39/442)

39화 협상

“절반은 너무 많아요. 제가 먹여 살려야 할 사람들이랑, 옷을 짓는 데 필요한 옷감과 실만 해도 엄청난데, 수익의 절반을 가져간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거예요. 차라리 제게 집값의 절반을 주시면 집을 깨끗하게 내 드릴게요.”

이야기해 볼 만하겠다는 그의 말에, 상대는 겁먹었다는 표정을 집어던지곤 당당하게 자신의 조건을 제시했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협상’을 하려 들다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목운요는 속으로 재빨리 주판알을 튕겼다. 월왕은 볼 때마다 겁이 났지만 그의 출신 배경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손해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죽음과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냉정한 성격이라 언제 사이가 틀어질지 알 수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주사위를 던질 것인가?

목운요는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가게 매상도 슬슬 오르고 있지만 소씨 가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월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써먹을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 할. 하운방에서 번 돈의 이 할을 드리죠.”

목운요의 제안에 월왕이 목덜미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내 손에 네가 내 필적을 흉내 내서 쓴 시구와 정산을 죽인 비수가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관아에서 확인해 보면 아시겠지만, 전 누구도 해친 적 없어요. 게다가 그 비수는 장 씨가 가져온 거라고요. 어디서 주운 건지, 또 누가 그렇게 한 건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리 상대가 월왕이라고 해도 이 일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미 결정 난 일이라고 해도 뒤집힌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협박에 가까운 그의 말에 목운요의 눈빛에 한 줄기 한기가 스쳤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부상을 입고 수풀 속에 숨어 계셨죠. 생각해 보면 누군가한테 쫓기고 있던 것 같은데, 제가 당신의 비수를 가지고 사람을 해쳤다고 해도 그 일에 대해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실 수 있겠어요? 전 일개 평민이죠. 그것도 어머니와 둘이 의지해서 사는. 저 하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닐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요?”

그에 눈을 가늘게 뜬 월왕의 주변으로 또다시 검은 기운이 활활 타올랐다.

“내 신분을 아느냐?”

이번에는 목운요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망설임 없이 월왕의 눈을 마주했다. 한번 물러나면 계속 물러날 뿐이다. 월왕 앞에서 더 이상 설설 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의복은 평범했지만, 기린(麒麟) 문양이 들어간 신발을 신고 계셨죠.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린 문양이 들어간 신발을 신고, 금은보화가 박힌 비수를 쓸 정도라면 저 같은 평민보다 백배는 높으신 분이겠죠.”

순간 월왕의 입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한기는 빙점까지 떨어졌다.

“날 위협하는 건가?”

“자, 다시 제안을 드리죠. 하운방 매출의 삼 할을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은 저도 양보할 수 없어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다면 지금 당장 검을 휘두르셔도 돼요.”

말을 마친 목운요가 눈을 감았다. 죽음 따윈 알 바 아니라는 듯, 담담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월왕의 시선이 그녀의 내려앉은 눈썹에 머물렀다. 깃털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눈썹은 길고도 풍성했다. 깜빡거릴 때마다 손끝으로 슬며시 문질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입으로는 큰소리치면서도 파르르 떨리는 눈썹이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 모두,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또다시 집에 있는 고양이가 생각났다. 생선을 퍽이나 좋아하는 주제에 생선을 볼 때면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듯 모른 체하곤 했다. 자신이 가시를 손수 발라 주고 접시 위에 살을 놔줘야 비로소 찹찹거리며 먹어 치웠다. 겉과 속이 다른 꼬락서니가 눈앞의 계집애를 빼다 박았다.

목운요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신을 샅샅이 훑어 내는 월왕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숨을 쉬는 게 버거워졌다.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목덜미에 드리워졌던 서늘한 기운이 사라졌다.

검을 거둔 월왕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 말에 일순 긴장이 풀린 목운요가 천천히 눈을 뜨자, 침상에 앉아 자신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는 월왕의 모습이 들어왔다.

“공자(公子)의 실력이라면 이미 저를 조사하셨겠죠? 하지만 전 공자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하운방의 매상 중 삼 할을 가지게 되셨으니 절반은 ‘주인’인 셈인데, 존함을 여쭤도 될까요?”

“영사야(寧四爺)라고 부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영사야, 잠시 비켜 주시면 안 될까요?”

‘흥, 월왕 영군월이 넷째 황자라서 영사야인 건가?’

목운요의 말에도 월왕은 미간을 구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척 봐도 목운요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그에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문 채 말했다.

“‘예의가 아니면 보지 말라(非禮勿視).’고 하지 않던가요? 제가 옷을 입게 자리를 비켜 주세요. 하운방의 매상을 나누기로 약조했으니 증서라도 써야 하니까요.”

그 말에 월왕은 멈칫하더니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병풍 밖에 있는 의자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빠르게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목운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님을 깨닫고 서둘러 의복을 갖춰 입었다. 그러고는 숨을 깊이 내신 뒤 병풍 밖을 보았다.

의자에 앉은 월왕은 생각에 잠긴 듯 검 자루를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본 목운요가 시선을 거두곤 탁자로 가서 종이를 들었다. 붓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목운요의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거렸다. 이내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월왕의 필체로 증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필체 때문에 하운방의 매상 중 삼 할을 넘기기로 했다. 거액을 주고 산 필체니,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이 필체를 최대한 많이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서에 적힌 필체를 확인한 월왕은 목운요를 스윽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영사야’라는 세 글자를 적어 넣었다.

“사야, 참으로 박하시네요. 하운방의 매상 중 삼 할을 드리기로 했는데, 겨우 이 세 글자만 적어 주시는 건가요? 세상천지에 영씨 성을 가진 넷째 도련님이 얼마나 많은데. 훗날 변고라도 생기면 저더러 어디 가서 사람을 찾으라는 건가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냐?”

목운요의 시선이 방 안을 살피다가 화장대 위에 있는 연지함에 머물렀다. 목운요는 월왕의 손을 쥐곤 그 위에 꾹 찍었다. 그러곤 증서를 끌어다가 영사야라고 쓰여 있는 이름 옆에 손가락을 내리찍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하나 이렇게 해야 누군가가 사야를 사칭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사야처럼 고매하신 분이라면 이해해 주실 수 있겠죠?”

월왕은 자신의 손가락을 물들인 연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목운요를 바라봤다.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배포도 크고 아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계약 내용에 따라 매월 말에 삼 할의 돈을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간신히 월왕을 사로잡았으니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 그가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서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월서로 가 버린다면 그를 써먹을 방법이 없었다.

“옆에 있는 금수원에 가서 진 총관을 찾아라.”

설마 옆에 있는 금수원이 월왕의 것이란 말인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어쩐지 자신을 너무 빨리 찾아냈다 했더니, 바로 옆에 터를 닦았을 줄이야…….

잠시 생각에 잠겼던 목운요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었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지난번에 뵈었을 때 제 목에 걸려 있던 붉은 실을 가져가셨죠?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절 위해 만들어 주신 거니 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잃어버렸다.”

잃어버렸다고? 태어난 지 한 달 되었을 때 어머니가 자신의 무병장수를 빌며 정성껏 만들어 주신 것이다. 여태껏 한 번도 몸에서 떼어 놓은 적이 없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갔지만, 그렇게 소중한 걸 잃어버릴 줄이야…….

입술을 깨문 목운요는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하곤 싱긋 웃었다.

“한데 사야께서 제게 증표를 주셔야 하지 않나요? 그래야 앞으로 진 총관께 편하게 연락을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월왕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휙 하고 던졌다.

눈앞으로 날아오는 물건을 받고 보니, 다름 아닌 비수였다. 이번에는 검집도 제대로 갖춰진. 반 척(尺) 정도 크기의 비수는 방어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목운요는 만족스럽게 비수를 내려다봤다. 혹시라도 나중에 월왕이 비수를 돌려 달라고 하면 자신도 잃어버렸다고 할 테다!

두 사람이 계약을 하는 사이, 창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사야,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서 쉬시는 게 좋겠네요.”

그만 나가 달라는 말에 월왕은 순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을 지체했으니 확실히 돌아가기는 해야 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한기를 내뿜으며 목운요 앞을 성큼성큼 지나갔다.

이내 문밖으로 사라지는 월왕을 보며 목운요는 기운이 탁 풀린 채로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좀처럼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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