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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4화 (34/442)

34화 부채로 날아든 반딧불

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그 자태가 참으로 고왔다. 특히 몇몇 소녀는 비취옥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머리 장식으로 치장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금 부인의 눈가에 얼핏 미소가 드리워졌다. 일곱 소녀가 걸친 옷은 채월각에서 지은 것이 분명했다.

소녀들의 치맛자락을 살펴본 목운요의 입에서도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예상대로 금추와 금국이 제 자수법을 팔아넘긴 게 틀림없었다. 심증이 확증이 되자, 목운요는 오히려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채월각의 걸작을 찬찬히 뜯어봤다. 채월각의 옷은 목운요도 인정할 만큼 기본기가 탄탄했다. 어디 그뿐이랴? 옷감과 장식만 보더라도 한 벌당 족히 천오백 냥은 들었을 것이다.

채월각의 옷을 걸친 소녀들은 평소 담 씨와 친분이 두터운 가문 출신의 아가씨들로, 한창 푸릇푸릇한 이팔청춘들이었다. 옷의 모양새나 자수 솜씨는 다소 떨어졌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기에 그들의 청춘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의 금 부인을 힐끗 쳐다본 순무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슬쩍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말해 봐요. 뉘 댁의 귀한 아가씨들인지 말이에요. 누가 여러분을 이렇게 꽁꽁 숨겨 놨는지 봐야겠네요.”

일곱 소녀들은 황망히 앞으로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을 댔다. 순무 부인은 일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의 말을 곁들였다.

쏴아아- 바람에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망강루 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됐다.

* * *

그 무렵, 하운방 앞에 낯선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월왕은 편액에 새겨진 글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필체는 물론, 글자에 새겨져 있는 기세마저 자신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아 있었다.

“우항, 가서 문을 열어라.”

그러자 우항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인님, 하운방은 사택(私宅)이라 함부로 들어갔다가 밖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명성에 흠집이 날 수…….”

“열어.”

월왕의 서늘한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우항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며 대문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문에 달려 있는 커다란 자물쇠를 보곤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주인님, 이건 쉽게 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까 보니 이 층 창문이 열려 있던데, 그리로 들어가시면 어떨까요?”

월왕을 감싼 한기가 더욱 진해진 것을 감지한 우항이 잽싸게 말을 덧붙였다.

“주인님, 자물쇠가 부서져 있는 걸 보고 목 소저가 놀라서 관부에 신고라도 하면 일만 귀찮게 될 뿐입니다. 이 층으로 들어가서 목 소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에 월왕이 싸늘한 눈빛으로 이 층을 살피더니 휙 하고 훌쩍 뛰어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우항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어릴 때부터 월왕과 함께 자라긴 했지만, 월왕의 저 서늘한 모습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 * *

망강루 안, 목운요는 자신이 잘못 건드렸던 ‘염라대왕’이 하운방에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알지 못한 채 눈앞의 광경을 구경 중이었다.

소녀들은 손을 잡고 달 아래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인 소우의(蘇羽儀)가 떠올랐다. 춤추는 자태라면 서릉에서 소우의를 따를 자가 없었다. 달을 향해 절을 올리는 초선(貂蟬)을 닮았다 하여 배월선자(拜月仙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소녀들의 춤이 끝났다. 구경하던 부인들의 칭찬에 소녀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순무 부인의 칭찬까지 이어지자, 일곱 소녀 중에서 가장 예쁜 아이가 입을 열었다.

“사실 금 부인의 춤 솜씨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오늘 입으신 옷도 춤추기에 적당할 것 같은데,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소녀의 말에 여러 사람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오늘 연회에서는 금 부인의 지위가 순무 부인 다음으로 높았다. 게다가 얼마 전에 조운년이 승진하지 않았던가?

한데 정사품 관리의 부인에게 춤을 춰 달라니, 간이 부은 건지 머리가 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소녀가 속한 가문의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달려 나와 금 부인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절을 올렸다.

“부인, 저희 아가씨가 아직 어려 세상 물정에 밝지 못합니다. 부디 부인께서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를 지켜보던 금 부인의 눈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괜찮네. 모처럼 열린 연회에서 뭐 그런 걸로 따지는가? 공연히 흥만 깨는걸. 다만 이런 자리에선 항상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모든 사람이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닐 테니.”

“예,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소녀는 그제야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과 달리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목운요는 눈을 내리깔며 웃음을 흘렸다. 채월각의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엉뚱한 사람을 고른 게 문제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신이 나서려 했지만 지금 보니 그럴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순무 부인이 금 부인에게 말을 걸면서 방금 전의 곤혹스러운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들었다. 연회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자, 순무 부인은 사람을 시켜 바늘을 가져오라고 했다.

“칠월 칠석에는 달 아래서 오색실로 바늘귀를 통과하는 의식을 빼놓을 수 없죠. 망강루 밖에 있는 회랑(回廊)으로 달구경이나 갈까요?”

순무 부인이 손에 오색실을 들고 밖으로 나가니, 나머지 사람들도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어둠이 깔리자, 밤하늘의 달과 별이 환하게 빛났다. 달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보고 있자니 하늘과 강물이 한데 뒤엉킨 듯했다.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던 목운요는 소청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지금쯤 뭘 하고 계시려나? 집에 혼자 계시면 외롭지 않으실까? 채월각의 필살기가 겨우 이런 수준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핑계를 대고 집에서 어머니와 같이 있었을 것을.

문득 주변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달빛 아래서 바늘귀를 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목운요는 오색실을 손에 쥐고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어머니 곁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수백, 수천 번 하늘에 감사를 올려도 모자랐다. 더 이상 다른 건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어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히 계셔 주시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누군가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 저기 반딧불이야!”

“엄청 많네!”

목운요는 입가를 슬며시 끌어 올리더니, 근처에 있던 금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

“부인, 누군가 이런 시를 지었다 합니다. ‘은빛 촛불은 가을빛 아래 서늘히 병풍을 비추고, 비단부채로 반딧불을 쫓아 본다.’ 마침 부인의 손에 부채가 있으니 분위기도 돋울 겸 반딧불을 쫓아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금 부인은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은 어린애라는 생각에 귀엽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저 아래 있는 반딧불을 어찌 끌고 온단 말이냐?”

그러면서 금 부인이 반딧불 쪽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무심코 흔들었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반딧불이 부채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마치 뭔가에 끌리기라도 한 듯, 반딧불들이 부채 주변을 에워싸면서 금 부인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금 부인의 모습에 조 부인이 탄성을 지르더니, 자신도 모르게 금 부인을 따라 손에 든 부채를 흔들었다. 그러자 반딧불들이 그녀 쪽으로도 날아갔다.

반딧불들은 어느새 네 부인의 치맛자락 주변을 유유자적 날아다녔다. 어두운 밤하늘에 점점이 몰려드는 반딧불의 모습은 마치 꿈결 속을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한편 아래층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리고 있던 채월각의 담 씨는, 연이은 탄성 소리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밖으로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하지만 반딧불에 둘러싸인 망강루 위의 네 부인을 본 순간,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이, 이게 어찌 된 거야?”

그 옆에서 지나가던 행인들이 칭찬을 쏟아 냈다.

“반딧불도 아름다움이 뭔지 아나 보네.”

“예전에도 망강루에 와서 하늘에 기도를 올린 부인들이 여럿 있었지만, 반딧불한테 에워싸인 건 처음 보는걸.”

“그거야 하운방에서 지은 옷을 입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오늘 저런 장면이 생긴 것도 하운방의 옷이 너무 아름다워 그런 거 아니겠어? 이 비천한 신분이 아쉬울 따름이군. 은자를 싸 들고 가도 하운방에서 지은 옷을 한 벌도 살 수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부인들이 참 부럽네. 저 옷들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막 두근거리는 것 같아.”

주변의 반응에 담 씨는 커다란 바위가 숨통을 콱 누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지은 옷을 입은 소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주변 또한 어두워, 반딧불로 둘러싸인 네 부인 외의 다른 사람들은 희미하게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반딧불도 서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조 부인 등의 얼굴에선 아쉬움이 묻어났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장면에 그녀들 스스로도 취한 듯했다.

반딧불이 모두 날아가니 순무 부인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감탄을 쏟아 냈다.

“반딧불도 불러 모을 미모라니, 과연 하운 미인방에 오를 만하네요.”

그러자 많은 이들이 대놓고 네 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칠월 칠석에 반딧불에게 둘러싸였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질 것이 분명했다.

지난번에도 금 부인이 황상의 만수무강을 기도하다가 나비에게 둘러싸여 큰 상을 받지 않았던가? 이번 일까지 널리 퍼진다면 그 반응은 불 보듯 뻔하리라.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금 부인에게만 그것도 큰 복이 두 번이나 찾아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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