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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0화 (10/442)

10화 대질 심문

“누가 목운요인가?”

관차의 질문에 목운요는 안심하라는 듯 소청의 손을 꼭 쥐었다. 이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목운요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소녀, 목운요라고 합니다.”

관차의 눈썹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아직도 젖비린내가 날 것 같은 어린 계집애가 저 부러질 것 같은 손목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정산이라는 자는 체구도 커다란 터라, 한 손으로 목운요를 들고도 남을 것 같았다. 고작 열두세 살 먹은 계집애가 건장한 장정을 죽였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던가!

오작은 잽싸게 정산의 시신을 살핀 뒤, 바닥에 떨어진 비수를 보곤 목운요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눈빛을 지었다.

“얘야, 네 팔뚝 좀 보여 주련?

목운요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면서도 팔뚝을 내밀었다.

상처를 본 오작이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상처가 깊은 탓에 천을 풀자 피가 뚝뚝 흘렀다. 뼈가 보일 정도로 크게 다친 걸 보니 사람을 죽일 요량으로 칼을 휘두른 게 분명했다!

“어떤가?”

자신을 쳐다보는 관차에, 오작은 장 씨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 뜻을 알아차린 관차가 장영안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할 말이 있거든 관아에 가서 하거라. 현령 대인께서 판결하실 것이니. 이자를 끌고 가거라. 그리고 넌…….”

목운요를 향해 관차가 방금 전보다 확연히 누그러진 어투로 입을 열었다.

“넌 이번 사건의 증인이니, 우리와 함께 관아로 가야 한다. 그리고 방금 사건에 대해 진술한 이 씨도 같이 데리고 갈 것이다.”

관차와 오작을 포함한 네 명의 사내가 정산의 시신을 챙기고 장영안을 압송해 갔다.

이장은 황급히 사람을 시켜 이 씨를 들것에 실은 뒤 관차 일행을 따라갔다.

한편 목운요는 출혈이 심한 몸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무렵,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목운요가 걸음을 떼지 못하자 소청이 재빨리 부축했다.

“요아야, 내게 업히렴.”

“아니에요, 어머니……. 전 괜찮아요, 갈 수 있어요.”

“머리에 난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팔도 이리 다쳤지 않니? 언성에 가기도 전에 쓰러질 것 같구나.”

딸아이의 창백한 낯빛에 소청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때 오작 유 씨가 목운요를 힐끗 보고는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증인인 네게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니 마차에 타거라.”

그 말에 목운요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감격한 눈빛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대인.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얼른 소청의 옷자락을 끌었다.

“어머니, 대인께서 저희더러 마차에 타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도 몸이 좋지 않으시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자신만 어찌 마차에 오를 수 있겠는가?

“아니란다. 난 걸어서 가도 돼.”

“어머니가 곁에 안 계시면 무섭단 말이에요, 그러니 얼른 가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목운요가 소청을 끌고 마차로 향했다. 행여 딸의 상처라도 건드릴까 싶어 소청은 목운요의 팔을 뿌리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 마차에 올랐다.

오작은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른 걸 보고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마을 사람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언성에 들어가자, 금세 주변의 눈길을 끌게 되었다. 하언촌 사람들에게 사건의 경위를 듣게 된 언성 주민들은 관아로 우르르 몰려갔다.

* * *

언성에서 가장 큰 주루(酒樓)인 흥성루(興盛樓).

시위 우항(于恒)이 공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인님, 하언촌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목씨 성을 가진 집입니다.”

냉랭한 표정의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가서 살펴보거라.”

자신의 것을 훔친 것도 모자라 이리 큰 소란을 피우다니, 간이 부어도 보통 부은 게 아니렷다!

* * *

현령 유언(劉原)은 미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오작 유 씨에게 간단히 물은 뒤, 공당에 올라 직접 사건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놀라서 아까부터 넋을 놓고 있던 이 씨는 자신의 결백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현령을 보자마자 악을 쓰며 하소연했다.

“아이고, 현령 나리! 목운요, 저년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소인은 아무런 죄도 없으니 부디 공명정대하게 죄를 가려 주십시오!”

타앙-!

유 현령이 탁상을 치며 크게 소리쳤다.

“지엄한 공당에서 무슨 소란이란 말이냐? 네가 이 씨인가?”

“예, 예. 그러하옵니다. 소인이옵니다, 대인 나리!”

“목운요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냐? 목운요, 할 말이 있거든 해 보아라.”

이내 앞으로 나온 목운요의 모습에 유 현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오작이 이미 귀띔해 주기는 했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보니 상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연약해 보였다. 닭 모가지 하나 비틀지도 못할 것 같은 저 가녀린 손목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그것도 체구가 큰 사내를?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의 목운요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소녀, 대인을 뵈옵니다. 소녀는 사람을 해치지 않았어요. 자다가 볼일이 급해 일어났는데, 본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뭔 일이 있나 싶어 가 보니, 장 씨 어르신과 그의 총관이 다투고 있는 게 보였어요. 죽은 사람을 정원에 묻었다든가, 뭐라든가 하면서. 겁이 나서 도망치려다가 장 씨 어르신한테 들키고 말았죠. 어르신이 절 죽이려고 달려들자, 총관님이 어르신의 다리를 붙잡고 바닥으로 넘어뜨렸어요. 그걸 보곤 할머니께서 죽여 버리라며 계속 소리치셨어요. 그사이 저는 죽기 살기로 도망쳤죠. 그 후의 일은 기억이 없는데, 양 씨 아주머니께서 제가 기절했다고 알려 주셨어요. 정신을 차리니 관아에서 나오신 나리들께서 제 앞에 서 계셨고요.”

“네 말대로라면 넌 그저 증인에 불과할 뿐이거늘, 어찌하여 네 조모는 네가 사람을 죽였다 하는 것이냐?”

넋이 나간 듯 황망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꽉 깨물었다.

“소녀가 한 짓이 아니에요. 전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어머니, 제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씀 좀 해 주세요.”

소청은 목운요를 재빨리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유 대인, 요아는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착하기 그지없는 아이가 어찌…….”

“그만! 이 씨, 목운요를 범인이라고 말하는 증거가 무엇이냐?”

“증거, 증거라면…… 소인이 봤습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요. 저년의 팔뚝에 난 상처는 장 씨가 아니라 저년이 스스로 낸 것입니다!”

이 씨는 자신의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발악했다.

그 말에 유 현령은 오작을 바라보며 상처를 확인한 의견을 물었다.

“아뢰옵니다. 상처의 방향이나 깊이로 보건대, 뒤에 있던 누군가가 칼을 휘두른 것이 분명합니다. 스스로 낸 상처가 아닙니다.”

말을 마친 오작이 비수를 내밀었다.

“대인, 이것 보십시오.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비수입니다.”

비수를 본 유 현령의 미간이 방금 전보다 잔뜩 구겨졌다.

“이 씨, 목운요가 스스로 상처를 냈다 했는데 그렇다면 이 비수를 쓴 것이냐?”

“예, 대인. 그렇사옵니다.”

“뉘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이냐! 이것은 검날이 예리한 데다 금은보화가 박혀 있는 물건이다. 못 받아도 수백 냥은 족히 될 텐데, 이걸 어린 계집이 어찌 지니고 있단 말이냐!”

“그, 그것은…… 소인도 알지 못합니다…….”

“아직도 바른대로 고하지 않는단 말이냐! 장영안과 정산이 왜 네 집에 찾아든 것이냐? 한 사람은 죽고, 또 한 사람은 다친 연유는 또 무엇이란 말이냐?”

“모릅니다, 소인은 정말 모르는 일이옵니다.”

이 씨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제 말이 모두 사실이건만, 아무도 제 말을 믿어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인, 소청이 절 불러냈습니다. 제게 물증이 있습니다요!”

상황이 자신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장영안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증거를 올려라!”

“예, 예. 소청이 제게 준 쪽지가 있습니다. 저더러 자시에 이 씨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은밀히 만나고 싶다면서. 그 쪽지가 어디 있더라…….”

품 안으로 손을 넣은 장영안이 이러저리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손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쪽지는?”

“그, 그게…… 없어졌습니다. 목, 목운요 저년이 제가 기절한 틈에 몰래 꺼내 간 것이 분명합니다!”

장영안이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자, 목운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아니에요. 전 그런 적 없어요. 전 모르는 일이에요…….”

쪽지는 자신이 가져간 게 맞았다. 물론 이제는 한 줌 재가 되었지만.

“네, 네년의 짓이 분명하다! 어린년이 어찌 이리 악랄한 짓을……!”

“그만!”

유 현령의 미간은 점점 더 구겨졌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장영안의 짓이라고 하기엔 비수 외에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건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기 마련이었다.

“오작, 정산의 시신을 다시 살펴보거라. 다른 증거가 있는지 말이다.”

“예, 대인.”

시신을 잠시 살펴본 오작이 입을 열었다.

“대인, 정산의 머리에 둔기로 맞은 듯한 상처가 두 곳 있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듯합니다. 심장을 관통하는 일격을 맞고 숨이 끊어진 것…… 으응? 손에 쪽지를 쥐고 있습니다……!”

그 말에 장영안이 뛸 듯이 기뻐했다.

“대인, 제가 말한 증거가 바로 그것이옵니다!”

경황이 없어서 쪽지를 정산에게 줬나 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저것만 있으면 소청이 자신을 꾀어냈다는 게 만천하에 밝혀질 터인데!

오작은 피에 물든 쪽지를 유 현령에게 건넸다.

그리 크지 않은 쪽지에는 이름이 몇 개 적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여인의 것으로 보였다.

“이건 모두 여인들의 이름 아니냐? 이걸로 소 씨가 널 꾀어냈다는 걸 어찌 증명하겠다는 거냐?”

“여인…… 여인의 이름 말입니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운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인, 생각났습니다. 장 씨 어르신께서 뭔가를 두고 총관님과 다투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그 쪽지인 듯합니다.”

“이깟 쪽지 가지고 뭘 다툰단 말이냐? 오매(吳梅), 제연(齊燕)…….”

“제연?”

주박(主簿, 주로 문서, 장부 등을 관리하는 하급 관리)이 눈을 번쩍 떴다.

“대인, 방금 호명하신 이름이 귀에 익습니다. 제연이라는 자가 반년 전에 실종되어 관아에 신고됐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우연인지 아닌지는…….”

“제연, 왕정(王貞)…….”

몇몇 이름을 되뇌던 유 현령은 생각할수록 심상치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목운요의 말을 곰곰이 따져 보던 그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목운요, 방금 죽은 사람을 정원에 묻었다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냐?”

“소, 소녀가…… 그리 말했습니까?”

장영안의 눈빛에 목운요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어찌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무서워할 것 없다. 자세히 생각해 보거라. 내가 널 지켜 줄 것이니 누구도 두려워할 것 없다!”

살짝 내리깐 목운요의 눈이 순간 어둡게 빛났다. 지금 어느 누구도 자신을 범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는 척하던 목운요가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예, 이제 생각이 납니다. 장 씨 어르신이 총관님과 다투면서 배은망덕하게 자신을 위협한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총관님은 은자를 주지 않으면, 사람을 죽여 정원에 묻은 일을 만천하에 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유 현령은 놀란 가슴을 애써 감추며 주박과 눈길을 주고받은 뒤에 경당목(驚堂木, 법정에서 심판하는 관리가 탁상을 쳐서 주위에 위엄을 환기시키던 나무 막대기)을 힘껏 내리쳤다.

“이 일은 내일 다시 심문할 것이다. 모두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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