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평범한 옷
* * *
이튿날, 수수한 차림의 소녀 열 명이 목운요를 찾아왔다. 열서너 살로 보이는 소녀들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목운요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목 소저, 소저의 시중을 들라는 부인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시중이라뇨? 오히려 제가 여러분한테 신세를 져야 할 텐데요.”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목운요는 소녀들의 솜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소녀들 모두 기본기가 튼튼한 편이었다. 이것만 봐도 금 부인이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자, 이거 받으세요. 여기에 수놓는 방법이 잔뜩 적혀 있으니 살펴보시고, 잘 모르는 곳이 있거든 나한테 물어보면 돼요.”
“예.”
소녀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종이를 들여다봤다. 목운요가 지은 옷이 연회에서 큰 주목을 끌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소문의 주인공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라니, 잘만 하면 자신들도 이름을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소녀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소녀들이 각자 공부에 매달려 있는 동안 목운요도 손을 가만두지 않았다. 옷감을 골라 순무 부인의 옷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수놓는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건 전혀 겁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자수 외에도 다른 ‘필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목운요는 수놓는 실력에 만족하지 않고 사람의 체형, 품성에 맞는 다양한 옷감과 문양을 사용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들고 싶었다.
순무 부인의 옷을 가장 먼저 짓게 된 것도, 그녀의 남다른 지위 때문이 아니라 회귀 전에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 * *
순무 부인의 옷을 다 지은 후, 목운요는 금 부인을 직접 찾아갔다.
“부인, 옷을 다 지었습니다. 이 옷을 순무 부인께 직접 전해 주세요.”
“날이 더우니 좀 쉬다 가요. 앞으로는 마차를 타고 다니도록 하고.”
은홍이 시원하게 적신 손수건을 건네자, 목운요가 고맙다고 인사하곤 땀을 닦았다.
“북쪽에서 살았던 터라 이곳 날씨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옷을 짓느라 피곤한 목운요를 위해 소청은 날마다 영양 많고 맛있는 요리를 정성껏 준비했다. 그 덕분에 지난 며칠 사이 가녀린 몸이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처럼 낭창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더운 날씨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투성이가 되는지라 아예 분도 바르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그녀의 촉촉한 피부가 더욱 새하얗게 빛났다.
백옥처럼 새하얗고 티 없이 깨끗한 피부에 금 부인도 꽤나 부러웠다.
“소저를 보니 내가 정말 늙긴 늙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소녀가 좋은 것을 가지고 온 걸 어찌 아시고 그리 말씀하시는 건가요?”
“음? 소저가 좋다고 하면 틀림없이 좋은 것이겠죠. 어서 보여 줘 봐요!”
그에 목운요가 통통한 흰 도자기를 하나 꺼내 은홍에게 건넸다.
“최근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길래 꽃잎을 일일이 따서 약재와 함께 면약(面藥, 피부를 곱고 촉촉하게 해 주는 화장품)으로 만들어 봤어요. 손에 한번 발라 보세요.”
“손에만 바르는 건가요?”
“얼굴에 발라도 되긴 하는데, 혹여 얼굴에 발랐다가 부인 얼굴에 뭐라도 나면…….”
도자기를 집어 든 금 부인이 뚜껑을 열고 향을 맡았다. 분홍빛이 도는 면약은 옅은 장미 향을 띠고 있어 상쾌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향이 무척 좋네요. 은홍, 이걸 화장대 위에 올려 두렴.”
목운요가 금 부인의 호감을 얻은 뒤로 그녀를 대하는 시녀들의 태도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금 부인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목운요는 은홍의 배웅을 받으며 정원 밖으로 향했다.
조부를 나서기 전, 목운요가 작은 도자기를 하나 꺼내 은홍에게 건넸다.
“은홍 언니, 이건 장미꽃으로 만든 거예요. 향이 무척 좋은데 언니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나한테도 주는 거야? 고마워!”
“그럼 저 가 볼게요.”
은홍은 금 부인이 총애하는 시녀이니 가끔 선물을 찔러 주며 친분을 쌓는다면 금 부인 앞에서 자신에 대해 좋은 말을 해 줄 것이다.
목운요를 배웅하고 돌아온 은홍의 눈에 얼굴을 깨끗이 씻은 금 부인이 보였다. 그녀가 목운요가 건넨 면약을 바르려 하자, 은홍이 잽싸게 금 부인을 말렸다.
“부인,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바르시면 안 돼요. 얼굴에 뭐라고 나면…….”
하지만 금 부인은 면약을 뺨에 스윽 바르며 문질렀다.
“분명 괜찮을 게다. 그렇지 않고야 그 신중한 아이가 내게 함부로 물건을 건넬 리 없지.”
금 부인이 얼굴에 면약을 곱게 바르자 은홍은 감탄을 터뜨렸다.
“어머, 이 면약 정말 보통 물건이 아닌가 봐요! 얼굴에 바르니 윤기가 돌아 부인의 혈색이 한결 좋아 보이시는걸요!”
금 부인 역시 마음에 드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러다 옆에 놓아둔 순무 부인의 옷을 발견한 그녀가 은홍에게 꺼내 보라고 했다.
“음, 이 옷은 그저 그렇구나. 특별히 눈에 띄는 곳도 없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금 부인은 은홍에게 치맛자락을 흔들어 보라고 했지만, 뭔가 숨겨져 있는 장식이나 문양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부인, 이 옷들을 보내면 순무 부인께서 저희가 중간에 옷을 빼돌렸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금 부인은 결심한 듯 옷을 단단히 싸도록 했다.
“내일 내가 직접 순무부(巡撫府)로 옷을 가지고 갈 것이다.”
금 부인은 목운요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목운요는 분명 순무 부인의 옷을 직접 전해 달라고 했다.
순무 부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노여움을 살 텐데, 생각이 깊은 아이가 그런 위험을 자초할 리 없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어머니가 동그란 눈망울을 지닌 털 뭉치들을 쫓고 있는 걸 보았다. 잠시 멍하니 있던 목운요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아이의 물음에 소청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자 요리조리 도망치던 병아리 두 마리가 얼른 놀아 달라는 듯 소청의 비단 신발을 가볍게 쪼았다.
“요아야, 이제 온 거니? 집 앞에서 누가 병아리를 팔고 있길래 두 마리를 샀는데, 와서 보니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구나.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기 전에 내보내려고 해.”
그에 목운요가 쪼그려 앉아 병아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 하러 쫓아내요? 여긴 어머니 집이니까 기르고 싶으시면 기르셔도 돼요.”
“옷 짓는 집이 더러워서야 쓰겠니? 기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그리 말하면서도 소청의 눈빛은 아쉬움이 엿보였다. 사실 소청은 병아리를 통통하게 키웠다가 나중에 아이에게 몸보신해 주기 위해 산 거였다.
하지만 사고 나서야 예전처럼 궁한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닭을 돈 주고 사면 그만일 것을, 굳이 집에서 기를 이유가 없었다.
새하얀 손끝을 발견한 병아리들이 노란 부리로 살짝 쪼아 오자, 목운요의 눈가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귀엽기도 하지. 어머니, 그냥 집에서 길러요.”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거야?”
“네, 기르고 싶어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라면 병아리가 아니라 호랑이를 기른다고 해도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기르자꾸나.”
작게 미소 지은 소청이 목운요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그보다 요아야, 순무 부인에게 옷은 보내 드렸니?”
“네, 금 부인께 전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금 부인처럼 지위가 높으신 분께 결례를 범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로구나.”
“절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본인이 직접 전해 주시려 할 테니까요.”
“어째서 말이냐?”
지주의 부인이라면 부르는 곳도 많고, 살펴야 할 것도 많지 않던가? 공사다망한 귀부인이 어째서 옷을 전해 주는 심부름을 한단 말인가?
“순무 부인께서 옷을 마음에 들어 하시면 금 부인께선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 줘서 고맙다며 순무 부인으로부터 인사를 받으시겠죠. 혹여 순무 부인께서 옷을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저를 쳐 낼 테니, 어찌해도 크게 손해 보실 일은 없으시니까요.”
“후우, 사람을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이 없구나…….”
걱정스러워하는 소청의 모습에 목운요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소청의 팔을 꽉 쥐었다.
“어머니는 다른 걱정은 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일만 하세요.”
힘들게 살다 보니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사사건건 재고 또 재는 습관이 밴 것 같다.
목운요는 어머니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어머니의 지위를 높여 드려야 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소청은 아이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소녀들에게 자수를 가르쳐 주던 목운요는 다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들 왜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
소녀들은 서로의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목 소저, 순무 부인을 위해 지으신 옷을 어제 저희도 봤어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대단한 게 숨겨져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자세한 사정이 궁금한데 혹시 불쾌하게 여기실까 봐…….”
“후후후, 순무 부인에게 왜 그런 평범한 옷을 지어 드렸는지 궁금하다는 거군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어서…….”
“옷을 지을 때는 딱 맞게 지어야 한다고들 하죠. 여기서 말하는 딱 맞게란, 단순히 옷의 치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을 사람의 특징에 맞춰 옷을 지어야 한다는 뜻이랍니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인데, 걸친 옷 또한 자연히 모두 다를 수밖에요. 어린아이한테 기백 넘치는 옷을 입히거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알록달록한 옷을 입힌다면 누가 마음에 들어 하겠어요?”
“그러니까 순무 부인의 개성에 맞는 옷을 지어 드렸다는 건가요?”
“후후, 맞아요. 그 이야기는 아직 꺼내기 이르니, 여러분들은 계속해서 수놓는 연습에 신경 써 주세요.”
수업을 진행해 보자, 열 명의 소녀 중에서 세 명의 실력이 유독 뛰어났다.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기술을 익히는 걸 보니, 머지않아 옷을 짓는 일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