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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1화 (11/442)

11화 드러나는 악행

* * *

이튿날, 모든 관차를 이끌고 하언촌에 다녀온 유 현령이 다시 공당에 올랐다.

장 씨가 여인을 일곱이나 죽이고 시신을 정원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언성 전체에 퍼져 나간 탓에, 관아 주변은 구름 떼처럼 몰려든 사람들로 들썩거릴 정도였다.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목운요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곤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밤새 열이 난 터라, 무릎 꿇고 앉은 목운요의 안색은 가련하다 못해 처연할 지경이었다.

장영안에게서는 더 이상 평소의 침착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 쪽지에 적힌 소녀들의 이름을 들은 뒤로, 보통 사달이 난 게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영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대, 대인. 소, 소인은…….”

타앙!

유 현령이 경당목을 힘주어 내리쳤다.

“네놈 집의 뒤뜰에서 소녀의 시신을 일곱 구나 찾아냈다. 아랫것들도 모두 실토했다. 정산이 널 위해 그 소녀들은 집으로 끌어들였다고 말이다. 죄 없는 소녀들을 실컷 희롱하고 유린한 것도 모자라, 숨통을 끊고 암매장했다는 걸 아직도 발뺌할 셈이냐!”

한겨울인데도 바닥에 쓰러진 장영안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때 관아 밖에서 둥둥 하고 북소리가 울렸다.

아역(衙役, 관아에서 부리던 하인) 하나가 잽싸게 달려와 소장(訴狀, 고소장)을 올렸다.

“아뢰옵니다. 제연과 왕정의 식솔이 장영안을 살인범으로 고소하는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들여보내거라.”

이내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공당에 올랐다.

현령이 지켜보는데도, 이들은 곧장 장영안에게 달려들었다. 반쯤 실성한 듯 보이는 중년 부인이 장영안의 귀를 물어뜯으며 잡아끌었다.

“아아악! 대, 대인. 살려 주십시오! 소인, 고하겠습니다! 뭐든 다 고하겠습니다!”

유 현령이 역졸(驛卒)을 시켜 몰려든 사람들을 진정시키도록 했다.

그러자 중년 부인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대인,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의 여식인 제연이 장터에서 사라진 뒤로 집사람이 마음의 병을 얻어 제정신이 아닙니다.”

딸아이를 죽인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 미치광이가 대수랴? 유 현령은 장영안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장영안, 네 죄를 속히 이실직고하렷다!”

“대인, 다 고하겠습니다……. 모든 건 다 총관인 정산 때문입니다. 정산이 계집아이를 끌어들일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세상 때를 타지 않은 어린 계집아이들을 보니 소인도 모르게 음심이 동하여……. 하지만 죽이려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좀 심하게 다룬 것뿐인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대인,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그렇다면 일곱이나 되는 여인을 모두 네가 죽였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반항하는 계집 둘을 정산이 끌고 가 죽인 것이지, 소인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 말에 관아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역졸들이 막지 않았다면 장영안에게 덤벼들어 숨통을 끊어 버렸을 것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유 현령은 경당목을 몇 번이나 힘껏 내리쳤다.

탕, 탕!

“그렇다면 정산도 네가 죽인 것이냐?”

“아니옵니다, 대인. 정산을 죽인 것은 결단코 소인이 아닙니다. 목운요, 목운요 저년이 죽인 것입니다.”

목운요를 향해 홱 하고 고개를 돌린 장영안의 눈에서 독기가 쏟아졌다.

‘이년, 감히 날 모함하려 해? 나만 당할 수야 있나, 네년이 내 황천길 동무가 되어 줘야겠다!’

그 속내를 모를 리 없는 목운요가 속으로 차갑게 냉소했다. 그러곤 잔뜩 겁이 먹은 얼굴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장 씨 어르신, 제가 어찌 사람을 죽였다 하십니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죽인 걸로도 부족해, 소녀를 자꾸 끌어들이려 하시는 건가요?”

“네, 네가 날 기절시키고 정산을 죽이지 않았느냐! 그것도 모자라 내게 살인죄까지 뒤집어씌우다니, 어린 계집년이 어찌 그리 악랄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

장영안을 바라보는 유 현령의 눈빛이 점점 사나워졌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잘못을 고치지 못했으니 그 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 장영안, 네놈의 추잡한 짓거리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 네놈이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것만으로도 이미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네놈이 이 씨의 방에 들어간 이유나 솔직하게 고해라. 이 씨와는 대체 무슨 관계인 것이냐? 이번 살인 사건에 이 씨가 가담한 것이냐?”

그 말에 이 씨가 펄쩍 뛰었다.

“대인, 장 씨가 어찌 제 방에 온 것인지 소인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을 죽여 몰래 묻은 일은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대인, 소인은 하언촌에 사는 촌부입니다. 저희가 이 씨의 방에 들어갔을 때, 이 씨의 옷차림이 잔뜩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장영안과, 차마 입에 올리기 더러운 짓을 하고 있던 게 분명합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자신들도 그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장 씨의 평소 인품을 떠올린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연배의 이 씨를 보곤 속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장영안은 이 씨랑 곧잘 어울리곤 했잖아?”

“그럼 정산은?”

“설마 이 씨랑 정산도 그렇고 그런 사이 아냐? 그래서 장 씨랑 정산이랑 한바탕 붙은 거 아닐까?”

“어휴, 망측스럽기도 하지!”

주변의 이야기에 이 씨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인! 소인은 오랫동안 수절하며 어떤 사내와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한테 물어보십시오!”

“사람들 눈 피해서 몰래 붙어먹은 거면 누가 알겠나?”

“그러게 말이야.”

“조용, 모두 조용히 하시오!”

유 현령은 주변에 정숙하라고 명한 뒤 하언촌 이장인 양명을 불러냈다.

“앙명,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당시 이 씨의 옷차림이 흐트러져 있었느냐?”

“분명 그러했사옵니다. 그리고 소 씨는 본채가 아닌 옆방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소 씨는 남편의 상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장의 말에 유 현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 씨라는 여인이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시어머니 앞에서 사통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터.

그 말인즉…….

“이 씨, 장영안! 바른대로 고하지 않으면 형을 집행하라 이를 것이다!”

“대인,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장 씨한테 돈을 받고 소청과 목운요를 넘기려 했을 뿐, 저자와 사통한 적은 없습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 씨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실대로 고했다.

“뭐라고? 아들이 죽자마자 며느리랑 손녀를 팔아넘기려고 해? 땅속에 묻힌 아들이 원통해서 눈도 못 감겠구먼!”

고개 숙인 목운요가 투둑 하고 눈물을 떨구는 걸 보아하니, 말하지 않아도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원통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저 가엾은 것이 하마터면 장 씨의 손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이 씨를 향해 이를 갈았다.

유 현령의 미간이 또다시 찌푸려졌다.

“여봐라, 저 연놈을 끌고 가서 실토할 때까지 곤장을 치거라.”

그 말에 목운요가 이 씨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사정했다.

“대인, 할머니께서 다리가 부러지셨는데 곤장까지 맞는다면 돌아가실지도 몰라요. 아버지께선 살아생전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죠. 제게는 하나뿐인 할머니이시니, 소녀가 죄를 고하라고 설득하겠습니다.”

“할머니라고 하지만 널 해치려 했는데도 밉지 않단 말이냐?”

유 현령의 말에 목운요가 쓴웃음을 지었다.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고 하지 않습니까?”

짧은 그 한마디 말에서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비통함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유 현령은 한숨을 내쉬며 목운요의 청을 들어줬다.

그러자 목운요가 이 씨에게 바짝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할머니, 제대로 고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 때문에 황천길에 오를 필요는 없잖아요? 할머니는 현명한 분이니 제가 드린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거예요.”

그 말에 이 씨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제야 목운요가 감방에서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입 함부로 놀렸다간 장 씨 놈이랑 나란히 죽을 테지만, ‘제대로’ 말하면 살려는 드릴 테니까요.”

장영안의 목이 달아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자신에게는 아직 살 기회가 남아 있었다.

이 씨는 장영안을 힐끗 보더니 이를 악문 채 입을 열었다.

“대인,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소인은 장영안, 정산과는…… 그렇고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같이 소인을 찾아왔다가 그만…….”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다.

이 씨가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에 집까지 찾아온 정산이 장 씨와 현장에서 대면한 것이리라. 그 배신감에 정산은 장 씨에게 그동안의 악행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

그러자 장 씨는 정산의 입을 영원히 막아 버리기로 하고, 행동에 옮기다가 목운요에게 들켰을 터. 목운요를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자, 살인죄를 뒤집어씌운 게 분명했다!

유 현령은 몸을 일으켜 판결문을 낭독했다.

“장영안은 일곱 명이나 되는 무고한 여인들을 희롱한 것도 모자라 숨통을 끊고 암매장했다. 또한 정산을 해쳤으니 그 죄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에 사형을 선고하니 지금 당장 옥에 가두어라. 본관은 즉시 형부(刑部, 사법 행정을 담당하는 곳)에 보고해 황상의 허가를 받을 것이다. 한편 이 씨는 부녀자의 도를 지키지 않았으니…….”

판결을 내리던 중 유 현령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씨는 오랫동안 과부로 지내면서 장 씨, 정산과 사통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사형에 처한다면 지나친 처사임엔 틀림없다.

그렇다고 곤장형에 처한다고 해도 몇 대를 치라고 할 것인가? 가뜩이나 다리까지 다쳤는데 많이 때렸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겁나서 형벌을 낮추면 백성들의 불만은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대인! 할머니께서는 연로하시고 지금 다리까지 다치셨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해친 것은 아니니 부디 너그러운 처사를 부탁드립니다!”

“흠, 이 씨는 일벌백계의 뜻으로 곤장 이십 대에 처한다. 목운요, 너는 아무런 죄가 없음이 밝혀졌으니 지금 당장 석방하겠다. 이 씨, 착한 손녀를 두었구나. 앞으로 개과천선해 잘 대해 주도록 하거라.”

“예예, 대인. 알겠나이다.”

이 씨는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목운요는 물론, 그 비슷한 것만 봐도 버선발로 도망치겠노라 그녀는 몇 번이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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