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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7화 (27/442)

27화 자수방의 탄생

“부인, 무슨 일이신가요?”

며칠 전만 해도 귀티가 줄줄 흐르던 금 부인의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져 있었다. 허옇게 뜬 얼굴에, 미간 사이에는 짙은 수심이 얽혀 있었다.

목운요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금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후다닥 달려와 손을 덥석 쥐었다. 그러고는 주변의 시녀들에게 모두 물러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시녀들이 모두 물러간 것을 확인한 금 부인이 목운요를 제 옆에 끌어다 앉혔다. 초췌한 얼굴의 그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운요야, 내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내 평생 이리 당하고만 살 뻔했어.”

언제나 존댓말로 선을 그었던 금 부인이 처음으로 건넨 반말이었다. 그것이 목운요를 완전히 믿는다는 걸 보여 주는 듯했다.

항상 당당해 보이던 금 부인의 넋이 나간 모습에 목운요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부인, 무엇을 알아내신 건가요?”

“지난번에 네가 간식이 쓰다고 해서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조사해 봤다. 알아보니 천층초라는 것이 들어 있었는데, 내가 오랫동안 후사를 보지 못한 게 아무래도 장기간 그것을 복용한 탓인 것 같다.”

금 부인은 그동안의 일을 숨김없이 모두 털어놨다.

“내 비록 서녀(庶女, 첩의 딸)지만, 자라 오면서 한 번도 괄시라는 걸 받은 적이 없다. 출가할 때 가문에서 혼수도 넉넉히 챙겨 주었지. 한데 내가 그저 누군가의 손에 놀아났을 줄이야…….”

목운요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감히 금 부인의 간식에 수작을 부린 것도 모자라, 오랫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걸 보면 금 부인이 전혀 경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부인, 너무 괴로워하실 것 없어요. 이제라도 알아냈으니 다행이죠. 앞으로는 원흉을 찾아 단칼에 쳐 내고, 후사를 보는 일만 생각하세요.”

그 말에 금 부인은 쓴웃음을 짓더니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신 훔쳐 냈다.

“그게 어디 쉽겠느냐? 그리 오랫동안 천층초를 먹어 왔으니 몸이 이미 다 상했을지도 모르는데…….”

“부인께서 평소 선행을 베푸셨으니 천지신명께서도 부인을 버리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 부인께서는 그저 몸조리에 신경 쓰세요.”

금 부인은 목운요의 손을 꽉 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요야, 혹 몸을 치료할 방법이 있니? 후사만 볼 수 있다면 네가 하라는 건 뭐든지 하마!”

결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금 부인의 눈빛에 목운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술에 대해선 그저 주워들은 게 고작일 뿐이지만, 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최선을 다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금 부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금 부인은 자신이 제대로 된 ‘한 수’를 놨다는 것을 확신했다.

목운요는 그저 한 입만 먹어 보고도 간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녀가 의술에 대해 안다는 뜻이리라.

누군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원이라고 해서 매수당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게다가 이 일이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친정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운요야,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부인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염치 불고하고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말해 보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꼭 도와주마.”

목운요의 말에서 금 부인은 다시 한번 자신이 치료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목운요 저 아이는 지키지 못할 말 따위 하지 않는다. 자신을 치료할 자신이 있으니 대놓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리라.

“부인께서 경릉성에서 주루를 운영 중이시라 들었습니다. 망강루 때문에 장사가 잘되는 편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부인의 주루를 빌리고 싶어요. 물론 값은 제대로 쳐 드리겠습니다.”

목운요는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금 부인의 주루를 점찍어 놨다. 위치도 좋은 데다 금 부인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채월각에서 자신을 함부로 해코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 주루 때문에 그동안 날린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 일찌감치 치워 버리고 싶었지. 네가 마음에 든다면 그냥 가지려무나.”

금 부인은 아까보다는 마음이 조금 진정된 듯, 은홍에게 집문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부인. 부모 형제 사이에도 돈 문제는 확실히 하라고 하잖아요. 그리 비싼 걸 공짜로 내주신다면 저는 온종일 불안에 떨어야 할 게 분명합니다.”

금 부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긴 했지만, 엄연히 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금 부인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하자꾸나. 다만 지금의 가격은 거품이 낀 것이니, 칠 할만 다오. 더 이상 거절하지 말거라. 안 그러면 진짜로 화낼 테니!”

그에 목운요는 환하게 웃으며 금 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예! 나중에 제가 큰돈을 벌면 부인께 꼭 사례하겠습니다.”

애교 섞인 모습에 금 부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해코지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목운요 또래의 아이가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임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아래 지장을 찍었다. 이렇게 해서 목운요의 자수방이 마침내 간판을 달 수 있게 됐다.

계약을 마친 후 목운요는 붓과 종이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상한 몸을 치료할 방법과 주의 사항을 적기 위해서였다.

“부인, 평소에도 주의하셔야 해요. 이제 곧 여름이라 한기를 쫓기에 좋으니, 잘 관리하면 금방 쾌차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알았다.”

이후로도 한창 이야기꽃을 피운 뒤에야 목운요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소청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 빨리 오세요. 저희가 쓸 자수방을 보여 드릴게요!”

“천천히, 천천히 가렴.”

“앞으로 여기서 큰돈을 벌게 될 테니 당연히 얼른 가 봐야죠!”

마차에 탄 목운요가 소청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연신 쫑알거렸다.

“어머니, 가게 이름은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요? 어머니가 큰 주인이면 제가 작은 주인이니까-”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에 소청도 절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렴.”

목운요의 눈가가 보기 좋게 휘어졌다.

마차에서 내리자, 주루의 총관인 금전(金錢)이 재빨리 달려 나와 목운요에게 공손히 절을 올렸다.

“소인 금전, 소 부인과 목 소저를 뵙습니다. 금 부인께서 두 분을 모시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금 부인의 꼼꼼한 일 처리에 목운요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주루를 빌린다는 계약서를 작성하자마자 금 부인은 사람을 시켜 주루의 총관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한 듯했다.

“금 총관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마음에 든다. 괜찮은 사람이면 계속 일하게 둬도 좋을 것 같았다.

“과찬이십니다, 소저.”

인사를 마친 목운요가 소청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루는 삼 층이었는데, 일 층은 탁 트인 구조였고, 이 층은 정교하고 화려한 방들이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삼 층은 밖에서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어머니,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안 들 리 없다, 다만 이런 곳을 빌리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임대료가 비싸지 않니?”

“여긴 금 부인께서 운영하시는 곳인데, 저렴하게 빌려주시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원래대로라면 이곳의 일 년 임대료만 이천 냥에 달했을 것이다.

“금 부인께서 널 살뜰히 돌봐 주시니 정성껏 보필해야겠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자수방을 세우면 금 부인의 옷을 공짜로 지어 드릴 거예요.”

“그래그래. 그리고 새해가 될 때마다 선물도 잔뜩 보내야 한다.”

그 말에 목운요가 어머니 말대로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금 씨가 주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인, 소저. 주루를 수리할 곳이 있거든 소인에게 일러 주십시오. 사람을 시켜 보름 안에 개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장식도 모두 화려하고 정교한데 고칠 곳이 있을까요? 요아야, 네 생각은 어떠니?”

“자수방은 여인네들만 상대하게 될 테니 조금 손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서 수리가 필요한 곳에 대해 상의해 봐요.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금 총관님에게 보내 드리면 될 것 같아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족하며 주루의 문을 나오는 순간, 마차에서 내리고 있는 채월각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상대 역시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냅다 뛰어왔다.

“네, 네 이…….”

그에 목운요가 웃음으로 응대했다.

“채월각 어르신,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흥, 목 소저처럼 잘나가지는 못한다네.”

춘수방만 사라지면 장사가 더 잘될 줄 알았더니 최근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운요에게 옷을 지어달라며 돈을 싸 들고 장사진을 칠지언정, 채월각의 옷은 사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눈앞에 있는 계집년 때문이렷다!

“어르신, 과찬이십니다. 저 같은 거야, 어르신 손가락 하나도 꺾지 못하는걸요.”

태연한 그 대답에 채월각 주인은 분에 차서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검을 쥔 육냥이 다가오자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앞으로 목 소저와는 같은 길을 걷게 될 테니 몸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을 여러 번 뵈었는데도 아직까지 존함도 알지 못하네요.”

목운요가 자신의 위협에도 모른 척 넘어가자, 채월각 주인은 부아가 치밀어 거칠게 이름을 뱉어 냈다.

“담로(譚魯)!”

“아, 담 어르신이셨군요. 오늘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다음에 차나 한잔하시죠.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맹랑하게 떠나가는 목운요의 모습에, 담 씨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가 간신히 진정하고는 금 씨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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