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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8화 (28/442)

28화 신장개업

“금 씨, 듣자 하니 금 부인께서 주루 문을 닫으실 거라고 하던데, 이곳을 내게 빌려주지 않겠나?”

담 씨는 채월각의 규모를 키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일호 분점으로 일찌감치 점찍어 둔 상태였다.

“어이쿠, 이미 세를 놨습니다.”

“세를 놨다니? 누구한테 말인가?”

“방금 뵙지 않았습니까?”

“그 말은…… 저 계집년이?!”

그 순간, 금 씨가 웃음기를 거두곤 싸늘한 얼굴로 포권(抱拳)을 취했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음에 같이 차나 한잔하시죠, 그럼.”

냉정히 사라지는 금 씨의 모습에 담 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목운요가 뭐라고 금 부인과 금 씨 모두 저리 싸고돈단 말인가?

* * *

목운요와 소청은 사흘 동안 상의한 끝에 수리할 곳을 그림으로 작성했다. 도면을 금 씨에게 건네고 나자 본격적인 개장 준비가 시작되었다.

열 명의 소녀 중에서 금란과 금교의 손재주가 가장 뛰어난 편이라, 목운요는 두 사람에게 가게 진열을 돕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할 일을 나눠 주었다.

그렇게 개장을 앞두고 너 나 할 것 없이 바쁜 나날이 흘러갔다.

그런 와중 유독 소청만이 한가했다. 그게 마음에 쓰였던지 소청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아야, 내가 도와줄 일 없니?”

목운요는 어머니를 마주한 순간 마음이 시렸다. 모두 제 탓이다. 개점 준비에 바빠서 어머니를 신경 쓰지 못했다.

“어머니, 지난번에 제가 그랬잖아요. 어머니는 큰 주인이시라고요. 그러니까 가게 이름을 지어 주셔야죠.”

“이름 같은 건 지을 줄 모르는데…….”

“아뇨, 어머니께서 이름을 지어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가게에 달 간판이 없을 테니까요.”

그에 소청이 한참 뒤에야 짝 하고 손바닥을 쳤다.

“저번에 서책을 잔뜩 사 왔는데, 거기에 쓸 만한 이름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야겠구나.”

“네, 책에는 분명 우리 가게에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 거예요.”

그러자 소청이 후다닥 달려가 서책을 잔뜩 가져오더니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요아야, 채하각(彩霞閣)은 어떠니?”

“좋아요, 좋아.”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소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채월각이랑 이름이 비슷하니, 괴팍한 그곳의 주인이 네게 시비를 걸지도 몰라. 으음, 여춘방(如春坊)은 어떨까?”

“뭐 그것도 좋네요.”

“아냐, 아냐. ‘춘’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러니 춘수방도 문을 닫은 거고.”

목운요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어머니가 천천히 생각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삼 일 후, 소청은 더 이상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손에 들고 있던 서책을 탁 하고 내려놨다.

“아무리 해도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문득 소청의 시선이 펼쳐져 있던 책의 한 구절에 꽂혔다. 거기에는 ‘하(霞)’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 글자도 괜찮은걸. 하…… 운…….

“요아야, 하운방(霞雲坊)은 어떠니?”

“하운방. ‘무지개로 옷을 짓고, 바람으로 말을 삼고, 구름의 신이 어지러이 내려오네.’ 이백(李白)의 시인가요? 마음에 들어요! 역시 어머니세요!”

목운요는 곧장 탁자로 가서 종이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

사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필체를 흉내 내는 것에 능했다. 회귀 전 월왕부에 갔을 때 방 안에 걸려 있는 서화를 본 적이 있는데, 가게에 달 편액을 생각하니 갑자기 그 서체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녀가 하운방이라는 세 글자를 일필휘지로 써 냈다.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듯 거침없이 쓴 서체는 적군을 베는 거친 장수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세 글자를 쓴 뒤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소씨 가문과 진왕의 숨통을 끊어 낼 검이었다. 살기 넘치는 이 서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어머니, 이것 보세요. 마음에 드세요?”

“내가 서체 같은 건 잘 모르지 않니? 네가 마음에 들면 됐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소청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저 서체로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외려 쫓아내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가 저리 좋아하니 어쩔 수 없었다.

목운요는 무척 만족스러워하며 육냥에게 이걸 가져다 편액으로 만들라고 했다.

* * *

금 부인이 주루를 닫고 가게를 목 소저에게 빌려줬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금 부인은 소녀가 지어 준 옷을 입고 나비를 불러들인 일로 황상을 흡족케 했다. 그 일로 조운년이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순무 부인마저 목운요가 지은 옷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았는가!

그런 까닭에 목운요가 가게를 차린다는 이야기에 모든 이들은 가게 수리가 얼른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목운요한테서 맞춘 옷 없이 연회에 갔다가는 망신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약 보름 후, 경릉성 곳곳에 두꺼운 책자가 보내졌다. 책자의 겉면에는 ‘하운방’이라는 세 글자가 금박으로 떡하니 박혀 있었다.

글자만 보면 하운방이라는 곳이 의뢰를 받고 사람을 해치는 살인자 집단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서슬 퍼런 글자가 새겨진 책자를 펼친 사람들은 그 안에 든 것을 보곤 깜짝 놀랐다. 책자 안에는 종이가 아니라 옷감이 들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하나같이 어여쁜 미인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거울을 보고 있는 여인, 창가에 기대 곱게 단장 중인 여인, 꽃 아래 눈을 감고 있는 여인, 달 아래서 춤추는 여인…….

그 모습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하나같이 경국지색이라 부를 만큼 고혹적인 미인들이었다.

책자를 받아 본 많은 귀부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인도 같은 걸 줘서 뭘 어쩌라는 것인가? 그들의 자태에 질투나 하라는 것인가?

하지만 책자와 함께 딸려온 첩자를 펼친 여인들은 이내 환한 미소를 짓더니, 던져두었던 책자를 다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옷감 위의 미인들이 자수로 일일이 수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장신구, 부드럽게 휘감기는 의복 모두 하운방에서 살 수 있다니! 옷감 속 미인들이 걸친 옷과 장신구를 걸치면 자신도 왠지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수많은 사람들은 하운방이 대체 언제쯤 문을 여는지 목이 빠져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부 안에서 금 부인은 손에 든 백자(白瓷)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백자 안에는 장미꽃봉오리가 소담스레 놓여 있었다. 슬쩍 향을 맡자 진한 향기가 후욱 밀려들었다.

금 부인은 눈을 반짝이며 목운요를 쳐다봤다.

“요새 가뜩이나 바빠서 정신없을 텐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을 뭐하러 직접 했느냐?”

“부인께서 차를 좋아하시는데, 찻잎은 성질이 차니 몸에 좋지 않잖아요. 이건 마시면 기와 혈을 보해 주고 피부도 곱게 해 준답니다. 특히 월경에 도움이 되지요. 일단 이것만 드리니, 앞으로는 은홍 언니에게 분부해 주시면 될 거예요.”

금 부인이 자신도 모르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백자 안에 든 것은 자그마한 꽃봉오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뜻과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둘러 은홍에게 꽃봉오리로 차를 끓이라고 했다. 그윽한 꽃향기에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운요야, 듣자 하니 네 하운방이 문을 열지 않아 목이 빠진 귀부인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더구나.”

금 부인 역시 책자를 받았다. 그리고 책자를 다 훑어본 후 목운요의 섬세함에 다시 한번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목운요는 조심스레 초대장을 내밀었다.

“사흘 뒤에 가게 문을 열어요. 꼭 오시라는 뜻에서 초대장을 직접 들고 온 것은 아니니, 시간이 되시거든 한번 들러 주시어요.”

“당연히 가야지.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으니 내 반드시 가마.”

“헤헤, 그럼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 부인.”

* * *

사흘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가게 문을 여는 당일. 소청과 목운요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금 씨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후다닥 달려왔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가게 문을 정식으로 열어도 됩니다.”

소녀들 역시 꽤나 흥분된 표정이었다. 앞으로 각자 옷을 한 벌씩 지을 때마다 열 냥을 받게 될 거라고 미리 귀띔해 두었기 때문이다. 열 냥이면 보통 가정에서 일 년 내내 배곯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돈이었다. 노비 주제에 어디서 이런 대우를 받는단 말인가?

그때 목운요가 소청을 향해 미소 지었다.

“어머니, 오늘은 가게 문을 여는 길일이니 첫 번째 폭죽은 어머니가 터뜨려 주세요.”

“하지만…… 그래도 될까?”

그동안 목운요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소청이지만, 신중하다 못해 소심한 성격은 여전했다.

목운요는 소청 뒤로 가선, 문을 향해 쓰윽 밀었다.

“당연하죠. 어머니가 큰 주인이시니 당연히 첫 폭죽도 어머니가 붙이셔야죠!”

힘내라는 듯 두 눈을 반짝이는 목운요의 모습에, 소청은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앞으로 나아갔다.

이내 폭죽에 불을 붙이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져 나왔다. 첫 번째 폭죽이 다 터지자, 목운요가 자신도 폭죽에 불을 붙였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요란한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목운요는 편액에 덮어 두었던 붉은 비단을 젖혔다. 금박으로 새긴 커다란 세 글자는 한 획, 한 획 박력과 기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글자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 이제는 개업해도 될 것 같아요!”

“늦은 줄 알았더니 딱 맞춰서 왔구나.”

그때, 은홍을 비롯해 몇몇 시녀를 이끌고 금 부인이 환한 웃음과 함께 나타났다.

목운요는 황급히 소청을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부인을 뵙습니다. 어머니, 이분이 절 돌봐 주시는 금 부인이십니다. 금 부인, 이쪽은 제 어머니세요.”

소청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금 부인, 부족한 딸을 돌봐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그렇게 예를 갖출 필요 없네. 운요한테 들으니 내가 자네보다 몇 살 위라고 하던데, 앞으로 동생이라고 불러도 되겠나?”

“소인, 비천한 신분인데 어찌 부인의 동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에 금 부인이 소청의 손을 끌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내 동생이 되어 주면, 운요가 언제 내 옷을 지어 주려나 목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말일세. 어떠한가?”

눈치도, 언변도 뛰어난 금 부인의 몇 마디 말에 소청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목운요는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여러 부인들을 상대하는 중에 어머니가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금 부인이 어머니를 동생이라고 부른다면 경릉성에서 어느 누구도 어머니에게 무례하게 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유일한 걱정거리를 덜어 준 금 부인의 마음 씀씀이에 참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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