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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9화 (29/442)

29화 저마다의 아름다움

한편 하운방을 둘러본 금 부인은 이곳이 한때 주루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 층은 계산대 외에 정교한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담황색 구름 모양의 융단이 깔려 있어 정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멋을 풍겼다.

그렇게 구석구석을 살피던 금 부인은 불현듯 옷 한 벌, 옷감 한 필도 벽에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째서 옷이 보이지 않지?”

“금란, 금 부인을 위해 준비한 옷을 가져와 주세요.”

“예, 소저.”

“날 위해 준비한 옷이라고?!”

금란이 준비한 옷을 펼쳐 보이자, 금 부인의 얼굴이 반가움에서 경악으로 변했다.

“이, 이건…… 책자에 있던 달빛 아래서 춤추는 여인이 걸쳤던 옷 아니니?”

“그건-”

목운요가 입을 열려던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세 명의 부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금 부인을 발견한 세 사람은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금 부인을 뵙습니다.”

“조 부인, 진 부인, 오 부인. 일어들 나세요.”

금 부인은 세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목운요를 직접 소개해 주었다. 목운요도 세 부인에게 일일이 인사를 올리는데, 조 부인이 금란이 들고 있던 옷을 보더니 즉시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책자에서 달을 보며 춤을 추는 미인이 걸쳤던 옷 아닌가? 참 곱기도 하구나. 그러고 보니 이 옷은 금 부인을 위해 맞춤 제작한 것 같은데?”

“오늘 저희들이 눈 호강하는 날인가 봅니다. 금 부인의 춤 솜씨는 경릉성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고 들었는데. 이 옷을 입고 춤을 추시는 부인의 자태는 월하미인보다 몇 배는 아름다우실 겁니다.”

“이 사람들, 그만 놀리게. 젊은 시절에 춤을 배운 적은 있으나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이란 말인가?”

금 부인은 작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도 금 부인의 춤 솜씨가 빼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마침 옷도 지었고 부인들도 계시니, 옷을 갈아입으신 뒤에 춤을 보여 주시면 안 될까요?”

목운요의 건의에 다른 부인들도 맞장구를 쳤다.

“부탁드려요, 금 부인. 얼른 저희 눈 호강 좀 시켜 주세요.”

주변에서 다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금 부인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갈아입고 오죠. 운요야, 여기에 옷을 갈아입을 만한 곳이 있니?”

“당연히 준비해 뒀어요, 부인. 저를 따라오세요.”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세 부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소녀,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예를 차릴 것 없다. 얼른 가서 금 부인이나 도와드리렴.”

이내 목운요는 금 부인을 모시고 이 층 방으로 들어갔다.

“운요야, 네 안목이 참으로 뛰어나구나. 내 침실도 여기 있는 것처럼 고치고 싶은걸, 후후.”

방 안에는 흰 양털로 짠 양탄자와 병풍, 의자, 화병, 장식품이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벽에는 전신을 비출 만큼 커다란 구리거울이 걸려 있었는데, 그 옆에 단장하는 데 필요한 화장품이 죽 늘어서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살짝 손만 보겠습니다. 부족한 실력이니 비웃지 말아 주세요.”

목운요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손수 금 부인의 시중을 들었다.

원체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닌 금 부인이었지만, 가는 허리를 강조하는 옷 때문에 그녀는 숨을 살짝 들이쉬어야 했다.

“허리 부분이 조금 조이는 것 같으니 조금 느슨하게 손보는 것도 좋겠구나.”

하지만 목운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금 부인을 화장대로 이끌었다. 금 부인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일부러 거울을 제 몸으로 슬쩍 가리기도 했다.

“부인, 뜬금없이 드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부인의 머리와 머리 장식을 손봐 드려도 될까요?”

“그래, 네 솜씨 좀 보자꾸나.”

그에 목운요는 가장 먼저 나무함을 꺼냈다. 첫 번째 칸을 열자 책자에서 본 것과 똑같은 머리 장식이 있었다.

긴 머리를 풀어 부드럽게 빗은 뒤에 높게 틀어 올려 황금 비녀를 꽂고, 금 부인의 눈썹을 섬세한 손길로 그리기 시작했다.

“부인, 이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목운요의 말에 금 부인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구리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게…… 나라고?”

“그럼요, 부인.”

“내, 내가 이런 모습이라니…….”

항상 침착함을 잃지 않던 금 부인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더니, 진심으로 기쁜 듯 두 눈을 어린 소녀처럼 반짝거렸다. 그녀가 구리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돌아보며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운요야, 이 옷을 내가 꼭 사야겠구나.”

그때, 문가에서 은홍이 문을 살짝 두드렸다.

“부인, 부인들께서 얼른 내려와 보시라고 재촉이십니다. 옷을 다 갈아입으셨는지요?”

“예, 이제 내려갈 거예요.”

* * *

한편 귀부인들은 아래에서 꽃차를 마시고 있었다. 물에 잠긴 장미꽃봉오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촤르륵 퍼져 나가는 게 보기에도 좋았다.

자신들도 돌아가서 꽃차를 끓여 마셔야겠다며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자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달 아래 춤추는 미인이 걸친 옷은 화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속세를 초탈할 듯 신비한 멋을 풍겼다. 치맛자락에는 금사로 달맞이꽃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은은한 달빛처럼 단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멋을 풍겼다.

옷을 걸친 금 부인은 마치 월하선녀 같았다. 꽉 조인 허리, 보통 옷보다 긴 소매와 치맛자락은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늘거렸다. 그 자태가 무릇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여기에 머리에 달린 황금 비녀와 섬세한 화장까지 더해져 금 부인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여러 사람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자, 금 부인은 쑥스러운 듯 옷소매로 허리 옆을 슬쩍 가렸다.

“허리가 좀 끼는 것 같은데, 여러분이 보시기엔 괜찮나요?”

조 부인 등은 퍼뜩 정신을 차리곤 금 부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괜찮다 뿐입니까? 목 소저의 손재주가 대단하긴 하네요! 누가 봐도 이 옷은 금 부인에게 딱입니다!”

진 부인과 오 부인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옷에서 아무런 꼬투리도 찾아낼 수 없었다.

금 부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조 부인이 부럽다며 입을 열었다.

“금 부인께서는 운도 좋으십니다. 목 소저가 옷도 알아서 챙겨 주고. 앞으로 저희도 여기에 자주 드나들어야겠네요.”

조 부인의 말투에서 질투가 느껴졌지만 금 부인은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유쾌해졌다.

“여러분이 운요의 장사를 도와주면 옷 한 벌 못 얻어 입겠습니까?”

“예, 그래서 앞으로 전 하운방의 옷만 입으렵니다.”

그 말에 목운요가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금 부인, 그리고 세 분 부인……. 사실 여러 부인들께 사죄할 일이 있습니다.”

“사죄라니?”

“사실 소인이 하운방을 세울 때 의상에 대한 영감을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몇몇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부디 부인들께서 용서해 주세요.”

“네 말은, 책자에 수놓아진 게 우리라는 거니?”

“예, 금 부인께서는 춤 솜씨가 빼어나다고 해서 월하선녀를 떠올리며 수를 놓았습니다. 조 부인께서는 꽃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꽃 아래 살짝 잠이 든 미인의 옷과 장신구는 모두 조 부인을 떠올리며 만든 것이랍니다.”

“나를 말이냐?”

조 부인의 얼굴에 희색이 돌자, 진 부인과 오 부인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우리는?”

“진 부인께서는 비파를 잘 타시니, 앉아서 비파를 연주하는 미인은 부인을 본뜬 것입니다.”

오 부인이 박수를 치며 탄성을 질렀다.

“알겠다. 그럼 비 내린 후원에서 금을 만지고 있는 건 나겠구나!”

“역시 현명하십니다, 부인.”

“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우리 옷도 보여 줘. 당장 입어 보고 싶구나!”

오늘 하운방에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목운요가 만든 옷을 입은 금 부인은 열여섯 이팔청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리고 가녀려 보였다.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목운요의 옷을 금 부인 혼자만 입은 것이 은근 배가 아팠는데, 자신에게도 목운요의 옷을 입을 기회가 찾아오다니!

한 시진이 지난 후에야 목운요는 세 부인의 치장을 모두 끝냈다. 세 사람이 일 층으로 내려오자 금 부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빛났다.

“여기 계신 세 선녀님들이 놀라실까 봐 목소리도 크게 못 내겠습니다.”

그녀들이 걸친 옷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다.

세 부인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조 부인은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답게 목운요가 지은 연분홍색의 옷을 걸치자, 꽃밭을 오가는 것처럼 화려한 외모가 더욱 빛을 발했다.

그에 비해 진 부인의 옷은 보수적인 편이었으나, 연한 옷감 위에 붉은 장미가 수놓아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진 부인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듯한 옷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한편 연녹색 옷감을 걸친 오 부인은 순결한 백합을 떠올리게 했다. 보일 듯 말 듯 흩어지는 치맛자락이 마치 흩날리는 꽃잎과도 같아 순수하면서도 요염해 보였다.

사실 오 부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신의 결점을 교묘하게 숨겨 주는 옷의 형태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손이 투박한 편이었는데, 이 옷은 옷소매가 넓은 편이라 투박한 손을 감추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네 부인들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저마다 자신의 옷을 살펴보느라 정신없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녀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목운요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인들. 소녀가 따로 머리와 화장을 손봐 드린 터라, 다시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준비하려면 시간이 많이 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 괜찮으시면 오늘은 이 옷을 입고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금 부인은 자신의 허리를 슬쩍 가리더니 몰래 숨을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그래요. 다시 갈아입으려면 귀찮으니 이대로 돌아가기로 하죠.”

금 부인의 말이 떨어지자 나머지 세 사람은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편 하운방 앞을 지나던 행인들은 네 부인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모두 자신들이 아는 얼굴들인데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 네 사람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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