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외전 3
루의 울음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셀린느는 오직 그 소리만 따라 갱도를 내달렸다.
“셀린느.”
어느덧 레온하르트가 그녀를 따라잡았다.
“위험하니, 천천히…….”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셀린느의 다리가 멈추었다.
기이한 열기가 갱도 저편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셀린느는 자신과 레온하르트의 몸을 차가운 기운으로 덮었다.
“……!”
소름이 쭈뼛 끼쳤다.
열기는 마법이 형성한 냉기를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레온하르트가 조용히 말했다.
“괜한 대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루는, 언제부터 저런 상태였을까요?”
“…….”
“도와줄 순, 있는 걸까요…….”
셀린느는 말꼬리를 흐렸다.
레온하르트가 셀린느의 어깨를 토닥였다.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만.”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하르트의 말이 맞았다.
‘너무 들떴었어.’
샤프 백작의 얘기에선 그 어떠한 부정적인 요소도 눈치챌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 만에 급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와 함께 열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열기 때문에 갱도의 안은 광산이라기보단 화산 근처의 통로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열기를 따라 걷다 보니 갱도의 끝자락에서 자연 동굴에 가까운 부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셀린느의 눈이 커졌다.
“루……!”
동굴 깊숙한 곳에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덩치 큰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루였다.
셀린느는 넘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그녀의 뒤를 레온하르트가 바싹 따라붙었다.
마침내, 그들은 루가 완전히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덩치가 성인 남성의 두 배쯤은 되어 보이는 용은 웅크린 채 억눌린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루!”
셀린느는 루를 소리쳐 불렀다.
루가 고개를 들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여태까지 이어지던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황금빛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루는 좁은 동굴 안에서 날아오더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레온하르트는 한 발짝 물러서며 잔뜩 경계했지만, 셀린느는 되레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다행스럽게도 루는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고서 셀린느의 코앞에서 멈추어 천천히 눈을 깜박거렸다.
“루…….”
셀린느는 루의 등에 손을 얹었다가 화들짝 놀라 떼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열기는 루가 만들어 낸 것임이 분명했다.
루의 등은 한창 달구어지던 돌처럼 뜨거웠으니까.
공격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루는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말처럼 셀린느의 주위를 맴돌며 반가워했다.
그녀는 루를 찬찬히 살폈다.
지금 루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입구부터 들리던 고통에 찬 울음소리는 분명 심상치 않았다.
‘…….’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서늘한 식은땀 한 줄기가 등허리에서 흘러내렸다.
“루.”
뒤에서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셀린느, 이건…….”
“레온하르트도, 보이죠?”
레온하르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셀린느는 눈을 감았다.
루가 발산하는 열기 때문이 아닌, 가슴을 집어삼킨 진실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용은 사실상 마력으로 이루어진 생물.
그 마력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용은 살아갈 수가 없어진다.
루의 마력은 언뜻 보기에는 강력한 마력을 품은 위풍당당한 용의 모양새였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중심부에 어두운 기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흑마법사의 기운이야.’
지난 석 달간 루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흑마법사와 접촉한 건 분명했다.
레온하르트가 셀린느를 가볍게 뒤로 잡아당겼다.
“위험하다. 가까이 있지 말도록.”
“하지만…….”
“네 목숨은 이제 하나야.”
그 말에 담긴 애정과 걱정에 셀린느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셀린느는 그 자리를 바로 떠나지는 않았다.
“제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위험할 것 같군.”
“위험하지 않도록 레온하르트가 도와주면 괜찮아요.”
레온하르트가 얼굴을 찡그렸다.
“셀린느, 부디 시작하기 전에 뭘 하고 싶은 건지 설명해 다오. 자세하게.”
“흑마법사의 기운을 모두 빨아들이려고요.”
“……셀린느.”
레온하르트가 나직하게 그녀를 불렀다.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너무 위험해.”
“레온하르트가 없었다면 저도 엄두도 내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전 흑마법을 그대로 분출시킬 거예요. 그걸 무력화시켜 주세요.”
레온하르트는 잠시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셀린느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그가 얼마나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중 가장 큰 건…….
‘나에 대한 걱정이겠지.’
레온하르트를 걱정시키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괴로워하는 루를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셀린느의 결정은 단지 옛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루를 방치할 경우, 흑마법사의 기운에 괴로워하다가 역사서에나 나오는 광기 들린 용이 될 수도 있었다.
책에서 본 성장한 용들은 인간의 곁에서 몇백 년을 보내 현명했다.
하지만 루는 몇백 년은커녕 자신의 곁에서 보낸 몇 달이 전부였다.
‘반년도 안 되었지.’
그런 루가 흑마법사와의 접촉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제대로 된 대답을 더는 기다리지 않고 루를 향해 다가갔다.
레온하르트는 그녀를 말리지 대신, 라쉬르를 빼 들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셀린느는 루와 신체적으로 접촉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와 루를 둘러싼 마력의 흐름을 자신 쪽으로 끌어오려고 애썼다.
마력의 대부분은 마력석에서 발산되는 특유의 순수한 마력이었다.
하지만 개중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시커먼 기운이 섞여 있었다.
셀린느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시커먼 기운 속에 뛰어들어 주변의 순수한 마력과 분리해 냈다.
당연히 시커먼 기운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루를 상당수 잠식한 듯한 흑마법사의 흔적은, 루에게 더는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셀린느에게 들러붙었다.
‘……공격 마법이군.’
셀린느는 시커먼 기운에게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루가 방황하는 동안 만난 흑마법사는 갑자기 나타난 성장한 용을 공격한 모양이었다.
‘회유하려고 시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셀린느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만약 흑마법사가 루를 이용할 생각을 했다면 지금쯤 그녀는 루를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셀린느는 흑마법사가 루를 공격한 흔적을 그대로 밖으로 분출하며 소리쳐 외쳤다.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는 셀린느가 분출하는 공격 마법을 순식간에 베어서 무력화시켜 버렸다.
단 수십 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셀린느는 숨을 가쁘게 내쉬는 와중에도 눈앞의 용을 살폈다.
“루…….”
다행히 루의 눈에선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셀린느의 마음을 찢어 놓았던 신음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루의 비늘에 손을 살며시 얹어 보았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이할 정도로 루를 달구던 열기 또한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일종의 열이었나 봐.’
마치 바이러스에 대항해 열을 내는 인간의 몸처럼, 기이한 열기 또한 침입한 흑마법사의 기운을 루의 몸이 내쫓으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다행이군.”
레온하르트가 바로 곁으로 다가와 루를 살폈다.
“뭔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어 계속 걱정했었다.”
“고마워요.”
“…….”
레온하르트의 얼굴엔 별다른 표정 하나 떠오르지 않았지만 셀린느는 그가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루를 바로 이곳에서 몰아낼 수는 없어요. 역효과만 날 테니까…….”
사실, 기력이 쇠약한 상태인 루를 광산 밖으로 쫓아내는 것 자체는 쉬웠다.
하지만 그랬다간 루는 조금 같은, 혹은 더 심한 위험에 빠져 버릴 것이다.
“여기에 계속 놔두었다간, 계속 마력석을 주워 먹고 탈이 날 텐데.”
레온하르트가 걱정스레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루의 주인인 것도 아니라서…… 루는 성장했으니까요.”
“너무 일렀어.”
레온하르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언의 일부였으니…… 어쩔 수 없었어요.”
셀린느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테이지와 스테이지에 영향을 받았던 것들이 얼마나 이 세계에서도 말이 되지 않은 것들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단지, 자신이 예언이라고 말했다는 이유 하나로 따라와 준 레온하르트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도.
루의 갑작스러운 성장 역시 그 많은 용에 관한 책 중 사례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특이한 사건이었다.
평범하게 인간의 곁에 수백 년을 머물렀다면 흑마법사에게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잠깐만.’
셀린느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레온하르트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를 분석했던 마법사를 만나야겠어요.”
“왜지?”
“그분이 흑마법사의 흔적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어요.”
레온하르트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은…….”
“네. 루가 최근에 흑마법사를 만났다는 거죠. 아마 그자는 아직도 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
“……그 마법사가,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레온하르트의 말은 샤프 백작가의 마법사가 흑마법사일 가능성마저도 내포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다 해도, 루가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샤프 백작님이 분명 언급하셨을 거예요.”
“그렇긴 하겠군.”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분명 우리에게 더욱 경고했겠지. 우리 둘만 보내겠다고 했을 리도 없을 테고.”
셀린느는 얼굴을 찡그렸다.
베르누이성과 샤프성을 오가는 마력석을 만드는 데만 며칠이 걸렸을 터.
자신들을 찾아오기로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만 하루 이틀이 걸렸을 수도 있다.
어림잡아 일주일.
루는 그사이에 흑마법사의 공격을 받았다.
어느덧 그들은 루가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쿵!
둘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
셀린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가, 갱도 저편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
루는 셀린느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 날개를 접고 그녀의 곁에 달라붙었다.
레온하르트는 셀린느보다 더 당황했다.
“왜, 왜 이러는 건가?”
“모르겠어요…….”
셀린느는 마른침을 집어삼키며 루를 살폈다.
루는 단지 셀린느의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을 뿐 별문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레온하르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널 다시 주인으로 인식한 게 아닌가?”
“설마요!”
셀린느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걸어도 따라오고, 뛰어도 따라오는 루를 보니 레온하르트의 추측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느새 루를 대동한 채 광산의 입구까지 나오고 말았다.
밖은 완전히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아직 여름은 아니었기에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샤프 백작은 작은 모닥불을 피운 채 쉬고 있었다.
“공자, 루테. 안은 어떠셨……!”
샤프 백작이 일어나다 루를 보고는 기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셀린느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