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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1화 (31/442)

31화 채월각의 반격

넋이 나간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던 금 부인이 얼굴을 가린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은홍은 잽싸게 달려와 금 부인을 부축하며 목운요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목 소저, 정말 감사합니다. 흐흑, 정말 감사합니다…….”

“부인께서 아가씨를 낳으시든 도련님을 낳으시든, 제가 꼭 손수 옷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격앙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금 부인이 목운요의 손을 꼭 잡고선 감격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도울 테니 절대로 내 성의를 거절하지 말아다오.”

그에 목운요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부인의 몸조리를 돕긴 했지만, 절 돌봐 주신 부인에 대한 보답이자, 부인의 됨됨이에 반한 제 존경의 뜻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부인께서 이리 말씀해 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금 부인은 목운요의 손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그래, 우리 사이에 서먹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꾸나. 자, 이거 먹어 보렴. 새로운 요리사를 찾았는데, 솜씨가 제법이란다.”

“감사합니다, 부인.”

간식을 먹으면서 목운요는 금 부인에게 전에 있던 요리사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다리를 다쳤다기에 고향에 가서 좀 쉬라고 했단다. 그런데 고향으로 가던 도중에 행방불명됐다고 하더구나. 쯧, 딱하게도 하지…….”

금 부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운요의 안색을 은밀히 살폈다.

영특한 아이지만 아직 어린 나이였다. 이때다 싶어 사방에서 마수가 뻗어 오면 순진한 아이가 망가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라도 귀띔해 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목운요는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담담한 얼굴을 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천륜에 따라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죠. 부인께서도 크게 마음에 두지 마셔요.”

목운요의 표정을 본 금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자, 그런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네 집에 사람을 보내 오늘 저녁은 여기서 식사를 들겠다고 전했단다.”

“감사합니다, 부인.”

* * *

개업 첫날, 하운방에 손님이 네 명 들었다는 소식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채월각의 담 씨는 옷의 금액을 알게 된 후로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운요가 지은 옷은 그저 그런 옷에 단출한 장신구만 두른 것뿐인데, 한 벌당 천 냥에 팔리곤 했다. 심지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대체 그 비결이 뭐란 말인가?!

하운 미인방의 소식이 온 성에 들끓자, 담 씨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채월각은 고급 의복의 판매가 매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데 목운요가 하운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는 성안의 귀부인을 죄다 제 고객으로 삼아 버리니, 피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어쩐담?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어르신, 하운방에서 하운 미인방이라는 걸 만들어서 유명해졌으니, 저희도 채월 미인방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명성으로만 따지면 채월각이 하운방보다는 한 수 위입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하자꾸나!”

남을 흉내 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장사는 실전이다! 장사에 도덕이니 양심이니 하는 것 따위 모두 헛소리에 불과하다. 돈을 많이 버는 쪽이 장땡이었다!

* * *

밤새 내린 가랑비가 다음날 낮 동안까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이런 날엔 손님이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우산을 받쳐 든 은홍이 부리나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목운요는 수건을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은홍 언니, 무슨 일이길래 뛰어왔어요? 금 부인께서 급하게 절 찾으시던가요?”

빗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은홍은 문가에 서서 입을 열었다.

“목 소저, 채월각 주인도 미인이 수놓아진 채월 미인책이라는 걸 냈다고 부인께서 전해 주라 하셨습니다.”

그에 목운요는 은홍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날도 궂은데 이리 와 줘서 고마워요, 언니. 빗줄기가 거세니 잠시 안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어요. 그리고 비가 그치는 대로 같이 금 부인을 뵈러 가요.”

은홍은 그제야 자신의 치맛자락이 젖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황망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미 젖었으니 이따 돌아가서 갈아입으면 됩니다.”

하지만 목운요는 상대의 손을 놔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바짝 잡아당겼다.

“사실 언니를 위해 옷을 한 벌 지어 놨는데, 언니 치수에 맞춰 지은 옷이라 다른 사람한테 줄 수도 없어요.”

“네? 하, 하지만…….”

얼떨결에 안으로 들어온 은홍에게 목운요가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얼른이요, 얼른! 요새 일이 바빠서 언니한테 보내 드리겠다고 말도 못 했네요.”

그 말은 은홍의 마음에 한 줄기 온기를 불어넣어 줬다. 목운요가 자신을 이리 대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금 부인의 총애를 받는 까닭에 각별히 대하는 것일 터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정다감한 행동을 보여 줄 때면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은홍은 푸른색 옷을 입은 자신을 거울로 연신 훑어봤다. 이렇게 입고 나가면 명문가 규수라고 해도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제게 너무 과분한 옷 같습니다.”

하운방의 옷은 한 벌 값만 해도 천 냥이 훌쩍 넘었다. 그런 돈이 자신에게 있을 리 없었다.

“금 부인께서 언니가 만든 장미꽃봉오리가 제가 드린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어요. 정 그렇게 고마우시면 저한테도 장미꽃봉오리를 보내 주실래요?”

“장미꽃이야 흔히 볼 수 있는걸요. 장미꽃봉오리가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어찌 목 소저가 손수 지은 옷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옷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귀한 선물을 받았다간 약점이 잡힐 수도 있었다. 눈치 빠른 은홍은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 걸 결코 원치 않았다.

이런 은홍의 속내를 목운요는 눈치채지 못한 척 태연스레 말했다.

“언니한테 장미꽃봉오리가 쉬운 것처럼, 제게도 옷은 별거 아닌걸요. 음, 언니가 정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다면 저 좀 도와주실래요?”

“뭐든지 분부만 하십시오, 목 소저.”

“분부라뇨. 그저 언니가 말한 대로 채월각 주인께서 만든 채월 미인책을 빌려 보고 싶은데, 언니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도와드리겠습니다. 돌아가서 부인께 상황을 말씀드린 뒤에 책자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언니!”

목운요와 금 부인의 돈독한 사이를 생각했을 때 책자는 쉽게 빌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부담 갖지 말고 옷을 받아 달라는 목운요 나름의 배려였다.

이 사실을 눈치챈 은홍이 감동한 듯 목운요를 향해 고래를 숙였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책자는 잠시 후에 사람을 시켜 보내겠습니다.”

“네! 제가 아래층까지 배웅할게요.”

은홍이 떠난 뒤, 목운요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는 기대감 섞인 눈빛을 형형하게 반짝이기도 했다.

아무리 곱게 지은 옷이라고 해도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그 가치를 단박에 파악하기 어려운 법이다. 채월각 주인이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이쪽도 채월각을 제대로 밟아 줄 명분이 생긴 셈이다. 하운방의 명성을 천하에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 * *

경릉성, 하운 미인방의 열기가 수그러들기도 전에 채월각에서도 미인책을 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이야기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모두 채월각으로 쏠렸다. 하운방보다 더 대단한 인물로 미인책을 채워서 낸다고 하니 자연히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담 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그는 미인책을 내자고 제안한 일꾼을 불러 기특하다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네가 큰일을 해냈구나. 위에 말씀드리면 네 월급을 올려 주실 것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래. 얼른 가서 손님들을 모시거라.”

“예, 알겠습니다!”

며칠 후, 채월 미인방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담 씨는 채월 미인책의 미인도를 채월각에 높이 걸었다.

미인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채월각에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그 덕분에 매상 역시 크게 늘었다.

* * *

한편 목운요 쪽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며칠 만에, 하운방이 일으킨 바람을 채월각이 단번에 잠재운 것 같았다.

이미 은홍을 여러 번 보냈던 금 부인은 오늘은 아예 직접 하운방을 찾았다.

목운요는 화분에 새로 기르기 시작한 잉어를 구경하고 있었다. 푸른 연꽃 사이를 유유자적 헤엄치는 잉어를 보고 있자니, 답답한 숨통이 시원스레 트이는 듯했다.

금 부인은 그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밖이 온통 난리라는 걸 알고 있는 거니? 왜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는 게야?”

익숙한 목소리에 목운요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절을 올렸다.

“헤헤, 소인이 언제 노닥거렸답니까? 채월각의 기세가 날로 뜨거워 피해 있는 것뿐인걸요.”

“은홍한테 듣자 하니 이미 계획을 세워 두었다고 하던데, 자세히 이야기해 보렴. 앞으로 채월각에 어찌 맞설 생각인지.”

목운요는 차분한 손길로 차를 따라 금 부인 앞에 살며시 내려놨다.

“그저 부인께서 제가 지은 옷을 입으시고 한 바퀴 쓰윽 돌아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거센 바람도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날 내세워도 상관없다만, 내게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방금 말씀드린 방법만으로도 충분해요.”

승리를 자신하는 목운요의 모습에 금 부인이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말은 잘하는구나. 하지만 채월각은 그저 그런 장사꾼이 아니다. 기반도 든든하고 명성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해. 보름 뒤 순무 부인께서 칠월 칠석 연회를 여신다는 첩자를 보내셨다. 그때 네 계획대로 해 보렴.”

“연회 때 제가 지어 드린 의복을 부인께서 입고 나와 주시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일 거예요.”

목운요가 손뼉을 치며 환히 웃자, 금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미간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다 너무 친하게 굴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슬며시 손을 거두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목운요를 가까이 여기고 있었나 보다. 요 며칠 동안은 목운요 같은 아이를 낳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목운요의 눈가가 밤하늘 초승달처럼 곱게 휘어졌다. 그 안에 자리 잡은 눈동자는 호수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난 그럼 네가 실력을 발휘하길 기다리고 있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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