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하운 미인방
그 시각, 반나절이 지나도록 하운방에 금 부인을 포함한 네 명이 왔다 갔다는 소리에 채월각의 담 씨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네 명? 가게 문을 연 지 반나절이 지나도록 겨우 네 명이란 말이냐? 크하핫,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 보름도 못 가서 문을 닫을 테니!”
담 씨는 쾌재를 불렀다.
금 부인이 침이 마르게 칭찬한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수방이라는 것도 결국 돈을 벌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돈도 벌지 못하는 주제에, 몇몇 부인의 칭찬 따위 하등 도움도 되지 않았다.
흥, 이제야 후회라는 걸 알게 되겠구나!
“계속 지켜보거라. 뭔가 일이 생기면 즉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어르신.”
* * *
소청은 눈앞의 은표를 보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옷 네 벌과 장신구만으로 오천 냥이라니……. 거저먹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요아야,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니니?”
“어머니도 보셨잖아요. 제가 부인들에게 그냥 드리는 것이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돈을 주고 가셨는걸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천 냥이라는 돈은 사실 그녀들에게는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귀한 보물을 천 냥에 구했다면 오히려 모두가 놀랄 것이다.
이 소식이 경릉성 안에 순식간에 퍼지면서, 목운요가 만든 책자는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총 스무 장의 미인도 중에서 네 사람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나머지 미인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이 연일 화젯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그 인기가 오죽 뜨거웠던 탓에 하운방에서는 ‘하운 미인방’이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은, 금 부인과 나머지 세 부인이었다.
최근 인수인계로 정신없이 바빴던 조운년은 간신히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동료를 만났다.
자신을 향한 동료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상대가 갑자기 공수(拱手)를 취했다.
“어이쿠! 조 대인, 정말이지 복도 많군!”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인가?”
“조 대인의 안사람께서 하운 미인방에, 그것도 일등에 올랐다고 해서 모두들 조 대인을 부러워하고 있다네. 대체 어디서 그런 이를 아내로 맞이했는지, 참으로 부럽구먼!”
“하운 미인방? 경릉성에서 미인을 뽑기 시작한 건가?”
조운년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아내가 빼어난 외모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나이가 몇인데 갓 피어난 꽃처럼 어여쁜 어린 소저들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 있겠는가?
“흥, 일하느라 바빠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 집에 가서 찬찬히 알아보게. 듣자 하니 오늘도 다섯 미인의 신분이 밝혀졌다는데, 우리 집 마누라가 뽑혔을지도 모르니 나 먼저 가 보겠네!”
그 말에 조운년은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사람들이 미인방에 대해 쑥덕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호기심만 점점 커졌다.
예전에도 경릉성에 미인방이라는 것이 돈 적 있었다. 하지만 그저 몇몇 호사가들끼리 시시덕거리는 데 그쳤을 뿐이다. 성 전체가 수군거릴 정도로 미인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호기심을 품고 집에 도착하니 금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조운년의 눈썹이 슬쩍 구겨졌다. 자신이 언제 오든 항상 부인이 문가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인은 어디 계시냐?”
“부인께서는 뒤뜰 화원에 계십니다.”
“이 시간에 화원에?”
날이 아직 덥지는 않았지만 습기 때문에 쉽게 불쾌감이 들곤 했다. 평소 더운 걸 싫어하는 금 부인은 이때쯤이면 항상 방에서 더위를 피하곤 했다.
의문을 가진 채 뒤뜰 화원에 이르자, 정자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계에서 춤추는 선녀처럼 하늘거리는 자태였다.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조운년이 넋이 나간 채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낀 금 부인은 무심코 뒤돌아섰다가 자신의 낭군을 발견했다. 토끼처럼 놀란 눈을 한 금 부인이 절도 올리지 않은 채 발간 얼굴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조운년이 자신도 모르게 흘린 침을 닦고서,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다른 대인들의 처소에서도 저마다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록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인들이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졌다.
네 사람은 모두 앞으로 하운방에서 지은 옷만 있겠노라 마음을 굳혔다.
* * *
하운방이 개업하고 열흘째 되던 날, 하운 미인방에 오른 여인은 조운년 동료의 아내인 제(齊) 부인이었다.
나이도 많은 데다 땅딸막하고 푸짐한 몸매만 놓고 보면 제 부인은 일반적인 의미의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녀가 미인방에 오르자, 조운년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금 부인과 뜨거운 시간을 보낸 그가 제 부인이 미인방에 오른 이유를 아내에게 물었다.
“미인방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아름다워서 오른 것이겠죠.”
“하지만…… 나도 제 부인을 뵌 적이 있네만, 대체 어디가 아름답다는 거요?”
그에 금 부인은 슬쩍 화난 척하며 조운년을 밀어냈다.
“옛말에 이르기를, 진정한 미인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부인께서는 과거에 부군이 돌아가신 줄 알고 혼자서 어머니와 아이들을 육 년이나 봉양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만 해도 제 부인을 따라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자 조운년이 잽싸게 금 부인을 끌어안았다.
“부인 말이 옳소, 내 생각이 모자랐구려.”
제 부인이 미인방에 올랐다는 이야기에 경릉성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제 부인이 하운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암청색 모란꽃 무늬가 들어간 옷과 정갈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장신구를 걸친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미인방에 오른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진정한 미인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과거 선행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제야 이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러한 독특한 평가 방식 덕분에 하운 미인방에 오르려는 여인네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돈을 들고 하운방에 찾아오기도 했고, 몰래 목운요와 연줄을 맺으려고 갖은 애를 쓰기도 했다.
그들은 책자에 자신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돈이 얼마나 들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제 부인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던가? 객관적으로 보면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조부 안에서 목운요는 손에 찻잔을 든 채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그래도 조용하네요.”
몸조리를 하며 금 부인의 혈색은 예전보다 좋아졌다. 피부에도 윤기가 흐르고 눈동자 역시 촉촉이 젖은 것이 손짓 하나, 눈짓 하나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네가 여기 숨어든 걸 알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날 원망할지 모르겠구나.”
“순무 부인의 연회에서 몇몇 부인의 모습을 기억해 놨다가 본뜬 것뿐인데……. 이런 사달이 날 줄은 몰랐어요. 이리될 줄 알았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 텐데…….”
“모두들 네 하운 미인방에 들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니 각별히 조심하거라. 급하게 만드느라 품질을 버리는 일은 절대로 해선 안 돼. 다들 좀 더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완벽한 옷을 입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금 부인의 충고에 목운요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인.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분을 잊지 않고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요새 목운요를 향한 주변의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전도유망한 어린 소녀가 자만심에 취하는 건 아닌지 금 부인은 내심 걱정이 앞섰었다. 작은 성공에 취해 재능과 명성이 무너져 내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나 다부진 목운요의 모습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차를 마신 후, 목운요는 금 부인의 맥을 짚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금 부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 말이 없던 금 부인이 입술을 깨물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도 마음의 준비는 했으니 솔직히 말해 주어도 된단다. 오랫동안 후사가 없는 것도 이제는 습관이 됐으니…….”
그러자 옆에 있던 은홍의 눈에서 후드득 하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부인, 목 소저도 같은 식구 아닌가요? 왜 그리 애써 괜찮은 척하시는 거예요? 오랫동안 부인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소인 눈에도 보이는걸요. 목 소저, 부디 저희 부인을 도와주세요!”
목운요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금 부인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앞으로 미인방에서 부인의 이름을 지워야 할 것 같네요.”
상심한 얼굴이었던 금 부인은 목운요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게 무슨 뜻이지?”
“부인께서는 허리가 가는 편이라서 제가 지은 옷을 걸치시면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연약해 보였는데,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할 것 같아서요. 시월쯤 되면 배가 남산만큼 부풀 테니, 앞으로 옷을 지을 때는 품을 넉넉히 만들도록 할게요.”
목운요의 말에 금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운요야, 그 말은 설마……!”
목운요가 금 부인에게 절을 올리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부인, 회임을 축하드리옵니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니 더더욱 몸조리에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부디 건강한 아기씨가 태어나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