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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5화 (35/442)

35화 배신의 대가

* * *

연회가 끝난 후 목운요는 금 부인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다다른 금 부인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운요야, 너 때문에 내가 하마터면 타 죽을 뻔했구나. 질투 어린 부인들의 눈빛 공격을 받아 내느라 말이다.”

“부인의 자태에 반해 반딧불이 날아온 것뿐인걸요. 그런 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 백날 질투해 봤자 무슨 소용이랍니까?”

금 부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부채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 어찌 되었든 한동안 너도 바빠지겠구나.”

오늘 밤 이후 하운방의 명성은 들불처럼 무섭게 퍼져 나갈 것이다. 하운방에서 지은 옷은 반딧불도 반하게 할 만큼 아름답다는 이야기에, 그곳에서 옷을 지으려는 여인들 사이에서 치열한 눈치 싸움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모든 자수방을 족히 초토화시킬 수 있으리라.

연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날이 많이 어두워진 터라, 목운요는 곧장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마차를 끌고 나타난 육냥이 잠시 멈춰서자, 금란과 금교 자매가 마차에서 쪼르륵 뛰어내렸다.

“소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육냥을 따라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목운요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금란과 금교 자매의 일 처리나 처신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을 박하게 대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소저, 하운방으로 가시는 건가요?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집으로 가요.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예!”

* * *

한편 하운방 안, 우항은 초조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모란꽃 무늬가 수놓아진 의자에 단정히 앉은 월왕 주변으로는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예리한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은 한없이 포근한 의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언제 오는 것이냐?”

짧은 그 한마디 말에도 우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평소 주인님의 성격이 거침없긴 했지만 이렇게 숨 쉴 틈도 안 주고 밀어붙인 적은 없었다.

“주인님, 목 소저는 부인들에게 잡혀 이야기 중인가 봅니다. 전해 듣기론, 하운방의 옷을 걸친 네 부인들이 큰 관심을 받았다며…….”

월왕의 눈빛이 싸늘해진 것을 확인한 우항이 놀란 마음에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여기 잠시 앉아 계십시오. 제가 직접 내려가서 살펴보겠습니다.”

허락의 뜻으로 월왕이 고개를 슬쩍 끄덕이자, 우항은 곧장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문득 월왕의 시선이 서쪽 벽에 걸려 있는 시구로 향했다. 시를 쓴 필체는 자신의 것이 분명하지만, 시의 내용이 영…….

잠시 뒤 돌아온 우항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연회가 끝났다고 합니다. 물어보니 목 소저는 집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난 월왕이 벽에 걸려 있던 시구를 떼어 냈다. 그의 눈동자가 밤하늘처럼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 안에 온정이라는 게 있긴 한 건지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자.”

우항은 자신이 말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월왕의 뒤만 따랐다.

월왕이 말을 재촉하는 사이, 우항의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주인님께선 목운요라는 여인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오늘 안 보면 무슨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서두르는 게 영 수상했다.

그러고 보면 주인님도 이제 스무 살을 넘긴 참이었다. 다른 이 같으면 집안이 아이들로 가득할 텐데…….

주인님의 인륜지대사 때문에 한쪽밖에 남지 않은 성 공공(成公公)의 눈이 걱정으로 멀 지경이었다. 주인님께서 관심을 갖는 소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시면 납치해서라도 데려가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목운요의 집 입구에 도착했다. 우항이 재빨리 말에서 내려 월왕을 향해 달려갔다.

“주인님, 의복을 바꿔 입으시겠습니까?”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안에 들어갔다간, 소저를 놀라게 할지도 몰랐다. 주인님께서 관심을 갖는 소저에게 나쁜 인상을 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말에 월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우항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고삐를 던져 주곤 옆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항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거긴 주인님이 사람을 시켜 사 둔 금수원(錦繡圓)이라는 곳이었다. 원래는 지금 목운요가 살고 있는 소택도 함께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목운요 때문에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소청의 방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곤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주무세요?”

그러자 방문이 열리면서 옷을 걸친 소청이 나왔다.

“오늘은 하운방에서 잘 줄 알았더니, 연회가 빨리 끝났나 보구나?”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소청은 마음이 놓였다. 채월각의 수작으로 아이가 연회에서 난처한 처지에 몰리면 어쩌나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렇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냥 왔어요. 어머니는 저 안 보고 싶으셨어요?”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보고 싶다는 거야?”

목운요는 소청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하루를 못 봐도 삼 년 같다고 하는데, 어머니를 못 뵌 지 몇 시진밖에 안 됐으니 삼 년은 아니고 일 년 정도는 못 뵌 것 같단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투정에 소청이 목운요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하여간 요 녀석, 이 어미한테 투정은……. 오늘 연회는 어땠는지 이야기해 보렴.”

목운요는 소청을 상대로 오늘 연회에서 있었던 일에 온갖 양념을 뿌려 가며 이야기를 쏟아 냈다.

“반딧불을 홀릴 만큼 옷이 무척 아름다웠나 보구나.”

소청의 말에 목운요가 입을 가린 채 나지막이 웃음을 지었다.

“옷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반딧불이 그걸 알아볼 리 없죠. 사실 부인들의 부채에 반딧불을 꾀어낼 수 있는 향료를 조금 발라 뒀어요.”

“하여간 우리 요아는 똑똑도 하지,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소청이 목운요를 안고 장하다며 토닥여 주었다.

한참 뒤에 목운요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니, 금추와 금국이 제가 가르쳐 준 자수법을 채월각에 팔아넘겼어요. 그래서 내일 두 사람을 처리할 생각이에요.”

“어떻게 할지 잘 생각한 거니?”

소청은 지금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날마다 생각했다. 그런 바람을 품은 탓에 아이의 이야기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두 사람의 매매 계약서는 모두 저한테 있으니 죽인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목운요는 말하는 내내 소청의 표정을 살폈다. 마음이 여린 어머니한테는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게 나았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중에 아시고 크게 놀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소청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요아야,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니?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너무 몰아세우면 안 되는 법이란다.”

“사람은 호랑이를 해칠 마음이 없어도,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잖아요. 그러니 두 사람에게 따끔하게 가르쳐 줄 생각이에요. 그 아이들은 절 배신한 것도 모자라, 제가 먹고사는 기술을 제 경쟁자한테 넘긴걸요.”

소청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래도 좀 지나친 게 아닌지…….”

“이번엔 어머니 말씀대로 두 사람에게 큰 벌을 내리지 않을게요. 하지만 다음에는 마음 독하게 먹으셨으면 해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두 사람이 이 씨처럼 운요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였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검은색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월왕은 책자에 적힌 기록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서서히 반짝였다.

그의 옆에선 한 노인이 공손히 서서 월왕의 대답을 기다렸다.

“진백(秦伯), 조운년의 승진이 목운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운년이 승진한 것은 그 부인 덕분이라고 합니다. 목운요가 지은 옷을 입은 부인 주변을 나비가 에워쌌다는 이야기를 성상께서 아시고, 조운년을 경릉 염운사로 임명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월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변경에서 오랜 세월 동안 혹독한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는 부하들의 승진은 모두 개개인의 공로에 따라 결정했다. 옷 한 벌 덕분에 승진했다는 조운년의 이야기가 곱게 들릴 리 만무했다. 그의 입에서 소리 없는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운년은 어떤 자인가?”

“빈천한 가문 출신으로,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처가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직한 품성으로 일 처리 솜씨가 뛰어난 데다 백성에게 도움되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특히나 경릉성 제방이 두 차례나 무너질 뻔했는데, 조운년이 미리 예방책을 강행한 덕분에 경릉성이 물난리를 모면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시켜 조운년과의 만남을 추진해 보거라.”

소금을 다루는 염운사는 한몫 단단히 벌 수 있는 자리였다. 당초 월왕은 그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 둘 계획이었으나 조운년에게 선수를 뺏기고 말았다. 하지만 쓸 만한 자라면 굳이 멀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 그보다 경릉성까지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쉬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보일락 말락 고개를 끄덕인 월왕이 목운요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 * *

이튿날, 목운요가 금란과 금교를 데리고 마차에 올랐다. 소청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웃음기가 스르륵 자취를 감췄다. 오늘은 금추와 금국을 손보기로 한 날이었다.

“소저, 지금 가게 문을 열까요?”

목운요의 마차가 당도한 것을 확인한 하운방의 소녀들이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젯밤 이야기를 그녀들 모두 전해 들은 참이었다.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하지만 목운요는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것도 한 줌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녀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이내 금란과 금교가 목운요를 위해 대청 한가운데에 의자를 갖다 놓았다. 육냥은 조용히 목운요의 뒤에 선 채 언제든 검을 뽑을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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