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5화 (5/442)

5화 다리를 분질러 주마

“이년, 죽고 싶으면 너나 죽지, 엉뚱하게 왜 날 끌어들여? 천벌을 받아도 싼 년. 네년이 감히 날 태워 죽이려 해?!”

사방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이 씨는 완전히 겁에 질린 듯했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함을 치며 밖을 향해 죽기 살기로 기어갔다.

한편 이 씨에게 다가간 목운요는 공포에 질려 초점이 나간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고는, 다리 위로 커다란 장롱을 힘껏 밀어뜨렸다.

쾅!

이 씨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아악!”

귀청을 찢을 듯 날카로운 비명이 적막한 밤하늘 아래 멀리 퍼져 나갔다.

“요, 요아야…….”

소청은 연신 몸을 떨면서 복잡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봤다.

어미의 부름에 목운요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독기 어린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가 가득 그렁그렁한 눈물만 맺혀 있었다.

“어머니, 우리가 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절 믿으세요. 어머니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소청이 자신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이라며 꺼리진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흘 뒤 어미가 죽으러 가는 걸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목운요는 모든 것을 바꾸기로 했다. 설사 그로 인해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래서 목운요는 이 씨를 이용해 금수만도 못한 장가 놈을 죽이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래야만 자신도, 어머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터였다.

“요아야, 겁낼 것 없다. 겁낼 것 없어! 할머니한테 불을 지른 것도, 할머니를 때린 것 모두…… 너, 너는 어서, 어서 도망치거라!”

소청이 목운요를 힘껏 껴안았다. 무서웠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무서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나무라는 짓을 할 순 없었다.

“요아야, 이번 기회에 도망치거라.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말거라!”

이 씨를 바라보는 소청의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을 구박하는 것도 모자라 어린 손녀까지 팔아넘기려는 시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남편과 딸아이는 소청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 소청의 하늘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강해져야만 한다.

제가 낳은 친자식을 지키는 것이 어미 된 도리 아니던가! 딸아이를 이 지옥과 같은 곳에서 내보낼 수만 있다면 제 목숨을 바친다 한들 아쉬울 것이 무엇이랴?

“아뇨,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흰 죽지 않아요. 이번 생애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죽게 되는 건 우리를 무시했던 것들이라고요!”

사납기 짝이 없는 목운요의 차가운 눈빛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씨를 향했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겨울 날씨에는 작은 불씨만으로도 거센 불길이 일어나기 쉬웠다. 바닥에 쓰러진 장롱에 금세 불이 붙었다.

이 씨는 목이 쉴 정도로 연신 소리를 질러 댔다. 처음에는 목운요를 향해 입에도 담기 힘든 험한 말을 쏟아 내더니, 이제는 살려 달라며 애원했다.

“요아야, 이 할미를 정말 죽일 셈이냐? 어서 구해다오, 어서!”

“어제 어머니가 장 씨한테 팔지 말아 달라고 무릎 꿇고 빌 때는 들은 체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살려 달라는 거야?”

“아, 아니다. 파, 팔지 않으마. 앞으로 우리 셋이서 오순도순 살자꾸나.”

“훗, 말은 잘하네. 그런데 아쉽게도 말이지, 당신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토씨 하나 안 믿어! 그렇다고 너무 절망할 것 없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까.”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그때 밖에서 불이 났다는 요란한 외침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집 안에서 타들어 간 목재가 쉴 새 없이 무너져 내렸다.

불이 붙은 커다란 목재가 목운요 앞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위험을 감지한 소청이 목운요를 잽싸게 끌어당겼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겁먹을 것 없어요. 제가 꼭 지켜 드릴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목운요는 불이 붙어 있는 나무토막을 손에 쥐었다.

치이직, 하는 소리와 함께 살 타는 냄새가 풍겼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악물었던 입술이 끝끝내 터지고 말았다.

“요아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목운요가 손바닥을 펼치자, 화상을 입은 상처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목운요는 소청의 얼굴을 쓰다듬은 뒤, 제 얼굴에도 시커먼 재를 묻혔다. 그러곤 이를 악문 채 장롱을 밀었다.

“어머니, 저랑 같이 밀어요. 할머니를 구해 드려야죠!”

“요아야…….”

“어머니, 절 믿으세요!”

시간이 없어 목운요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 씨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이 악귀 같은 것들! 사, 사람 살려! 날벼락을 맞아 죽어도 시원치 않을 것들이구나! 당장 내 앞에서 꺼져 버려, 당장!”

악귀가 아니고서야 어찌 자신의 혈육에게 저리도 악독하게 군단 말인가!

장롱 한쪽을 조금씩 들어 올리고 있던 와중에 이 씨의 저주와도 같은 말이 터져 나오자, 목운요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손에서 힘을 풀어 버렸다.

콰당!

큰 소리와 함께 거의 부러져 버린 이 씨의 다리가 당장이라도 절단될 듯 뭉개져 버렸다. 끔찍한 고통과 공포에 이 씨는 자신도 모르게 혼절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다시 장롱을 들고선 이 씨를 끌고 문 어귀로 향했다.

바깥에는 불을 끄러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불이 난 집 안에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니, 몇몇 장정이 위험을 무릅쓰고 잽싸게 뛰어 들어가 이 씨를 비롯한 목운요와 소청을 데리고 나왔다.

신선한 공기가 밀려 들어오자,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콜록거렸다. 그 모습에 동네 아주머니가 물을 떠다 주곤 연신 도닥여 줬다.

목운요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네 손이 어쩌다…….”

목운요의 손을 본 양 씨는 크게 놀랐다. 목운요는 살결이 곱기로 이 근방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섬섬옥수라 함은 그녀를 두고 말할 정도로, 희고 깨끗한 피부는 수많은 여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그 곱디고운 손이 피투성이가 된 걸로도 모자라, 흉측한 화상까지 입고 말았다.

“장롱에 깔린 할머니를 구하려다 다친 것뿐이에요. 전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정신이 드시면 절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

심술궂고 막무가내인 이 씨의 고약한 성미를 이 근방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며느리와 손녀를 구박하는 이 씨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 또한 많았으나 남의 가정사에 배 놔라 감 놔라 할 수 없어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어린 손녀가 제 할머니를 구하려다 이렇게 다쳤는데,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막말을 뱉어 내겠는가?

“걱정할 것 없어. 네가 할머니를 구하려다 이리 다쳤는데 어찌 너를 탓하시겠니?”

하지만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한 듯, 목운요는 조심스레 소청의 곁에 기대 타오르는 불길을 멍하니 바라봤다.

불을 끄러 달려온 마을 사람들은 지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곤 모녀의 팔자가 참으로 딱하다며 혀를 찼다.

사실 목성은 하언촌의 유일한 문사(文士)였다. 온화한 성품의 그는 평소에도 사람들의 서신을 대신 써 주는 등의 행실로 마을 안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인 이 씨였다. 예전부터 이 씨가 어찌나 지독하게 굴었는지, 돈 몇 푼 쥐겠다고 목성의 고모를 먼 곳으로 시집보내는 바람에 목성의 아버지는 부끄러움에 한동안 고개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쿨럭, 쿨럭……. 이년,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

정신을 차린 이 씨가 눈을 뜨자마자 목운요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소청에게 좀 더 바짝 다가선 목운요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렸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고얀 년!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괜찮냐고 묻는 거야? 으윽, 다리가…….”

“할머니, 장롱이 할머니를 덮치는 바람에 저랑 어머니가 간신히 치워 내고 할머니를 꺼낸 거예요. 안 그랬으면 더 일찍 빠져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헛소리! 내 다리를 이 꼴로 만든 게 네년이 아니고 누구란 말이냐? 내 다리가 낫기만 하면 네년의 다리를 똑같이 부러뜨려 줄 테다!”

그 말에 목운요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청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눈빛은 음산하게 반짝였다.

불을 끄려고 몰려든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은 못 봐주겠다는 듯 한마디씩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저희도 봤다고요. 운요가 아주머니를 구하다가 양손에 심한 화상까지 입었는데, 고맙다 하진 못할망정 어찌 그리 독한 말을 하십니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그래요, 그래. 목성이 세상을 등진 뒤로 두 모녀를 그리 구박했으면 됐지, 음덕(陰德, 조상의 덕)이 사라질까 무섭지도 않아요?!”

그 말을 들은 이 씨는 버럭 화를 냈다. 아파서 혼절하는 처지가 됐어도 자신을 향한 쓴소리를 참고 넘기지 못하는 성질은 여전했다.

“어디서 남의 집안일에 간섭이야, 간섭이! 내가 내 집안 단속한다는데 네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왈가왈부 떠드는 게냐!”

“어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양 씨가 목운요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며 소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긴 불타서 없어졌으니 두 사람이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거든 오늘은 우리 집에서 지내도록 해요.”

그 말에 목운요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에요. 호의는 감사하지만 할머니가 다치셔서 돌봐 드려야 해요. 할머니 집에서 잠시 지내면 될 거예요.”

“하지만 노친네 저 성질머리에…….”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양 씨의 표정에서 이 씨에 대한 혐오감이 가득 묻어났다.

“괜찮을 거예요. 할머니도 오늘은 거동하지 못하실 테니 저희가 돌봐 드려야죠. 안 그러면 무덤에 계신 아버지가 저희를 나무라실 거예요.”

나긋나긋한 목운요의 이야기에 주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배운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깊다며, 참으로 기특하다 여긴 것은 물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