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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4화 (24/442)

24화 섬세함의 승리

* * *

한편 순무 부인은 금 부인이 옷을 가지고 왔다는 소식에 시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자신을 향해 절을 올리려는 금 부인을 순무 부인이 일으켜 세웠다.

“우리 사이에 절이 다 뭐랍니까? 날도 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우연히 만난 소저의 옷을 부인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실 줄 몰랐습니다. 소인이 엉뚱한 사람을 소개해 부인의 기분을 망치게 하는 건 아닌지 지난 며칠 동안 고민했답니다.”

“옷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죠. 금 부인께서 그리 걱정할 줄 알았다면 옷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걸 그랬나 봅니다.”

쉰 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순무 부인의 자태는 무척 고았다.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공들여 가꾼 티가 역력했다. 순무 부인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더니 얼른 옷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은홍, 옷을 보여 드리거라.”

펼쳐 놓은 옷을 살피는 순무 부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치마와 저고리는 짙은 남색을 띠고 있는 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짙은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즉, 척 봐도 투박해 보였다.

금 부인은 순무 부인의 표정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소인이 그 소저에게 옷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이 옷의 문양을 흉내 내서 연회에 입고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입고 나서야 그 옷에 담긴 비밀을 깨달았답니다.”

순무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망감을 감출 순 없었다. 어쨌든 옷을 가져다준 금 부인의 체면을 생각해서 일단 한번 걸쳐 보기로 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 직접 입어 보면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말을 마친 순무 부인이 시녀에게 옷을 들고 따라오라며 눈짓했다.

* * *

금 부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이번 일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을 쉬었다.

한데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순무 부인이 환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문을 열자마자 순무 부인은 무척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금 부인, 정말 고마워요. 이 옷, 정말 마음에 드네요!”

방금 전과는 반응이 확연히 달라진 순무 부인을 보며 금 부인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금 부인은 순무 부인을 자세히 살폈다.

투박하고 답답해 보였던 옷은 실제로 걸치고 나니 전혀 달라 보였다. 일단 짙은 남색 덕분에 한결 날씬해 보였다. 남색 특유의 단정함은 화려하게 치장했을 때보다 훨씬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부인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옷을 지은 소저에게는 큰 영광일 겁니다. 돌아가서 소인이 상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심스레 치맛자락을 쓰다듬는 순무 부인이 눈을 반짝였다.

“조만간 그 소저도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대체 어떤 소저이길래 이리 세심하게 옷을 지은 건지 직접 보고 싶군요.”

“예, 소저를 데리고 들르겠습니다.”

순무 관저를 나설 때까지 금 부인은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은홍에게 입을 열었다.

“은홍, 네가 보기에 순무 부인께서 걸치신 옷에 특별한 점이 있더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인은 도통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입고 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아 보이긴 했는데, 순무 부인께서 그리 기뻐하실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순무 관저에 머무는 내내 순무 부인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금 부인의 입꼬리가 스윽 하고 올라갔다.

“시간을 내서 어찌 된 것인지 물어봐야겠구나.”

이튿날, 순무 부인으로부터 첩자(帖子)가 내려왔다. 거기에는 목운요의 것도 들어 있었다. 금 부인은 첩자를 목운요에게 전해 주라고 은홍에게 일렀다.

은홍이 첩자를 들고 문에 들어섰을 때, 목운요는 소녀들에게 수놓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은홍을 발견한 목운요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은홍 언니, 무슨 일이세요? 얼른 들어와 앉으세요.”

은홍은 정성껏 손본 집안 곳곳을 슬쩍 살폈다.

“이런 곳에서 수놓는 걸 배우는 거야? 와, 내가 다 부러운걸!”

“저야말로 언니가 부러운걸요. 부인을 모시고 싶어도 그런 기회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 부인께서 무슨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이게 뭔지 알아? 순무 부인께서 네가 지은 옷이 마음에 든다며 널 꽃놀이에 초대하겠다는 첩자란다!”

첩자를 바라보는 목운요의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제, 제가 받아도 될는지 모르겠어요.”

“당연히 받아야지. 그리고 이건 은표야. 순무 부인께서 네게 상을 내리셨다고 하더라.”

대여섯 장짜리의 은표는 총 이백 냥이었다. 목운요가 은표를 세어 보더니 한 장을 은홍에게 건넸다.

“언니, 이건 언니 가지세요.”

갑자기 내밀어진 은표에, 질투 어린 눈빛이 감격스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목운요가 미소를 지은 채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은홍이 입가를 슬쩍 깨물더니 잽싸게 은표를 소매 안으로 거둬들였다.

“바쁜 것 같으니 그만 갈게.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은홍을 배웅한 뒤, 목운요는 차분한 표정으로 첩자를 옆에 놓은 채 옷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어머니가 사 온 털 뭉치들이 발치에서 떠날 줄 모르고 장난을 쳤다. 꽤나 성가시게 굴자, 목운요가 슬쩍 옆으로 발을 옮겼다.

“이쪽으로 더 오기만 해 봐. 확 잡아먹을 테니! 육냥, 이 녀석들을 어머니한테 가져다드려!”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나타난 육냥에, 털 뭉치들은 잽싸게 뒤뜰로 도망쳤다.

그 모습에 목운요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옥구슬 굴러가듯 경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목운요에게선 더 이상 짙은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노을처럼 눈부신 희망과 기대감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뒤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던 육냥의 입가가 흐릿하게 휘어졌다.

* * *

꽃놀이 당일, 목운요는 난초가 수놓아진 물빛 저고리에, 같은 색 비단 치마를 걸쳤다. 안 꾸민 듯하면서도 꾸민 차림새는 단아하면서도 청순해 보였다.

금 부인이 함께 연회에 가자고 했었기에, 그녀는 장미 면약을 챙겨 조부로 먼저 향했다.

장미 면약을 본 금 부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지난번에 준 게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할까 했는데, 먼저 챙겨 줘서 고마워요.”

“써 보니 괜찮으시던가요?”

금 부인은 자신의 뺨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앞으로 소저의 장미 면약만 쓸 생각이랍니다.”

고작 며칠에 불과했지만, 목운요가 건넨 면약 덕분에 피부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윤기를 머금었다.

“매번 칭찬만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 사용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고마워요. 참, 그건 그렇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순무 부인께 지어 드린 옷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건가요? 순무 부인께서 그리 좋아하시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그건 모두 부인 덕분이랍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제가요? 하지만 난 소저를 도운 적이 없는데…….”

“예전에 부인께서 지나가는 말로, 순무 부인께서 차가운 음식을 유독 좋아하신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답니다.”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거랑 옷이랑 무슨 상관인 거죠?”

“강남의 날씨가 아무리 덥다고 하지만, 찬 음식을 유독 찾으시는 걸 보면 순무 부인께서는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여름이 되면 더 힘드시겠죠. 그렇다고 고상한 귀부인께서 속이 비치는 옷을 입을 수도 없고……. 그래서 고심 끝에 단아하면서도 바람이 잘 통하는 옷감으로 옷을 지었습니다.”

목운요의 설명에 금 부인은 평소 땀을 자주 흘리던 순무 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간파한 어린 소녀에게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듯 한 말에서 그런 사실을 알아내다니……. 순무 부인께서 왜 그리 기뻐하셨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귀부인들은 항상 옷차림이나 화장을 신경 써야 하죠. 땀 때문에 화장이 지워지면 매번 고쳐야 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랍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겸손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리는 목운요의 모습에, 금 부인은 한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순무부로 향했다. 두 사람이 순무부에 도착했을 때쯤엔 많은 손님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운요는 금 부인을 따라 순무 부인에게 인사를 올린 뒤, 그녀의 모습을 재빨리 훑었다. 순무 부인은 자신이 지은 짙은 남색 옷을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 장식과 옅은 화장을 곁들이자, 단아하면서도 고상한 멋이 흘렀다.

“네가 금 부인이 칭찬하던 그 소저로구나.”

“소녀 목운요, 부인을 뵙사옵니다.”

다시금 인사 올리는 목운요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순무 부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어쩐지 금 부인의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했더니, 네가 지은 옷이 무척 마음에 들더구나. 앞으로도 내 옷을 지어다오. 잘 부탁한다.”

“송구스럽습니다, 부인. 그보다 은자를 너무 많이 주셔서…….”

“후후, 그것은 수고비니 안심하고 받아도 된다. 내 옷만 잘 지어 주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 부인.”

순무 부인의 말대로다. 귀부인들은 의복이나 장신구, 화장품을 사는 데 매년 수천 냥을 쏟아붓곤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옷을 지어 돈 버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이내 순무 부인이 금 부인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 눈치 빠른 목운요가 시녀를 따라 물러났다. 연회장의 맨 끝이 그녀의 자리였다.

연회가 시작되자, 참석자 모두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목운요도 이번 기회에 여러 귀부인과 소저들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들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 줄 것이다. 각자의 외모와 특징을 잘 기억해 놔야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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