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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117화 (117/120)

117화.

외전 12

순간, 레온하르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귓가엔 셀린느의 말이 계속해서 메아리쳤고 전신엔 열감이 화끈거리며 돌았다.

입을 열었다간 주제를 모르고 파닥거리는 심장이 튀어나올 듯했다.

하지만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빛내는 셀린느가 레온하르트의 혀를 움직였다.

“정말로 그걸로…… 괜찮나.”

셀린느는 고개를 힘을 주어 끄덕였다.

실은 레온하르트에게 묻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대체 그를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에게 직설적으로 묻는 건 그를 곤란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득, 레온하르트의 손길이 뺨에 느껴졌다.

그는 굳은살이 잔뜩 박여 거친 손으로 셀린느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마치, 셀린느가 힘을 주면 바스러지는 낙엽이라도 되는 것처럼.

“셀린느.”

레온하르트가 중얼거렸다.

“다시 북부로 가게 된다면…… 할 말이 있다.”

“우린 엊그제만 해도 북부에 있었잖아요.”

“그때는 말할 수가 없었어.”

레온하르트가 셀린느에게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가자. 그자가 무척 가까워.”

레온하르트는 데이브 루테가 있는 곳에 접근할수록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데이브 루테에게 심어 놓은 표식은 별로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가 이 정도로 강하게 느껴진다는 건, 데이브 루테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명을 들은 셀린느가 생각에 잠겼다.

“칼 루테처럼, 흑마법사가 되려고 한 걸까요?”

“그건 아닐 거다.”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본 것처럼, 흑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하여 되는 건 아니니까.”

“데이브 루테는 가능할지도 모르잖아요.”

“만약 그랬다면 코델리아와 접촉했을 때 진작 흑마법사가 되었을 거다.”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의 기운은 안 느껴지죠?”

“그것까진 모르겠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표식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셀린느는 데이브 루테를 발견하자마자 굳어 버렸다.

그는 핏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한 지점을 꼼짝도 하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보다는 시체나 밀랍 인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데이브 루테.”

레온하르트가 차갑게 그를 불렀지만, 데이브 루테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데이브 루테?”

셀린느의 다소 걱정 어린 물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레온하르트가 라쉬르를 빼 들었다.

잠시 후, 작은 파열음이 들리더니 거센 마력의 흐름이 셀린느의 주위에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결계였어.’

셀린느는 깨달았다.

그동안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직접 표식을 심은 레온하르트 이외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코델리아가 샤프 백작령에서 그랬듯, 결계를 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데이브 루테의 몸을 감싸며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서 흑마법사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리브론성에서 몰래 결계를 치고 이렇게 거대한 마법을 전개할 이유는 사악한 동기 이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드디어 데이브 루테의 시선이 그들에 닿았다.

“……어떻게.”

“표식을 새겼다.”

레온하르트가 라쉬르로 데이브 루테의 목을 조준했다.

깜짝 놀란 데이브 루테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놓아 버렸다.

“이제, 목적을 말해 주실까.”

“…….”

데이브 루테는 입을 꾹 다물었다.

셀린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태까지 그들이 맞섰던 많은 흑마법사들과는 달리 데이브 루테에게서는 레온하르트에 대한 적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왜지?’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프 백작령에서 정체가 들켰을 당시의 데이브 루테는 비굴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기세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데이브 루테는…….

셀린느는 그 눈빛을 알았다.

한때 자신 역시 그랬으니까.

‘죽음을 기다리는 자야.’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 입을 열었으나, 레온하르트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는 앞으로 성큼 걸어가 라쉬르로 데이브 루테 주위의 마력을 무력화시키며 순식간에 제압했다.

셀린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레온하르트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데이브 루테의 마력이, 털끝 하나 영향받지 않은 채 온전히 부활했다.

“레온하르트!”

셀린느는 앞으로 달려 나갔지만 새로이 생성된 결계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어떻게……!’

레온하르트는 이미 데이브 루테의 마법을 완전히 부수었다. 결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쓰러져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의 데이브 루테가 오랜 시전 시간이 필요한 마법을 갑자기 발동시켰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다른 마법사가 있어.’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 새롭게 시전된 마법도 흑마법은 아닌 듯했지만, 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셀린느는 새로운 결계가 이전의 결계와 달리 그다지 견고하지 않는다는 점도 발견했다.

그녀는 결계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레온하르트. 그자를 죽여요.”

“……?”

레온하르트가 조금 혼란스러워하며 셀린느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셀린느는 발을 동동 굴렀다.

실제로 레온하르트가 흑마법사 이외의 인간은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을 꺾어 가며 데이브 루테를 죽이기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소한 죽이는 척은 해 주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공범을 끌어내기 위해.

셀린느는 다시 한번 시도했다.

“다른 자가 또 있어요! 시간이 없다고요!”

“……!”

이번엔 그가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온하르트의 몸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라쉬르가 데이브 루테의 목을 노리며 일직선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낯선 목소리가 하늘을 갈랐다.

“멈춰!”

결계가 깨어지는 파열음과 함께 등에 차갑고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셀린느는 태연하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에 칼을 가져다 댄 사람을 바라보았다.

‘……?’

셀린느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사람 한 명 죽여 본 적 없는 듯한 젊은 청년이 부들부들 떨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셀린느는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어린데?’

자세히 보니 키만 멀대같이 컸지,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은 결코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셀린느는 엘머 남작저를 떠올렸다.

당시엔 죽어도 다시 살아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목숨은 단 하나뿐.

그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결심했다.

레온하르트는 소년을 다소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 정도의 마력을 지녔다면 어느 가문이든 제법 한자리쯤 차지하고 있는 마법사일 터.

나이를 보니 데이브 루테의 꼬드김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래도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을 내려라.”

“…….”

소년은 입을 꾹 다문 채 도리질을 쳤다.

레온하르트는 데이브 루테와 이 소년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들의 목적은 시간을 끄는 거야.’

그렇다면, 대화로 풀어 나가는 건 이 둘을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당장 검을 내려라. 그렇지 않으면, 이자를 죽일 터이니.”

소년이 날카롭게 외쳤다.

“그러면 셀, 셀린느 루테 역시……!”

하지만 소년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셀린느가 마력을 폭발시켜 소년의 손아귀에 붙들린 몸을 빼내었기 때문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사방에 흐르는 마력이 셀린느의 개입으로 미세하게 바뀌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이 아주 조금 일그러졌다.

‘좋지 않아.’

대상이 불특정 다수일 땐 이 정도로 섬세하고 복잡한 마법이 필요가 없다.

이 마법은 극히 일부를 대상으로 했다.

좀 더 정확히는…… 단 한 명.

‘암살이군.’

판단을 내린 레온하르트는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흘낏 셀린느를 바라보니 이미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상태.

레온하르트는 라쉬르로 마력을 흡수하는 불길을 일으켜 데이브 루테를 가둔 다음, 소년에게로 성큼 다가갔다.

“이름이 뭐지?”

“알 것 없다!”

레온하르트는 정체를 확실히 안 다음 심문하는 걸 선호했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소년, 마법을 거두어라. 이미 마법은 셀린느에 의해 오염되었어. 네가 바라는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

“설령 마법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너는 물론 네 친인척 모두가 죽을 것이다. 지금쯤에서 물러난다면 가벼운 수준의 처벌이 되도록 힘을 써 보지.”

레온하르트는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소년은 다시는 자유의 몸으로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소년에게선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 가족들은 모두 죽었어. 친척들도.”

“……?”

레온하르트는 눈을 깜박였다.

‘반역자의 자식인가?’

리브론성에 기거하는 누군가에 의해 모든 일가가 몰살당할 정도라면 반역을 저지른 가문밖에 없다.

‘하지만, 데이브 루테가 왜?’

자신이 알기론 데이브 루테는 오래전부터 샤프 백작을 섬겨 왔다.

그런 그가 한낱 반역자의 자식과 힘을 합칠 이유는 없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숨길 건 없어! 황실이 남부를 죽이기 위해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는 건 남부 모두가 알아!”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셀린느와 레온하르트는 할 말을 잊은 채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데이브 루테와 이름 모를 소년을 잇는 연결고리가 햇살 아래에 아픈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도, 황태자도 오래 묵은 원한 때문에 샤프 백작령이 우두머리 마물에 신음할 때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도리어 전대 샤프 백작이 목숨을 바쳐 보낸 지원 요청을 가볍게 무시하기까지 했다.

‘그럼, 이 암살 마법의 대상은…….’

레온하르트는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황제나, 황태자를 향했으리라.

어느 쪽이건 샤프 백작령을 말려 죽인 장본인인 건 똑같았다.

‘그래서 마법이 조금 변질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군.’

세부적인 요소가 셀린느의 마력에 의해 변질되었더라도 황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을 테니까.

레온하르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자신이 이들과 같은 일을 당했더라면…….

‘더욱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황실에 품고 있는 감정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가족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비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

자신이 마물들을 물리친 이후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이 굴러가는 샤프 백작령에 대한 환멸.

무엇보다도…… 그렇게 믿고, 섬겼던 황실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버렸다는 배신감.

이 중 무엇 하나 레온하르트가 비난 할 수 있는 감정이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눈을 감았다.

이 눈을 뜬다면, 그는 의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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