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고약한 노인네
이월의 어느 추운 날.
차가운 감방 안에선 한기가 시종일관 뼛속을 파고들었다.
건초에 기댄 목운요(沐雲瑤)의 손목에서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으나,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운 얼굴에는 웃음기만 가득했다.
“할머니, 이따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 놓는 게 좋을 거예요. 그 입 함부로 놀렸다간 장 씨(張氏) 놈이랑 나란히 죽을 테지만, ‘제대로’ 말하면 살려는 드릴 테니까요. 이렇게 쉬운 문제도 틀리진 않으시겠죠?”
꾀꼬리처럼 고운 목소리이건만, 이 씨(李氏)의 귓가에는 그 목소리가 악귀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년! 네년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느냐! 현령 나리께서 사건의 진실을 밝혀 네년에게 엄벌을 내리실 게다.”
“풋, 천지신명님도 놓치는 것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 따위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모녀를 괴롭힌 고약한 노친네를 여태껏 가만히 뒀겠어요?”
“이, 이 지독한 년! 재수 없는 것! 현령 나리께서 진상을 밝혀 네년의 목을 치고 그 살을 발라 개에게 던져 주실 것이다!”
노인은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며 온 힘을 다해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야만 목운요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질 수 있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목운요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노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상처로 가득했지만 섬섬옥수처럼 곱고 부드러웠다.
“할머니,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더 믿는다고요. 그놈은 분명 제가 죽였죠. 하지만 제가 덩치 큰 사내를 죽였을 거라고 누가 믿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이 씨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목운요를 바닥으로 힘껏 밀어 쓰러뜨렸다.
때마침 지나가던 옥리(獄吏, 감옥에서 죄수를 감시하는 관리)가 그 모습을 보곤,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노인에게 휘둘렀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소란이야? 아직 덜 맞은 게냐? 못된 할망구, 감옥에 갇혀서도 제 손녀를 저리 괴롭히다니. 다리가 부러져도 싸다! 현령 나리께서 사건을 심의하러 입실하셨으니 나오거라.”
이 씨는 고개를 숙인 채 목운요를 노려보다가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뒤늦게 찾아온 후회에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이 물건이 이리 악독한 줄 알았더라면 진작 숨통을 졸라 죽여 버렸을 것을!
목운요는 속으로 냉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옥리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지난 며칠 동안 제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 * *
나흘 전, 눈을 뜬 목운요는 눈앞의 풍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크지 않은 방 안에는 투박한 탁자와 의자, 나무 옷장이 놓여 있었다.
깔끔하고 정갈한 이곳은 그녀가 열세 살 전까지 살던 방이었다.
침상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아름다운 여인이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보였다.
비단결 같은 머리, 호리호리한 몸매, 무명옷을 걸쳤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자태는 여전했다. 그녀는 목요운의 어머니, 소청(蘇清)이었다.
“어머니?”
“요아야, 정신이 드니? 머리의 상처는 아직도 많이 아픈 거야?”
허둥지둥 목운요를 부축한 소청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모두 이 어미 탓이다. 내가 널 잘 돌보지 못해서. 어머니가 어찌 이런 흉악한 짓을…….”
목운요는 그제야 뒤통수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만져 보니 커다란 통증에 눈앞이 캄캄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두 달쯤 지났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다. 집으로 찾아온 할머니가 소란을 피우자, 그 앞에서 몇 마디 했다가 매질을 당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
목운요는 소청의 품 안으로 달려들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소청은 멈칫했지만 이내 꽉 안아 주었다.
“요아야…….”
터져 나온 울음에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던 목운요는 혀끝을 꽉 깨물었다. 아픔이 밀려왔다. 그제야 지금 제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게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돌아왔다! 모든 악몽이 시작되기 전의 시절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니 모든 것을 되돌릴 기회였다!
그때, 뒤에서 거슬리는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소청, 이 요망한 것! 내 자식 놈의 것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그 잘난 세 치 혀를 굴려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하게 만들어?! 흥, 어미가 아들의 것을 돌려받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거늘, 내 자식 놈이 살아 있을 땐 우리 가문에 손주 하나 낳아 주지 못하더니, 이젠 내 자식 놈의 것을 넘봐? 주제도 모르고, 양심도 없는 더러운 것!”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목운요의 머릿속에서 천둥 벼락이 ‘콰지직’ 하고 내리꽂힌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이 씨. 할머니인 이 씨의 목소리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간에 기분 나쁜 저주와도 같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어머니, 제가 어찌 그런 짓을…….”
소청이 시어머니를 부축하려고 다가갔다.
그러자 이 씨가 소청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그 힘이 어찌나 세던지 소청의 얼굴이 고통으로 새하얗게 질렸다.
아파도 비명 하나 못 지르는 소청의 모습에 노인의 입꼬리가 스윽 하고 올라가더니 고소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소청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말도 안 되는 오해세요. 요아가 방금 정신이 든 터라, 정신이 없어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뿐이에요.”
소청을 째려보던 이 씨는 그 말에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네 더러운 속내를 모를 줄 알고? 성아(成兒)가 살아 있을 때는 모자 사이를 이간질해 내 아들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분가를 시키더니, 이제 성아가 죽으니 날 점점 괄시하지 않느냐? 천박하기 그지없는 요망한 것! 내 진즉 알았다면 성아한테 네년을 버리라고 했을 것을, 그리됐다면 지금쯤 대를 이을 손자들을 잔뜩 낳았을 텐데!”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붓는 모습에, 침상 위에 앉아 있던 목운요는 속에서 열불이 터지는 것 같았다.
생계를 위해 서릉으로 향하신 아버지는 삼 개월 동안 감감무소식이더니, 죽었다는 비보가 갑작스레 날아들었다.
슬픔을 가누지 못한 어머니가 혼절하기를 수차례. 간신히 마음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 시어머니 이 씨가 갑자기 나타나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녀는 아들도 낳지 못하고, 죽은 남편을 위해 관을 들어 줄 사람도 없다며 며느리에게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부었다.
어머니가 쓰러지자, 이 씨의 구박은 점점 심해졌다. 집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죄다 내간 것은 물론, 동네에서 악명 높은 장 씨의 첩이 되라고 은근슬쩍 말을 비추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목운요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노로 가득한 그녀의 눈빛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나가세요, 우리 집에서 당장 나가요!”
목운요의 외침에 이 씨는 소청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네년의 기가 세서 내 아들을 잡아먹은 것도 모자라, 자식새끼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웃어른한테 막말을 퍼붓게 해?! 네년이 이 늙은이를 화병으로 죽게 할 생각이구나! 우리 집에 시집온 지 십이 년 동안 사고만 치고, 빚쟁이보다 더 독한 계집만 덜렁 낳은 거 말고 대체 뭘 했느냔 말이다! 네가 들에 나가 일을 하길 해, 아니면 아들을 낳기를 했어? 우리 모자 사이만 갈라놓고, 양심도 없는 막돼먹은 것!”
“어머니…….”
소청이 연신 눈물을 흘렸지만 이 씨는 이미 인내심을 잃은 상태였다.
“흥, 이제 성아가 죽었으니 우리 집안에서도 너 따위 거둬 줄 필요가 없다. 내일 당장 짐 싸서 장 씨한테 가도록 해!”
“어머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앞으로 요아를 지키며 살 것이니 절대 개가(改嫁, 다른 남자와 결혼함)하지 않을 거라고요!”
“평생 손에 물 한번 묻혀 보지 않은 네가 말이냐? 성아가 살아 있는 동안 밭일이라는 걸 해 본 적이나 있더냐? 장 씨한테 가면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 있을 텐데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할망정. 장 씨가 그래도 통이 커서 널 첩으로 맞이하면서도 예물을 잔뜩 내주더구나. 내 그것을 이미 받았으니 넌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그 말에 안 그래도 하얗던 소청의 얼굴이 눈에 띄게 허옇게 질렸다.
“어머니, 그이가 죽은 지 두 달도 안 됐어요. 그이를 위해 전 수절할…….”
“수절? 네가 우리 성아를 잡아먹지 않았느냐! 아녀자의 도를 지키지도 못하고 천박한 몸뚱이나 놀릴 줄 아는 주제에!”
욕설을 퍼붓던 노인은 목운요를 보곤 소청을 밀치더니 제 손녀를 끌어냈다.
“네가 우리 가문에 시집온 지 아홉 달이 안 돼서 저 ‘물건’을 낳았지. 네 배 속에 든 게 누구 씨인지 알 게 뭐야? 너 같은 게 수절이라니? 웃기지도 않지!”
“어머니. 어, 어떻게 그런 말씀을…….”
소청이 혼절이라도 할 듯 서럽게 울어 댔다.
목운요를 가졌을 때도 노인은 그녀를 한시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들이 없을 때마다 물을 긷게 하거나 옷을 빨도록 했다.
그러다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조산하게 되어, 목운요는 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찔린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당시 이 씨는 한동안 잠잠했지만 이제 또다시 그 핑계를 들며 소청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뻔뻔한 것. 네년이 우리 성아를 속인 것도 모자라 이젠 날 속이려 해? 천박하고 더러운 것! 내일 장 씨가 널 데리러 사람을 보낼 테니 네 건 남김없이 싹 다 가져가! 저 ‘물건’까지도! 우리 가문 더럽힐 생각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