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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화 (2/442)

2화 지켜야 할 사람

그 이야기에 소청은 대경실색하며 무릎을 꿇은 채 이 씨의 옷자락을 움켜쥐곤 애걸했다.

“어머니, 요아는 그이의 유일한 혈육이에요. 장 씨한테 갈 테니 요아는 목씨 가문에 남도록 해 주세요!”

시어머니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소청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등졌으니 눈엣가시인 자신을 그대로 둘 리 없었다.

하지만 운요, 그 아이는 절대로 장씨 가문에 들여선 안 됐다.

장 씨가 속한 장부(張府)는 한 마디로 ‘매음굴’이었다. 장 씨는 지긋한 나이에도 유난히 어린 계집을 좋아했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그에게 짓밟혔던가? 목운요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사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소청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다면 제 결백도 입증할 수 있을 터였다!

어머니의 눈빛에서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를 알아챈 목운요가 허겁지겁 달려가 목멘 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목운요를 끌어안은 소청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요아, 이 가여운 것…….”

목운요는 벌게진 눈으로 이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음속에 증오와 분노가 차올라 친할머니인 이 씨를 잘근잘근 씹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회귀 전에도 이 씨는 목운요를 팔면 큰돈을 쥘 수 있을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거기에 더해 제 며느리를 잡아다 장부로 보내 버렸다.

금수만도 못한 장 씨는 소청을 욕보인 것도 모자라 목운요에게까지 손을 뻗치려 했다.

소청은 딸을 지키기 위해 깨진 도자기 조각을 장 씨한테 휘두르고 도망쳤다가 잡혀서, 죽도록 괴롭힘을 당했다.

목운요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간신히 도망쳤지만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야 했다.

그 후 그녀는 수없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리고 매번 맹세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자신과 어머니를 매음굴로 밀어 넣은 원흉인 이 씨의 숨통을 기필코 끊어 버리겠다고!

장부에 제 발로 가겠다는 소청의 대답에 이 씨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곤 경멸에 찬 눈빛을 한 채 소청의 치맛단에 침을 퉷 하고 뱉었다.

“흥, 이 늙은이 진 빼지 말고 진즉에 알겠다고 하면 되었을 것을. 그건 그렇고, 그 천박한 기질은 끝끝내 감추질 못하나 보구먼. 하도 고고하게 굴기에 창부를 위해 열녀문이라도 세워야 하는 줄 알았네.”

평소 이 씨는 가녀리면서도 고상함을 잃지 않는 소청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한데 그런 소청을 마음껏 구박할 수 있게 되자,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후련하기만 했다.

소청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서럽게 울어 댔다. 시집왔을 때부터 시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오랫동안 정성껏 보필하면 언젠가는 자신을 인정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시어머니 이 씨는 끝끝내 받아 주지 않았다.

목운요의 눈가에 시뻘건 핏발이 들어섰다. 어머니를 욕보인 자는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증오와 분노가 가슴속에서 울컥울컥 솟구쳤다.

그런 목운요의 눈빛에 이 씨는 저도 모르게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버럭 화를 냈다.

“이 지긋지긋한 것, 왜 날 그딴 눈빛으로 보는 게야! 더러운 어미 밑에서 누구 씨인지도 모르고 태어난 주제에! 너희 둘 다 장부로 넘겨줄 테다!”

그런 목운요를 소청이 붙잡으며 달랬다.

“요아야, 할머니한테 여기에 남게 해 달라고 빌어야지…….”

그러나 목운요는 옷장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반짇고리에서 가위를 꺼내선 이 씨를 향해 휘둘렀다.

쉬익-!

친할머니라는 노친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해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삶도 망쳤다. 친손녀를 죽이려는 할머니라면 내가 죽여 주마!

그에 이 씨는 크게 당황했다. 그동안 두 모녀 모두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했었는데 갑자기 자신에게 대드는 모습에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됐다.

가윗날이 제 눈앞에서 번쩍하고 스쳐 지나가자,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목운요의 뺨을 힘껏 갈겼다.

목운요는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아직 어린 데다 머리에 상처까지 입은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이 씨의 비단옷을 뚫고 들어간 가윗날은 팔뚝을 조금 긁히는 데 그쳤다. 깜짝 놀란 이 씨는 비명을 지르며 목운요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선 그녀의 뺨을 연달아 힘껏 후려갈겼다.

짝!

“이 더러운 것! 백번 죽어도 싼 것! 감히 날 해치려 해? 내 오늘 네년의 숨통을 기필코 끊어 주고 말 테다!”

“어머니, 차라리 절 때리세요! 요아는 아직 어려요!”

소청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목운요를 제 뒤로 숨겼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이 씨는 옆에 있던 빗자루를 들더니 두 모녀를 향해 거침없이 휘둘렀다.

이를 꽉 물자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자신을 지키려는 어머니를 밀어낸 목운요가 흉흉한 눈빛으로 이 씨를 노려봤다.

“어디 한번 때려 봐, 죽을 만큼 마음껏 때려 보라고! 오늘 날 때려죽이지 못하면 내일 내가 당신을 죽여 버릴 테니까! 하늘에도 눈이라는 게 있으면 오늘 당신이 저지른 죗값을 언젠가 받으러 온다는 걸 명심해!”

악에 받친 목운요의 표정에 이 씨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에 목운요가 탁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도자기 그릇을 깨곤, 깨진 조각을 주워 제 얼굴에 들이댔다.

“장가 놈한테 날 팔면서 은자도 이미 챙겼겠지? 이 얼굴이 망가지면 장가 놈한테 뭐라고 할 거죠?”

분노에 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목운요의 모습에 이 씨가 눈을 부릅떴다.

“너,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게냐. 내가 언제 돈을 받았다고…….”

재수 없는 게 그걸 어찌 알았지?

목운요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달걀처럼 매끄러운 얼굴에 깨진 조각이 파고들며 피를 냈다. 새하얀 뺨에 난 상처가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목운요는 이 근방에서 빼어난 외모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담하면서도 고운 얼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티 하나 없이 새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는 흰 명주와도 같았다. 슬쩍 움켜만 쥐어도 손안에서 매끄럽게 빠져나갈 것처럼 매끄럽고 광이 났다.

그런 그녀를 보기 위해 목을 쭉 빼고 구경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그만둬!”

이 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씨는 장 씨로부터 이미 은자 오십 냥을 받았다. 때가 돼서 목운요를 내놓지 못한다면 수중에 들어온 은자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 장 씨의 눈 밖에 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살고 있는 마을에서 장 씨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건, 한마디로 말해서 살길이 끊어지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런 이 씨를 보며 목운요가 또다시 조각을 힘껏 눌렀다.

“당신이 나한테 상처를 냈다는 걸 장 씨가 알면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그러다가 은자를 물어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딱 나흘만 미뤄요. 나흘 동안 상처가 나으면 장부로 갈 테니. 혹시 알아요? 누구 덕분에 은자를 더 받아 낼 수 있을지.”

이 씨는 내내 눈을 부릅뜬 채로 오만상을 쓰고 있다가, 목운요의 마지막 말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말이 참말이냐?”

“속여서 뭐 하겠어요?”

“좋다. 네 말을 한번 믿어 보마. 하지만 날 가지고 노는 거라면 네년들을 잡아다가 다리를 분질러 기루에 팔아 버릴 테다. 사내를 하나만 상대할지, 여러 사내를 상대할지는 네년들의 선택에 달렸다.”

이 씨는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저 재수 없는 것들은 죽어도 제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 나흘만 기다리면 나중에 장 씨한테 은자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씨의 말에 소청은 숨통이 턱 막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요아는 목씨 가문의 핏줄이 분명하거늘, 친할머니가 어찌 이리도 매정하다 못해 악독하단 말인가.

그때 원망과 증오로 가득한 눈빛의 목운요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당장 나가요!”

이 씨는 차갑게 웃으며 자신이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옷을 툭툭 털었다.

“내가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알아? 네년들 때문에 신발이 다 더러워졌다고, 퉷!”

침을 뱉은 이 씨가 득의양양하게 몸을 흔들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에 소청은 바닥에 주저앉아 입가를 틀어막은 채 목멘 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아, 우리 불쌍한 요아……. 여보, 어떻게 우리 둘만 이렇게 버려두고 가 버린 거예요…….”

목운요는 깨진 그릇을 던져 버리곤, 가녀린 두 팔로 제 어미를 꽉 껴안았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제가 어머니를 지켜 드릴게요. 다시는 누구도 어머니한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

다시 살아난 데다 어머니가 아직 무사히 살아계신다. 다시는 어머니의 눈가가 눈물로 짓무르게 하지 않을 테다! 어머니를 울린 빚은, 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갚아 줄 테다!

내리깐 그녀의 눈꺼풀이 반짝하고 치켜 올라가며, 맑고도 촉촉한 눈동자에 순간 차가운 한기가 깊게 맴돌았다. 그 눈빛이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귀신과도 같았다.

눈물짓던 소청은 허겁지겁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요아야, 장 씨는 음흉한 자니 절대로 장부에 가면 안 된다. 네가 총기를 발휘해 나흘이라는 시간을 벌었으니, 어서 도망치렴.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해. 이 어미가 널 꼭 지켜 주마. 나한테 은자가 있으니 그걸 여비로 쓰면 될 게다.”

소청이 옷장을 마구잡이로 뒤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죽어도 되지만 제 딸한테는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요아는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었다. 자신은 죽더라도 아이는 지켜야 했다.

하지만 옷장을 아무리 뒤져도 예전에 모아 뒀던 은자 다섯 냥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여기에 놔뒀는데…….”

그에 목운요가 비쩍 마르고 가녀린 몸으로 소청을 꽉 안아 왔다.

“어머니, 찾을 필요 없어요. 은자라면 저 노친네가 이미 훔쳐 갔을 테니까요.”

“어머니가 어떻게 이리…….”

소청은 절망과 원망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일찍 죽은 제 남편이 원망스럽고, 모진 시어머니를 일찌감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무능한 지금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 겁내실 것 없어요. 지옥 불구덩이도 아니고 그냥 장부에 가는 것뿐이니까요.”

그때 누가 죽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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