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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112화 (112/120)

112화.

외전 7

레온하르트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가슴에는 차가운 불길이 일고 있었다.

코델리아 운소렘.

한때 제국의 황녀였던 자이자, 현 황제의 손위 누이.

레온하르트가 걸음마를 하기도 전에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공표된 비운의 황녀.

타고난 마법사에 세 마리 용의 주인이었던 천재.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첫 흑마법사를 베자마자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코델리아 운소렘은 흑마법사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쫓아낸 황실을 저주했다.

그녀는 오로지 제국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흑마법을 가까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실에게 흑마법사가 된 황녀는 시한폭탄일 뿐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황실의 인내심도 코델리아가 실험을 위해 시종을 아홉 명째 죽이자 끝이 났다.

코델리아는 쫓겨나면서 황제의 유일한 적장자인 황태자 리카르도는 황위에 오르지 못하리라고 울부짖었고, 그 망령은 아직도 황태자를 사로잡고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이 모든 사실을 셀린느에게 알려 주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코델리아에게 간단히 답했다.

“이제는 제국의 죄인일 뿐이지.”

“천만에.”

코델리아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죽인다면, 너는 황족 시해범이 된다. 젊은 베르누이.”

레온하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황실에 코델리아 운소렘을 죽였다고 보고한다면 도리어 포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잃어버린 지 오래인 황태자의 신망도 다시 얻을지도 모른다.

황태자는 오랜 기간 코델리아가 자신을 죽이러 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으니까.

하지만, 적의 착각을 바로잡아 줄 필요는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대답 대신 라쉬르를 고쳐 잡으며 셀린느에게 일렀다.

“이자의 목적은 루다. 대피해.”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결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흑마법사에 맞서는 레온하르트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루를 데리고 흑마법사에게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했다.

셀린느가 산에서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

루가 길게 울음소리를 내는 동시에 셀린느는 무릎을 꿇었다.

산 전체가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레온하르트가 나지막하게 말을 토해 냈다.

“……땅에 결계를 심었군.”

“애송이들은 상상도 못 할 방법이지.”

코델리아는 흔들리는 땅 위에서 홀로 고고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레온하르트도, 셀린느도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면서 새로운 결계가 그들을 집어삼켰다.

셀린느는 루를 대피시키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셋은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하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셀린느는 멍하니 그 소리가 어딘지 레온하르트의 목소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순간.

세상이 반전되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더 이상 지하가 아니었다.

‘현혹이야!’

셀린느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자신의 망막에 맺히는 게 무엇이든 현실과 백팔십도 다를 것이다.

‘햇빛 따윈 없어.’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다.

셀린느의 눈에 들어오는 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대한 창이 있는 아늑한 방이었다.

‘…….’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현혹 마법이었다.

“물러서라.”

레온하르트의 목소리와 함께 라쉬르가 눈앞에서 푸르게 빛났다.

셀린느는 눈을 깜박였다.

햇살로 가득한 아늑한 방이 사라지고 축축한 흙으로 이루어진 동굴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루!’

셀린느는 소스라쳤다.

어떻게 루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루가, 없어요…….”

“안다.”

레온하르트가 씁쓸하게 말을 내뱉었다.

“데려간 모양이군.”

“찾아야…….”

“그래, 찾아야 해. 너무 늦기 전에.”

그는 비틀거리는 셀린느를 지탱했다.

“셀린느. 정신 차려라. 이럴 때일수록 버텨야 해.”

“…….”

셀린느가 물기 가득한 눈으로 레온하르트를 올려다보았다.

레온하르트는 눈물로 흐려진 청회색 눈에 담긴 감정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이 지금 어떤 말을 하든, 피상적인 위로에 불과할 것이다.

셀린느가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느릿했지만 갈수록 빨라져 어느덧 뛰는 걸음이 되었다.

레온하르트는 그녀와 보조를 맞추어 뛰었다.

지금은 최대한 셀린느에게 맞추어 주고 싶었다.

동굴은 얼기설기 엮인 미로에 가까웠지만 레온하르트는 사방에서 코델리아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었다.

루가 계속 저항하고 있는 모양인지 처음엔 날렵하고 가벼웠던 코델리아의 움직임은 루가 합류하고 나서부터 확연히 느려졌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들이 코델리아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마침내, 그들은 번득이는 황금색 비늘을 발견했다.

“……!”

셀린느는 루를 소리쳐 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은 최대한 모든 걸 레온하르트에게 맡기고 자신은 한 발짝 물러나 있어야 했다.

레온하르트는 저 자칭 황녀에 대해 무척 잘 아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들은 꿈틀거리는 루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루……?”

셀린느의 입에서 얼빠진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코델리아는 온데간데없이, 루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갑자기, 레온하르트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함정이다.”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루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레온하르트의 말이 맞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코델리아가 그렇게 원하던 루를 혼자 내버려 두고 사라질 리가 없었다.

잠시 뒤.

루가 셀린느의 눈앞에서 녹아내렸다.

셀린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코델리아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했다.

레온하르트가 비웃었다.

“제법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군.”

“네?”

“마법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걸 보면, 다른 데 기력을 빼앗겼다는 뜻이다. 루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셀린느의 가슴에 희망이 차올랐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빨리, 빨리 가요.”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동굴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금 셀린느의 눈에 황금빛 비늘이 들어왔다.

셀린느는 너무 기대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얼굴을 잔뜩 찌푸린 코델리아를 발견한 순간 이번에야말로 진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온하르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코델리아 운소렘.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너를 처단하겠다.”

“감히!”

코델리아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내가 무엇을 했더냐? 말해 보아라, 젊은 베르누이. 내가 네게, 네 가족들에게 해코지를 했더냐? 이 지방의 사람을 하나라도 죽였더냐?”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처벌은 불가피하다.”

“처벌?”

코델리아가 머리를 번쩍 들고는 깔깔 웃었다.

“나는 그저 힘을 원했다. 우리 제국을 위한 힘을!”

“……지금 역시,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래.”

셀린느는 흠칫했다.

코델리아의 말은 결코 기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확신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때는, 내 힘이 부족해서 제 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좀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는다면?”

“…….”

“내 동생은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그 아이는 그런 인간이니까.”

코델리아는 잠시 황홀경에 잠겼다.

“노력을 해 보았지만…… 나만으로는 부족했어. 다른 동류들은 멍청하여 내 상대가 되지 않았지. 나는 나의 옛 친구들, 용이 필요했다.”

셀린느는 루를 바라보는 사랑이 듬뿍 담긴 코델리아의 눈길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어린 용을 몇이나 구해 보았지만 흑마법과 맞지 않았는지 금방 죽고 말았어. 하지만 성장한 용들은 너무 약아서 넘어오지 않았지…… 이 녀석을 보았을 때,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소름이 전신을 타고 내달렸다.

셀린느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몸만 성장한 루는, 코델리아가 보기에는 최적의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그때 시간이 일주일만 더 있었다면……! 하지만 되었다. 이제 이 녀석은 완전히 내 것이 될 터이니.”

레온하르트가 차갑게 대답했다.

“안됐군. 너는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코델리아의 얼굴에 명백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프레데릭의 아들아, 넌 나를 절대 죽일 수 없다.”

레온하르트는 대답 대신 라쉬르를 고쳐 쥐었다.

옆에서 부들부들 떠는 셀린느를 보니, 더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네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아느냐?”

“……멈춰요.”

레온하르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분명 셀린느는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셀린느, 저자의 말은 듣지 마라. 저자는 단지…….”

“아뇨.”

셀린느가 고개를 젓더니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저주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어요.”

코델리아는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귀여운 애인에게 어디까지 얘기한 거냐, 젊은 베르누이?”

“입 다물어.”

레온하르트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으나 코델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는 이쪽이 더 좋은 듯하군.”

셀린느는 잠시 레온하르트를 곁눈질하고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주의 열쇠예요. 그래서 레온하르트가 당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죠?”

“……!”

레온하르트의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흑마법사들이 꾸미는 저주에 대해 알게 된 지 어언 석 달.

그동안 자신은 저주에 대해 연구하기는 했으나 그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흑마법사를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흑마법사는 죽어야만 했고, 그가 나서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희생하고 말 테니까.

코델리아가 셀린느의 말에 정말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정확해. 내가 설명할 수고를 덜어 주었으니 칭찬해 주지.”

“코델리아 운소렘……!”

“프레데릭이 황족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더냐,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 지금이에요!”

셀린느가 소리를 질렀다.

레온하르트는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그를 막고 있었던 유일한 존재는 셀린느였고, 셀린느가 허락한 이상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라쉬르가 코델리아를 향해 내리꽂혔다.

코델리아는 각종 마법으로 대항했으나 레온하르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라쉬르의 칼날이 코델리아의 목을 향했다.

“멈춰요!”

레온하르트의 귀에 셀린느의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그는 그 목소리에 그대로 복종하여 코델리아를 제압한 채 잠시간 멈추었다.

그때였다.

자그마한 형체가, 그와 코델리아의 사이에 끼어든 건.

레온하르트는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셀린느의 움직임을 바라만 보았다.

셀린느는 품에서 링조르를 꺼내더니 코델리아의 목을 그대로 내리쳤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셀린느!”

레온하르트는 셀린느를 붙잡았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코델리아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로 셀린느에 의해.

그는 급속도로 형체를 잃어 가는 코델리아를 쳐 내고 셀린느를 꽉 껴안았다.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흑마법사의 목숨을 끊으면, 저주가 완성되니까.

셀린느느가 그의 품속에서 중얼거렸다.

“레온하르트…… 무거워요.”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셀린느를 놓아줄 수 없었다.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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