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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107화 (107/120)

107화.

외전 2

셀린느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루야……!’

샤프 백작의 이야기 속 용은, 분명 지하 미로의 천장을 뚫고 날아가 버린 성장한 루였다.

물론 매우 잘된 일이었으나, 가끔 루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본 성장한 용들은 보통 평생을 유유자적하게 산다는 내용의 책들도 위안이 되어 주지는 못했다.

“짚이시는 바가 있는 모양이군요.”

“예.”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용이었습니까?”

“황금색의 아름다운 용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역시, 루예요.”

“루?”

셀린느는 간단하게 그들이 루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어떻게 떠나보냈는지 설명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사실들은 숨긴 채.

샤프 백작은 무척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셀린느 루테의 그 용은…… 새끼가 아니었습니까? 용이 그렇게나 빨리 큰다고요?”

“저도 그게 신기했어요. 책을 보니 용은 일반적으로 수백 년을 인간의 곁에서 보낸 다음에야 각성한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그 때문에 셀린느는 루가 사실은 용이 아니라 게임의 붕괴와 함께 사라져 버린 시스템적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샤프 백작이 그녀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역시 보통 용이 아니었군요.”

샤프 백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레온하르트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셀린느 역시 보통 마법사가 아니지요. 그것도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

셀린느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레온하르트의 말이,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가리킨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아무 맥락을 모르는 타인이 들으면 영문을 모를 칭찬일 뿐이었다.

“누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샤프 백작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흑마법사들로부터 황성을 구한 분인데.”

“……운이 좋았어요.”

샤프는 독성 연기를 피워 내던 거대한 톱니바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황실 소속 마법사들은 남아 있는 부속물들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했고, 먼 옛날 흑마법사들이 황궁 안에 숨겨 둔 장치라고 결론을 내렸다.

톱니바퀴를 멈춘 셀린느가 제국의 영웅 대접을 받은 건 물론이다.

레온하르트가 성급히 말에 끼어들었다.

“이렇게 오신 걸 보니, 저희가 남부에 가서 직접 해결하기를 바라시는 모양이군요.”

샤프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알아채어 말씀해 주시니 그저 기쁠 뿐입니다. 해결만 해 주신다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용을 막아 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최고급 마력석을 지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리고 한때 셀린느 루테의 용이 맞았다면…… 루테께도 나쁜 얘기는 아닐 겁니다.”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를 저대로 방치한다면 샤프 백작령이 큰 골칫덩어리를 안게 되는 건 물론, 루조차도 위험했다.

“남부에 다시 가 보고 싶었어요.”

“경고하는데, 더울 거다.”

“레온하르트, 전 마법사잖아요. 더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샤프 백작이 둘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더운 건 사실이지만…… 셀린느 루테의 말처럼 마법을 만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날씨지요. 공자께서 필요하시다면 저희 가문의 마법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리나 괜찮습니다.”

애써 미소 짓는 샤프 백작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레온하르트가 멋쩍게 상황을 수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광산으로 가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불필요한 인력은 보내실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알겠습니다.”

샤프 백작은 평이하게 대답했으나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세밀하게 세공된 마력석을 하나 꺼냈다.

셀린느의 눈이 커졌다.

일반적인 마력석이 아니라는 점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정확히 이동 마법만을 위해 세공한 아름다운 마력석이었다.

샤프 백작은 셀린느에게 조심스레 건넸다.

셀린느는 손사래를 치며 뒤 한 발짝 움직였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이동 마법은 아직도 어려워서요.”

“그렇습니까.”

샤프 백작은 무척 떨떠름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남부까지는 너무 멀어서……. 정확히 성내에 도착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한 번 써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

셀린느는 잠시 고민했다.

결과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더 나아지기까지 했으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는 스테이지의 개입이 없을 테니 좀 나으려나.’

하지만 레온하르트와 자신뿐만 아니라, 샤프 백작을 샤프가의 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다 한복판이라도 떨어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보기보다 걱정이 많군요. 괜찮습니다. 좀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마차를 타고 가면 되니까.”

“아, 아뇨.”

셀린느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루가 광산의 마력석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 상황.

마차를 타고 갔다간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일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백작을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었고.

“한번 해 보겠어요.”

“큰 부담은 가지지 마요.”

샤프 백작이 싱긋 웃었다.

“우리 가문의 마법사도 제법 유능해서, 무슨 일이 있다면 찾으러 와 줄 테니까.”

셀린느는 샤프 백작이 건넨 마력석을 꼭 쥐려다, 문득 레온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도 괜찮아요?”

“편지를 썼다.”

레온하르트가 종이 한 장을 슬쩍 들어 올렸다.

대공에게 여태까지 일을 보고하는 종이였다.

“아마 쌍수 들고 좋아하시지 싶은데. 그렇지 않아도 내가 영지에 관심이 너무 없다고 한탄하고 계셔서.”

맥박이 고동치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하며 온 정신을 마력석에 집중했다.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방 안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여긴…….’

셀린느는 눈을 깜박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듯한 성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생긋 웃고 있는 샤프 백작이 보였다.

“이렇게 잘할 거면서, 뭘 그렇게 엄살을 피웠어요?”

“그럼 여기가……?”

“알아보지 못하다니 섭섭한데요. 예, 샤프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셀린느는 샤프성에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를 떠올렸다.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성.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 성은 그때의 흔적은 완전히 없애 버렸다.

‘그 정도가 아니야.’

이곳에서 마물을 잡았을 땐, 단지 북부보다 장식이나 문양, 벽지가 좀 더 화려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셀린느는 이내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프성은 휘황찬란했다. 예전에 묵었던 남작가의 주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천장과 벽이 맞닿는 부분을 한가득 장식한 이색적인 꽃, 사방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그리고 창을 빈틈없이 가린 아름다운 커튼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눈이 자꾸만 돌아갔다.

“좀 놀랐나요?”

샤프 백작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전에 오셨을 때보다 모습이 좀 많이 달라졌긴 했겠지만…….”

“그냥, 너무 아름다워서요.”

셀린느는 자신이 정답을 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날카롭던 샤프 백작의 얼굴이 솜사탕처럼 녹아내렸으니까.

“이렇게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다 대공자와 루테 덕분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그간 고통받고 계셨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 죄송할 뿐입니다.”

샤프 백작의 얼굴에 비통함이 스쳐 지나갔다.

“……괜찮습니다. 공자께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셀린느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바로 출발해도 괜찮을까요? 얼른 루를 보고 싶어서요.”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해가 길긴 하지만, 곧 어두워질 겁니다. 하루 주무신 후 출발하는 게 괜찮을 듯합니다만.”

“레온하르트, 피곤해요?”

“아니.”

샤프 백작은 미소 지었다.

“하기야, 저희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따라오십시오.”

그들은 완전 무장을 한 채 광산을 향해 떠났다.

셀린느와 레온하르트는 그 모든 게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샤프 백작의 고집은 완강했다.

혹여나 셀린느가 키우던 루와 다른 용일 수도 있다면서 억지로 용의 불을 막아 준다는 갑옷을 입힐 정도로.

“만약 두 분께서 조금이라도 다치신다면 전 제국의 역적이 될 겁니다.”

“그럴 것까지야…….”

셀린느는 애매하게 웃었다.

샤프 백작의 말은 틀렸다.

그간 레온하르트와 자신이 얼마나 다치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움에 솔직하게 고마워하고 염려를 해 준다는 건 좋은 일이었으니.

그들은 각자 말을 타고 광산을 향해 내달렸다.

샤프 백작은 용이 사건 이전부터 마력석 채굴량이 가장 많던 광산에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황도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왔는지…….”

샤프 백작은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아직도 같은 용이 맞긴 한 건지 의아합니다.”

“맞을 겁니다.”

레온하르트가 조용히 말했다.

얼마 뒤, 그들은 광산 입구에 도착했다.

셀린느와 레온하르트가 이전에 간 적이 없는 광산이었지만 퀘스트를 위해 들어간 광산과 무척 흡사했다.

다른 게 있다면, 이 광산은 입구부터 잘 정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용을 보고 달아난 광부들이 남겨 둔 듯한 장비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샤프 백작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같이 가고 싶지만, 가신들이 절 내버려 둘 것 같지가 않군요.”

“비밀로 해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실은…… 저도 겁이 나서요.”

샤프 백작은 자신의 말을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이놈을 타고 달아날 수 있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만약 셀린느가 성장한 용의 위력을 책에서 읽지 않았다면 샤프 백작이 겁이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 쓰여 있는 성장한 용의 위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수백 년을 인간의 곁에 있으며 마력을 섭취했으니 그 능력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마을 하나쯤은 순식간에 없애 버릴 수 있는 게 용이었다.

레온하르트가 상황을 정리했다.

“알겠습니다. 피곤하시면 먼저 성으로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샤프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셀린느에게 작은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가장 상급품들만 골라 담았습니다. 필요하다면 아낌없이 쓰십시오.”

“감, 감사합니다.”

셀린느는 주머니를 품속에 넣었다.

샤프 백작령의 광산에서 나는 최상등품 마력석은 우두머리 마물의 그것과 비견할 만했다.

바로 그때.

셋 모두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광산 깊숙한 곳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셀린느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지하 미로에서 들린 용의 울음소리와 무척 흡사한 소리가.

그녀는 레온하르트가 말릴 새도 없이 광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셀린느!”

“루예요!”

셀린느는 단순한 반가움에 서두르지 않았다.

루의 울음소리에선, 무언가 끔찍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악하다기보단…….

‘다친? 죽어 가는?’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시라도 빨리 루를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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