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4화 (4/442)

4화 난 살고, 넌 죽는다!

* * *

“아가, 아가. 어미가 여기 있으니 무서워할 것 없다. 이 어미가 널 끝까지 지켜 줄 테니…….”

아이의 상처가 걱정됐던 소청은 바깥의 물건을 정리한 뒤에 방을 찾았다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물범벅이 된 딸을 발견했다.

그 소리에 눈을 뜬 목운요가 소청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상처가 아파서 울고 있었던 거 아니니?”

자신을 향한 걱정스러운 눈빛에 제 뺨을 만져 보니 온통 눈물 자국이었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꿈에서 아버지를 뵈어서 그래요.”

자신의 굴곡진 삶을 어머니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아 목운요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빛 하나 들지 않을 만큼 어둡고 막막한 과거는 자신 홀로 지면 되었다.

아버지 목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문득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아버지는 그녀를 무척 사랑해 주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땐, 할머니도 지금처럼 그녀와 어머니를 구박하진 못했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물에 빠져 죽을 줄이야…….

그러다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머니, 아버지는 헤엄을 잘 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회귀 전의 목운요는 아버지가 그저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고만 생각했을 뿐, 깊게 생각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물에 빠져 돌아가셨을 때는 북풍 한기에 고드름이 맺힐 만큼 추운 한겨울이었다. 그런 날씨에 아버지는 강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어머니는 장 씨에게 팔려갔다. 그로 인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자신은 간신히 도망쳐서 다리가 부러진 몸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곤 소씨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다리가 부러진 후 소씨 가문에 입성하기까지 일 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었지만,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칠 수 없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조종한 것일까? 누군가가 자신과 어머니를 해치려 했던 것일까?

어머니가 소씨 가문의 여식이긴 하지만 과부가 되었으니 서릉에서 호의호식하는 소씨 가문에게는 관심 밖이 되었을 터. 한데 이리도 공을 들여야 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죽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청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 아버지가 헤엄을 잘 치는 편이었지만 물길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 흐르는 것이더냐? 이 또한 팔자면 팔자겠지…….”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다가 기댄 채 잠이 들었다.

* * *

한밤중, 깊이 잠들지 않았던 목운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번쩍하고 눈을 떴다. 이는 소청도 마찬가지였다.

목운요는 어머니의 손을 잽싸게 잡으며 목소리를 죽인 채로 입을 열었다.

“쉿, 놀라실 것 없어요.”

침상 위를 더듬거리자 베갯머리에서 홍두깨가 만져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니는 밤낮 할 것 없이 가슴을 졸이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세 살짜리 딸을 가진 젊은 과부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누군가가 집에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두 모녀에게 도망칠 길은 없었다. 그래서 소청은 베개 밑에 부엌칼을 넣어 두고, 베갯머리에 홍두깨를 놨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거세게 뛰었지만, 전혀 겁먹지 않은 딸을 보자 소청은 억지로 용기를 쥐어짰다. 그러곤 침상 밖으로 내려가는 딸을 막아섰다.

“어미가 가 보마…….”

요아는 이제 열세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부상까지 당한 데다 원래 약한 아이였다. 그래서 소청은 목운요의 손에서 홍두깨를 받아 들곤 조용히 문가로 향했다.

그러자 바깥방에서 왔다 갔다 하며 뭔가를 뒤지고 있는 듯한 그림자가 보였다.

목운요는 소청 뒤에 바짝 붙어 섰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도 억지로 참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있었다.

그때 바깥의 그림자를 본 목운요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눈빛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밖이 어두운 탓에 사람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 오랜 세월 동안 원망하고 증오했던 목운요에게 그 그림자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목운요는 바닥에 있는 요강을 들고선, 소청이 말릴 새도 없이 문을 열고 검은 그림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요강을 쭈그리고 앉아 물건을 뒤지던 그림자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깡!

그 모습에 놀란 소청이 정신을 차리곤 허겁지겁 달려 나와 그림자를 향해 홍두깨를 휘둘렀다.

불시의 공격에 그림자가 ‘아아악’ 하며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소청은 그림자의 정체가 자신의 시어머니인 이 씨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오랜 세월 쌓여 온 두려움 탓에 홍두깨를 쥔 손에서 힘이 빠졌지만, 바로 다음 순간 목운요가 그 손을 움켜쥐곤 홍두깨를 힘껏 내리쳤다.

머릿속으로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일도 막상 행동으로 옮겨 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은 법이다.

그림자를 향해 홍두깨를 한번 휘두르고 나니, 그동안 소청의 마음에 쌓여 왔던 원망과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이내 소청은 홍두깨를 마구잡이로 내리쳤다.

퍽퍽퍽! 홍두깨가 인정사정없이 내리꽂혔다.

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그림자한테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그제야 뒤늦은 공포심이 밀려왔다. ‘쿵’ 하고 홍두깨를 집어 던진 소청이 온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그런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독였다.

“어머니, 겁내실 것 없어요. 저흰 도둑을 때려잡은 것뿐이잖아요. 가서 등잔에 불을 붙여다 주세요.”

아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 소청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안심이 되었다.

여전히 온몸이 떨리긴 했지만 차분히 등잔에 불을 붙인 뒤에 바닥에 쓰러진 그림자를 비췄다. 그러곤 소스라치게 놀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피, 피가…….”

바닥에 쓰러진 이 씨는 혼절한 상태였다. 머리에 난 상처는 요강으로 얻어맞아 생긴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 난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이 씨의 얼굴까지 번져 있었다. 흐릿한 등잔불에 비친 이 씨의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아,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절로 날 만큼 흉측했다.

목운요는 등잔을 받아 들고는 이 씨의 머리 쪽에 내려놓았다. 음침한 눈에 차가운 한기가 반짝이나 싶더니, 손가락이 툭 하고 등잔을 기울였다.

등잔의 기름이 이 씨의 몸 위로 흘러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씨를 산 채로 태워 버린다면 더 이상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요아야!”

소청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목운요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씨의 숨통을 끊겠다는 마음을 잽싸게 접었다.

이 씨를 죽이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혐의를 벗기란 그리 녹록지 않을 터였다. 자신이라면 기꺼이 모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지만 자신의 어미는 그렇지 못했다.

이번 생에선 어머니를 지켜 드리겠노라 맹세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이 씨를 이렇게 쉽게 죽여 줄 수는 없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참에 이 씨에게 똑똑히 알려 줄 셈이었다.

목운요는 눈을 몇 번 깜빡인 뒤에 고개를 돌려 소청을 바라봤다. 방금 전의 음침한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평소처럼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머니…….”

“요아야!”

그때, 어머니의 비명과 함께 머리 가죽이 벗겨질 듯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새 정신을 차린 이 씨가 목운요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아챈 것이다.

목운요는 이 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히 날 건드려?”

목운요의 그 짤막한 말에서 노골적인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 씨는 빙점까지 내려간 목운요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하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다 못해 숨통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네…… 이 더러운 년. 네년이…….”

이 씨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니, 냉소를 머금은 목운요가 울긋불긋 상처투성이가 된 이 씨의 얼굴을 등잔불로 비췄다. 그러고는 더욱 음산한 빛을 띠며 입을 열었다.

“날 건드린 죗값은 치러야 하지 않겠어? 그 몸에 기름을 부은 뒤에 불을 붙여 주지.”

“이, 이 독한 것! 과연 그 시커먼 속내를 드러냈구나. 친할머니인 날 이리 대한단 말이냐!”

입으로는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리도 악독한 것인 줄 알았다면 태어날 때 아예 목 졸라 죽여 버렸을 텐데!”

“아쉽게도 날 죽이지 못했으니 오늘 죽게 되는 것은 네년이다. 장부에 들어간다 한들 죽기는 피차 매한가지일 테니 아예 오늘 같이 죽는 것도 괜찮겠지. 염라대왕님께 며느리와 손녀를 모질게 구박한 늙은이의 죄를 물어 달라고 할 테다. 팔대 지옥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에 몸부림치게 해 주마!”

그 말에 이 씨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있는 힘껏 목운요를 옆으로 밀쳐 냈다.

“이 요망한 것, 네, 네년은…… 어쨌든 장부로 가야 하니 당장은 네년의 죄를 따지지 않겠다. 장 씨가 살결이 고운 계집애를 좋아한다지. 네 그 연약한 피부가 장 씨의 손길을 거치는 순간, 그 가죽을 건사하기는커녕 생사도 알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도 네년이 그 주둥아리를 나불거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이 씨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좀처럼 억누를 수 없었다. 장롱에서 일찍이 은자 다섯 냥을 찾아냈지만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은자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잠을 설치던 차였다.

그래서 남은 것이 있나 다시 이곳을 찾았다. 어쨌든 이 은자 또한 자신의 아들이 생전에 벌어 둔 것이니 자신이 챙긴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한데 그런 자신이 은자를 챙기기는커녕 매질을 당할 줄이야.

이 씨가 밀치는 바람에 목운요가 손에 쥐고 있던 등잔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불이 훅 하고 꺼져 버렸다. 순식간에 칠흑처럼 변한 방 안에선 이 씨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목운요가 바닥에 떨어진 홍두깨를 빠르게 주워 들었다. 그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씨의 다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퍽-!

갑작스러운 일격에 당한 이 씨가 바닥에 나뒹굴자, 목운요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홍두깨를 재차 휘둘렀다. 그녀의 분노와 증오가 담긴 공격에 ‘와드득’하고 다리뼈가 부러지면서, 이 씨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이년! 내 기필코 네년을 죽이고 말 테다, 아아악!”

하지만 목운요는 관심도 없다는 듯 냉정한 얼굴로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부싯돌로 천에 불을 붙였다.

기름을 타고 불씨가 맹렬하게 피어오르더니 얼마 가지 않아 집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