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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2화 (12/442)

12화 앞으로의 계획

* * *

목운요가 관아 밖으로 나오자, 소청이 달려가 있는 힘껏 품에 안았다.

“요아야, 애썼다. 애썼어!”

“어머니, 전 괜찮아요.”

장 씨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고, 이 씨 역시 더 이상 자신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소청은 밝게 웃는 목운요의 얼굴을 쓸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괜찮으면 됐다. 가자, 양 씨 아주머니한테 돈을 빌렸으니 의원한테 가서 치료부터 받자꾸나.”

“아니에요, 어머니. 할머니께서 곤장을 맞아 몸이 성치 않으실 테니, 집까지 모셔다드린 뒤에 가면 돼요.”

“……그럼 그리하자꾸나.”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라고 해도 이 씨는 남편을 낳아 준 이였다. 밉다고 해도 몸이 성치 않은 노인네를 모른 체한다면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릴 것은 분명했다.

한편 하언촌 주민들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사람들은 이 씨를 향한 분노와 증오가 극에 달해 있었다. 곤장을 맞은 이 씨가 관아 밖으로 끌려 나오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었다.

분이 풀린 이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이장 양명 등은 이 씨를 들것에 실을 수 있었다.

소청과 목운요는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이 씨를 집으로 먼저 돌려보내고 의원을 찾아갔다.

의원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일찌감치 들은 터라, 목운요의 상처를 잘 치료해 주고 약재까지 건네줬다. 그것도 사례금 정도만 받고.

그렇게 치료를 받고 성문 앞에 이르니, 오작 유 씨 등이 자신들을 향해 손짓하는 게 보였다.

“돌아가는 길이 멀 테니 마차를 타고 가거라.”

유 씨의 배려에 목운요는 의심부터 들었다.

“대인, 공무가 바쁘실 텐데 이런 폐는…….”

“개의치 말거라. 사실 네 부친인 목성과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목성이 세상을 등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때 마침 사건을 처리 중이라 조문도 가지 못했구나. 여비는 내가 이미 치렀으니 신경 쓸 것 없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서 마차에 오르거라.”

“오작 대인, 감사합니다. 앞서간 지아비를 대신해 인사드립니다.”

“소 부인,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서 마차에 오르십시오.”

이내 소청과 목운요를 실은 마차가 조용히 하언촌으로 향했다.

눈을 감은 채 소청의 품에 안긴 목운요는 회귀 전의 생을 떠올렸다.

이전 생에서 장영안은 실종된 딸아이를 찾기 위해 장부에 숨어든 소녀의 가족에게 정원의 비밀을 들키고 말았다. 장 씨가 고발당한 덕분에, 자신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번 일을 꾸미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성급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일이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마차가 덜컹하는 소리가 나는데도 목운요는 깊은 단잠에 빠졌다.

* * *

“요아야, 다 왔나 보다.”

“세상모르고 잠을 자다니…….”

쑥스러운 얼굴로 목운요가 마차 문을 열었다.

기운을 차린 듯한 아이의 모습에 소청이 한숨을 돌리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차에서 내린 소청은 마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상을 당한 처지라 안에서 차 한잔 들고 가시라는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몇 푼 안 되지만, 돌아가는 길에 목이라도 축이십시오.”

“괜찮습니다. 여비는 미리 받았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마차가 사라지자, 소청이 목운요의 손을 붙잡아 눈을 맞추었다.

“요아야, 솔직히 말해 보렴.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너와 관련된 것이냐? 그리고, 그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내 어찌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았단 말이냐? 게다가 내 분명 본채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뜬 곳은 옆방이었다. 그 이유를 너는 아느냐?”

소청의 물음에 목운요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지난 며칠 동안 밤잠을 통 못 이루시는 것 같아, 밤에 푹 주무실 수 있는 약재를 캐 왔어요. 그런 끔찍한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희 둘 다 무사해서 천만다행이에요. 앞으로 장 씨한테 끌려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게 다 천지신명님이 돌봐 주신 덕이니, 어머니를 지켜 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늘 밤에 향이라도 피워 올려야겠어요!”

구렁이 담 넘듯 얼버무리는 대답이 소청으로서는 퍽 마뜩잖았다. 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더 이상 캐물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도 저랑 같이 향을 올려요.”

목운요는 배시시 웃으며 소청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부드러운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피어났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하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내 두 사람은 집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누워 있던 이 씨는 목운요의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찍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이에 안심한 소청이 밥을 지으러 가자, 목운요가 아랫목 쪽으로 슬쩍 다가갔다.

“오, 오지 마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 씨가 화들짝 놀라며 다친 다리를 끌고 구석으로 기어갔다. 상처에서 아찔한 고통이 올라왔지만 목운요한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었다.

목운요는 무표정하게 이 씨의 베개를 젖히더니,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은자(銀子)를 꺼냈다.

“그, 그건 내 것이다.”

“할머니 거라고요? 얼추 칠십 냥은 되는 것 같은데, 여기서 오십 냥은 저랑 어머니의 몸값일 테고, 다섯 냥은 저희 집에서 훔쳐 간 거잖아요? 나머지 열다섯 냥도 그동안 부모님한테서 가져간 거 아닌가요? 여기서 할머니가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 한번 따져 볼까요?”

속으로는 열불이 터졌지만 이 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때마침 방 안으로 들어온 소청은 목운요가 들고 있는 은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요아야, 어디서 그리 큰돈이 난 것이니?”

“할머니가 그동안 모으신 건데, 저희 살림하는 데 보태 쓰라고 하시네요. 그런데 어머니는 하언촌이 좋으세요?”

그에 소청은 은자가 장 씨한테서 받은 몸값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 익숙하긴 하지.”

“아버지가 제게 공부를 가르쳐 주실 때, 늘 ‘해 뜰 녘 강가 꽃들 불꽃보다 붉고, 봄 되면 강물은 쪽빛처럼 푸르렀네.’라는 시를 읊곤 하셨던 게 생각나요. 그러면서 강남(江南)이 좋다고 하셨죠. 그때 어머니가 기회가 있으면 한번 가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참에 저희 강남으로 갈까요?”

아이의 엉뚱한 말에 소청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좋지. 요아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자꾸나. 네가 있는 곳이면 난 다 좋단다.”

그러자 목운요가 의자에서 뛸 듯 뛰어내렸다.

“어머니가 허락해 주셨으니 이제 돈을 벌 방도를 찾아봐야겠어요. 그런 뒤에 어머니를 모시고 강남땅을 유람하는 거예요!”

“이런, 조심하렴.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또 다치면 어쩌려고?”

“헤헤, 알겠어요.”

은자를 손에 움켜쥔 목운요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반짝였다.

사실 목운요는 하언촌을 떠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소씨 가문 때문에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대로라면 지금으로부터 일 년 반 뒤에 소씨 가문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찾으러 사람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나 몰라라 하지 않았던가?

이번 생에선 소씨 가문에 맞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하나 자신과 어머니 두 사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을 터. 그러니 소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맞설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길러야 했다.

하언촌처럼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목운요는 부유한 강남땅을 ‘발판’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수중에 있는 은자로 일을 벌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뭘로 돈을 벌어야 할까.’

목운요의 생각이 깊어졌다.

* * *

집에서 보름 동안 쉰 덕분에 머리와 팔뚝에 난 상처는 말끔히 사라졌다. 화상으로 얼룩졌던 손의 상처도 나아 백옥처럼 뽀얀 새살이 돋았다.

목운요는 턱에 손을 받친 채 생각에 잠겼다. 며칠째 하는 고민이었지만 좀처럼 그럴듯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아야.”

소청이 죽 한 대접을 들고 목운요를 불렀다.

“따뜻할 때 얼른 먹으렴.”

“상처는 이제 다 나았어요. 어머니는 겨울만 되면 몸이 좋지 않으시니 어머니께서 드세요.”

“일 년 내내 잔병을 달고 사는 건 이제 익숙하단다. 그러니 얼른 먹으렴. 아니면 내가 먹여 주랴?”

“헤헤, 좋아요. 어머니가 먹여 주세요.”

목운요가 활짝 웃으며 소청을 향해 입을 벌렸다.

“그래, 내가 먹여 주마. 아…….”

이렇게 정 많고 귀여운 아이를 하마터면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소청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모습에 목운요는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 그날 할머니한테 머리를 맞고 기절했을 때 무척 긴 꿈을 꿨어요. 꿈에서 어머니는 장부로 끌려가 비참하게 지내다가 돌아가시고, 전 다리가 부러졌죠…….”

목운요는 소청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들만 추려 담담한 목소리로 회귀 전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요아, 이 가엾은 것…….”

최대한 추려서 들려준 이야기에도 소청은 연신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다리가 부러진 일부터, 소씨 가문의 패악, 왕부의 음모……. 듣고 있자니 아득한 꿈 같았다. 의지할 사람 없이 아이 혼자 그런 곳에서 지낸다면 얼마나 외롭고 서러울까?

“어머니는 제가 이상하지 않아요?”

“네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니? 넌 천복(天福)을 타고난 아이란다. 회임한 지 일곱 달 만에 널 낳았을 때, 울지도 못하는 널 두고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했지. 하지만 넌 꿋꿋이 살아 줬고 지금처럼 어여쁜 소녀로 자라 주지 않았니? 천지신명께서 그런 널 기특하게 여겨 네게 미리 길흉(吉凶)을 알려 주시나 보구나.”

소청의 품에 안긴 목운요가 살며시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가 계셔서 정말 좋아요.”

마음에 담아 뒀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목운요는 그날 밤,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로 단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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